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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질문:“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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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3월호>
세상에서 "사랑"만큼 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도 없다. 우리는 사랑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데, 그만큼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늘 절실하다. 물론 세상은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성경적인 사랑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랑이 되었든지 세상은 사랑에 목말라하고, 또 그것을 간절히 찾고 추구하면서 서로 간에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심지어 "사랑은 욕망의 강 속에 사는 악어"라는 산스크리트 속담도 있듯이, 사랑이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파괴시킨다 해도 사람들은 못내 그것을 붙들려고 한다.사랑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숭고한 이상이자 행동이며 교리이다. 그 밑바탕에는 기본적으로 "희생정신"이 깔려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사랑과 별개의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기술적인 사랑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주님의 사랑은 피조물인 인간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다. 창조주께서는 그 사랑을 먼저 보여 주셨는데(요일 4:19), 이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사랑이며(요 3:16), 또 교회를 사랑하시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사랑이다(엡 5:25).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오하는 마귀는 늘 그렇듯이 그분의 사랑을 모방하여 왜곡하며 변질시켰고,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남용하고 오용하도록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로 시작되는 CCM 가사이다. 이것이 바로 배교한 세상 교회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는 사랑은 영생, 곧 구원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의 종교심을 자극하여 교회에 출석하도록 유인하는 "상업적인 사랑"일 뿐이다. 또한 상당히 모호하고 피상적이다. 세상 죄인들에게 구원을 위한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부질없는 외침에 과연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자기들도 십자가의 사랑을 전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정작 구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자들이다. 그들이 세상 죄를 제거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 베풀어진 대속의 사랑을 외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 주님께서는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확인하시고 싶어 하신다. 그분께서 친히 희생의 사랑을 먼저 보여 주셨으므로, 성도들에게서 사랑을 확인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시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신 적이 있으셨다(요 21:15-17). 이렇게 세 번이나 되물으시면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려 하셨던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사람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주님을 향한 사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제아무리 강렬하다 할지라도, 막연하게 마음속에만 품고 있다거나 구체적인 실행을 동반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사랑은 결코 참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똑같은 질문으로 "세 번"이나 반복해서 그 사랑을 확인하신 것일까? 이에 대한 일차적인 이유는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카야파의 관저로 끌려가시어 심문을 받으셨을 때,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그렇게 "세 번" 부인했다. 중요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실족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제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마가복음 16:7에서는 『주의 제자들과 베드로』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주의 제자들"과 분리시킴으로써 그가 제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음을 보여 준다. 베드로는 제자의 직분을 다시 회복할 필요가 있었으니, 주님께서는 부활 이후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에게 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세 번의 질문을 통해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이상 일련의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베드로의 주요 행적들과 연관해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취해야 할 실제적인 행동 강령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받게 된다.
1. 우선 헌신해야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는 제자들 중에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고기 잡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던 어부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에 즉시로 주님을 따라간 것이다. "헌신"은 말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해 자기 몸을 산 채로 드리는 것이다. 이는 희생과 의미가 상통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리신 희생이었기에, 성도가 주님께 드리는 사랑 역시 "몸을 드리는" 헌신된 사랑이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몸의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요 14:15),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키지 않는다"(요 14:24).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한 베드로는 양들을 "먹여야" 했다. 그런데 헌신은 "성별"을 기반으로 한다. 성별하지 않은 헌신은 헌신이 아닌 것이다. 변개된 성경, 거짓 교리, 성경대로 믿지도 실행하지도 않는 교회들,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성별하지 않으면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없다. 성별된 헌신이 아닌 한,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사랑을 받아 주시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경은 헌신을 하되 "이 세상과 일치하지 않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는 것이다(롬 12:1,2).
2. 다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마귀의 키질을 이겨 내야 한다. 마지막 만찬에서 사탄은 제자들, 특히 베드로를 시험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세 번"(시몬아, 시몬아, 베드로야) 부르시면서 사탄의 키질에 대해 경고하셨다(눅 22:31,34). 결국 이러한 키질을 이겨 내지 못한 베드로는 실족해 버렸고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과 "열성"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셨고, 그에게 회심하면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권면도 주셨다(눅 22:32).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귀와의 영적 전쟁의 연속이다. 그의 공격에 대적하여 승리하지 못한 성도는 이미 주님을 사랑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사탄의 키질이 그를 육신적인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육신적이 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롬 8:8). 따라서 주님을 사랑한다면 사탄의 키질을 이겨 낼 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상태로부터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통해 속히 벗어나야 한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시인하며 증거해야 한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바로 그때 돌아서시어 자신을 쳐다보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었다(눅 22:62). 그의 비통함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통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요일 4:14-16,19). 이렇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세상으로 나가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여 죄인들을 주님께로 이겨오게 된다.
베드로는 제자의 지위를 회복했고, 훗날 바빌론으로 가서도 복음을 전파하면서 신실하게 사역했다(벧전 5:13). 그는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시며 사랑을 확인하신 "사랑의 시험대"를 온전히 통과했음이 분명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 모두가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평생토록 유념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진정 나는 성경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매 순간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살펴본 세 가지 행동 강령을 실제로 행함으로써,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