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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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의 가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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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1월호>

박동일 / 성경대로믿는사람들 기자


딥페이크(Deepfake)라는 기술이 있다.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 심층 학습(Deep Learning)과 가짜(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합성 기술을 말한다. 이 용어 자체는 2017년도부터 사용되었는데 과거에는 인물의 사진이나 영상이 조악하게 합성되어 진위 판별이 쉬웠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진위의 판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진 합성 영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5일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국경 지역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연설”이 방영되었다. 이 연설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군이 나토의 지원을 받아 벨고로드, 브랸스크, 쿠르스크 지역을 침공했다고 말하며 계엄령과 총동원령을 선포했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중심부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영상이 TV와 라디오로 방송될 때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사실 이 영상은 딥페이크를 활용한 영상을 방송국 해킹 공격을 통해 방송한 가짜 영상이었다. 만약 크렘린궁에서 즉각적인 진화에 나서지 않았다면 큰 혼란을 가져왔을지도 모를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비근한 예로서 이제 이 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을 개인, 사회, 민족, 국가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기독교계는 어떨까? 아직은 인공지능 기술이 기독교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한 듯 보인다. 실제로 지난 6월 독일 바이에른주의 성바울교회에서 딥페이크 기술과 결합한 챗GPT가 예배를 진행한 일이 있었다. 수염을 기른 흑인 남성의 아바타가 단상 위의 스크린에 등장해 설교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이 좋지 않았고 아직까지는 기계가 하는 설교에 거리감을 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찬송에 대해서는 이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딥페이크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해 국내의 한 트로트 가수의 목소리로 찬양을 부르게 하는 일이 있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에서는 분명 인공지능 기술 지원으로 합성된 음성임을 공지하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트로트 가수가 실제로 찬양을 부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소리만을 들어서는 그 가수의 목소리와 똑같았기에 이 영상을 접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 트로트 가수를 교인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비록 찬양을 부르는 영상이 아닌 노래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트로트 음악으로 듣던 그 가수의 목소리로 찬양을 들으니 더 좋다든지, 아멘을 연발하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
위와 같은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인공지능이 부르는 찬송은 인공지능이 하는 설교와는 그 맥락이 다르다. 왜냐하면 그 소리 자체가 평소 익숙한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CCM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부터 음악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데 어떤 가사가 붙느냐에 따라 노래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상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에 드럼, 전자 키보드, 전기 기타, 베이스 등 세속적인 악기들을 사용하더라도 가사만 기독교적 내용을 붙여 부른다면 그것이 그들에게 찬양이 되고 찬송이 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즉 가사가 찬송가의 본질을 결정한다면, 찬송가의 가사를 부를 때 그것을 부르는 것이 사람이든지, 아니면 인공지능 기술로 합성된 소리든지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트로트, 록, 힙합, 랩 등으로 유명한 세상 가수들의 목소리로 듣는 찬양이라면 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듣기에도 거부감이 눈에 띄게 줄 것이다. 또한 그런 찬양을 듣고서 긍정적으로 반응한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어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딥페이크 기술을 도입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위와 같이 유명 가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만들든지, 그 어떤 CCM으로 그 어떤 노래를 부르든지 절대로 그런 찬양은 받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찬양은 영이 거듭난 성도가 올바른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은 곡조를 붙여서 그 가사의 내용을 믿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 너희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찬양은 정직한 사람에게 합당한 것이니라』(시 33:1).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이는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이 즐거움이요, 찬양은 합당한 것임이라』(시 147:1). 총 44편의 시들로 이루어져 있는 시편 제5권에서 11개의 시편들이 “너희는 찬양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7번에 걸쳐 “현악기에 맞춰,” 그리고 44번에 걸쳐 어떤 반주가 노래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명령되고 있다. 또한 시편 34:1-3에서는 주님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명령이 제시되는데, 즉 주님을 송축하고, 찬양하며, 자랑하고, 찬미하며 드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딤후 2:15), 주님을 바로 지금 찬양하라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주님의 명령이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오 너희 주의 종들아, 찬양하라.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 지금부터 영원무궁토록 주의 이름이 송축받으시리로다.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의 이름이 찬양받으시리로다』(시 113:1-3).


우리는 이미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로부터 찬양과 관련된 많은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곧 아름다운 선율의 성경적 진리를 담은 찬송가들이다. 그런데 자신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인지는 죽어 봐야 안다면서도 세상 악기들이 내는 소리에 감정이 고무되어 손뼉 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구속에 관한 찬양을 부르는 칼빈주의자들을 보라. 죽음의 골짜기라 불리는 이 세상에서 비록 죽음을 맞더라도 천상에서 주님을 만나 뵐 소망을 확신하는 내용의 찬양을 부르는 “행위 구원”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또 어떤가? 인공지능 기술로 만드는 찬양, 육신적인 세상 악기들을 연주하며 육신적인 음악 장르를 가지고 가사의 내용도 믿지 않은 채 드리는 찬양은 육신적인 교인들이 추구하는 자기만족적 행위일 뿐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이 아닌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받기 원하신다. 창세기 1:1의 창조의 때 하나님께서는 덮는 그룹인 루시퍼와 하나님의 아들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셨다(겔 28:13,14, 욥 38:4-7). 그리고 자연 세계로 하여금 주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도록 하셨다(시 19:1-6).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이름을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골 3:16) 찬양하고 있으며, 셋째 하늘에 가서도 새로운 노래들로(시 40:3) 지금부터 영원무궁토록 찬양받기에(계 5:12,13) 합당하신 주 하나님을(삼하 22:4, 시 147:1) 그야말로 영원무궁토록 찬양할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주님께서는 그 어느 곳에서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찬송이 있으며 함께 모여 부르는 노래를 통해 힘을 얻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예배로 모여 하나님께 찬송을 드림은 마땅한 일이다(시 111:1; 149:1, 히 2:12). 사도행전 16:25에서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불렀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드리는 찬양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낙담과 불안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도 주 하나님만을 바라며 그분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여전히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시 42:5).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운 음성을 지니고 악기를 다루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스럽게 부르는 노래(겔 33:32)를, 그 입술의 열매를 주님께서는 흡족히 받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하신 주님께서는 번제의 제물보다 찬양을 더 기쁘게 받으셨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오 주여, 주는 거룩하시나이다』(시 22:3).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그를 드높이리니 이것이 또한 수소나 뿔과 굽이 있는 황소보다 주를 더욱 기쁘시게 할 것이라』(시 69:30,31). 구원받지도 않은 채 세상 트로트 가수의 목소리에 가사만 입힌 것을 듣고 좋아하는 자들의 찬양, 찬송의 가사도 믿지 않으면서 세상 음악 장르로 세상 악기들을 동원해 부르는 자들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그런 것은 마귀들이 즐겨 듣는 노래이다.


창조의 경이로움을 노래했던 덮는 그룹인 루시퍼는 그 안에 북들과 관악기들이 있었다.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 모든 귀한 돌인 홍보석과 황옥과 금강석과 녹보석과 얼룩마노와 벽옥과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와 홍옥과 금으로 덮여 있었고 네 북들과 관악기들이 만들어짐이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 예비되었도다』(겔 28:13). 루시퍼는 유기물 안에 무기물이 혼합되었던 존재였는데, 사탄은 일련의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 자신을 찬양케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세대에 올바른 찬양을 주님께 드리고자 한다면 성경을 믿지도 않으면서 진리를 들먹이는 거짓된 입술과 세상을 사랑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성별된 신앙의 자세로 찬양을 드릴 자격을 갖추고 주님께서 받으실 거룩한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는 곧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에는 항상 빛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찬송이 울려 퍼졌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의 제물을 계속해서 드리되(히 13:15,16) 더욱더 힘차고, 성경적으로 아름다운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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