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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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노동과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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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4월호>

『오히려 그들 각 사람은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요,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만군의 주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음이니라』(미 4:4).

현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경제체제"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인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위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현 인류를 위해 정하신 "경제체제"를 간략히 요약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각 개인이 자기의 재산과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기의 소유를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체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경제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원리가 가장 잘 적용되었던 국가는 솔로몬이 치리하던 시절의 이스라엘이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평생 동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각자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전하게 거하였더라』(왕상 4:25). 각자가 자기 자본과 생산수단을 소유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과 정치인들, 공무원들, 전교조와 그들이 지지하는 교육가들 및 대중매체 종사자들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뭔가 다른 경제체제하에서 통제받기를 바라고 있으니, 곧 "사회주의"인 것이다. 오늘날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사회복지정책들"이 하나둘씩 시행되면서 사람들의 관심 속에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더욱더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다행히도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독일 나치당이나 강제 수용소들을 떠올리게 해 주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그 사회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죽어 간 수많은 희생자들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거나, "부자에게서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어 사회정의를 실현하자."와 같은 영웅적인 신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사회주의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웹스터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전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생산수단과 재화의 분배에 있어서 집단 또는 정부의 소유와 관리를 지지하는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이론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사회주의를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여 자본주의 제도의 사회적, 경제적 모순을 극복한 사회제도를 실현하려는 사상 또는 그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라 정의된 사회주의는 "한 사회가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다음에 오는 단계로서, 집단주의적 원리들이 아직 불완전하게 이행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단계"이다. 이처럼 사회주의의 여러 가지 정의들을 고려해 보면, 사회주의는 "한 국가가 자유시장경제의 자본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독재정치의 한 형태"라고 요약할 수 있다.

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경제체제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이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노동이나 재산권 등에 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확인해 보면서, "사회주의"에 입각한 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들"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정책들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아담에게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해졌음이라.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담뿐만 아니라 아담 이래로 이 땅에 태어날 모든 인류가 "생산자"로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엄격한 선언이다. 창세기 4장에서도 정부가 아닌 각 개인들이 재화의 생산과 분배에 참여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녀가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으나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2절). 두 사람 모두 직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들은 모두 재화의 생산자였고, 자기들이 선택한 재화를 분배할 권리를 갖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선택에 대해 책임도 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경제정책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아벨과 카인, 두 사람의 재화의 생산과 분배에 대해 임의로 간섭하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나 집단 및 개인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었고, 또한 이것이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정부가 설립되기 이전에 있었던 상황이지만, 정부가 설립된 이후에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성경의 경제원칙은 "개인의 선택"과 "개인의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것이다.

창세기 13장에서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부자를 만나게 된다.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으로 매우 부유하였더라』(2절).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을 소유하고 있었다. "국가"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지역사회"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았다. 아브라함 자신이 그 재화와 생산수단과 분배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이런 부유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다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생활수준이 중간계층이거나 가난하니까, 그런 개인의 부유함을 인정하지 않으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진 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부터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14,15절). 즉 아브라함이 이미 가축과 은과 금으로 매우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으셨는지 그에게 "넓은 땅"도 약속해 주셨다! 게다가 그에게 주신 것을 "그의 씨"에게도 주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상속권"도 분명히 인정하셨다. 욥도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지만(욥 1:1-3), 하나님께서는 그의 재산을 두 배로 늘려 주셨다(욥 42:10).

이상 아담, 카인, 아벨, 아브라함, 욥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기본적인 경제원칙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첫째, 인간은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한다. 둘째, 사유재산과 상속권을 인정하셨다. 셋째,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즉 경제적 계층을 인정하셨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러한 경제원칙을 모두 부정한다. 첫째,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데도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지정책을 베푼다. 둘째, 노력해서 남보다 더 많이 벌면 누진세 등의 명목으로 빼앗아 간다. 셋째, 경제적 계층을 없애고 모두 똑같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는 결코 성경적일 수 없는 것이다.

십계명 중에서 여덟 번째 계명은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출 20:15)이고, 열 번째 계명은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이다.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면 이 두 계명을 어겨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부자의 것을 탐내는 자들이 "법"을 이용하여 부자의 것을 도둑질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은 매우 단호하다. 『너희의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히 13:5). 한때 아삽도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악인의 번영이기는 해도 "타인의 번영"을 시기한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하시니, 곧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니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내 발은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번영을 보았을 때 어리석은 자를 시기하였음이니이다』(시 73:1-3). 아삽은 악인의 번영을 시기하여 자기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말했다. 감사하게도 그는 자기의 눈을 돌이켜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에 그 걸음이 미끄러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성경적인 원칙을 잘 알지 못하면, 사회복지정책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 정책들이 마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올바른 정책인 것처럼 생각하고 찬성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운동에까지 참여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 6:8)라고 말씀하신다.

사회주의는 혼란을 조장하는 사탄의 계략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법칙은 선이든지 악이든지 그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다(갈 6:7,8). 예수님께서도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다(눅 10:7). 바울도 동일한 내용을 가르쳤다(딤전 5:18). 시편 128:2에서도 『네가 네 손이 수고한 것을 먹으리니 네가 행복하겠고 모든 것이 네게 잘되리라.』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적용하면 이렇게 되지 않는다. 근면한 사람은 자신이 "너무 성공할 경우" 누진세와 탐욕스런 정부의 규제에 의해 착취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마는데, 정당하게 번 것을 누진세 등으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탈세를 궁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아비 없는 자들, 과부들, 타국인들에게 도움을 주라는 "도덕적 의무"에 대해 많이 강조하신다. 그러나 "정상인"이라면 반드시 일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노라... 조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0,12). 『게으른 자는 춥다고 밭을 갈지 아니하리니, 그리하여 추수 때에 그가 구걸하겠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왜 그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인가? 그 이웃도 그가 게으른 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그에게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게으른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자본주의 국가의 대표인 "미국"의 조상들이 약 400년 전에 처음으로 신대륙인 현 미국 땅에 정착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를 시도했었다. 윌리엄 브래드퍼드가 쓴 <플리머스 농장에 관하여>라는 작품에 따르면, 처음 정착했던 조상들은 각 가족들이 수확한 곡식을 모두 공동 창고에 들이게 했고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분배해 주는 규칙을 제정했었다. 그러나 이 규칙은 많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결국 전체 계획이 폐기되었고 자유시장경제의 자본주의가 수용되었다. 자본주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런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미국에는 사회복지정책 덕분으로 집 안에 편안하게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정부가 제공하는 "공짜" 빵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 역시 각종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 거저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 정부"는 개인의 재산을 보호해 주고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약자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도와줄 필요가 없는 자들에게도 혜택을 주면서 생색을 낸다. 결국 이들의 목표는 사유재산을 완전히 통제하여 정부 마음대로 사용하는 공산주의로 나아가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주의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제원칙을 부정하는 정치 논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정책에 휩쓸리지 않는 올바른 경제관념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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