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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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로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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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5월호>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주 하나님께서는 올바로 “나누는” 분이시다. 주님께서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벧후 3:7)을 재창조하셨을 때, 온 우주에 울려 퍼진 음성은 『나누게 하라.』(창 1:6)라는 말씀이었다. 주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창 1:4). 빛과 어두움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세상은 빛이 없었고 오직 어두움뿐이었다(창 1:2). 주님께서는 의와 불의, 진리와 비진리를 나누시고,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나누신다(레 11장).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신 7:6)으로 삼으시기 위해 이집트로부터 갈라놓으셨고(레 20:26),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혼이 죄가 거하는 육신으로부터 나누어지는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를 경험한 성도들을 그분의 『거룩한 민족』(벧전 2:9)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올바로 “나누어 보는” 분이시다. 다윗은 보통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짓지 않았을 흉악한 죄를 지었다. 즉 간음하고 살인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대가로 다윗을 죽이지 않으셨고, 다윗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도 않으셨다. 단지 그 죄에 대한 합당한 징계를 내리셨을 뿐이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그분의 눈에 옳은 일을 행한 것과 그가 범죄한 『힛인 우리야의 일』(왕상 15:5)을 “따로따로” 평가하셨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용사들을 언급하실 때도 그들의 연약함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으셨다. 이처럼 온 하늘 아래서 유일하게 『의로운 재판관』(딤후 4:8)이신 주님께서는 올바로 “나누어 보는” 분이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할 때도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근본 원칙이다. 성경이 기록된 첫 번째 목적은 교리이다(딤후 3:16). 그리고 성경의 교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그 말씀이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 기록된 것인지 올바로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지역 교회 내에서 그 올바른 방법으로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딤전 5:17)을 배나 존경할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일을 올바로 나누어 보지 못하면 그 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악한 현 세상』(갈 1:4)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올바로 나누어』 보아야 하는 원리가 우월하게 지배하고 있는 사회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항상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최근에 일어난 대한항공의 참사를 보면서, 자유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통분한 마음을 금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죄인들의 오만과 탐욕이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여 개인의 사유재산을 무너뜨린 초유의 사태였다. “오만”이라 함은, 더러운 죄인들이 마치 자기들은 깨끗한 사람들인 것처럼, 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인 것처럼 한 집안 사람들을 단죄한 것을 가리키고, “탐욕”이라 함은, 그것을 빌미로 개인의 사적 재산에 속하는 경영권을 국민들로부터 강제로 징수한 세금으로 오용하여 빼앗았다는 점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각종 언론 매체에 의해 선동된 여론을 등에 업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참담함이 느껴진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인민”민주주의라는 전체주의 국가의 실루엣이 그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기업 오너 일가의 부도덕한 행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잘못했다면 그에 합당한 법적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그것과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개인의 사적재산을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권력을 이용하여 빼앗아 갔다는 점인데, 이런 점을 “올바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깊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차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도덕성이 저열하기 때문에 당신이 정직하게 피땀으로 일군 재산을 국가가 가져가겠다고 하면 당신은 동의할 수 있겠는가? 한때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뒤처져 있던 이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 개인의 생활수준과 국가의 부를 향상시킨 “기업가로서의 본질”에 대한 평가를 그 사람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으로 덮어 버린 것이다.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한 더러운 죄인들이 또 다른 죄인의 도덕성을 정죄하면서 그가 가진 재산을 빼앗는 장면보다 더 극악한 위선의 “정점”(頂點)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악한 강도질일 뿐이다. 그와 같은 논리로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의 모든 재산을 국가가 몰수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괴팍한 성질의 “갑질”로 유명했다고 하지만, 미국의 국민들은 그런 이유로 국가가 경영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이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도다. 나는 내 죄에서 정결케 되었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냐?』(잠 20:9) 법 적용의 잣대가 개인의 도덕성이라면, 마땅히 마음의 비밀들을 아시는(시 44:21) 주님께서 그 법을 집행하셔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보좌에 앉으실 천년왕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천년왕국에서 의로 통치하실 “의의 왕”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들의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현 세상에서는 사람의 속을 보지 못하는 죄인들이 오직 법에 충실할 때만 비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여론 재판에 의해 헌법 정신이 무시되고 변질되어 간다면, 결국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개념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 자유와 재산을 뺏기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올바로 나누어 보지 못하는 국민들은 패망할 수밖에 없다.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올바로 나누어 보지 못하면 파국을 초래할 뿐이다.

올바로 나누어야 한다! 일제 치하에서 항일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그들이 건국하려 했던 나라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한쪽은 개인의 자유과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고, 다른 한쪽은 당시 책상 지식인들의 머리를 장악했던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었다. 전자는 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후자의 무리들도 결국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했는데, 바로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들이 서로 단합할 수 없음은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음과 같은 이치였다. 일본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싸웠다고 해서 공산주의자들과 무조건 통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또다시 헤어 나올 수 없는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빠져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올바로 나누어 보지 못함으로 인해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처절한 전쟁까지 겪은 이 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 항일 운동가를 독립유공자로 칭송하고 드라마 주인공으로 시청해야 하는 현실이 오고 만 것이다. 올바로 나누어 보지 못하면 빛과 어두움이 함께 섞이게 된다. 그러면 빛은 사라지고 어두움만 남는다. 진리가 비진리와 함께 섞이면 비진리만 남는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고후 6:14)

올바로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굴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하게 하신(갈 5:1) 사람들도 두 무리로 나뉜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과 자기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전자는 “영과 진리로” 경배 드리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 드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합”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의 어두움에 싸여 있다. 그들이 “진리의 말씀”의 빛으로 나아온다면 그들과의 “통합”은 가능하다. 이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이 비진리의 어두움 속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냄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카나안 민족들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빛의 자녀들』(눅 16:8)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욕을 위해 카나안 민족들과 섞여 버렸다. 결국 통합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주님을 알지 못하던 상태, 곧 어두움으로 다시 돌아간 것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 나누신 것을 인간이 임의로 합쳐 버리는 악한 죄를 지은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냄을 받았는가? 죄에서 해방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은 비진리와 통합한 상태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비진리가 스며들면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 『너는 내 아들을 그곳으로 다시 데리고 가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하느니라』(창 24:6).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요 1:12)를 가진 우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한다. 진리로 성별한 우리는 비진리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한다. 새 사람을 입은 우리는 옛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누신 것을 우리가 멋대로 다시 합쳐서는 안 된다. 이 세상 어딘가에 마치 돌아갈 곳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도가 돌아갈 유일한 곳은 주님이 계신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히 11:16) 도성이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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