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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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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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4월호>

삼위일체란 한마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 세 분이 하나시라는 교리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라는 한 신격 안에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세 인격이 존재하시는데, 이 셋은 하나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족한 세 인격이 더해져서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 아니다. 세 분은 원래부터 한 분이시다. 그러나 서로 다르게 나타나시며, 또 그 세 인격은 동시에 존재하시어 서로 간에 교제를 이루신다.

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하나이시라는 것이 이 교리의 정의지만, 삼위일체 문제는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 삼위일체에 관한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치고, 아버지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냐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령께서도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면 된다. 모든 논쟁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A.D. 3세기의 오리겐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된 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였다. 4세기에 있었던 아리우스 논쟁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5-6세기에 있었던 단성론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을 혼동해서 생긴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든 논쟁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이 교리를 믿을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1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흔히 “로고스”라고 표현되는 이 “말씀”(Word)은 예수 그리스도, 즉 아들을 말한다. 이 아들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씀한다. 3절에 따르면 이 말씀, 즉 아들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여기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하니 태초(창 1:1)가 그분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분이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는 것이지,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그 말씀이 “하나님이셨느니라”고 설명한다. 즉 그분은 원래부터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고 오역해 놓았다.)
그분의 기원을 다루는 미카서 5:2에서도 그분의 영원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 그분의 육신적 출생은 베들레헴에서 있었지만, 그분의 기원은 분명 “영원”부터였던 것이다.
이사야 9:6은 이 사실을 더 완벽하게 보여 준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음이니 정부가 그의 어깨 위에 있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경이로운 분이라, 상담자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원하신 아버지라, 화평의 통치자라 불리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구절이다. 그리고 그분께 속한 호칭들을 열거하시는데, 그 호칭 중 하나가 “영원하신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분은 영원하시며, 아버지 하나님 그분 자신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바로 그분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신성의 강력한 증거이다. 신약성경은 여러 번에 걸쳐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으며(마 16:16, 요 11:27; 20:31), 특히 요한복음 20:31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베드로, 마 16:16; 제자들, 마 14:33; 백부장, 마 27:54; 치유받은 소경, 요 9:35-38; 마르다, 요 11:27; 에디오피아 내시, 행 8:37; 바울, 행 9:20). 예수님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셨다(마 27:43, 요 5:17-21,22,23,26; 8:54).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는 말이며, “사람의 아들”이 “사람”이듯이 “하나님의 아들” 역시 “하나님”을 말한다.
하지만 이 “아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버지보다 한 단계 낮은 존재로 인식하곤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분명히 정의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주장하신 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은 당시 유대인들도 인식하고 있던 바였다(요 5:18). 무엇보다 요한복음 10:30은 아버지와 아들이 완벽히 똑같으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 또 요한복음 17:21에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관계는 둘이 동일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말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이사야 9:6에서 말씀하신 바, “영원하신 아버지” 그분과 동일하신 분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일한 이름을 가지셨고, 이는 성령님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한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주”(Lord)이다. 킹제임스성경에서는 구약에 있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LORD)라고 번역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것을 오역이라 하지만, 오역이 아니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의 많은 부분이 인용되어 있는데, 그 중 “여호와”라 되어 있는 본문을 “큐리오스”라 인용해 놓았다(마 4:7, 막 12:36, 눅 3:4, 요 1:23, 롬 10:16 등). 큐리오스라는 헬라어는 “주”(Lord)라는 말이다. 즉 신약성경을 기록하신 성령께서 친히 “여호와”를 “주”라고 번역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와 동일하게 “주”라고 칭함받고 계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들의 성경 <신세계역본>에서 “여호와”와 “주”를 철저히 구분해 놓았다. (이는 개역성경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호와”는 “주”시며, 그 “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로마서 10:13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요엘 2:32에서 온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바로 그 주의 이름을 언급하는 구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로마서 10:13의 그 “주”(예수님)의 이름은 다윗이 시편에서 그토록 찬양하고 송축하며 부른 “주”(여호와)의 이름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단지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것은, 육체로 오셨을 때 그분은 스스로를 아들이라는 위치로 제한시키셨기 때문이다.
동일한 관점으로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다. 성령님 역시 “주”라고 불리신다. 이 이름은 하나님에게만 사용된 이름이다. [간혹 종이 주인을 부르고,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도 비슷하게 부르지만, 그 경우엔 “주”(lord, 소문자)라고 불린다.] 『이제 주는 그 영[즉, 성령]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또한 신약에는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이 종종 나오는데(행 13:2, 히 3:7, 계 14:13), 이는 구약에서 수없이 나오는 『주[즉,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혹은 『주[즉, 여호와]가 말하노니...』 하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로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이로써 “주”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같은 분임이 증명되었다.

2. 예수님의 “낳으신 바 됨”은 언제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카톨릭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개신교인들까지도 예수님이 “아들”이기 때문에 그분은 영원 전에 “낳으신 바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편 2:7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 그들은 여기서 “오늘”을 영원 전이라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어쨌든 영원 전부터 종속적인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A.D. 325년 니케아 공회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A.D. 293-373)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의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삼위일체 교리를 정통으로 인정한 공회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를 잘 정립한 사람이 바로 아타나시우스이다. 그래서 콘스탄틴 황제가 주관한 이 공회를 “정통주의(아타나시우스파)의 승리”라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문제를 제외한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결코 정통주의의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타나시우스파는 물침례나 행위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단적 사상을 갖고 있었다. 니케아 정신을 계승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우리는 죄사함을 위한 하나의 세례를 믿사옵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물뿌림을 받아야 죄가 용서된다는 이단 교리이다(Baptismal Regeneration). 또한 『아타나시우스 신조』에는 “선을 행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지만, 악을 행한 자들은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믿음 이외에 행위 구원을 강조한 부분이다. 이러한 교리들은 향후 로마카톨릭 교리가 되었는데, 만일 아타나시우스가 정통이라면 이와 같은 로마카톨릭의 이단 교리가 정통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로마카톨릭은 아타나시우스와 니케아 정신을 정통 신앙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이다. 개신교인들도 아타나시우스를 정통으로 추켜세운다. 칼빈 등 개혁가들이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카톨릭이 정통 신앙이라고 인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보다 옳았던 것은 삼위일체 교리뿐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들이나 성령께서 아버지와 동일하시며, 모두가 영원한 하나님이심은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삼위일체 교리에도 문제가 있다. 니케아 신조,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 모두가 동일하게 말하는 것은 “아들은 지음을 입지 않으시고 낳음을 입으셨다.”라는 것이다. 성령에 대해서는 “창조되지 않으시고 낳음을 입지 않으시고, 다만 (아버지께로부터) 발출하셨다.”라고 말한다.
언뜻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낳으신 바 된 시점을 영원 전으로 잡는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아들께서는 결국 처음부터 아버지의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들과 아버지는 동일한 실체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소생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수원(水源)과 시냇물의 관계를 예로 드는데, 즉 시냇물은 수원에서 나왔지만 둘이 분리될 수 없는 것같이, 아들도 아버지로부터 나오셨으나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오늘날 카톨릭과 개신교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나, 어떻게 설명해도 아들이 영원 전부터 종속된 존재라는 아리우스적인 주장을 벗어날 수가 없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처럼 아들은 아버지보다 한 단계 낮은 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정답은 무엇인가? 시편 2:7에서 말하는 바,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는 말씀이 적용되는 시점은 언제인가? 두말할 나위없이 그 시점은 “동정녀 탄생” 때이다. 그분이 아들로 출생하신 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의 사건 외에는 없다. 그때 그분은 아들로 출생하셨고, 재림 때에는 왕이 되시어 온 땅을 굴복시키실 것이다. 시편 2편은 그렇게 아들로 태어나신 분이 온 땅의 왕이 되신다는 예언인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분의 “낳으신 바 된” 사건을 잘 묘사해 주고 있으며, 로마서 1:3은 “다윗의 씨”에서 나셨음을 보여 주고 있다. 성육신 외에 그분의 출생을 말할 만한 어떤 구절이 있는가?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아버지와 완전히 동일하시고 동등하신 분으로 계셨다. 이는 성령님도 마찬가지다.

3. 정리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동일하고 동등하신 분으로 계셨다(빌 2:6). 영원 전에 낳으신 바 되지 않으셨으며, 종속된 관계도 아니셨다.
․영원 전에 그분은 “말씀”(로고스)이라 불리셨다(요 1:1).
․그분은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가문으로 태어나셨으며(마 1장, 눅 2장), 이것이 그분의 유일한 출생이다(시 2:7).
․성육신하신 그분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다(딤전 3:16).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셨으나, 아버지와 아들은 동시에 별도의 인격으로 존재하셨다(요 17장).
․성육신 동안 아들은 아버지께 종속되셨다. 이것은 스스로 낮아지심이다(빌 2:7).

이 제한된 지면에다 삼위일체에 관한 모든 교리를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삼위일체 교리를 분명히 믿을 수 있다.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 구절은 요한일서 5:7이다. 이 구절은 바른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에만 있다. <개역성경>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이 구절을 삭제시킴으로써 불신과 혼란만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 위대한 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이 분명한 말씀을 거절할 권한이 없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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