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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오해하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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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6월호>
“기독교” 기업과 그리스도인의 직업성경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발생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을 향해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므로 오해하고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책망하셨다(마 22:29). 그들은 자기들이 아는 약간의 구약적 지식을 가지고 부활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비단 이러한 일들은 사두개인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오해로 발생되는 일들 중에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헌신을 요구하게 만들어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치게 하거나, 심지어 중세시대에는 성경을 인용하며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는데, 일의 정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처럼 성경을 오해해서 생긴 일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들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업을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즘엔 기독교 기업이라고 공언하는 기업들이 종종 등장하여 상품 광고에 기독교 이미지를 심으려고 애쓰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기업은 “일요일을 지킨다.”는 말을 자랑삼아 하고, 어떤 화장품 회사는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찬송가를 집어 넣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상품을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 이러한 일들을 상품을 팔기 위한 단순한 광고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기업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토는 바로 창세기 1:28이다.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들은 이 구절을 지상명령과 대조해서 소위 “문화명령”이라고 이름 붙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문화를 정복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악한 세상 문화를 정복하여 그리스도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천년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직업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창세기의 이 구절을 아예 “직업명령”으로 이해해 버린다.
우리나라의 자칭 기독교 기업 중 가장 큰 기업은 아마도 옷만드는 회사인 것 같은데, 그 기업의 광고 문구 가운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지금 이 곳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직장이자 선교현장이고 땅끝입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직업으로 서비스해야할 사람이자, 선교 대상이고 ‘모든 족속’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교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직장인으로 부르셨고, 또한 나를 직장인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 직장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8:19-20과 창세기 1:28을 적당히 섞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함으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잘못된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들이 해석하는 것처럼 문화명령이나 직업명령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구절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하신 말씀이다. 더군다나 이 말씀을 하신 시기는 우리의 최초의 부모가 타락하기 전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그를 왕으로 임명하신 것이다(시 8:6-8). 그래서 그는 다스리는 지위로 창조되었으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은 만물을 다스릴 수 없다.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졌고 거듭난 사람일지라도 왕처럼 만물을 다스리려면 만왕의 왕이 오셔야 했다.
이처럼 성경구절 하나를 잘못 해석하면 잘못된 신학을 낳게 되고, 그 잘못된 신학은 교회 내의 많은 열심있는 젊은이들을 잘못된 헌신의 길로 오도하게 된다. 그 기업에 헌신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헌신하는 길이요,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젊은 날을 그 기업을 위해 불태우고 있는 젊은이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들은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업 예산에 선교비까지 책정한다.
물론 기독교 기업들에서는 다른 회사들보다 나은 작업환경과 보수가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직장에서 일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 기업이라 할지라도 회사에서 전도지를 돌리고 거리설교를 하는 것을 사장이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정당히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그리스도인의 직업에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어떤 기독교 기업이 크게 번창한다고 해서 이 땅이 그로인해 복음화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기독교 회사가 매년 매출의 수 십퍼센트를 선교비로 지출한다고 해서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기업이 번창하고 기독교인들이 득세한다고 해서 이 사회가 복음화되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 중에 과반수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하고 대통령도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이 사회의 앞날이 밝은 것은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 전부가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이 사회의 앞날은 어둡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기업들이 다 기독교 회사가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며(갈 1:4)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기업들로 인해서 변화되지 않는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또 믿게 하는 것이다(요 6:29).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오늘날의 배교한 기독교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문화를 형성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간접적인 삶의 향기를 발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은 전도지를 돌리고 거리에서 외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때 전파되는 것이다. 복음은 항상 입으로 전달되는 것이며 세상을 소란케하는 것으로써, 천사들에게는 가장 큰 뉴스 거리인 것이다(벧전 1:12).
옷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바느질도 꼼꼼히 하고 원단도 좋은 것을 쓰며 가격도 정직하게 책정해서 장사한다면 훌륭한 일이다. 정부에서는 그런 기업에 표창장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스도인들은 농부의 고마움을 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 아무런 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일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아니듯이 옷을 만들어 파는 일도 하나님의 일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비젼은 직업에 있지 않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직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 충직한 일꾼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업에서는 “세례”교인 이상이라고 자격제한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천막을 만들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단 일분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이었다면 바울은 오늘날의 기업들처럼 “기독교 천막 주식회사”를 세워서 소아시아 천막 시장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짓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갈 1:23-24).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들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죄인들만이 기쁨이 된다. “기독교” 회사에 다니건 안다니건 그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직업 생활을 하는 동안 얼마나 틈을 내어 얼마나 열심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느냐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