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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회 복음”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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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2월호>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죄들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 복음 전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처음 기독교가 전파될 때부터 성경적 복음이 아닌 “사회 복음”이 들어왔다. 사회 복음은 그 사회의 열악한 부분에 도움을 줌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파하는 방법으로서 실제로는 복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빈민 구제, 의료 활동, 교육 사업 등을 통해 기독교가 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 가치가 있는 좋은 종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이 사회 복음이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일컬어지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작년 한 해 동안 “사회 복음”과 “비성경적 실행”을 통해 어떻게 성경적 기독교를 왜곡해 왔는지 살펴봄으로써 비성경적인 실행으로 점철된 이 나라 기독교의 현실을 비평해 보고자 한다.모 기독교 신문은 지난 1월 9일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 이영훈 목사)가 교회 1층에서 서울 금천구청과 시흥동 산림문화휴양지 조성을 위한 토지 무상사용 협약식을 개최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협약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소유한 토지 24만 8,012m2(7만 5,000평)를 무상 제공해 남서울 지역 대형 산림문화휴양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약속이다. 교회가 교인들에게서 받은 헌금으로 쓰지도 않을 땅을 산 것도 이상하고, 산 땅을 교회 사역에 사용하지 않고 무상으로 구청에 임대해 주고 산림문화휴양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헌금을 낸 교인들이 원한 바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들이 정상적인 교회라면 쓰지 않는 땅을 되팔아 복음 전파 사역에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기뻐하실 만한 일이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3,4).
이영훈 목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시흥동 일대에 조성될 산림 휴양지가 서울 남부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쉼과 문화적 가치를 선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산림문화휴양지”를 조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소위 목사라는 이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그를 통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요일 4:9)라는 말씀도 모른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써 나타났고, “교회의 사명”은 죄인이 자기 죄를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미 은평구청과 꿈친장애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진행해 왔다. 작년 6월에는 6·25전쟁 제74주년을 맞아 참전용사 초청 감사예배라는 것을 진행하고, 747명의 참전용사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다. 작년 8월에는 한부모 가족복지시설에 입소한 미혼모 및 한부모들에게 출산 축하용품으로 “행복 담은 유모차” 120대를 지원했고, 작년 9월에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과 함께 추석을 앞두고 식료품을 담은 “사랑의 희망박스” 7천 개를 독거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가정에 전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작년 12월에는 “쪽방촌 이웃과 함께하는 2024 찾아가는 성탄절 사랑의 희망박스 나눔” 행사를 통해 생필품을 담은 희망박스 800상자를 전달했다. 이영훈 목사는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이곳을 찾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희생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희망박스를 나눠 드리는 행사를 가져왔다”면서 “이러한 사랑의 나눔 운동이 1년에 한 번으로 그치지 말고 연중 꾸준히 이어져,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웃 돕기는 선한 일이다. 그러나 복음이 배제된 선행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 목사가 말한 “예수님의 사랑”은 희망박스를 전달하는 것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복음”을 전파해야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목사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성경은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라고 말씀하셨고,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들이 어려운가? 이처럼 분명한 말씀도 모르는 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목사가 될 수 있는가?
위의 내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영훈 목사는 재작년에 여신도 47명에게 “목사 안수”를 줌으로써 비성경적인 실행의 최전선에 선 바 있었다. 이때 여자 목사들이 대거 배출된 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속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 교단 헌법을 개정해 목사 안수 자격을 대폭 완화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성경적 실행에 이어 작년에는 여성 장로 6명을 임명했다. 이처럼 비성경적인 실행이 이어지는 것은 단순히 이 목사 한 사람이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소속된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전체가 성경에 무지하고, 한국 기독교계 전체가 무지하기에 이들의 비성경적인 실행에 동조함으로써 일어난 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자 목사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감독은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하고 신중하며, 예의 바르고 대접하기에 힘쓰며, 가르치기를 잘하고』(딤전 3:2). 감독, 즉 목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목사뿐만 아니라, 여자 목사를 허용하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자체가 반성경적인 집단인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교단을 인정하신 적도 없다. 이 목사가 목사의 자격이 없는 것은, 이처럼 비성경적인 실행으로 성경의 정죄를 받고 있기 때문인데, 목사라면 당연히 성경대로 사역해야 함에도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경의 진리에 대한 무지는 목사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에 위배되니 그런 이가 왜 목사를 해야 하는가?
현재 교회들이 실행하는 “장로”직은 비성경적인 직분이다. 성경에서 “장로”는 “목사”를 의미한다. 사도 베드로도 자신을 장로라고 하였고, 사도 요한도 자신을 장로라고 하였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에 동참하게 될 자라』(벧전 5:1). 『장로인 나는 지극히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진리 안에서 그를 사랑하노라』(요삼 1:1).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각 지역 교회의 권위자인 담임목사로서 자신들을 “장로”라고 칭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교단들이 실행하고 있는 장로 직분은 비성경적이며, 여자 장로는 더더욱 비성경적이다. 여자 장로라는 가짜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다 “집사” 직분을 거쳐서 장로 직분을 받았을 텐데, 성경은 또한 여자 집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자녀와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딤전 3:12). “한 아내의 남편”이 아닌 여자들에게 집사 직분을 준 자들은 성경과 무관한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종교 집단임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목사들이 “사회 복음”을 교회의 사명인 것처럼 제시함으로써 무지한 교인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67주년을 맞이한다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그 교회의 담임인 이영훈 목사는 “삼림문화휴양지”를 조성하고, 참전용사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며, “행복 담은 유모차”를 선물하고, “사랑의 희망박스”로 생필품을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무려 67년이나 되었다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그 명칭에 “교회”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않고 “사회 복음”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내게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는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정녕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전 9:16)라고 했다. 교회의 사명은 “불우이웃 돕기” 같은 “사회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죄인들을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는 복음과 무관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