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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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UN)이여, 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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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2월호>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가리켜 "국수주의"(ultranationalism)라고 하는데, 이는 타민족ㆍ타국가에 대한 배타적이고 초월적인 태도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런 이념이 절정에 달하여 불거져 나온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는데,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메이지 이후의 국수보존사상이 가져온 폐해였던 것이다. 결국 국제 사회는 이런 공멸할 수밖에 없는 전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전쟁 억제책으로 임시방편으로나마 "국제연합"(UN)을 설립했다. 목적은 분명했다. 곧 전쟁을 방지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해 보겠다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인간들끼리 "지상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가증한 음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이런 "UN이 역사상 최고의 평화의 시대를 펼치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책임지지도 못할 허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1950년), 그것은 정말이지 책임질 수 없는 망발이었으니 그에게는 "미래의 역사"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차분하게 앉아서 미리 기록된 역사책인 성경의 예언을 유념해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거부하거나 성경에 무지한 자는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으니, 교황이든 대통령이든 독재자든 비선실세든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소위 "평화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는 UN이 1945년 창설된 이래로 세계에는 177회 이상의 무장 갈등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중 12회는 굵직하고 중요한 전쟁이었고, 21회는 중간 규모의 전쟁이었으며, 23회는 반란, 16회는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전쟁, 36회는 정권 교체를 위한 내란, 24회는 군사력 개입이었다. 특히 코소보전쟁은 국제연합의 한계를 보여 주는 극명한 예라 할 수 있는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이 말해 주듯이 평화와 인도적 개입을 이유로 또 다른 형태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전쟁 방지를 위해 설립된 기구가 평화를 명목으로 오히려 "전쟁"을 정당화시킨 것인데, 이는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게 될 적그리스도의 실상이기도 하다(단 8:25). 심지어 그들은 시리아 내전이나 북핵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UN이 국제 분담금이나 축내는 쓸데없는 기구임이 분명하지만, 세계가 평화를 열망한다는 사실만큼은(학 2:7)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세계 평화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지구 곳곳에서는 때아닌 "민족주의" 리더십이 득세하면서 국제 사회의 분열과 충돌에 대한 우려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른바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면서 국민들을 선동하는 "스트롱맨"(strongman), 소위 "마초"(macho) 정치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우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라든지, 2012년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천명하면서 민족주의 부활의 시발점이 된 중국의 시진핑 주석, 같은 해 "소련의 재건"을 선언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메이지 유신을 높게 평가하면서 자위대 부활과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의 극우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아베 신조, 힌두 문화의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인도의 모디 총리,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공언한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등 모두 다 국정 장악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영국의 "브렉시트," 곧 유럽연합(EU)의 탈퇴 배경에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어 하는 영국인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배타적인 "민족주의"로의 회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세계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인데, 난민 유입의 증가나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의 사회ㆍ경제적인 위기라든지, 세계의 부가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로 몰리면서 미국 및 유럽 여러 국가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작가는 "지금까지의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라는 세계정세가 '개방'과 '폐쇄'의 대립 구도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현상은 국제 사회로 하여금 UN의 보다 "강화된" 기능을 요구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들의 열망』(학 2:7)은 "민족 간 대립"보다는 "세계 평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화를 위해서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은 UN에 계속해서 헛된 기대를 걸 것인데, 이는 그들이 지나간 역사를 통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UN의 무능력이 분명하게 입증되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죄인들에게는 평화를 위한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UN을 보다 강화하고 UN의 평화 유지군을 강력하게 통솔할 "통치자"(겔 28:2)의 등장을 기다릴 것인데, 21세기 초 『새천년(Millennium) 개발목표』에 그들이 명시한 바, 극심한 빈곤과 기아를 근절하고 에이즈 등의 질병을 퇴치하면서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고 개발을 위한 전 세계적 동반 관계를 구축할 "한 사람," 곧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쓸모없는 국제연합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현명하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뿐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1. 우선 세계 평화의 시작은 국제연합이 아니라 화평의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예루살렘을 세워 그것으로 땅에서 찬양이 되게 하시기 전에는 그로 쉬시지도 못하게 하라』(사 62:7). 만군의 주께서는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그것도 "열성"을 가지고 일하신다(사 9:7; 37:32). 이는 예루살렘이 이 땅에서 아직 "찬양"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성읍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채로 대환란 때는 "소돔과 이집트"라고까지 불리게 된다(계 11:8). 예루살렘이 찬양이 되고 화평의 성읍이란 명성을 되찾기 전까지 세계 평화는 꿈도 꿀 수 없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싸우시고(슼 14:1-3) 그 성읍에 화평을 주실 재림 때에, 현 시대의 모든 전쟁은 종식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열망하는 자라면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번성하리로다』(시 122:6). 그런데 UN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지 않는다.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하여 역대 사무총장 그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을 사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예루살렘의 주인인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마호메트의 종교와 결탁했고 모슬렘들의 "권리"를 옹호해 왔다. 기도하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는 유대인들의 출입을 금했던 모슬렘들에 대해 UN은 반대 법안을 발의한 적이 없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지도 않는 UN이 "번성할 것"이라는 것은 실로 꿈같은 이야기이다.

2. 국제연합은 반유대주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화를 면할 수 없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450개의 결의안을 통과시켜 왔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체 700개 결의안 중 450개로서, 1945년 이래 유엔에 의해 통과된 결의안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 12월 23일 UN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정착촌을 확대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한 적이 있다. 15개 이사국 중 14개국이 이 결의안에 찬성했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에 서서 "반대표"를 던져 온 미국이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 결의안에서는 "기권"하고 말았다. 그것은 사실상 결의안에 찬성한 것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기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오바마를 비열한 복병"이라고 비난하면서 "새 시대엔 모든 게 바뀌고 결국 미국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에 이 결의안에 대해 아랍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에 대한 역사적 결정"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러한 결의안은 그동안 UN이 고수해 온 "두 국가 해법," 곧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원칙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를 위한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볼 때, 그 땅이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던 기간은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이 주위 이방 나라를 "완전히" 평정했던 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가 팁사에서부터 앗사까지 강 이편에 있는 모든 지방, 즉 강 이편의 모든 왕들을 다스렸으며, 또 그가 자기 주위의 사면을 평화롭게 하니 유다와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평생 동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각자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전하게 거하였더라』(왕상 4:24,25). "두 국가 해법"은 계속해서 싸우자는 것밖에 안 되는 유치한 발상에 불과하다!

3. 마지막으로 국제연합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재가도 받지 않은 채 제멋대로 땅을 인수 인도하면서 평화의 사도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땅은 누구의 땅인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땅"이다. 팔레스타인 땅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19,20세기나 그 이전에라도 소위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냥 여기저기 살고 있던 정체성도 불분명한 아랍인들이 모여든 것뿐이다. 그들은 지난 2천여 년 동안 이 땅에 국가를 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UN, 모든 언론 및 국제 여론, 유럽 여러 나라들은 그런 적이 있는 양 몰아가고 있는데,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분명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스라엘 땅이다(신 32:52; 12:9,10). 주께서는 그 땅을 "무조건적인 약속"으로 그들에게 주셨다. 그것도 온 우주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서 "맹세를 통한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중동 분쟁과 같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모든 다툼과 논쟁들은 이미 판결이 난 사안이다. "이 땅"에 대한 모든 다툼과 논쟁은 이미 종결된 것이다. 『확정을 위한 맹세는 그들에게 모든 다투는 일의 종결임이라』(히 6:16). 따라서 그 땅을 제멋대로 차지하고 취급하려는 로마카톨릭, 모슬렘, 개신교,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특히 "UN"은 하나님께 속한 재산과 유업을 도둑질하는 강도들에 불과하다. 그런 도둑들이 과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는가!

UN은 결코 화를 피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성경 100구절 이상에서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UN에 가입한 193개의 국가 중 어떤 대통령이나 정치적 지도자도 이 구절들 중 단 하나조차 유념하지 않는다. 이제 곧 그들에게는 진노의 심판이 임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UN을 비롯하여 그에 속한 모든 이방 민족들을 취하셔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 13:30). 그들 위에 모든 분노를 쏟으실 것이며 그들 모두를 질투의 불로 삼키실 것이다(슾 3:8).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신다. 이 전쟁은 지상의 실제적인 땅에서 실제적인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 수행될 것이고 엄청난 살육이 있을 것이다(계 19:15-21).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다(사 48:22). "화"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연합을 향해 선언된 최종적인 경고임을 유념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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