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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포도나무, 이스라엘의 최후 - 호세아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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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1월호>
1 이스라엘은 헛된 포도나무라, 그가 자기에게 열매를 내는도다. 그의 열매가 많을수록 그는 제단의 수를 늘렸으며, 그의 땅이 좋을수록 그들은 형상들을 좋게 만들었도다.2 그들의 마음은 나뉘었고 이제 그들에게서 잘못이 발견되리니, 주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부수실 것이요, 그들의 형상들을 헐으시리라.
3 이는 이제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에게는 왕이 없도다. 그러므로 왕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리요?” 할 것임이라.
4 그들은 언약을 세우는 데 거짓되이 맹세하며 말하였으므로, 심판이 밭고랑에 독초처럼 솟아나는도다.
5 사마리아의 거민들은 벧아웬의 송아지들로 인하여 두려워하리라. 그 백성이 그것을 슬퍼할 것이요, 또 그것을 즐거워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 영광이 그것으로부터 떠났음이라.
6 그것이 또한 앗시리아로 옮겨져 야렙왕에게 선물로 주어지리니, 에프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신의 계획을 부끄러워하리라.
7 사마리아로 말하면, 그녀의 왕은 물 위에 거품처럼 끊어졌으며,
8 또한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들이 파괴될 것이니, 가시와 엉겅퀴가 그들의 제단들 위에 솟아날 것이요, 그러면 그들이 산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덮으라.” 하겠고, 작은 산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호세아는 계속해서 범죄한 이스라엘, 특별히 제사장들과 왕족과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인다(호 5:1). 10장의 열 다섯 구절 중 열 세 구절, 족히 80퍼센트가 넘는 부분이 부정적인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헛된 포도나무라』(1절). 이 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지속적으로 맺지 못한다. 왜냐하면 참 포도나무(요 15:1-5)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무에 대해서 신명기 32:32은『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들에서 나온 것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 송이들은 쓰며...』라고 말한다. 원래 하나님의 아름다운 포도나무였던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한 나무가 된 것이다(사 5:1,2). 이들은 열매를 맺어도 잘못된 동기와 잘못된 방법으로 열매를 맺었다. 즉 이 나무는 “자기에게” 열매를 낸 것이다(1절). 그리고 이같은 “헛된 나무”가 맺는 열매란 “우상 숭배”라는 썩은 열매뿐이다(렘 24:2). 그들의 마음은 “나뉘어”(2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두 마음”을 품게 되었고(약 1:8), 그들의 마음을 우상들에게로 향한 것이다.
『“우리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에게는 왕이 없도다...”』(3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잊어버린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왕도 필요 없다. 그들은 “왕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요?”라고 말한다(3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왕이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왕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잊어버려라. 왕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해오지 않았는가!”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언약을 세우는데 거짓되이 맹세하며 말하였으므로』(4절). “언약을 어기는 자들”은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때 심판은 “밭고랑에 독초처럼” 솟아난다(4절). 거짓을 심으면 거짓을 거두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딤후 3:13). 여기서 “독초처럼 솟아난다.”는 말은 이것이 곡식보다 더 잘 자란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적용할 수 있다. 악한 씨는 더 빨리 자란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세상과 분리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영광이 그것으로부터 떠났음이라』(5절). “그것”은 벧엘 근처에 있는 벧아웬의 금송아지다(5절). 이 송아지는 앗시리아로 옮겨져 왕에게 주어지는데(6절), 이 왕은 이스라엘이 아첨했던 왕이다(호 5:13 참조). 이 송아지가 옮겨졌을 때 “그것”을 즐거워했던 제사장들은 “그것”을 슬퍼하게 되는데, 이는 영광이 “그것”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이다(5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리브 산으로 재림하실 때도 사람들은 “그것”으로 슬퍼하게 되는데, 이때 “그것”은 교육, 각종 종교, 철학, 과학, 휴머니즘 등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에도 신이 아닌 것들로 인해 슬퍼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산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덮으라.” 하겠고, 작은 산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8절).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예언이 이중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즉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는 6절에서처럼 B.C. 720년의 야렙 왕에게 적용될지라도, 교리적으로는 2700년을 뛰어 넘어 적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8절에서 그들이 산들에게 “우리를 덮으라.” 하고, 작은 산들에게는 “우리 위에 무너지라.”고 하는 말은 재림 때에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호세아의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다.『그때 사람들이 산에게 ‘우리 위에 무너져 내리라.’ 하며, 또 언덕에게 ‘우리를 덮으라.’고 말하기 시작하리라』(눅 23:30). 계시록 6:16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8절은 두 기간을 나타낸다. 즉 B.C. 720년과 대환란 기간이다.
9 오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날들로부터 죄를 지었도다. 그들은 거기에 섰으며, 죄악의 자손들에게 대항한 기브아에서의 전쟁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였느니라.
10 내가 그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것이 내 마음에 있나니, 그들이 두 고랑 사이에 그들의 몸을 묶을 때, 백성들이 그들을 대적하여 모이리라.
11 에프라임은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 고운 목에 멍에를 가로질렀으니, 에프라임으로 타게 하리라. 유다는 쟁기질을 하고, 야곱은 그의 흙덩이들을 깨게 되리라.
12 너희 자신에게 의로 심고 자비로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파 일구라. 이는 지금이 주를 찾을 때임이니, 그가 오셔서 너희에게 의를 비처럼 내리실 때까지라.
13 너희가 악을 갈고 죄악을 거두었으며, 너희가 거짓말의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 용사가 많으므로, 네가 네 길을 신뢰하였기 때문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가운데 소동이 일어나며, 네 모든 요새들이 훼손되어, 마치 전쟁의 날에 살만이 벧아벨을 훼손했던 것과 같으리니, 어미가 자기 자식 위에서 산산조각났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인하여 벧엘이 너희에게 그렇게 하리니,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왕이 완전히 끊어지리라.
9절의 “기브아의 날들로부터”란 재판관기 19장에서 한 레위인의 첩이 윤간당하다 죽은 사건을 가리킨다. 기브아의 벨리알의 자식들은 그 첩을 범하기 전에 먼저 그 레위인을 범하려 하였다(판 9:22). 첩이 죽자 그 레위인은 그녀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의 모든 지경으로 보내어, 기브아 거민들과 전쟁을 하게 했다(판 20장). 그러나 호세아는 여기 9절에서『죄악의 자손들에게 대항한 기브아에서의 전쟁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아 거민들의 죄를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 죄들을 좇았다. 특별히 그들은 동성연애라는 죄악을 범했는데, 거기서 행해졌던 음란한 동성연애인 “남색”(sodomites)은 베냐민 자손 가운데 행해졌으며, 다윗의 왕국과 솔로몬의 왕국에서도 행해졌고(왕상 11:1,5,8)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도(왕상 12장) 행해졌다. 그러다가 열왕기상 15:12에 있는 대로 “종교”로까지 되어버린 남색을 근절시켰을 때 그들은 북쪽으로 쫓겨났다. 남색은 유다뿐 아니라(왕상 22:46) 여로보암의 반란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으나, 왕을 우상화하던 자들과 함께 이 남색하는 자들은 더 많은 젊은이들을 타락시켜 더 많은 남성 동성연애자들을 만들고 있었다. (이는 인종통합을 가르치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억압받는 소수 민족”은 잠자리를 같이 할 백인 여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두 고랑 사이에 그들의 몸을 묶을 때』(10절). 이 구절에서 “그들”은 유다와 에프라임이다(11절). 이들은 두 밭고랑 사이에 묶여 있다(10절). 호세아 12:11과 10:4에서는 밭고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곧 우상을 위한 제단과 솟아오르는 심판이다. 유다와 에프라임은 “우상”이라는 같은 줄에 묶여 있는 것이다. 같은 고랑을 갈고 같은 멍에 아래 놓여 있는 두 마리 황소와 같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주 지긋지긋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악인의 쟁기질은 죄니라』(잠 21:4).
에프라임은 “길들인 암소”와 같다(11절). 그러나 잘못 길들여진 암소다.『곡식 밟기를 좋아하나』(11절).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9:9-10 참조). 에프라임은 밭을 가는 것보다는 먹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오늘날 대부분의 설교자들처럼, 미 3:5). 밭을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12절). 특히 일궈 본 적이 없는 땅은 더 그렇다(12절). 에프라임이 일궜던 유일한 땅은 잘못된 땅이었다(13절). 즉 “악을” 갈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거둬들인 것은 “회오리바람”(호 8:7)이었다.
『야곱은 그의 흙덩어리들을 깨게 되리라. 너희 자신에게 의로 심고 자비로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파 일구라』(11,12절). 여기에서 야곱은 그의 아들(유다)과 손자(에프라임)를 대표한다. 즉 이 민족 전체는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갈 것이다(마 13:38). 이들은 “의”(righteousness)로 심기 전에(12절) 무엇인가 갈아야 한다.
『너희가 악을 갈고 죄악을 거두었으며, 너희가 거짓말의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 용사가 많으므로, 네가 네 길을 신뢰하였기 때문이라』(13절). 육신의 무기를 신뢰하면(렘 17:5) 재앙이 따른다(삼상 17:11). 이것이 이스라엘 왕들에게 군대를 계수하지 말라고(삼하 24:2) 말씀하신 이유이다. 계수하라고 명령하실 때만 계수하면 되는 것이다(민 1-3장).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는 말은 더 이상 한 나라의 모토가 아니다. 계몽주의를 신뢰하고, 월 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을 신뢰하고, 뉴스 매체를 신뢰하고, UN을 신뢰하고, 일방적인 군비 축소를 신뢰하고, 하나님도 성경도 필요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며 국가 간의 화해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데탕트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네 모든 요새들이 훼손되어, 마치 전쟁의 날에 살만이 벧아벨을 훼손했던 것과 같으리니, 어미가 자기 자식 위에서 산산조각났도다』(14절, 호 13:16, 시 137:9 참조). 범죄한 이스라엘의 최후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통된 비극은 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전쟁에서 여자들이 옛날의 전쟁에 비해 더 많이 죽는다고는 하나 비극은 마찬가지이다. 옛날의 전쟁은 주로 적의 군대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이 관심사였다. 앗시리아인들은 어떤 성읍이 항복하지 않으면 남자, 여자, 어린 아이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죽이고 남자 포로들을 화형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왕이 완전히 끊어지리라』(15절, 7절, 시 30:5 참조). 여기에서 “왕”은 호세아다. 예언의 내용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자신의 통치를 끝마칠 것이라는 것이다. 24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심지어 12시간이 지나지도 않아서 그는 왕권을 포기하게 되고, 포로가 되어 묶여서, 감옥에 갇혀 옮겨지게 되는데, 그 시간은 아침 식사가 소화되는데 걸리는 시간쯤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결국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했으며 이것은 범죄한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