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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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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9월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방법한 사람의 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받을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한 사람의 혼의 회심을 더욱더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혼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구령사역을 위임해 주셨다. 그래서 이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은 수많은 주님의 신실한 종들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도 복음 전파에 힘써 왔다. 지금도 신실한 주님의 일꾼들이 여러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혼들을 이겨오고 있고, 직접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후방에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며 간접적으로 그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위탁하셨는데 그 사역을 지금 우리가 이어받아서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증인이 된다는 것은 꼭 밖으로 나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집안 식구들이 있고 친척들이 있으며 친구들이 있고 직장동료나 가까운 이웃들이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더 나아가 길거리에서나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음을 우리는 경험상 잘 알고 있다. 먼저는 복음을 듣는 각자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고 전하는 사람의 방법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지만, 먼저 알 것은 복음 전하는 일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임을 명심하고 영적 전쟁에 임하는 군사로서의 자세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구령의 전선에는 직접 보이지 않고 맡을 수 없지만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수많은 지뢰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에 복음을 듣는 상대방의 나이가 20세라면 그는 이미 20년 동안이나 마귀의 휘하에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선뜻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구령의 전선에서도 고도의 작전이 필요하다. 먼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준비된 혼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또한 군사로서의 기본적인 무기를 가지고 전쟁에 임해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고 무장을 해야만 적에게 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군사가 적에게 오히려 공격을 당해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고귀한 보혈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투에 임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진지한 기도이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함을 주님께 알리고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죄인들을 통해서 공격하는 마귀의 역사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들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하며 철저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말문을 열어야 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하루이틀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의 상급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대인공포증도 있을 것이고 선천적으로 담대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담대해지고 성령님께서 힘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잘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전도지 한 장 나누어 주는 것도 두렵고 쑥스럽다가도 나중에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고, 거리설교자로서 담대하게 외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에 대개는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첫째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반박을 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마음의 문이 꽉 닫혀 있어서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 복음을 잘 전하면 그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이 잘 받아들여 주님을 쉽게 영접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힘만 들고 시간만 낭비하고 말 때가 많다. 그렇다고 꼭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만을 만나라는 법은 없기에 그런 사람일지라도 인내를 가지고 복음을 잘 제시하면 의외로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믿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전에 교회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상대방이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 줄 수 있는 넓은 아량도 필요하다. 물론 그들에게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거듭난 후 지금의 모습들을 간단하게 간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으로 돌아가 죄인이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하면 그는 마음을 열게 되고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순간에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씨를 뿌렸으면 우리의 임무는 다한 것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씨 뿌리는 자나 물을 주는 자나 다 하나이며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각 사람은 자신의 수고에 따라서 상을 받을 것이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그립파왕 앞에서 허락을 받아 자신을 변호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개인간증이다. 이 개인간증을 크게 나누어 보면 첫째는 도입 및 인사말이 있고, 둘째는 믿기 전 상태, 셋째는 믿게 된 경위, 넷째는 믿은 후의 변화, 다섯째는 믿을 것을 권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면 순서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복음 전파자는 자신의 개인간증으로 그 사람의 마음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아그립파왕에게 간증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구원간증을 소상히 알리고 아그립파왕도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함으로 그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자 아그립파왕은 『네가 나를 설득시켜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라고 함으로 그는 바울이 쳐놓은 그물을 슬그머니 빠져 나가 버렸다.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나 구원받지 않은 채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것은 구원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도 바울은 적수가 적수인지라 그를 구원으로 이끌어오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찔림을 주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이 간증을 하는 동안 이성으로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페스토가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많은 지식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행 26:24)라고 했듯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간증도 잘만 사용하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간증은 사람들로 하여금 피부로 느끼고 마음 문을 열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유명하다거나 비중 있는 사람일 경우에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일까?” 하는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사를 이끌어내서 본질,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음 전하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복음을 전할 때 과연 어떤 내용을 먼저 전할 것인가는 각 복음 전도자의 방법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먼저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사도행전 3:2에 보면 모태로부터 앉은뱅이가 된 한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사도행전 14:8에도 모태로부터 절름발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등장하고, 요한복음 9:1에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태로부터 그렇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즉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는 멀쩡하지만 영적으로는 영이 죽어 태어난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경이 눈을 뜨기 원하고 불구자가 치료받기를 원하듯이 죄인은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성경에 의하면 위에 언급한 두 불구자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치료를 받고, 모두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한 사람은 기뻐 뛰며 공개적인 구원간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은 예수님께서 직접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시고 치료해 주셨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두려워서 공개적인 구원간증을 하지 못한 반면 그 소경이었던 사람은 담대하게 “나를 치료해 주신 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누구겠느냐?”라고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치료받은 그들은 전에는 아무런 소망 없이 태어났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기 전까지는 영생의 소망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자동으로 어머니 모태로부터 그렇게 태어나 거지로서 구걸을 해야만 하는 가엾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
앉은뱅이의 일상적인 구걸은 현실적인 필요만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구걸했지만 그에게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순수하게 엎드렸기 때문에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금이나 은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 귀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분을 믿었고 그는 그 즉시 구원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믿음으로 인하여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강건케 하였느니라. 정녕, 그를 통하여 나온 믿음이 이 사람을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온전하게 치유한 것이라』(행 3:16).
사도행전 14:9에 등장하는 절름발이는 구걸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도 바울의 눈에는 “그에게 치유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경우가 바로 준비된 혼을 만나는 경우이다. 그리하여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발로 똑바로 일어서라.』(행 14:10) 하니 그가 벌떡 일어서서 걷게 되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복음으로 차분하게 죄인들을 일깨워 주어서 그들이 깨닫고 주님 앞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위하여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도록 인도해야 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