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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적 보존의 증거 “다수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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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3월호>
섭리적 보존의 증거“다수 필사본”
장준익 / 성경대로믿는사람들 기자
학창 시절 선생님이 쓴 판서를 수업 시간에 다 받아 적지 못해서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친구의 공책을 빌려 베껴 써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정보를 기록하고 보존할 때, 요즘에는 복사기나 컴퓨터의 복사 기능, 휴대 전화의 촬영 기능 등을 사용하여 쉽게 복사하고 저장할 수 있지만, 이런 기능을 가진 장비들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손으로 쓰는 방식, 즉 “필사”가 유일했다. 물론 최첨단 기기들이 있는 요즘에도 그러한 기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베껴 쓰는 것”이 유일한 정보 복사 방법이 된다. 베껴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베끼는 분량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베끼는 도중에 철자를 틀리게 쓰거나 한두 단어 또는 한두 줄 정도의 “누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경험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누락은 한 번 정도 원본과 대조해 보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점검이 가능하기에, 신중히 베껴야 하는 글의 경우에는 누락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중요한 글을 베낀 후에 제대로 베꼈는지 한 번 정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절차이다. 그러므로 그 목적이 의도적이지 않은 한 어떤 부분이 누락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철자의 실수 또는 단어나 문장의 일부 “누락”에 관한 이러한 상식적인 판단은 성경의 필사본을 판단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본에 있지 않은 내용이 “첨가”되는 것 역시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으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원본에 있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여 베끼는 일도 의도적으로 행할 때만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누락, 첨가, 대체가 일어났다는 것은 어떤 “불순한 의도”가 그 안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런 의도가 반영된 필사본은 “원본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요 1:18)라는 말씀이 어떻게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개역성경)라로 잘못 베껴져 번역될 수 있겠는가? 단순히 정신이 맑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 베껴 쓴 것만으로는 이러한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변형은 정신이 아주 맑은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변개시킬 때 일어난다. 단순한 실수로 『독생자』를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잘못 베껴 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요한복음 1:18을 몇 번만 베껴 써 보아도 알 수 있는 문제인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토록 중요한 단어를 잘못 베껴 쓰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수로 일어날 수 있는 변형을 넘어서는 “필사본들 간의 차이”는 “의도적인 변개”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분명 어떤 필사본들은 의도적인 변개가 들어 있지 않은 필사본들, 즉 “보존된 필사본들”인 반면에, 어떤 필사본들은 의도적인 변개가 들어 있는 “변개된 필사본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변개시킨단 말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겠는가? 과연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변형을 가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의도적인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한 성도들에게 온전히 보존되어 전달되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사탄과 사탄의 종들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다. “섞어 넣기”나 “아주 그럴듯한 가짜 만들기”는 사탄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밭의 곡식 사이에 독보리들을 뿌리는 것(마 13:25), 반죽 속에 누룩을 숨겨 넣는 일(마 13:33, 눅 13:21), 양 우리에 개돼지(마 7:6, 벧후 2:22)를 집어넣는 것, 가짜 교회를 세우는 일(계 2:9; 3:9) 등과 같은 사탄의 수법은 교회가 존재한 이래로 늘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필사본이 “보존된 필사본”이고, 어떤 필사본이 “변개된 필사본”인가? 요한복음 1:18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변개된 개역성경의 “독생하신 하나님”은 “홀로 태어난 하나님,” 즉 “피조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조된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보존된 필사본이겠는가? 『독생자』로 기록된 필사본인가, 아니면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기록된 필사본인가? 이것은 답이 너무나 명확한 질문인데, 개역성경은 사탄이 사용하는 변개된 필사본의 계열을 따라 번역된 성경임을 이 한 구절을 통해서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필사본들을 판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탄의 자녀들은 사본의 계열과 연대 등을 운운하며 “오래된 필사본이 더 우수한 필사본”이라고 주장하면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소수 필사본”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필사본들보다 더 오래된 필사본이나 번역본, 성구집 등의 반대 증거들은 의도적으로 언급을 회피한다. 가히 “사탄적인 기만술”이라 할 수 있겠다.
“피조된 하나님”을 말하는 개역성경에는 13개의 “없음”이라는 구절들이 있다. 피조된 하나님을 말하는 성경에 “없음”이 13개나 있는데, 어찌 그런 열악한 번역본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변명에 따르면, 현재의 “장과 절”은 “열등한 다수 필사본”에 근거해서 정해졌는데, 원문비평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최초의 원문에는 그 구절들이 없었다는 증거가 더 우세하므로 본문에는 “없음”이라고 기록하고 그 대신 난외주에 설명을 달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인본주의 “사본학”의 관점일 뿐이다. 그들이 열등하다고 말하는 다수 필사본은 전체 필사본의 95% 이상을 차지하는데, 열등하다는 이유가 후대에 필사되었다는 이유 한 가지뿐이며, 그들이 원문비평학적으로 연구했다는 것도 연대가 앞선 필사본들과 비교해 보니 다르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필사본의 연대가 후대여서 열등하다는 것이지만, 그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우수한 다수 필사본은 자주 사용되어 낡아 없어지다 보니 후대에까지 필사될 수밖에 없었고, 오래된 소수의 필사본은 본문이 심하게 변개되어 사용되지 못하고 책장과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최근에야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필사본에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변개를 가했다. 이는 교리적으로 중요한 구절을 골라 변개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구절은 사탄이 너무 싫어해서 아예 초기 필사본에서부터 삭제하도록 사탄의 종들을 이용했다. 만약 의도적인 누락, 곧 삭제가 아니라면, 교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구절들이 “부주의로 인해” 더 많이 누락되었어야 하는데, 정말 그럴까? 이것은 “없음”이라고 된 구절들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금식과 기도에 관한 내용(마 17:21)이라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마 18:11), 위선자들에 대한 경고(마 23:14), 지옥에 관한 내용(막 9:44,46), 대환란 때의 용서에 관한 교리(막 11:26), 성경의 예언의 성취(막 15:28), 휴거에 관한 진리(눅 17:36), 명절의 관례(눅 23:17),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침례를 위한 조건을 보여 주는 내용(행 8:37), 사역의 정황(행 15:34; 28:29), 서신서의 맺음말(롬 16:24) 등이 그렇다. 부주의로 인해 누락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구절들이다. 하물며 “삼위일체”의 가장 강력한 증거 구절인 요한일서 5:7은 삭제한 다음에 앞 구절(6절)을 둘로 나눠 후반부를 7절로 옮긴 후 마치 삭제되지 않은 것처럼 꾸몄다. “독생하신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반증 구절이기 때문이다. 실로 사탄다운 짓이지 않은가? 이처럼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필사본을 판별하는 방식에 따르면 개역성경은 “변개된 번역본”이다. 신약에서만 2,200단어 이상 삭제된 “사탄의 성경”인 것이다.
영국에서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의 원문비평학자들이었다. 그들이 국가의 후원을 받아 당시에 접근할 수 있었던 모든 종류의 필사본들과 번역본들을 점검하고 고려하여 탄생시킨 결정체가 바로 <킹제임스성경>이다. 그런데 현대 사본학자들은, 이들이 번역의 “저본”(底本)으로 삼은 “필사본 간 일치성이 높은 다수 필사본”이 “열등한 사본”이고, 4세기의 필사본인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더 우수한 사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오직 하나, 이 두 사본이 “오래된 사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생각의 영』(딤후 1:7)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상식적인 판단으로 이들의 주장을 평가해 보자. 첫째,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1481년에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에서 발견된 “바티칸 사본”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변개되어 있어서 가치 없는 필사본으로 판단하여 번역에 반영될 수 있는 필사본 목록에서 아예 배제하고 필사본 간 일치성이 높은 다수 필사본을 따랐다. 과연 현대 학자들이 이들의 판단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둘째, 1481년에 발견된 “바티칸 사본”이나 1844년에 발견된 “시내 사본”이 우수한 본문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열등한 필사본인 다수 필사본을 주로 사용하게 하시고, 우수한 필사본 두 개는 특별한 곳에 숨겨서 오랫동안 보관하셨다가 나중에야 발견되게 하셨다고 믿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인가? 셋째,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우수한 본문이라면 두 사본은 서로 상당 부분 일치해야 하는데, 이 두 사본은 사복음서만 해도 무려 3,036군데나 서로 다르다(마태복음 656군데, 마가복음 567군데, 누가복음 791군데, 요한복음 1,022군데). 도대체 이 두 사본이 5,000개가 넘는 다수 필사본보다 우수하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오히려 열등하지 않은가!
신약의 헬라어 필사본은 약 5,800개, 라틴어 필사본은 약 10,000개, 다른 번역본은 약 9,300개가 존재한다. 학자들도 자기보다 헬라어를 잘 하는 다른 학자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뭣도 모르면서 나팔을 불어 대는 신현우, 권동우, 정택주 같은 자들은 성경을 섭리적으로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메츠거나 카슨 같은 학자들을 추종한다. 메츠거와 카슨이 그들의 생계를 유지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 필사자들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을 섭리적으로 보존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믿지 못하는 이들은 사탄의 인도에 따라 거짓된 사본학만 따르고 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은 헬라어나 라틴어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필사본의 보존”과 “보존된 필사본에 관한 판단”을 소수의 특별한 학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필사했으며, 성령님께서는 그들에게 『건전한 생각의 영』(딤후 1:7)을 주셔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상식으로 보존된 필사본을 판단할 수 있게 하셨다. 학자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길로 성경을 섭리적으로 보존하셨고, 그 보존된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우리 손에 들려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성경을 온전히 믿고, 그 믿음을 신실하게 지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