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해외기사 분류

수넴의 훌륭한 여인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9월호>

이번 호에서는 열왕기하 4:8에 나오는 "수넴의 훌륭한 여인"에 대해 살펴보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성경은 매우 특이한 책이다. 자기 도시락을 드려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이실 수 있게 한 소년은 누구였는가?(요 6:9)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실 수 있도록 나귀 새끼를 빌려준 사람은 누구였는가?(막 11:4-6) 비록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들이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열왕기하 4장에 등장하는 이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도와주었고, 이에 주님께서는 그녀를 『훌륭한 여인』이라고 부르셨다. 사실 하나님께서 『훌륭한 여인』이라고 부르신 이는 이 여인뿐이었다. 로마카톨릭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나 "하늘의 여왕"으로 드높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훌륭한 여인』이라고 부르신 적이 없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훌륭하다"고 칭찬하셨다면 그것은 참된 영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염려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주님께서 당신의 삶을 기록하실 때 당신을 "훌륭하다"고 칭찬하시겠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위대함"은 세상의 기준들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위 이 세상에서 말하는 위대한 사람들, 곧 역대 파라오들이나 왕들, 황제들, 교황들 등은 주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훌륭함"의 기준에 감히 범접하지 못할 자들이다. 그렇다면 열왕기하 4장에서 왜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훌륭하다"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 여인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다. 『그녀가 자기 남편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이제 항상 우리 옆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나이다』(왕하 4:9). 즉 "종교 사기꾼"과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여인들, 그것도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영적 분별력을 지니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만약 이브에게 분별력이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악한 현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욥의 아내도 분별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남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주님께서 욥과 결별하셨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했던 것이다(욥 2:9).

폰티오 빌라도의 아내는 영적 분별력이 조금은 있었다. 그녀는 빌라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그 의로운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게 하소서. 내가 오늘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것으로 고통을 받았나이다』(마 27:19). 빌라도가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로버트 틸튼, 베니 힌, 짐 베이커, 패트 로버트슨, 지미 스와거트, 조용기 등과 같은 은사주의 사기꾼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등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적 분별력이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수넴 여인에게는 분별력이 있었다. 여자들이 영적 분별력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남자보다 영적 기만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딤전 2:14). 하지만 그녀는 종교적인 사기 행각에 속지 않았고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단번에 알았다.

두 번째로 수넴 여인은 "관대한 여인"이었기에 훌륭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이 지나갈 때 자기 집에 들러서 묵을 수 있도록 작은 방에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마련해 놓았다(왕하 4:10).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리스도인 여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당신은 관대한가?" 관대한 여인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할 것이다. 돈이 없다 해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도르카는 과부들을 위해 옷을 만들어 주었다(행 9:39).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은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 손을 펴는 여인이다(잠 31:20).

오래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즈음하여, 한 그리스도인 여인이 뉴욕 거리에서 추운 날씨 속에 남루한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신문팔이 소년을 보고는, 그를 백화점 안으로 데려가 따뜻한 털로 안감을 댄 신발과 모직 스웨터를 사서 입혔다. 이 소년은 그리스도인 여인의 친절에 감격하여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혹시 하나님의 부인이세요?" 물론 "하나님의 부인"은 아니었지만 그 여인은 그리스도의 신부의 일원으로서(엡 5:30-32) 『어린양의 아내』(계 21:9)답게 처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근면한 사람들의 돈을 그냥 삼키려 하는 거지들도 많기 때문에, "누구를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셋째로 수넴 여인은 "겸손한 여인"이었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 그녀를 불러 그녀가 보여 준 친절에 보답해 줄 요량으로 왕이나 군대 대장 같은 소위 "높은 사람들"에게 고할 것이 없느냐고 묻자, 이 여인은 『나는 내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왕하 4:13)라고만 대답했다. 즉 유명세나 명성을 얻기 위해 엘리사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의 여왕이었음에도 매우 겸손했다. 한번은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살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내 보좌에서 일어나 나의 왕관을 주님의 머리에 씌워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재클린 케네디 혹은 힐러리 클린턴 같은 여자들은 빅토리아 여왕과 비교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에만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어도 별 볼 일이 없다. 어떤 여자가 백악관이나 버킹엄 궁전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귀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랑자나 레즈비언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본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위치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코 바꾸지 못한다. 세상이 당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 예수님의 말씀에 유념하라.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움이니라』(눅 16:15).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의 세상이 당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실상 당신은 하나님 보시기에 형편없는 사람일 것이다(고후 2:16).

네 번째로 수넴 여인은 "자기 절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열왕기하 4장을 쭉 읽어 보면,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아들을 주신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선지자를 돌보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아이가 자라서 어느 날엔가 아버지와 함께 밖에 있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의 시신을 들고 가 엘리사의 침상에 놓은 후 선지자를 만나러 갔다. 이처럼 쓸데없이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자기 절제를 할 수 있는 훌륭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다섯째로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했기" 때문에 훌륭한 여인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 이 여인이 엘리사에게 갔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마 5:6, 요 6:35,63). 『마르다는 접대하는 일이 많아서 경황이』 없었다(눅 10:40). 하지만 그녀의 동생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녀에게서 그것을 빼앗지 못하리라』(눅 10:42). 왜냐하면 그녀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눅 10:39). 사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누가는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등을 거명하면서 다른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고 언급한다(눅 8:1-3).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유익을 원하시는 분이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처럼 보인다. 어떤 종교 지도자도 구주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선대하셨듯이 대하지 않았다. 모슬렘은 여인들을 성욕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지옥에 있는 자들 대부분도 여인들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힌두교, 일본의 신도교에는 여인들을 위한 구원 계획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여섯 번째로 수넴 여인은 "끈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엘리사는 그의 종 게하시를 앞서 보내면서 그의 지팡이를 죽은 소년의 얼굴 위에 놓게 했다(왕하 4:29). 그가 직접 가지 않고 게하시를 통해 지팡이를 놓게 함으로써 그 아이를 살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을 때까지 엘리사를 놓지 않으려 했다(왕하 4:30). 이것이 바로 "끈기"이다. 끈기는 뭔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드는 것을 말한다. 기도로 말하면 『끈질긴 간청』과 같다(눅 11:8).

미국 남부에 남편을 잃고 홀로 다섯 아들을 기른 여인이 있었다. 그 아들들은 모두 반듯한 그리스도인들로 자라났다. 사람들이 이 여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길러낼 수 있었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단지 나는 마귀가 내 아들들을 빼앗아 가는 것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마음먹었을 뿐이에요." 수로페니키아 여인도 마찬가지였다(막 7:24-30). 그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마귀 들린 딸이 해방될 때까지 예수님께 달라붙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이방인 개"라고 말씀하셨음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일곱째로 그녀는 끈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훌륭한 여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한 아들을 약속하셨고, 지금은 그 아들이 죽은 상황이다. 이에 그녀는 엘리사에게 말했다.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씀드리지 아니하더이까?』(왕하 4:28) 즉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주신 약속을 지키실 것을 말씀드리면서 엘리사를 끝까지 붙든 것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들을 주장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여인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말씀에 기록된 약속을 주장하는 것은 곧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히 11:6). 이 여인은 끈질기게 기도했고, 주님의 약속들을 주장하면서 그분의 말씀대로 이뤄주실 것을 말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넴 여인은 "감사"할 줄 아는 여인이었기에 훌륭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다시 살려서 받게 되자,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땅에 대고 절을 했다(왕하 4:37). 이것은 감사의 행위였다. 밥 존스 시니어는 "마음속에서 감사가 죽은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자주 말했다. 바울도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고 말한다. 이방인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신" 이유도 그들이 감사하지 않아서였다(롬 1:21,28). 수넴의 훌륭한 여인은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았다. 아들이 없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왕하 4:13). 불만은 감사치 않는 마음에서 나온다. 당신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는가?(살전 5:18)

과연 당신은 수넴 여인처럼 "훌륭한" 사람인가? BB

전체 288 / 9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