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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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사 vs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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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8월호>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조건은?



오늘날과 같은 배교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있다. 배교란 말이 믿음을 떠나는 것을 뜻하기에 배교한 무리들이 믿음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롬 10:17). 그러나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저질러지는 배교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교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속담처럼 배교는 작고 사소한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배교는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에 없는 것을 인간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체계와 편의를 위해 도입할 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카톨릭의 배교는 소도둑의 수준을 넘어서 이미 소떼전체를 훔친 경우일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직제와 제도는 거의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 사제, 수녀, 미사, 고해성사, 그리고 연옥과 같은 것은 성경을 아무리 샅샅이 뒤진다해도 결코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성경에 나오지 않을지라도 카톨릭 교도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믿음”에 있어서는 성경이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로마 카톨릭과 불교 중 어느 종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매우 곤란할 것이다. 로마 카톨릭이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고 있는 만큼은 불교신자들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배교한 개신교도 이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배교한 “큰 형님” 카톨릭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얼마전 어떤 교단에서는 “강도사”고시를 치뤘다고 한다. 그 교단에서는 강도사고시의 합격점을 60점으로 잡고 있다. 59.9점을 맞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60점을 맞은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행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준은 없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목자의 여러가지 자격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독은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하고 신중하며, 예의 바르고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가르치기를 잘하고...” 그러나 어디에서도 “시험을 보면 적어도 60점은 맞을지니라.” 따위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여자목사가 비성경적인것 만큼이나 강도사 고시도 비성경적인 제도인 것이다.
게다가 성경 어디에 “강도사”라는 말이 나오는가? 강도사건 전도사건 성경 어디에서도 “도사”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변개되고 오역된 가짜 성경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비슷한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사님”들은 어디에 나오는 것일까? 배교한 기독교계는 이러한 “도사 제도”의 근거로 자신들의 “교단 헌법”을 제시 한다. 그러나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장자”교단의 헌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삼류 잡지나 점쟁이의 부적 쪼가리보다 더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 창조주를 숭배하려는 것이 바로 이 세상 종교의 특징인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당신의 상상과 당신의 계획과 당신의 마음대로 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제멋대로 섬기는 것을 결코 받으시지 않기 때문이다.

목자가 되는 조건은 어떤 시험을 통과한다고 갖추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베드로는 어떤 강도사고시나 목사고시도 통과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때에는 교회가 “원시적”이어서 목사고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도시대에도 그러한 반 성경적인 제도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베드로는 “인가받은 4년제 신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행 4:13). 찰스 헤이든 스펄젼은 목사고시를 통과한 적도 없고 어떠한 신학교를 나온 적도 없지만 그를 가짜 목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베드로나 스펄젼 같은 사람들이 왜 훌륭한 목자들이었는지 아는가? 만약 당신이 그 이유를 당신이 속해 있는 교단의 헌법에서 찾고자 한다면, 당신이 그것을 찾는 데는 아메바가 원숭이가 되는 데 걸린 만큼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것을 찾고자 한다면 당신이 성경을 눈을 감고 읽지 않는 이상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왜 훌륭한 목자였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를 목자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요한 웨슬레도, 찰스 스펄젼도, 조나단 에드워드도 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훌륭한 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었으며 I.Q.가 높아서도 아니었고 목사고시에 뛰어난 점수로 합격해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목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들은 목사고시나 강도사고시에 합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목자로서의 증거를 보였다. 목자의 자격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증거는 크게 3가지가 있다. 구령을 잘하고, 양떼를 건전한 교리로 잘 양육시킬 수 있도록 성경을 잘 가르치며, 설교를 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이 보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목사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신약교회의 목사라면 두 번 안수를 받게 된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고, 둘째는 먼저 지역교회의 목사가된 자들에게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목사로 안수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구령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와 설교하는 은사를 주시는가? 강도사고시를 60점 맞은 사람에게 주시는가? 아니면 인가받은 4년제 신학교를 나온 사람에게 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절간에 앉아서 염불이나 외는 사람을 목사로 부르시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사람들을 목사로 부르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믿는 사람에게 자신의 양떼를 맡기신다.
당신은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목사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실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준비시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을 목사로 부르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구령의 열정이 없는 사람과 설교를 못하는 사람을 목사로 부르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령을 잘하는 것과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과 설교를 잘하는 것은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자격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이외에 목사가 되고자 원하는 사람은 한 가지 더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겸손이다. 구령을 잘하고 성경을 잘 가르치며 설교를 잘하는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왜 그의 양떼를 맡기시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조건은 강도사고시나 인가받은 신학교의 졸업장이 아니다. 아마 교단의 헌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강도사라는 직분이 “목사실습생”정도로 생각될지 모르나 하늘에서는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도 없는 직분을 만들어서 교회놀이나 하며 양떼에게서 이익을 취하는 “날강도”라고 부른다(렘 23장). 배교한 교단 교회들이여, “도사”들은 계룡산으로 돌려보내고 성경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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