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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신교는 마틴 루터를 버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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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0월호>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체코의 수도 “프라하” 구시가지에는 “보헤미아”(현 “체코”의 서부 지방)의 위대한 종교 개혁가 “존 후스”(1369-1415)의 순교 5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 동상에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는 그의 명언이 새겨져 있다.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1415년 7월 6일, 존 후스는 “종교 개혁의 샛별”이라 불리는 영국의 “존 위클리프”(1320-1384)의 성경적 가르침을 옹호하고 전파했다는 이유로,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계 17:6) 취한 『마귀들의 거처』(계 18:2), “로마카톨릭”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죄목은 모두 40가지였는데, 그중 “일곱 가지”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부정 축재, 성적 문란, 알코올 중독 등으로 퇴폐한 삶을 일삼았던 “사제들”에게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 2 설교와 성경 강의를 “라틴어”가 아닌 “일반 평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할 것을 주장했다. 참고로 존 후스의 교회에서는 “체코어”로 예배를 드렸다. 3 “미사”를 거부했다. 4 그리스도인은 성당과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도 설교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5 “교황의 무오성”을 부인했다. 6 “교황”은 “교회의 머리”가 아니며, 교회 안에는 “성직자 계급”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7 “면죄부 판매”를 반대했다.
화형대에 올라선 존 후스는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아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켜 내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왜냐하면 진리가 우리를 ‘죄와 마귀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후 장작에 불이 붙기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당신들은 한 마리의 ‘거위’를 불태우지만, 100여 년 뒤에는 ‘백조’ 한 마리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백조’를 절대 구워 먹지 못할 것이다.” “후스”(Huss)는 체코어로 “거위”(goose)라는 뜻인데, 당시의 군중들은 존 후스가 설교할 때마다 “거위가 떠든다!”라고 조롱했었다.
한편 “존 후스”가 순교한 지 102년 만인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1483-1546)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 앞에 라틴어로 쓴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20년 6월, 마틴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파문을 선고받았고, 이 반박문을 철회할 수 있는 60일이라는 “유예 기간”이 그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절대 구워 먹을 수 없는 “백조,” 마틴 루터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박문을 철회하라는 “교황령”이 담긴 “칙령 사본”을 비텐베르크 시내 한복판에서 불태워 버림으로 그의 확고한 신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교황과 사제에게는 근본적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면권’이 없다. 교황은 스스로 죄를 사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고해성사 같은 방법의 참회가 아니라, 진정한 영적 회개가 이루어져야 죄의 형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면죄부’ 없이도 가능한 일이다. 헌금함에 넣은 돈이 헌금함 바닥에서 ‘쨍그랑’ 하고 소리를 내자마자, 불속에서 고통받던 혼들이 연옥에서 빠져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설교가 아니다. ‘면죄부’를 통해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반박문은 당대 모든 절대 권력을 쥐고 있던 “교황”에게는 “심한 모독”이자 “상당히 큰 도전”이었다. 웬만한 용기와 담대함 없이는 그런 “95개조 반박문”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성경적 성별”(Biblical Separa- tion)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종교 개혁가들의 후예로 자처하는 “개신교회들” 안에서는 이런 용기를 지닌 목사나 신학자를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 대부분은 세상 사람들의 호감을 사거나 세상 눈치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내용만 설교하는 “비겁한 겁쟁이들”이다. 그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고통스러운 진리인 지옥”에 대해 제대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법이 없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혼을 얻으시기 위해 ‘그의 가장 아픈 지점’을 건드리신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어떤 죄인”을 만나든지 “그 사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가장 사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마틴 루터는 “시골 출신의 전형적인 독일인”으로, “개방적인 성격”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냈고, 말씨나 태도가 매우 과격했으며 거칠기까지 했다. 루터는 “비진리”나 “불의”를 보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는데, 특히 “화를 낼 때”는 그의 “정신적인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대적들”을 향한 분노가 심하게 폭발할 때는 “성경적 진리를 수호하려는 루터의 열정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때”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의로운 분노”로 가득 찬 루터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 “펜”을 들면, 강렬한 문체로 종이 위에 줄달음치듯 글을 적어 내려가고, 한 장, 한 장, 또 한 장씩 글을 써 내려가는 그의 옆에서는 “인쇄기”를 통해 그 글들이 책으로 인쇄된다. 루터가 “마지막 한 글자”를 쓰고 펜을 내려놓을 때쯤이면, 그가 품었던 분노는 모두 가라앉고 인쇄기에서도 “새로운 소책자”가 거의 다 완성된다고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루터가 설교하고 나면 항상 반응이 “두 가지”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가든지, 아니면 그 앞에서 무릎 꿇고 회개하든지 둘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사를 통틀어 마틴 루터처럼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 인물도 없었다. 일례로, 마틴 루터를 향한 논평 중에는, “교회의 연합을 파괴하는 반란자,”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은 산돼지,” “수도원주의를 파괴한 반항심에 가득 찬 수도사”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순수한 복음 전파를 가능하게 만든 위대한 영웅,” “성경적 진리의 수호자,” “부패했던 교회를 개혁한 사람” 등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교황 “레오 10세”는 마틴 루터를 “술 취한 독일 놈”이라 불렀다. “제롬 알레안더”는 “바보, 개, 쌍놈”이라 불렀으며, 교황의 특사 “카제탄”은 “눈이 쑥 들어간 독일 짐승”이라 불렀다. 반면에 “피터 모셀라누스”는 루터를 “현명하고 활달하며, 매우 신선하고 침착한 인물”이라 평가했다. 루터는 결코 소위 “예의 바르게” 설교하는 법이 없었다. 과감하게 죄를 폭로하고 드러내면서 강력하게 설교했던 것이다.
루터의 이런 솔직하고 과격한 기질은 “교황 제도를 대적하는 투쟁”을 완결시키는 데 잘 활용되었다. 루터는 교황 “바오로 3세”를 “지옥 성하”(Your Hellishness) 또는 “가장 지옥 같은 아버지”(Most Hellish Father)라 불렀는데, 이것은 단순히 “육신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에 따른 발언이 아니었고, “성경적 진리”에 입각하여(살후 2:3, 계 13,17,18장)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그는 “교황”에 관해 이렇게 설교했다. “오, 교황이여, 이 말을 들으라! ‘가장 거룩한 자’가 아니고 ‘가장 죄 많은 자’여! 하나님께서 네 보좌를 하늘로부터 내던져 지옥의 깊은 불길 속으로 던져 버리시기를 원하노라. 누가 네게 하나님보다 네 자신을 더 높일 수 있는 권세를 주었단 말인가? 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땅을 굽어보소서. 속히 ‘심판의 날’이 임하여 로마카톨릭 안에 있는 이 ‘마귀의 거짓말쟁이’를 파멸시키소서! 이자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자가 ‘적그리스도’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나이다.”
“황제”를 향해서도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할 만큼 “진리의 말씀”을 정직하고 담대하게 선포했는데, 특히 “헨리 8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고의적으로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이 ‘저주받은 자’는 심히 부패한 자로, ‘하늘에 계신 나의 왕’ 앞에서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꾸며 대고 있도다. 만약 그가 ‘교회의 수호자’라면, 그 교회는 ‘주홍색 옷을 입은’(계 17:4), ‘피에 취한’(계 17:6),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일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마틴 루터는 교황이나 황제 등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경적 설교”를 서슴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그 어떤 대적들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용기를 불러일으킨 루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었다. 우선 그는 성경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기원하여 로마카톨릭을 통해 정착된 “알레고리적(비유적, 은유적, 영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지 않고, “시리아 안티옥 교회”의 성경적 원칙에 따라 “역사적이고 문법적인 문자적 방법”으로 올바르게 해석했다. 또한 “성경 자체가 가장 훌륭한 해석자”임을 믿었는데, 이는 그가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고전 2:13)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 곧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따랐음을 잘 보여 준다. 특히 “성경만이 최종권위라는 생각” 속에서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독특한 책으로 매 구절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라고 말했다. 사탄의 종들인 “오리겐”이나 “제롬”과 달리 성경을 “비평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참된 기독교 순례는 종교적이고 형식적이며 비성경적인 가증한 ‘로마’로 갈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그의 “슬로건”과 맥을 같이한다.
마틴 루터는 이러한 올바른 믿음 속에서 1534년에 <루터성경>을 번역 출간했는데, 이 성경을 기반으로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등 여러 나라의 언어들로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들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루터는 성경 번역에 있어서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만 의존했고, 그가 다루는 모든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놓으려 했다. 특히 사탄의 걸작인 “칠십인역”이 영감을 받았다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루터는 “성경”이라고 하는 “든든한 반석” 위에 서서, 로마카톨릭의 온갖 가증한 행위들과 우상 숭배 그리고 “행위 구원”을 위시한 각종 거짓 교리들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낱낱이 파헤쳤고, “성경”인 “성령의 칼”로 그들의 교권주의와 도덕적인 부패를 겨냥했으며, 로마카톨릭은 “창녀 교회”요,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고 외친 루터의 설교는 “대량으로 지옥의 문턱까지 한꺼번에 휩쓸려 간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해 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른 성경”이 낳은 열매들이었으니, “종교 개혁의 성패”가 바로 그 “성경”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당시 루터는 <루터성경>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출간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바른 성경이 모든 인간의 손에 들어가게 하자. 그래서 그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말씀을 해석하며, 성경의 빛을 따라가서 영적인 자유를 찾도록 하자. 그래서 이 땅의 백성들이 성경에 입각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자!”
이것이 바로 “종교 개혁”의 본질이며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곧 “개신교” 신앙을 낳은 요람이다. 종교 개혁의 “참된 의의”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계 3:8)라는 이 한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나의 말』, 곧 “하나님의 말씀”인 바른 성경을 지켜 냈기에 종교 개혁이 가능했던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기점으로 교회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위대했던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A.D. 1500-1900)가 열릴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또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께서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계 3:7,8). 문이 열렸다! 세계 도처에 “복음의 문”과 “선교의 문”이 열렸고, 중세 암흑시대(A.D. 500-1500) 동안 닫혀 있었던 “성경의 계시”가 활짝 열리면서 “부흥과 개혁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종교 개혁가들의 후예로 자처하는 “개신교회들”은 마틴 루터처럼 “바른 성경”을 갖고 있는가? “마틴 루터”의 후예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냈는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벧전 5:8). 여기저기 난도질되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개역한글판성경”이나 “개역개정판” 등은 성경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2,200단어 이상 삭제되고 성경 전체에서 36,000군데 이상 변개된 성서들을 어떻게 “성경”이라 할 수 있겠는가? “돈”을 향한 “탐욕”과 “시기심” 속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흉내 내거나 고쳐서 만든 “권위역,” “흠정역,” “근본역,” “표준역” 등의 “짝퉁 성서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모든 변개된 성서들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바로 “그 성경”이 아니라 중세 암흑시대를 가져온 성서들이다! 바로 그 변개된 성서들 때문에 오늘날 “배교의 시대”가 도래하고 말았다. 그래서 좀처럼 “복음의 문”이 열리지 않으며, 앞선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 있었던 “대부흥”이나 “대각성 운동”도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믿음도 없고 변개된 성서들이나 붙들고 있는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조명도 주시지 않는다. 결국 그들에게는 성경이 “닫힌 성경”이 되고 말았다. 결국 암흑시대의 로마카톨릭처럼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교단들과 대형 교회들을 따라 수많은 무지한 교인들이 지옥으로 휩쓸려 가는 비참하고 씁쓸한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틴 루터가 오늘날의 “개신교회”의 실상을 보면 “심장 마비”를 일으킬지 모른다! 과연 이런 모습을 보겠다고 “목숨 걸고” 성경을 번역하고 “목숨 걸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단 말인가? 그들은 루터의 후예들이 아니라 루터를 저버린 “배신자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던져 버린 “배교자들”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바른 성경”을 지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마틴 루터는 “성경이 없는 ‘교황’보다 성경으로 무장한 ‘평범한 성도들’이 더 강하다.”라고 말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찾으라! 이 성경을 들으라! 이 성경을 배우라! 이 성경을 사랑하라! 이 성경을 말하라! 이 성경을 지켜 내라! 죽기까지 이 성경을 수호하라! 이는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승인하신 “유일한 성경”이며,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