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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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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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3월호>

세상은 악하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날들"의 세상은 그 이전보다 더 악하다. 교회 역사상 하나님의 가장 신실한 종이었던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마지막 날들에 관해 이렇게 경고했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딤후 3:1). 그러면서 마지막 날들의 특징에 대해 많은 것들을 지적했는데(딤후 3:2-5),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한 특징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최근 이런 현상을 반영해 주는 신조어 하나가 생겨났는데, 바로 "YOLO"(욜로)이다. 이것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의미이다. 요컨대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마음껏 즐기라는 말인데, 그저 형편에 맞게 즐긴다든지, 자신의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절제하거나 희생해 가며 즐기지 말고, 오직 현재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돈을 펑펑 쓰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딤후 3:4) 마지막 날들의 특징을 여실히 반영해 준다. 결국 이런 자들은 빈털터리로 전락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재산을 탕진하고 즐기면서 "욜로"를 몸소 실행했던 한 인물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하게 살며 그 재산을 모두 낭비했다. 오직 자기 육신의 정욕만을 채우기 위해 아버지가 피땀으로 모은 재산을 탕진해 버린 것이다. 그의 "욜로"의 결말은 어떠했는가? 돼지가 먹는 곡식 껍질조차 얻어먹을 수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그 탕자에게는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나마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마지막 날들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그런 소망마저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비" 마귀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탈탈 다 털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신인 그 마귀가 사람들에게서 복음의 광채를 가리고, 성경을 빼앗고, 건전한 생각과 양심과 이성을 빼앗더니, 종국에는 물질마저 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아직 일말의 소망이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으로 복음에 순종할 때만(롬 10:16; 16:26) 유효하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한 번뿐인 인생! 즐겨라!"라는 식의 명령을 하신 적이 없다. 이러한 "욜로"의 외침은 부활의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바람일 뿐이다. 사도 바울은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15:32).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 성경은 부활의 소망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헌신의 동기"도 심어 주신다.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다면 그분의 종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질문 하나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17절) 한 가지, 곧 "구령"에 대한 중요한 교시를 주고 있다. 이 비유에서는 한 귀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왕국을 받아서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떠난다. 그러면서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을 맡기고,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13절)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귀인"은 우리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열 명의 종"은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낸다(10은 이방인의 숫자임). 즉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마지막 날들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어떤 상업에 종사하라는 명령은 아닐 것인데, 이는 예수님께서 『썩는 음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는 음식을 위하여 일하라.』(요 6:27)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장사를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일까?

우선 장사하라고 명령하시면서 우리에게 "자본금"으로 주신 한 므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밑천으로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각 종들에게 주어진 므나의 양은 모두 동일하다. 신분이나 능력 등에 관계없이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똑같이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각인마다 다르다. 각인에게 주신 능력 또한 다르다. 믿음의 분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성도라면 누구나 주님으로부터 동일하게 받은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으로 인한 영원한 생명"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받게 된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저주받을 『다른 복음』으로(갈 1:8) 구원받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의 사업 밑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자본금으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라는 것은, 복음 전파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우리가 받은 그 영원한 생명을 전해 주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받아서 돌아오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수행해야 할 임무이다.

중요한 점은 이 명령이 "각각의" 종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분명 이 비유에 나오는 귀인은 "각각의" 종들에게 일일이 자본금을 나누어 주었다. 각자가 그 자본금을 사용해서 장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동업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각 개인"에게 장사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이 복음으로 어떻게 장사해서 열매를 맺을 것인지 숙고해야 하고, 그 장사의 범위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또한 그에 상응하는 전략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계획해야 할 것이다. "장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금전적인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사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 생각, 계획, 철학 등 그 모든 것들은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통해 아주 경제적이고 생산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기회"를 노려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딤후 4:2). 누구를 만나든지 주저하지 말고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끄집어내어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한다(행 20:26,27). 이 사업 아이템이야말로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고 광고해야 하는 것이다(갈 6:14, 고전 1:31). 아무런 계획도 열정도 없는 사업가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물론 모든 준비가 잘 된 사업이라 해도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에는 지치지 않는 열정,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불굴의 의지, 이기기 위한 핵심 전략과 전술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장 환경"은 그야말로 치열한 "영적 전장"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혼을 두고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터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이익"을 내야 한다. 당신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 사업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여 열매를 내고 있는가?

우리가 장사를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은, 장사하라는 명령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우리의 주인께서 평가하실 것이라는 점이다. 『그 귀인이 그 왕국을 받아서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그 종들을 불러오라고 명하니, 이는 각자가 장사를 하여 얼마나 벌었는가를 알고자 함이더라』(15절). 이 평가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그것은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상에서 우리의 몸으로 행한 모든 행위들에 따라 상급과 유업이 결정되는 심판석이다.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여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았던 성도라면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이나,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면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받을 상이 없을 것이다.

므나의 비유에서도 상을 받는 종과 상을 받지 못하는 종이 등장한다. 여기서 주인의 명령대로 장사하지 않은 종을 주목해야 하는데,

그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둘러대고 있다. "주인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장사하지 않고 그저 한 므나를 손수건에 싸서 고이 간직했다는 것이다(20,21절). 하지만 그가 자신의 말대로 정말 주인을 두려워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심는 대로 거둘 것"이라는 하나님의 원칙을 곡해한(21-23절) 게으른 종으로서(마 25:26 참조) 자신의 주인보다도 "사업의 실패"를 더 두려워한 어리석은 종이었다. 손해를 볼까 두려워 장사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악한 종"이었던 것이다(22절).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악한 종처럼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사업은 절대 손해 볼 일이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의 자본금은 없어지지 않는다. 세상 사업처럼 손해에 대한 위험 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사업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주인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감당 못할 무거운 짐을 얹어 놓고 "어디 한번 이겨내 보라."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우리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이다(고전 10:13). 더군다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라.』(딤후 1:7)라고 말씀하신다. 장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형태로든지 두려움이 밀려올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라면 그것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든, 세상이나 사람을 향한 두려움이든, 그런 두려움이 무슨 대수겠는가? 한쪽을 미워하면 다른 쪽을 사랑하게 되듯이(눅 16:13), 어느 한쪽을 두려워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과연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히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진 그분을 두려워』해야(눅 12:5)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는 각자가 행한 장사에 대해 예수님 앞에서 결산을 봐야 할 날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장사할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럭크만 목사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하고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때, 당신이 전파한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거듭난 후 다른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다섯 명의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이 믿음의 경주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 틈바구니에 당신도 끼어 있는 것이다." 『주 예수 위탁한 모든 일에 우리 충실했는가. 신실한 맘으로 주 섬긴 자 면류관을 받겠네. 성도들아 준비되었느냐. 본향 가기 위하여 내 신랑 주 예수 다시 올 때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영광을 주께> 235장). 정말로 당신은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라고 명령하신 주님과 결산을 보게 될 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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