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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투갈과 스페인에서의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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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1월호>
윌리엄 가디너는 브리스톨에서 태어나서 26세때 위탁판매인으로 리스본에 있었다. 거기서 그는 구원받았다. 그는 로마 카톨릭이나 교황에 최소한의 불쾌감을 주는 일들을 조심스럽게 피했다. 그러던 중 포르투칼 왕자와 스페인 왕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성당에서 진행된 이 결혼식에는 수많은 고위급 인사들과 왕실 전체가 참석했다. 거기서 그는 그가 본 미신적인 행위들로 인해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정도를 넘어선 숭배와 나라 전체가 극심한 우상 숭배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이 순교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포르투칼에 개혁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경멸 속에서 죽게 되든지, 그의 신중함을 열성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그는 자신의 세상적인 모든 일들을 처리하고 빚을 청산하고, 책들을 정리하고, 그의 모든 상품들을 넘겨주고, 다음 주의 첫날 손에 신약을 들고서 성당으로 갔다. 왕과 왕실 사람들이 등장하고, 추기경이 미사를 시작하고, 미사 중간에 사람들이 성찬용 빵을 숭배했다. 가디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추기경에게 가서 그것을 빼앗아 발로 짓밟았다
전체 회중이 이 행동에 놀랐으며, 한 사람이 단도를 꺼내어 그의 어깨를 찔렀다. 왕이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거기서 죽었을 것이다.
가디너가 왕 앞에 끌려왔을 때 군주가 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영국인이며 프로테스탄트로서 직업은 상인입니다. 제가 한 행동은 결코 폐하의 인격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미신들과 엄청난 우상 숭배가 여기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본 정직한 분노에서 기인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은 다른 사람의 부추김으로 그가 이런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선동자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제 자신의 양심 뿐입니다. 제가 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위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감옥으로 보내졌고, 리스본에 있는 모든 영국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일로 고문을 당하고 자백을 강요당했다.
가디너에게도 심한 고통을 주는 고문들이 가해졌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교수대 옆에 큰 불이 지펴졌으며 활차로 거기에 운반되었다. 그리고는 불에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그를 두고 느린 속도로 그를 불에 그을렸다. 그는 고통을 참을성 있게 견디었으며 자신의 혼을 주께 기꺼이 내 맡겼다.
가디너를 살랐던 불의 불꽃이 항구쪽으로 가서 왕의 전함들 중 하나를 태우고 상당한 다른 손해들을 끼쳤다는 사실은 특이할 만하다. 가디너가 죽은 뒤에 이 사건으로 잡힌 영국인들은 풀려났지만 가디너와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은 자유를 얻기까지 2년을 갇혀 지냈다.
스코틀랜드 태생의 윌리엄 리드고우의 삶과 고통
리드고우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유럽 전역을 다니던 중 스페인의 마라가에 이르러 거기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프랑스 배에 승선하려 던 중 작은 사건으로 잠시 거기에 머무르게 되었다. 영국 군함이 터키 배로 오인되는 바람에 그 도시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나 결국 오해가 풀린 일이 있었다.
그 영국군함에는 리드고우가 잘 아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서 리드고우를 군함에 초대했다. 며칠을 그들과 함께 지낸 후 해변에 내려서 그의 숙소로 가던 중 그는 갑자기 9명의 장교들에게 둘러싸여 사령관의 집으로 납치되었다. 즉 스파이로 오인된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시내의 영국 상인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특히 사령관은 그를 배반자며 스파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영국을 이롭게 하고 스페인에게 악영향을 끼칠 계획을 돕고 있으며, 스페인 함대가 인도에서 돌아오는 때를 알기 위해 세빌에 9개월 간을 머무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배의 장교들을 알고 있었으며 지나치게 그들이 예의바른 것에 트집을 잡았다.
그는 비밀리에 사령관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그에게 강철을 지우고 1야드 길이의 철봉으로 그의 다리를 늘렸다. 그것이 너무나 무거워서 그는 설 수도 없었으며 계속해서 등을 대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여러 차례의 심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했다. 마침내 그는 고문실로 인도되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심한 고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지하 감옥으로 옮겨졌다.
며칠 후에 사령관과 한 명의 심문관과 교회법에 따른 사제가 두 명의 예수회 회원과 지하 감옥에 와서 질문을 했다. 심문관이 그에게 그가 로마 카톨릭인지 교황의 최고 권위를 인정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둘 다 아니라고 말했으며 영국과 스페인의 평화조약에 의해서 영국 국민은 누구라도 심문을 받아서는 안됨이 분명하게 규정화되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고통속에서도 그의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표현을 사용했다. “당신들은 거짓 되이 꾸민 반역이라는 이유로, 거의 나를 살해할 지경에 이르게 하고 이제는 나의 믿음을 이유로 나를 순교자로 만들 셈이로군..” 또한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스코틀랜드 해안에 좌초되었을 때 스페인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귀한 인간애가 실천되어 그들이 안전을 얻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사령관은 리드고우가 한 말이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거만한 태도로 그 때 당시 스코틀랜드만을 다스리고 있었던 왕이 사랑보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으며, 그러므로 감사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회 회원 중 하나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스파이로 붙잡혀서 반역죄로 고소되어, 우리도 인정하지만 무죄하게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을 네게 가져오신 이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왜냐하면 오만하게도 로레토의 축복된 기적을 웃음거리로 여기고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사이며 위대한 대리인인 거룩한 교황을 부당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 후 그들은 이 죄수에게 8일 간의 생각할 여유를 주고 그의 종교의 개종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예수회 회원이 십자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나의 아들이여 보라, 너는 산채로 불에 태워져야 마땅하지만 네가 신성을 모독한 우리의 로레토의 은혜로 너의 혼과 몸을 살려 두리라”
다음날 다른 세명의 성직자들이 와서 그로 개종하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그의 양심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내 마음에 어떠한 의심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약속들을 신뢰하고 복음 속에 나타난 그의 계시된 뜻을 확실하게 믿으며 개혁된 카톨릭 교회에서 공언하는 것처럼 은혜로 확실시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이 말에 심문관은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다만 터무니 없는 이단일 뿐이다.”라고 했다. 리드고우는 무례한 말과 고문대와 고문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종교의 본질과 정수에 위배되며, 성경에서 표출된 논쟁에 의하지 않은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문관은 리드고우의 대답에 너무나 분개해서 그의 얼굴을 치고 악한 말들을 하며 그를 칼로 찌르려고 했다. 예수회 회원들이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음날 두 명의 예수회 회원이 와서 그가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물었다. 리드고우는 자신의 의견을 바꿀만한 실질적인 이유들을 그들이 보여줄 수 없다면 그의 결정은 이미 확정되었다고 말했다. 가장 고참자가 그들의 일곱 가지 성사를 보이고 성도들의 중보와 성면화(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와 그들 교회의 전통과 확고함과 보편성을 자랑했다. 리드고우는 이 모든 것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진 믿음의 표현은 사도들의 시대 이후로 계속되어 왔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들의 가장 큰 어둠의 시대에서도 자신의 교회를 (그러나 보이지 않음)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쟁이 바라는 만큼의 효과가 없음을 알고, 또한 고문으로도 그의 태도를 바꿀 수 없고, 잔인한 형을 선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쩔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은 심한 악의를 표한뒤 그를 떠났다. 그러나 형이 선고되어지던 날 그들은 다시 와서 이번에는 말과 행동에서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며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가 끔찍한 죽음을 겪어야만 하는 것을 그들 마음 깊이 유감스러워 하는 듯이, 그리고 가장 귀한 혼을 잃게 되는 것을 애통해 하는 듯이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오 사랑하는 형제여 개종하라.” 이에 리드고우는 “나는 죽움도 불도 두렵지 않다. 둘 다 준비되었다.”고 했다.
그가 받아야 할 형은 네 번의 서로 다른 고문이었다. 만약 그가 이후에도 살아 남게 되면 그는 부활절 이후로 그레나다로 옮겨져 화형에 처해지기로 결정되었다. 그날 밤 이 선고의 처음 부분이 대단한 야만성과 더불어 행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몸과 마음에 힘을 주사, 진리에 굳게 서게 하시고 그에게 가해진 무시무시한 형벌들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셨다.
이와 같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 한 터키인 노예가 그에게 비밀리에 건포도와 무화과를 가져다 주었다. 리드고우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노예가 리드고우의 비참한 상황에 마음이 움직여서 40일 이상을 계속해서 음식을 나르고 그를 돌봤기 때문이라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던 중 스페인 신사 한 명이 그레나다에서 마라가로 왔는데, 사령관에게 초대를 받아 리드고우가 당한 모든 것을 듣게 되었다. 즉 스파이로 오인된 리드고우가 무죄하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는 자신의 돈과 서류들과 부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댓가를 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을 조사하던 중, 그들의 종교에 비춰볼 때 신성 모독적인 저작물들이 발견되었고, 이런 이단적인 의견들을 바꾸기를 거절함으로써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마침내 사형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사령관이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식탁에서 시중을 들던 플란더즈 젊음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으로 인해 놀라움과 연민에 사로잡혀 그 주인의 숙소로 돌아와서 그 밤을 그 죄수를 생각하며 보내다가 다음날 시로 가서 영국 상인 윌드를 찾아 그 이야기를 다 해 주었다.
곧 윌드는 다른 영국 상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영국대사를 통해 스페인 왕에게 전체 사건을 알렸다. 그리하여 왕과 스페인 의회에 리드고우의 기록들이 보내졌고 결국 그는 석방되었다. 리처드 호우킨경이 리드고우의 서류들과 돈과 책들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리드고우는 그의 왼쪽 팔을 잃었고 작은 몇개의 뼈들이 부숴지고 부러져서 그 이후로 불구의몸이 되어 버렸다. 그는 영국이 유럽의 나라들과 왕들에게 노예의 굴종상태가 될 위험에 처해있었던 그 평화 통치기간 동안 영국 의회에서 참으로 대단히 큰 영향을 끼쳤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