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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 안에 만연한 무속신앙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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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2월호>
새해가 이미 왔고 또 구정이 다가온다. 민족의 오랜 명절로 세상은 들뜨게 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면으로 다가오는 사탄의 역사에 민감해지는 시기이다. 조상 숭배에 대한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 운운하며 제사상에 절하며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숭배를 거절하며 각 가정들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 모두에게 기도로 격려를 보낸다.그런가 하면 이러한 명절들, 특히 새해를 맞이할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토정비결, 운세, 굿 등의 샤머니즘 풍속이다. 굳이 점을 믿지 않는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을 보며 새해에 자기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에는 미아리 등 일부 지역에만 집중되어 있던 점집들이 어느 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신문에는 무당들 광고가 넘쳐난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무당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은 새해나 특정 일에만 나대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들은 연중 어느 때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런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을 하대하지 않고 “역술인,” 혹은 “무속인”이라고 점잖게 부르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신으로 취급받아 음지에 숨어 있던 것들이 이제는 문화 혹은 민족 종교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그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다.
한국 갤럽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점을 보는 이유는 사업, 건강, 가족 혹은 배우자 문제가 가장 크다. 20대 청년들의 경우는 취직 문제가 가장 크고, 40대는 사업, 여성들은 가정 문제가 가장 크다. 결국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무당들에게, 혹은 우연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마귀에게 자신들의 인생을 맡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무당들은, 특히 “신통하다는” 무당일수록 마귀의 영을 힘입어 점을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영적 현상들은 하나님 아니면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마귀에게서 비롯된 것이 분명한데, 무지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점점 더 마귀의 수중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웃지 못할 사실은 점집을 찾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일부 무당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들에게 상담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의 약 30%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어떤 무당들은 전단지에다가 “기독교인 비밀 절대보장”이라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 더 이상 점집은 기독교인들에게 먼 곳이 아니다. 이렇게 점집을 찾아간 교인들 중 상당수가 믿음을 잃고 교회를 떠났다고 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왜 교회에 다니면서도 점집을 찾게 되는가? 그것은 앞에서 보듯이 사업이나 건강, 결혼, 취직 등의 문제가 새벽기도나 철야기도로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을 해결받기 위해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찾아가 해결을 보니 당연히 그쪽으로 옮기는 것이다. 즉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죄사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단지 그분에게서 사업이나 건강, 물질의 복만을 받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그들에게 예수님은 구세주도, 하나님도, 주님도 아니다. 단지 돈보따리일 뿐이다. 그들에게 가치는 영생이 아니라 돈과 이생에서의 행복이다. 돈과 행복이 있는 곳이면 무당 아니라 어디라도 찾아간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미아리 점집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이것은 현재 교회라 불리는 곳들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점집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교회들이 점집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돈을 받고 사업, 결혼, 출세를 위해 안수기도를 해주고 있는지 아는가?
어떤 목사는 교인에게 사업과 가정에 어려움이 있겠다고 “예언”하고, 기도해 주며 돈을 받는다. 점집을 찾은 사람에게 무당이, 당신 사업과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며 부적을 그려 주고 돈을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교회는 (사실은 많은 교회들이) “송구영신예배”를 통해 교인들을 한 명 한 명 안수기도하며 축복해 주는데, 그때 교인들은 돈봉투를 들고 안수받으러 강단으로 올라가고, 목사는 그들에게 안수해 주며 봉투 하나를 건네 준다. 그 봉투 안에는 성경 구절을 적은 종이가 들어 있는데, 그 교인은 그 구절을 그 한 해 동안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고이고이 간직한다. 물론 목사는 봉투를 쌓아 놓고 아무 봉투나 집어 주는 것이다. 주는 자에게나 받는 자에게나 그 말씀은 더 이상 말씀이 아니라 부적이다. 또 교회도 아니고 기도원도 아닌 것이, 조그만 방에다 “기도제단”을 쌓아 놓고 찾아오는 자에게 돈받고 안수해 주는 목사, 전도사, 권사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기독교 무당”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순복음교회 같은 은사주의 교회들은 현세에서 물질과 건강으로 축복받은 것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한다고 말하며 일찍부터 샤머니즘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 교회는 초창기부터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아 방언이나 신유 같은 신비주의 현상들을 추구했다. 여기에 “적극적 사고방식”이 더해져 물질주의적 기복신앙으로 발전했다. 새벽예불은 새벽기도로, 100일 법회는 100일 기도회로 교회 안에 들어와 한국식 기독교라는 기현상을 나타내 보였다. 오늘날 이것은 비단 순복음교회뿐 아니라 상당수의 교단 교회들이 행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회가 그만큼 썩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미신적이라는 사실도 보여 준다. 샤머니즘을 오늘날 “민족 종교”라고 말하는 것을 아는가? 이 말은 우리 나라가 원래부터 무속 종교의 나라이고, 샤머니즘은 우리의 뿌리깊은 정신적 민족 유산이므로 지키고 보존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닌게아니라 이 백성들의 정신적 구조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아왔다. 한 전직 불교 승려 출신 목사는 “현재 기독교인들은, 생각은 불교적으로 하고, 생활은 유교적으로 살고, 신앙은 무속적으로 믿는 형태다.”라고 한국 교인들의 현주소를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몇 가지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올해를 무자년(戊子年) 쥐띠 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육십갑자를 말하는 도교와 불교의 사상이 어우러진 말이다. 십이지신(十二支辰)을 나타내는 쥐니 소니 하는 짐승들은 불교의 신들이다. 그런데도 자기 띠를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또 한 결혼정보회사에 따르면, 쌍춘년에 결혼한 기독교인들이 매우 많다고 하며, 이사할 때에도 “손 없는 날”을 택하는 기독교인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돌잔치는 또 어떤가? 돌잔치의 절정은 “돌잡이”인데, 이것은 아기 앞에 돈이나 연필이나 실타래를 놓고 아기가 어떤 것을 잡느냐에 따라 부자가 될 것인가 공부로 성공할 것인가, 장수할 것인가 등을 점치는 행위다. 이 역시 명백히 점치는 행위며 무속신앙인데, 많은 기독교인 부모들이 거리낌없이 이러한 행위를 한다. 자기 자식을 아기 때부터 운명에 던져 놓을 셈인가? 결혼식 폐백도 마찬가지다. 대추를 던지는 행위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무속신앙적 요소다.
또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에 해돋이 구경을 갔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할까?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새해에 첫 번째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아예 합장하고 비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소원들을 빈다. 명백한 태양숭배 사상이며 기복 신앙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인들은 그렇게 행하며, 혹은 그들과 함께 웃으며 해돋이를 즐긴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믿음의 유무를 떠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은 무속 종교를 점집이나 굿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보는 바와 같이 교회 안에, 또 우리 생활 주변에 오래된 풍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한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민족의 풍습대로 행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이 모든 일들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혐오하였음이라』(레 20:23). 이 말씀은 카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카나안의 죄 많은 민족들을 멸하라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풍습도 따르지 말라 하셨다. 왜냐하면 그 풍습들은 이방의 가증한 우상 숭배 풍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상들과 그림들까지 파괴하라고 말씀하셨다(민 33:52). 지금이 구약 신정국가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우상 숭배의 도구나 풍습들을 직접 파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도들 안에 알게 모르게 침투해 있는 이교도적 행위들은 제거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4:3에서도 우리가 죄악을 행하며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다고 말씀했는데, 여기에서 죄악이란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 같은 도덕적인 죄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바 우리가 버려야 할 “지난날의 생활”에는 우상 숭배의 잔재들도 들어 있다. 우리 민족에게 이 잔재들은 특히 무속 신앙적 요소들이다.
어쨌거나 새해가 밝았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날들을 육신을 위한 기회로, 혹은 죄를 위한 기회로 삼겠지만, 소망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해는 우리 주님께서 오실 날이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 발짝 더 가까워진 주님의 재림을 더욱 소망하면서, 주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것으로 이 새로운 날들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혹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우상의 잔재들을 없애는 가운데 말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