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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악으로 갚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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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6월호>
『선을 악으로 갚는 자마다 악이 그의 집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17:13).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을 배신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그분을 대적하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던 최초의 존재는 바로 “루시퍼”였다. 그는 창조되었을 당시, 완전한 규모, 충만한 지혜, 완벽한 아름다움, 그를 덮고 있던 귀한 돌들, 그의 안에 예비되었던 북들과 관악기들, 기름부음, 그가 거처했던 하나님의 거룩한 산 등(겔 28:12-14)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존재였다. 사탄이 받은 은혜는 다른 어떤 피조물이 받은 은혜와도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교만으로 인해 타락한 사탄은 그 안에서 어떤 좋은 것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악한 자』(살후 2:8)가 되고 말았다.
모든 죄의 아비가 된 사탄은 선을 악으로 갚는 그의 본성대로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그들 역시 선을 악으로 갚게 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을 악으로 갚았다. 재창조된 완벽한 세상에서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받았음에도 그 은혜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갚아 버린 것이다. “죄”는 그 종류에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을 악으로 갚는 일에 해당한다. 그러기에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죄의 아비”인 사탄의 모습을 점점 닮아 가는데, 결국 그 죄를 제거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의 혼이 영원한 불못에서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형상을 따라 벌레처럼 변하게 되는 것이다(막 9:44,46,48).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을 악으로 갚았다. 이집트에서 고된 노예 생활로 고통당하던 그들을 주님께서 『능하신 손과 펴신 팔』(신 4:34)로 해방시켜 주셨건만, 그들은 그 해방의 은혜를 우상 숭배로 갚은 것이다. 그것도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그 날부터』(삼상 8:8) 줄곧 그래 왔다. 모세가 그들에게 베푼 선을 끊임없는 불평으로 갚았고, 이방의 압제 속에서 고통받던 그들에게 재판관들을 통해 베푸신 자비와 은혜를 지속적인 우상 숭배의 죄로 갚았다. 사무엘이 베푼 선한 통치에 대해서는 인간 왕을 요구함으로써 은혜를 저버렸고, 제사장 여호야다가 베푼 친절 역시 기억하지 않고 악으로 갚고 말았다. 실로 끊임없이 주님을 대적하여 선을 악으로 갚아 온 백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최고의 선”을 베풀기로 결정하셨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다.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으며 어떤 민족도 하지 않았을 그 일, 곧 자신의 신을 우상과 바꿔 버린 완악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그것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으로 만든 『좀 앞에서도 부서져 버리는 먼지에 기초를 둔』(욥 4:19)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다. 온 우주에서 시대를 막론하여 이보다 더 위대한 “선”은 없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것마저도 악으로 갚았으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많은 표적들과 기적들과 이적들을 보았으면서도 그분을 붙잡아 죽였다. 이는 가장 위대한 선을 가장 사악한 악으로 갚은 희대의 사건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마 27:25)라고 부르짖었는데, “역사”는 그들의 요구가 그대로 이루어져 왔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유대인들의 “피 흘린 발자취”는 『선을 악으로 갚는 자마다 악이 그의 집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17:13)라는 말씀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증한 요구는 대환란 때 보다 더 확실하게 성취될 것인데, “완전한 선”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대가로 “완전한 악”인 적그리스도에게 철저히 짓밟히게 된다.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선하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악이 이스라엘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인이나 국가는 없다. 작금의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역시 선을 악으로 갚아 온 국가라는 책망을 면할 수 없다. 가난하고 더럽고 “착취하는 계층과 착취받는 계층”만이 존재했던 억압의 나라 조선, 다시 말해 대다수의 백성들이 태생적으로 공산주의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런 환경에서, 마귀의 걸작인 공산주의라는 헛된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개인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가 세워진 것은 과연 누구의 공로인가? 물론 건국이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그 일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좌파 민중사관에 물들지 않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세대학교의 한 석좌교수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독립시켜야 할 대상 국가로 노예 상태에 있던 조선을 카이로 회담 선언문에 포함시킨 것은 이승만의 외교 노력의 결실이었다. 6 ? 25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맥아더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이 나라를 구하라!”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우리나라에 문맹률이 78%에 달하고 중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2만 6천여 명밖에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생들을 보존해야 한다.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온갖 비방을 무릅쓰고 대학생들을 전장에 내보내지 않고 따로 공부를 시켜 전후 재건의 역량을 보호한 것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국이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휴전을 반대했고, 반공포로들을 석방하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또한 이를 활용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낸 신념과 담력과 탁월한 국제정치적인 식견을 가진 지도자 역시 그 한 사람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달러 한 장이 아까운 시절에 그가 미국과의 갈등과 노망이 들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직접 유학비를 손에 쥐여 주어 가면서 공부를 시킨 원자력 유학생들이 오늘날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의 초석을 놓았고, 철강 유학을 보냈던 인재들 역시 포항제철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살려면 나는 대통령 안 한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절약을 넘어 내핍에 가까운 생활을 초지일관한 것은 동시대 다른 지도자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건국의 아버지를 오늘날의 후손들은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이보다 더 “선을 악으로 갚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우하고 있다. 선을 악으로 갚는 나라에는 악이 떠날 날이 없다! 그 배후에는 “선을 악으로 갚는” 사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요 8:44)인 그가 모든 거짓말들을 통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주님께 드린 선을 결코 악으로 갚지 않으신다. 일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그분께 드린 것을 영원히 기억하신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그분께 돌려드렸을 뿐이다. 『누가 먼저 그분께 드려서 되돌려 받겠느냐?』(롬 11:35)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린 선으로 인정하시어 그의 후손들에게 『더 좋은 약속들 위에 제정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히 8:6)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이 시대에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음”이다. 지옥의 불길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했던 우리는 그 복음을 통해 구원받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선”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복음을 통해 이겨온 혼들이 우리가 주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최상의 선이며, 이에 성경은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라고 말씀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다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한 모든 선한 일들조차 주님께서는 모두 기억하셔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남김없이 상으로 되돌려주실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베풀고 계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진리의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주셨고, 『복음의 진리의 말씀』(골 1:5)과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진리의 지식』(딤후 3:7)을 주셨으며, 『진리의 기둥과 터전』(딤전 3:15) 위에 세워진 참된 신약 지역 교회를 주셨다.
당신은 이러한 선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선을 선으로 갚고 있는가, 아니면 악으로 갚고 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천사들의 음식』(시 78:25)인 만나를 받았으면서도 이스라엘이 그것을 싫어하고 이집트의 음식만을 추구했던 것처럼 여전히 『세상에 속한 것』(요일 2:16)만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최상의 선을 악으로 갚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약 4:17)은 악으로 갚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 역시 주님께 악으로 갚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부어져 있기(롬 5:5) 때문이다.
이렇듯 성경 공부와 복음 전파와 지체들을 향한 사랑을 소홀히 하는 성도들의 인생에서 악이 떠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약 어떤 성도가 현재 그런 악한 상황에 빠져 있다면, 갈보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한 “행악자의 책망”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 당장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을 받는 것이 참으로 당연하지만』(눅 23:41). 또한 에스라의 회개 기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보다 적게 주셨다는 사실을(스 9:13) 기억하고, 바로 지금 “선을 악으로 갚는 자”의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 일을 결코 미루지 말라.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믿음의 『옛 길, 그 선한 길』(렘 6:16)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