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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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없는 종교는 쓰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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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10월호>

성경적 지식이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계도할 수 있다며 성경을 가르치려는 목자들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교회를 하려다 보니 세상 사람들(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거듭나게 하는 일은 하지 못하면서 목사 행세를 하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딤전 2:4)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교회 사역의 핵심이다. 모든 사람이 죽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아야 하며 또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성경적 지식을 얻어야 한다. 이 지식은 자기가 거듭난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다가 주님 곁으로 가서 어떻게 다시 부활하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허다한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장로교, 남침례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라고 해석하지 않고 택함받은 사람들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의 성경 해석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져 무수한 사람들이 구원받지도 못한 채 근거도 없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교회만 다니도록 만들었다. 어떤 교회에 속했다고 해서 지옥에 안 가는가? 그런 것은 없다.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았으면 그의 혼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가는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구원받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세상에 여러 가지 종교가 있지만 거듭남(born again)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불교의 중들, 힌두교의 구루들, 천주교의 사제들, 모슬렘의 이맘(Imam)들에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
나는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진리의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성경적 지식은 사람이 죽었다가 곤충이나 새, 물고기, 짐승 등으로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가 그런 하등동물로 태어나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게라도 해서 안위를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사는 것이다. 자유국가 아닌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 8백만 명이나 있다. 적어도 사람이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왜 그 일을 하려 하는지 자신이 먼저 알고 행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권면하고 함께하자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자기도 잘 모르고 혼미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면 사람의 불멸의 혼을 걸고 하는 일에 무책임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믿고 섬기고 순종하는 신을 잘 알고 있다. 그분은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것도 단 6일 동안에 그렇게 이루신 분이다. 그분은 남자를 자기 형상대로 흙으로 빚으시고 그에게 콧김을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혼을 지닌 사람이 되게 하셨다(창 2:7). 여자를 만드실 때는 남자로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신 후 갈비뼈 하나를 빼서 만드시고 살로 대신 거기를 채우셨다(창 2:21). 인류 역사 6천 년 동안 어떤 의사, 과학자, 진화론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주장과 이론을 뒤엎지 못했다.
나는 성경이 진리의 서적이기에 믿는다. 이 성경에는 예언들이 있고 그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또 되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모두 성취될 것이기에 믿는다. 사람의 혼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죽은 뒤에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히 9:27). 예수님께서 왜 사람이 성경을 믿어야 하는가를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 12:48).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가장 큰 증거이다(요 3:16).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자신을 드려 하나님의 피를 흘리시어(행 20:28) 모든 인간들의 죄문제를 해결해 놓으셨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10).
그러나 그들이 모두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니고(롬 10:16) 자기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 종교를 선정하거나 아니면 모슬렘이나 카톨릭처럼 강제로 종교를 갖게 되기도 한다. 구원의 복음은 하나뿐이요, 진리도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들 종교들도 인류를 구원하겠다며 각기 그들의 도를 전하고 있다. 모슬렘 국가들과 카톨릭 국가들은 자유가 없지만 인간으로서 그 선택은 자유이다. 누가 옳은지 어떻게 아는가? 성경으로 알 수 있다. 성경만이 그것을 측정하는 잣대요, 기준이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를 포교하려면 진리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하고 그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의 영이 죽어 태어났기에 그 죽은 영을 살려 받아야 함을 설명해 주셨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 일 만에 성경대로 살아나셨다. 그리고 지상에 40일 동안 계시면서 5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보이셨고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승천하시면서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렇게 믿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이며 설득을 위한 입발림이나 첨가된 것이 전혀 없다. 예수님은 기독교란 종교를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오셨다(마 9:13, 막 2:17, 눅 5:32).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온 것이라』(막 10:45).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하리라』(막 8:35).
새로운 생명을 낳지 못하는 종교는 그 무엇이나 썩은 종교이다. 그런 것들은 알곡이 못되기에 쭉정이일 뿐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신다(요 3:36).
세상의 모든 종교들도 사후의 생에 대하여 또 지옥과 낙원에 대하여 그들 나름대로 말하고 있다. 누가 자기와 같은 인간의 성정을 지닌 사람이 사후의 생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였다고 해서 그 말을 신뢰하고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 사람이 죽는 것은 죄 때문인데 죄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그리스도의 피뿐이다. 그 피를 거절했으면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세상 종교들이 그들 나름대로 사후의 생에 관해서 떠드는 것은 모두가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빌려온 것들일 뿐이다.
종교는 그 사람의 생이 끝나면 끝나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거듭난 사람의 생명은 지상 생명과는 다른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히 살아 계신 분,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 분,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분, 이 땅에 천년왕국을 수립하시어 통치하실 분,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시고 화평을 주실 수 있는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요 10:11). 지상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잃게 되나,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생에까지 보존하게 된다(요 12:25). 종교적인 사람은 불교, 힌두교, 유교, 모슬렘, 도교, 신도교, 천주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신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거듭나지 않았으면 그런 종교의 부류에 속한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를 알 수 없다.
따라서 복음 전파의 의미도 잘 알 수 없다.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자기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데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가보라. 몸에 호스를 여러 개 꽂고 신음하며 지나가는 의사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얼마를 더 살아야 만족하겠는가? 의사가 생명을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는가? 그 의사는 죽지 않는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고 말씀하셨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가? 마귀의 자녀들이다. 누가 복음의 가치를 알고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다. 거듭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진솔하게 마음으로 믿고, 그분께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어떤 죄인도 구원해 주신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이 복음의 소중함을 안 사람들이 복음이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오지로 가서 한 명의 혼이라도 더 영생을 얻게 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돈은 많고 할 일 없는 잉여 인간들이 철없이 단기 선교라며 해외 여행하는 무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이 많은 열매를 내는 한 알의 밀이라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영원히 사는 생명을 얻는 것이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믿음이 없으면 이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주님께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를 알았으면 이렇게 살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 생명을 낳지 못하는 종교들, 그 중에는 교회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고 사는가? 그들이 낸 열매로 그들의 종교란 나무가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졸속협상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MBC PD 수첩의 날조된 영상을 타고 불안을 조장하였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이 선동 문구로 국민을 자극함으로써 서울 시청 앞은 금년 6월부터 100여 일 이상을 폭도들에게 점거되어 공권력이 마비되었고 무법천지가 되었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전대협동우회란 깃발을 들고 시위에 가세했다. 포털사이트에는 "이젠 무기를 들자. 화염병을 제조하자. 중장비를 들고 나오라! 한나라 당사, 경찰서 등 습격할 곳이 많다."고 설득했다. 그들은 이 땅의 좌파들로서 이전 정권들이 만들어낸 자들인데 대선 결과에 승복하기 싫고, 미국이 싫고, 우파정권이 싫었던 것이 이때다 싶어 파고들었던 것이다. 천주교 사제단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고 불교의 중들이 끼어들었으며 개신교 목사들도 끼어들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가 생명을 낳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일에 관심이 있으며 그것도 합법적인 정부 타도를 외친 폭도들과 동조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계는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소위 광우병 대책위 간부들을 은닉해 주고 있다. 경찰이 조계종에서 나오는 주지승의 차를 수색했다고 해서 종교 편향이라며 경찰 총수의 파면을 요구하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종교라면 그들 나름대로의 중생 구원론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바 중들은 세속을 등지고 조용한 산사에서 뭔지는 몰라도 깨우침을 위해 구도해야 마땅하다. 천주교 사제들은 무엇이 정의 구현인지는 몰라도 담장 안에서 처녀 마리아에게 절하며 과자나 먹고 포도주나 마시며 역시 구도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개신교 목사들도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잘 일이다. 자기들이 할 일이 아닌 일에 끼어들면 체면과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런 일을 하면서 세상에다 자기를 알리는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종교이다. 그들이 했던 일들은 구국운동도 아니요, 구원과는 거리가 먼 종교행위일 뿐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셨다(요 17:9). 사람들은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기에 지금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는데 세상 종교의 틀에 복음 전하는 교회를 집어넣고 그들과 동일하게 여기게 될 때 복음은 그들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세상에 맛을 들였다 할지라도 구원은 받고 종교놀이를 해야 한다. 자기도 구원받지 못하였으면서 인간의 구원을 말하며 세상 속에서 자기를 알리는 것은 종교도 아니고 쓰레기이다.
구원 없는 종교야말로 인간을 기만하는 가장 가증한 사기극이다.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약 4:14). 이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으라! 그러면 자신의 행색을 보게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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