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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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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5월호>
마지막 날들이 아주 어려운 때인 것은 진정한 사랑이 없고 온통 왜곡된 사랑만 넘치기 때문이다(딤후 3:1-5). 밥 존스시니어는 "모든 나쁜 것은 처음 좋은 것들의 왜곡된 형태"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부르짖고 실천한다고 하는 모든 사랑은 그본질을 파헤쳐 보면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이다.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고 어떤 구속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사랑이라고 여기기에, 하나님의 사랑도 그럴 것이라 단정해 버림으로써 전부 인간 중심적인 사랑으로 왜곡시킨다. 이 모든잘못은 성경에 계시된 사랑을 인본주의적 배경 속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결과인데, 대표적인 구절이 마태복음22:37-40이다.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오해
우선 첫 번째 항목부터 살펴보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마 22:37,38). 죄인에게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곧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된 대로" 믿어야 한다. 계시된 하나님의성품은 먼저 죄를 미워하시기에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성품"이다. 거룩한 사랑은 죄를 미워하는 거룩한 증오와 거룩한 질투를반드시 동반한다. 주님의 사랑은 순수하며 죄 없는 거룩한 사랑인 동시에 진리를 기뻐하는 사랑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자신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7:17). A.W. 토저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을사랑하고 예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며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귀히 여기는 사람, 자신의 지성까지도그리스도께 굴복시키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과연 예수님께서 무엇을 사랑하셨고 무엇을 미워하셨는가를성경을 통해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셨고 어떤 것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으셨는가를 자세히 알아 그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또 어떤 일에 기뻐하셨으며 어떤 일에 분노하셨는지를 깨달음으로써 기뻐하신 일들에 주님과 함께기뻐하고 분노하신 일들에 대해 분노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관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셨는가? 주님께서는 모든 계명들 중에서 최우선은 "주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요14:15). 『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아버지께사랑을 받으리라. 또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 사람에게 나 자신을 나타내리라』(요 14:21). 또한 예수님께서는 친히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셔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신 것같이 제자들도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키면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0).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흔히들 오해하듯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건적"이다. 인간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견지에서, 주님의 사랑 안에 들어오려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심판을 실행하신다. 그런데 이러한사실을 외면한 교회들은 교회 문턱을 낮추자는 의도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기준을 치워 버린다. 이에 시중에는<불신자도 좋아하는 교회를 만들라>(김학중 목사, 나침반)는 제목의 책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 결국 모든거룩함의 경계가 무너지고 혼란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진리를 배제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듯이 권위가 부재한 사랑도 없다.오늘날은 권위가 실종된 시대이다. 하나님의 권위도 사라져 도무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자리잡은 사랑은 권위를 배척한 사랑이다. 한없이 용납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 정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도라면누구나 거듭난 후에 바울이 두려워했던 것을(고전 9:27, 고후 5:10,11, 빌 2:12)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야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의 기분에따라 주님을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우롱당하지 않으신다.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히 12:6). 한 예로 지역교회 내에서의 징계를 들 수 있다. 어떤징계든지 그것이 내려질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프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의 회복과(계 2:4; 3:19)영적인 치유에 있다(히 12:11-13). 다툼에서 비롯된 "정치성을 띤" 징계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지만, 마땅한징계를 실행하지 않는 것 또한 주님 앞에 저지르는 범죄 행위이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책망하여 다른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 성경은 여인에게서 난 사람 가운데 침례인 요한보다 더 큰 선지자는 없다고말씀하는데(눅 7:28), 피터 럭크만 목사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자랑하지 않았고,그의 사명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았으며, 그의 메시지를 듣기 좋게 유화시키지도 않았다. 현대의 설교자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을나눈다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사명에 대해서도 거짓말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책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이웃 사랑에 대한 오해
두 번째는 39,40절에 있다.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모든 율법과 선지서들이 이두 계명에 달려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세상 교회들이 외치는 "이웃 사랑"은 대개 이런 식이다. "성 프란시스의사랑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물론,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아니 이단들에게까지도 미쳤다.한경직 목사도 자기를 핍박하던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고, 포악한 독재자들에게도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 보였다."
그런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배경은 구약에 있다(레 19:18). 여기서 이웃은 "이스라엘"이다. 이방인들은포함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이방인들에 대해 어떤 자비도 보이지 말라고말씀하셨다(신 7:2). 이 명령을 받은 유대인들이 소위 "이웃"에 대해 어떻게 대했는지는 카나안 정복전쟁과 이후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완전한 진멸이었다!(삼상 15:3) 이처럼 구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말씀은 모두 유대인들에게 해당된다. 로마서 13:9에서는 바울이 구약의 계명들을 언급하다가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같이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이는 구약의 명령을 가지고 신약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적용시켜 "다른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잃어버린 죄인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자녀를 사랑하시는 것과 동일한 사랑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하시지는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는 그분의사랑하시는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또한 예수님 자신이 그 안에 거하시는 반면 잃어버린 죄인들은 그렇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소위 "이웃"에 대해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다분히 부정적이다. 즉세상을 사랑하지 말고(요일 2:15,16),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롬 12:2).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으셨다(요 17:9). 또한 구원받지 않은 "이웃"들과의 교제를 피하라고 하셨는데,특히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엡 5:11). 거듭나지 않은 자들,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불의한 자들과의 진정한 사귐은 불가능한 일이다(고후 6:14).
오직 그런 잃어버린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려고 애쓸 뿐이다. 갈보리 십자가로 나오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을 거부하는자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사랑하지 않으신다. 다만 심판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도록 하시려는하나님의 자비하심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믿지 않는 잃어버린 자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지체들과 동일하게 사랑하라고 명령받은 적이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라는뜻이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시키는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믿지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기에, 그리스도인의 임무들 가운데 하나는 그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죄인들을 복음을통해 이겨오는 것이다. 이겨오는 방법은 철저하게 성경적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이다(행 20:21). 선행을 베풀고 그들이처한 환경을 개선시켜 줌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열어 믿게 한다는 것은 사탄이 제공하는 미끼일 뿐이다. 진정한회개 없이, 올바른 믿음 없이, 예수님을 믿는 체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의 변화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증인이요,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무엇을첨가한다면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는 인정 많은사람이요, 예의 바른 사람, 목사다운 목사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어떤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다시말하지만 어떤 성도에게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교리적으로 앞선 두 계명은 율법을 요약한 것이지, 복음을 요약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율법과 선지서들이 이 두계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소위 "황금률"(마 7:12)은 "구약의 의"와 관련된 것으로 이것을 지키느냐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는, 율법과 선지서들을 믿는 구약의 성도들이 의를 소유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했다. 그런데"황금률"을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이것이 침례인 요한과 더불어 끝난다고 말씀하셨다(마 11:13, 눅 16:16).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의존한다면, 그리하여 자신의 구원을 황금률에 의존한다면, 그의 운명은 곧장 지옥으로 향하게 된다. 신약에서 하나님을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잃어버린 죄인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이웃을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듭나기 전의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원수인 상태로 머물러 있기에 당장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웃을진정으로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타락한 죄인들은 자신들의 형상을 따라 온갖 종류의 신들을 만들어 내고 자기 입맛에 맞게 하나님의 사랑을 규정해 왔다.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으로 대체한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은 지옥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세상과 죄를 사랑하는 그 왜곡된 사랑을 진리로 바로잡지 않는 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부지런히 진리의 지식에 이를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잃어버린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증거하며 예수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때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