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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믿음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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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5월호>
성도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은 어느 쪽이 더 우선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중요한 요소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두 가지 모두를 균형 있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먼저 “사랑”에 대해 살펴보면, 성경은 사랑이 율법을 이루는 최종적인 단계이자(롬 13:8), 『온전함의 띠』(골 3:14)라고 말씀하며, 가정과 교회를 세워 주는(고전 8:1) 것이기에 『사랑을 추구하라.』(고전 14:1)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랑의 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음을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첫째,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바른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꽹과리와 같은 소음이 되어 듣는 사람을 괴롭힐 뿐이다(1절). 둘째,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은사와 지식과 믿음이 있다 해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2절). 셋째, “사랑이 없으면” 자신의 몸 전부를 내어 놓는 헌신과 열정이 있을지라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3절). 다른 요소들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단지 사랑만 없을 뿐인데, 그 사랑의 결핍이 가져온 결과는 실로 참혹한 것이다.
또한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있으나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니라.』(13절)라고 말씀함으로써 사랑을 가장 우위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더 이상 믿음도, 소망도 필요하지 않지만 사랑은 영원토록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은 최상의 덕목이기도 하다.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말하자면 성도의 신앙생활이 믿음으로 시작된다 해도, 그 믿음의 최종 단계에서는 반드시 사랑이 더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기에, 성경은 『너희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치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성경은 사랑만큼이나 “믿음”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진리(엡 2:8)를 시작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롬 1:17, 갈 3:11, 히 10:38),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고(고후 5:7) 말씀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도 받을 수 없다(히 11:6). 또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어떠한 능력도 경험할 수 없고, 그분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감당해 낼 수 없다(히 11:33-39). 심지어 기도의 응답도 받을 수 없다(약 1:6,7). 또한 성경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요일 5:4)라고 말씀하는가 하면,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라고 말씀할 정도로 마치 믿음이 전부인 것처럼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한쪽에서는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믿음”이 전부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모든 것을 믿음으로만 행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만 행하면 되는 것인가?” 마치 이것이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성경은 그것이 모순이 아니며 오히려 그 둘의 아름다운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믿음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올바르게 깨닫게 된다.
우선 믿음과 사랑은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본을 굳게 붙잡고』(딤후 1:13).
또한 믿음과 사랑은 둘 다 “성령의 열매”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fruit]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로 제시되지만, 실상은 “하나”이기에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은 늘 함께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에게는 사랑은 있는데 믿음은 없어.”라든지, “나에게는 믿음은 있는데 사랑은 없어.”라든지 하는 말들은 허황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사랑과 믿음은 하나의 열매이기에 결코 따로 떼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신은 둘 중에 하나만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고 만다.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2). 이 말씀에서 보듯이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사랑이 결여된 믿음은 “가짜 믿음”이며, 그것은 “성령의 열매”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서 가짜 믿음이 아닌 “진짜 믿음”을 보기 원하신다. 즉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딤전 1:5)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있는데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 역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인본주의적인 사랑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믿음 없는 불신자들이 나누는 사랑으로서 가식적이고 거짓된 사랑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겸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형제들에게 화평이 있기를 바라며 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바라노라』(엡 6:23).
여기에서 바울이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을 때, 우리는 에베소 교회 안에 그와 관련된 어떤 심각한 문제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즉 믿음의 결핍도 문제이지만 사랑도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바울이 일찍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무르게 하고(딤전 1:3)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딤전 1:5)을 강조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에베소 교회는 요한계시록 2:4에서 『첫사랑』을 저버렸다는 책망을 받게 된다. 심지어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촛대가 옮겨질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도 받았으니(계 2:5), 곧 그 영적인 힘과 영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믿음은 반드시 사랑을 수반해야 하고, 사랑도 반드시 믿음을 수반해야 한다. 일례로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믿음을 전해 주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겠는가? 그가 믿음이 없어서 결국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개의치 않고 마냥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야말로 그것은 “잔인한 사랑”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 안에서 나누는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네게 문안하노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딛 3:15). 다시 말해서 아무나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진정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믿음이 있어야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믿음이 없이는 결코 사랑할 수 없다. 또한 믿음이 자라면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 역시 함께 자라게 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합당하니, 이는 너희 믿음이 크게 자라고 또 너희 모두가 각기 서로 사랑하는 것이 풍성함이라』(살후 1:3). 믿음이 자라면 사랑도 풍성해지듯이, 믿음이 깊어지면 그만큼 깊은 사랑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 역시 참된 사랑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형성될 수 있다. 즉 사랑이 잘못되면 믿음 역시 잘못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딤전 6:10).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떠나 돈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결국 믿음에서도 떠나고 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믿지 못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결국 사랑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왜냐하면 상대를 사랑하면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벧전 1:8).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쓸모없고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이 말씀에 따르면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좋은 자동차는 있는데, “기름”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기름 없는 자동차가 굴러갈 수 없듯이, 그의 인생에는 어떤 역사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좋은 믿음,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다. 일례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를 드리는 것,” “예배에 참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것” 또는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것” 등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올바른 믿음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사랑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그런 믿음으로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쓸모 있는 믿음은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갈 5:6)이다. 믿음이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고전 13:3)
정리해 보면, 사랑과 믿음은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둘 다 성령의 열매이다. 사랑은 믿음에서 나온다. 그러하기에 믿음이 자라면 그에 따라 사랑도 자라게 된다. 반대로 믿음이 잘못되면 사랑도 잘못되고, 사랑이 잘못되면 믿음도 잘못된다. 믿음과 사랑은 항상 “함께” 나아가야 한다. 믿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사랑에 믿음이 없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믿음의 역사』(살후 1:11)는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도들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능력 있게 일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풍성하게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너희가 성도들을 섬겼고 또 지금도 섬김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향해 보인 것이라』(히 6:10).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