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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향한, 진리를 상실한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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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6월호>
지난 4월, 뉴스앤조이는 서울 중구에 소재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서울제일교회에서 열린 고(故) 육우당(본명 윤현석) 23주기 추모 예배 소식을 보도했다. 그는 동성애적 성향으로 인해 학창시절 내내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학교를 자퇴한 뒤 사회운동에 뛰어든 인물이었다. 동성애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를, 특히 “기독교인들”을 탓하며 18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몰지각한 편견과 사회가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반성경적, 반인류적인지. 우리더러 죄인이라 하기 전에 자기네들이나 먼저 회개하고 이웃사랑 실천을 해야 할 거예요.”이 자리에서 교인들은 “그 모습 그대로” 등의 CCM을 부르면서 눈시울을 붉혔고, 설교를 맡은 홍보연 목사는 “육우당이 겪은 고통뿐 아니라, 끝까지 붙든 소망을 함께 기억하자”고 했다. 여기서 말한 “소망”이란, 이 추모 예배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던 것처럼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누구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음이 분명했다. 이와 같은 “소망”을 품은 교인들은 아직까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런 자들이 제도권 안에서 버젓이 정체를 드러낸 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봐도 격세지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기독교 단체인 “무지개예수”에 따르면, 당당하게 교회 이름과 장소를 공개한 “무지개교회,” 즉 “성소수자 친화적”인 교회의 수는 2017년을 기준으로 서울에만 11곳, 전국적으로는 19곳이었다. 눈치가 보여 공개적으로 “무지개교회”임을 표명하지 못하는 교회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몇 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뉴스앤조이에서는 2023년 「성소수자 교인 “커밍 인” 과정 책으로 기록한 교회」라는 제하의 기사로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정언향교회”라는 곳을 소개했는데, 공식적으로는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그 교회는 성소수자들을 환대하되 “무지개교회”임을 표명하는 대열에는 동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과거에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둔 경험을 했던 성소수자 교인이 거기에 정착했던 것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다니는 교회가 “무지개교회”로 알려지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인 권영진 목사는 막 교회를 개척했을 무렵부터 “언젠가 우리 교회에도 성소수자 교인이 올 수 있을 텐데.” 하는 고민을 품고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했다고 한다. “성서학” 전공자인 그가 내린 결론은 “성경에서 죄악시하는 동성애는 오늘날 성소수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였다. 그러던 중 정말로 한 청년이 스스로가 성소수자임을 털어놓는 일이 벌어지자, 정 목사는 그가 교회에서 “커밍아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일에 정 목사를 도운 김석희 전도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는 성소수자만을 위한 교회나 운동 단체처럼 성소수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썼던 건 아니에요. 눈앞에 성소수자 지체들이 드러났고, 이들과 어떻게 함께 지낼까를 고민했던 것뿐이죠... 저는 교회가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고, 다른 위치와 입장에 있는 서로를 들여다보고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친화적인 교회들”은 동성애는 죄가 아니며, 설령 죄일지라도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인데 어찌하여 성소수자만 교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느냐고 다른 교회들을 향해서 따져 묻는다. “무지개예수”는 “동성애는 죄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성서의 모든 구절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앞뒤 문맥 속에서, 성서가 집필되었던 당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부정하고 죄악시했던 성서 구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와 같은 구절의 경우...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자를 도구화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밖에 동성애를 정죄하는 데 쓰이는 모든 성구들은 성경에 흐르는 무게 있는 가르침인 약자에 대한 보호, 주어진 성의 의미, 사랑, 정의, 평등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돔이 동성애로 인해 멸망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소돔이 멸망한 이유로 동성애를 직접 언급한 구절이 없습니다... 특히 선지서들을 보면 이사야는 소돔의 죄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 악한 행위(사 1:10-17)를, 예레미야는 간음, 거짓말, 악행(렘 23:14)을, 에스겔은 교만, 음식물의 풍족함, 즉 탐식, 배고픈 자에 대한 무관심, 가난한 자들을 방기하고 돕지 않는 것(겔 16:49)을 소돔의 죄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기록들을 볼 때 소돔의 죄를 동성애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더구나 소돔성이 동성애 때문에 멸망했다는 것은 더 근거가 없는 해석입니다.”
잘 모르면 입이라도 다물면 될 터인데(잠 17:28), 대부분의 무식한 군상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질 못한다(요 9:40,41). 먼저, 성경은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주지시켜 줄 필요가 있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그러므로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계 1:11).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서는 문자로 쓰인 “책”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되, 처음부터 그 끝을 선포하는 분이시다(사 46:10). 오늘날의 학자들은 성경이 여러 기록자들과 편집자들에 의해 차츰차츰 그 모습을 갖춰 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이 하늘, 곧 시간의 흐름이 멈추기에 “영원”이라고 불리는 곳에 이미 영원히 세워졌다고 말씀하신다(시 119:89). 따라서 성경의 어떤 부분도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재해석”될 필요가 없다. 성경은 그 모든 변화까지도 아우르며 “끝”을 선포하실 수 있는 분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질문은 “오늘날 그 구절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오직 이것이어야 한다.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눅 10:26) 성경에서 『너는 여자와 함께 하듯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그것은 가증함이니라.』(레 18:22)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들들 중에서는 남색자가 있지 못할 것이니라.』(신 23:17)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변개된 성서들에서는 “남색자”라는 단어가 신명기의 말씀에서 사라져 버리고 없다. NIV, NASB, NRSV는 모두 “남색자”를 “신전(이교)에서 몸 파는 자”로 바꿔 버렸고, 한국 교회의 개역개정판도 “남색자”를 “남창”으로 옮기고 있다. 이 “남색자”라는 단어는 영어로 “sodomite”이며, 직역하면 “소돔인”이라는 뜻이 된다. 왜 “무지개예수” 같은 단체가 “소돔성이 동성애 때문에 멸망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하는지 이제 알 만하지 않은가? “sodomite”라는 단어를 빼 버린 변개된 성서들을 사용하는 주석가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뿐인 그들로서는, 소돔인들의 멸망을 초래한, 소돔인들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죄가 바로 “남색”이었음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 [참고로, “sodomite”라는 단어가 빠지게 된 것은 순전히 동성애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1900년을 전후하여 나온 변개된 성서들인 RV와 ASV에도 “sodomite”라는 단어는 그대로 있다. 1960년대에 일어났던 “게이해방운동” 전에는, “동성애는 불과 유황을 받을 만한 죄다.”라는 것을 변개된 성서들도 인정했던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피를 흘리셨기에, 설령 성소수자라고 해도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또 자신이 그런 짓을 자행한다는 사실을 버젓이 드러내는 사람이 지역 교회에 소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눅 10:26)를 묻는다면, 성경은 만일 형제라고 하는 어떤 자가 음행하는 자이고 그것이 알려졌거든, 그와 사귀지도 함께 먹지도 말고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겠다(고전 5장). 동성애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또 다른 “음행”이다(고전 6:9,10). 그런 음행하는 자를 지역 교회의 회원이 되도록 허용하는 일은 “이웃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다(고전 6:5). 정 그런 자들을 포용하는 “사랑”을 베풀고 싶다면, 교회 간판부터 내리고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니 말이다. 『우리가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느니라』(고후 13:8).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