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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에 맞선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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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5월호>
지금 이 시대는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오래가게 할 명철과 지식이 있는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잠28:2). 그 명철과 지식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남으로써 얻을 수 있다(욥 28:28, 시111:10, 잠 1:7).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바른 말씀을 믿고 실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서는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다.현재 이 땅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각인이 그 "한 사람"이며, 모두 모인다 해도 "소수"이다.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다수를 대적하는 "소수"를 이룬 것이다. 소수가 다수를 대항하여 이기는 이 위대한 분투는,광야와 같은 현 세상을 지나는 동안 우리가 휴거될 때까지 중단 없이 치러야 할 영적 전쟁의 단면이다. 소수이기에 소수로서싸워야 하며, 그렇기에 더 단단히 뭉쳐서 싸울 수 있고, 또 그렇게 싸워야만 하는 믿음의 전쟁인 것이다. 따라서 다수에맞선 치열한 영적 전쟁에 지쳐 있을지 모를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구약성경을 통해 보는 광야의 한 교훈이 그들의 갈증해소와 사기 재충전을 위한 한 잔의 물(엡 5:26)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땅을 탐지한 자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 그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에게일러 말하기를 "우리가 탐지하러 다녀 본 땅은 아주 좋은 땅이라. 만일 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가 우리를 이 땅으로데려다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리니,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민 14:6-8).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 그들의 옷을 찢어야 했던 이유는 울부짖는 전체 백성의 불신과 불평 때문이었다.에프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의 칼렙은 다른 열 지파의 고관들과 함께 "약속의 땅"에 대한 정탐을 마치고돌아왔다. 그들이 모세의 명령을 듣고 찾아간 곳은 포도송이 하나를 장정 둘이 막대기로 꿰어 어깨에 메고 와야 할 정도로비옥한 땅이었다. 그 땅을 본 여호수아와 칼렙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레 20:24)이 눈앞의현실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사십 일간의 정탐을 마치고 매우 들뜬마음으로 모세와 백성들에게 이르렀을 것인데, 함께 도착한 다른 열 정탐꾼들은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나,그곳 백성은 튼튼하고 성읍들은 성벽으로 둘려 있으며 매우 컸고, 또 거기엔 거인인 아낙 자손이 살 뿐만 아니라 아말렉인,힛인 같은 족속들이 그 땅 곳곳에 살고 있더라."(민 13:27-29)며 불신의 씨앗을 뿌렸고, 백성들은 이내 술렁대기시작했다.
그때 칼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정시키며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것을 차지하자. 이는 우리가 능히 이길 수있음이라.』(민 13:30)고 했다. 아마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매우 힘 있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을 것이다.그러나 함께 갔던 "다수"는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칠 수 없으리니, 이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강함이라...우리가 탐지하러 갔던 그 땅은 그 거민들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에서 우리가 보았던 백성은 키가 큰 사람들이었으며 또우리가 거기서 거인들을 보았는데, 거인들에게서 태어난 아낙 자손들이라. 우리들의 눈에도 우리가 메뚜기들 같았으며 그들의눈에도 우리가 그와 같았을 것이라.』(민 13:31-33) 하면서 칼렙이 제시한 희망 찬 기대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그러자 모든 회중이 "더 큰" 다수가 되어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었고, 그 밤에 이집트에서 나온 일에 대한 후회의 눈물을흘리기 시작했다(민 14:1). 이 불신에 찬 "다수"는 모세와 아론에 대해 불평했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죽었더라면! 아니면 우리가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다가 칼에 쓰러지게 하시며 우리의아내들과 우리의 자식들이 먹이가 되게 하시는가? 우리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아니하냐?』(민 14:2,3)그리고 그들은 한 대장을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입을 모아 말했다(민 14:4).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집회 앞에서 엎드려야 했다. 여기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일뿐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여호수아와 칼렙은 그들의 옷을 잡아 찢고서 열변을 토하며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설득하기시작했다. 『우리가 탐지하러 다녀 본 땅은 아주 좋은 땅이라. 만일 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가 우리를 이 땅으로데려다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리니,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오직 너희는 주를 거역하지 말며 또한 너희는 그 땅의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요,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으나,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니,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하지만 "다수"는 믿음과 확신이 가득한 "소수"의 말에 경청하려 하지 않았다.오히려 "다수"는 "소수"를 돌로 치라고 했다(민 14:10).
"다수의 불신"으로 말미암은 비극은 주님의 개입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날 주님을 불신했던 자들은 광야를 사십 년간방황하다가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서 쓰러져야 했다.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칼렙, 그리고 당시 이십 세 밑의 어린 자녀들만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모세의 보냄을 받아 그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 그 땅에 대해 악평을 함으로써회중들로 모세를 거역해 불평하게 만든 자들은 주님 앞에서 재앙으로 죽고 말았다.
재앙에서 살아남은 두 믿음의 영웅은 담대한 "소수"였다. 그들은 2백만 명이나 되는 완악한 죄인들의 불평과 원성, 또감정을 자극하는 눈물에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념을 끝까지 고수했으니, "믿음"이란바로 그런 것이었다. "다수는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격언에 걸맞게, 세상은 진리를 배척하는 다수와 진리의 말씀을실행하는 성별된 소수로 나뉘어 있다. 내가 믿고 실행하는 진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가는 중요치 않다. 많은사람이 진리의 길에 서 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믿음의 "좁은" 문과 "협소한" 길에 대해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7:13,14). 만일 우리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 교인 수처럼 870만 명이나된다면(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분명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잘못 섬겼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카나안 땅 정탐 뒤 용기 있게 다수를 대항한 소수의 편을 들어 주셨다. "2백만 명 대 2"라는 대결구도에서 "2"의 편에 서 주신 것이다. 말하자면 믿음의 소수는 "백만 명" 중에 "한 명" 정도 나올 수 있는 무리라고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명"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 "다수"가 된다. 밥 존스 시니어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사람이 다수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다수"는 진리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주님과 함께 싸울 수 있는 "한 사람"인것이다. 그 "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말할 수 있다. 또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날지라도그 가운데 나는 담대하리라.』(시 27:3)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갈라진 틈에 서서그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는 "한 사람"이다.
과거 예루살렘이 멸망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한 명"의 "소수"를 찾지 못하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한사람을 찾으려 했으니 그 사람은 장벽을 쌓아 그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갈라진 틈에 서서 나로 그 성읍을 멸하지 못하게할 사람이라. 그러나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겔 22:30). 다수를 위해 중보할 수 있는 "한 사람"이하나님께는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은 백만 대군만 한 위력이 있다. 엘리야가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그것을 본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기병들이여!』(왕하 2:12)라고 부르짖었다.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기병들이여.』(왕하 13:14)라고 흐느꼈다. 바로 이것이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들어 쓰시는 신실한 한 사람의 가치와 위력이다.
그 가치와 위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신실한 소수는 그 맥이 결코 끊어진 적이 없다. 어느 시대나 "남은 자"는존재했었다. 주님께서는 교회 시대의 끝 지점인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에서도 진리의 길을 걷는 거룩한 소수를찾아내셨으니, "성경대로 믿는 소수"가 그렇다. "소수"인 우리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님께서 엮어 주신, 쉬끊어지지 않는 "믿음의 삼겹줄"(전 4:12)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 편에서 계신다는 사실에 용기를 내어, 진리의 말씀을 지치지 않고 끝까지 담대하게 전파해야만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