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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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운전이 미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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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0월호>

양보운전이 미덕인양 소개하고 권장하는 광고 문안과 캠페인 등을 보면 고소를 금할길 없다. 언듯 듣기엔 마치 한계없는 사랑의 실천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잘못된 선도(?)이다.

교통 법규를 준수하는 차와 준수하지 않는 차가 같은 처지에 있을 때 양보를 권장하면 누구 누구에게 양보하란 말인가? 법을 준수하지 않는 차에게 법을 준수하는 차가 양보하라는 것인가? 그럴라치면 법은 어떻게 되는 건가? 법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된다. 있으나마나 한 법은 왜 두는가? 무엇이나 양보하면 되는 것일까? 경찰관이 도둑에게 양보하고 검사가 죄인에게 양보하고 속일려는 자에게 속아주고 비싼 값을 부르는 상인에게 값을 양보해 주고 강대국의 수입 개방에 양보해 주고 성경 진리를 가짜 교리에 양보해 주고 나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권장하려면 준법을 권장해야 한다. 준법 운전이 교통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옳은 일을 수행함으로써 긍지를 느낀다. 어쩔때 그 옳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기 희생이 뒤따르고 생명의 위협이 있고 그들을 국가는 잘했다고 포상해준다. 양보 운전했다고 칭찬하게 되면 준법자가 불법자에게 그 불법 행위를 묵인해야 하고 억울하게 불의와 타협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교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이다. 갖다 붙일 때나 안붙일 때나 사랑을 들고 나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한다”고 지적한다. 그 내면을 살펴보면 사랑은 무조건 실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사람이라는 증거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노라. 이로써 우리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다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 났으며 또 하나님을 아느니라』(요일4:6,7).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을 요구하게 되면 사랑은 행위임므로 행위만을 실천하고 자족하게 되어 그리스도인이 아닌데도 그리스도인으로 스스로 오산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죽게되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된다. 사랑하라는 것이 어쩌면 대단한 구호인것 같지만 그 앞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양보 운전을 조장하는 사람은 준법자가 불법자에게 그의 정당한 행위를 양보하라는 것과 같다. 양보운전으로 한 번의 사고는 에방했을지는 몰라도 준법 정신에는 먹칠을 한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교통 관계에도 양보운전이라는 용어는 없다. 모두가 “법규를 지켜 운전하라”이다. 사회에 법을 뿌리 내릴려면 양보운전같은 바보스런 슬로건은 즉시 제거시켜야 한다.

생각해 보라. 양보 안 했다고 딱지떼는 교통순경도 있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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