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칼럼 분류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3월호>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는 주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고 최대 2주간의 잠복기를 거치다가, 이후 "폐렴 증상"이 나타나면서 생명까지 위협하는 아주 무서운 전염병이다. 이와 같은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증상도 곧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육신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적인 바이러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여 바로잡아 주지만(히 4:12), 영적인 바이러스는 인간의 모든 것을 망쳐 놓는다. 벌레가 사람의 몸을 갉아먹듯이, 그 사람의 혼을 갉아먹어 완전히 피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면역 체계가 강화되지 못한 성도들, 곧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게을리하는 성도들은 이러한 바이러스에 의해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한편 이렇게 영적인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한 행동 양식을 띠게 되는데, 본 글에서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사항만 다루고자 한다.

바이러스처럼 숨어서 기다린다

영적인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자들도 숨어서 기다리는(렘 5:26) "잠복기"를 갖고 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는 잠복기가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기간이 끝나면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그들의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마귀는 "울부짖는 사자"로 묘사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벧전 5:8). 초원의 사자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풀 속에서 낮게 웅크린 자세로 영양과 들소 같은 짐승들에게 접근한다. 들키지 않게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면서 서서히 접근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격을 받고 있는 대상은 늘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촛불이 촛대 위에서 불을 밝히듯이 항상 자신을 빛 가운데 드러내면서 진리를 증거한다. 이렇게 진리가 선포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숨어서 살피는 "마귀의 자녀들"이 있다. 언제나 그들은 "도덕적인 의"를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인처럼 행세한다. 초림 당시 예수님을 공격했던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종교지도자들도 주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꼭꼭 숨긴 채 "자기들의 의"를 추켜세우며 위선을 떨었다. 이들은 상대가 강하다고 판단될 때는 그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격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단지 상대의 허점이 발견될 때까지 혹은 상대가 약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양의 탈을 쓴 채로 그들의 발톱과 이빨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혀는 쏘아 놓은 화살 같아 거짓을 말하니 입으로는 자기 이웃에게 평화롭게 말하나 마음속으로는 숨어 기다리는도다』(렘 9:8, cf. 엡 4:14).

때때로 그들은 복음도 전하고, 성경도 가르치면서 마치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내비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들의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 주님을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지식과 종교적인 의를 드러내고 싶어 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높임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자의적인 겸손"으로 그들의 음흉한 이빨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상대방을 책잡을 수 있기 전까지는 그를 추켜세우는 가운데(막 12:14)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눅 20:21, 롬 16:18).

교회의 영적인 권위와 질서를 무너트리려 한다

어떤 어리석은 배교자가 "나이가 들면 목사직을 그만두고 강단에서 내려와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기억력 감퇴"는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진화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죽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잘 기억하지 못하면 "건망증"이라고 하고, 나이든 사람들이 깜박하면 "노망"이라고 하면서 비하한다. "죄"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눈에 있는 것은 "티"라고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눈에 있는 것은 "들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마 7:3-5).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없으며 모두가 불결한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하다.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와 명철은 다윗처럼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또는 욥처럼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욥 6:30). 성경 구절을 깜박하는 기억력 문제를 가지고 "영적인 분별력"을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온 이스라엘의 장로들처럼 매우 한심한 자이다(삼상 8:5). 사무엘이 늙자 그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눈에 비친 사무엘은 한낱 힘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무엘의 자식들을 운운하면서 감히 새로운 왕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었다면,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진정어린 간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삼았을 뿐인데, 사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화가 단단히 났었다. 자신을 비하한 것 때문에 감정이 상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에 대한 의로운 분노였으니, 곧 그들의 그런 태도를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권위(다스림)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이옵니다.』(7절)라고 겸손히 말하면서 예수님께 간청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권위에 대한 순종이자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다. 거리에서 복음을 전할 때, 죄인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한 말씀』이다. 다만 우리는 어떤 말씀으로 상대방이 죄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이킬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여 설교할 뿐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또한 마찬가지인데, 설교를 들은 성도들이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성별하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강단 앞으로 나와 헌신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한 말씀』을 통해 마음에 변화를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권위를 경시하는 자들은 마음에 어떤 변화도 경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스스로가 영적으로 "늙고 병든 자"임을 깨닫고 죄의 길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나아와야 할 것이다(겔 33:11).

결국에는 실체를 드러낸다

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잠복기를 가지면서 기회를 엿본다. 섣불리 실체를 드러냈다가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중하게 "모의"를 하고 "계략"을 꾸미면서 자기들의 의견에 동조해 줄 무리를 모으려고 애를 쓴다. 압살롬이 다윗 왕을 대적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듯이, 이들 또한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성도들의 마음을 훔친다(삼하 15:6, 요 10:1). 그 안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지만, 적정한 세력을 규합할 때까지는 절대로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반드시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기 몸으로 행한 모든 행위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드러날 것이고, 거듭나지 못한 죄인이라면 백보좌 심판에서 그 모든 죄의 실상이 드러나 그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곳 나그네 시절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라.』(벧전 1:17)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몸으로 한 "행실들"뿐 아니라 마음에 있는 모든 "의도들"도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전 4:5). 어떻게 "마음에 가득한 것"(눅 6:45)이 숨겨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는 성도들은 마치 가슴에 불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들의 생애를 주님께 드린다. 반면에 불순종과 반역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자들은 그 증오심으로 그들의 가슴이 불타오르고 있다(잠 6:27). 죄인들이 지옥에서 이를 갈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 뜨겁고 고통스러운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영원한 증오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 안에는 참된 사랑이 없다. 이런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다(요일 4:10). 성령의 열매의 첫 번째 항목도 다름 아닌 "사랑"이다(갈 5:22).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자들의 가슴 속에는 오직 증오만 남게 되고, 그 입술에는 거짓과 불평과 비방만 남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버린 사울의 상태를 보라. 그의 결말이 어떠했는가? 매우 비참했다. 성령을 거슬러 행하는 모든 자들의 결말이 그와 같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씀으로 권면해도 바로잡혀지지 않는다. 『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으시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그러므로 너는 전능하신 분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라. 그는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그는 상처를 내시다가 그의 손으로 온전하게 하시느니라』(욥 5:17,18). 비뚤어진 못은 그 어디에도 쓸데가 없다. 은밀히 숨어서 누군가를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마귀의 종"이다. 누군가가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면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한다(엡 4:15). 누군가를 훈계하려 할 때도 사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입은 함부로 나불대는 시끄러운 꽹과리에 불과하다(고전 13:1).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고친다. 하지만 "교만"이 싹트기 시작하면 말씀의 거울을 상대방을 향해 돌려 버릴 뿐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비추어서 바로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자들은 많은 선생들이 되려 하는 자들이고(약 3:1), 위선자들이며, 숨어서 기다리는 영적 바리새인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는다(요 8:47).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귀에 들리지 않고 있다면, 그는 이미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린 사람이다. 그는 빛 가운데 있지 않고 어두움 가운데 있기에 결코 주님과의 교제 속에 거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빛 가운데 행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위선자들이 언제 패망할지, 자신 앞에 닥친 고난이 언제 끝날지 노심초사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께서 오실 날만을 소망 가운데서 기다린다.

신종 바이러스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주변에도 영적인 신종 바이러스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잠복해 있으면서 영적인 권위와 질서를 무너트리려 하지만, 종국에는 버림받은 자들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 하나님의 전신갑옷으로 무장하고(엡 6:11,13)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벧전 5:9).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희생자는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 BB

BB칼럼 309 / 6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