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칼럼 분류

인문학을 신학으로 아는 서울신학대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4월호>

교회사를 보면 하나의 뚜렷한 패턴이 나타난다. 그것은 “복음 전파 - 교육 - 문화 - 배교”의 네 단계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교육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기독교 문화”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곧이어 배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종교개혁이다. 루터는 당시 이교도와 마찬가지인 카톨릭 사회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파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가르쳤다. 하지만 루터 다음 세대에 사람들은 복음 빠진 신학만을 이어갔고, 그 신학마저도 세상 학문으로 뒤바뀌었다. 결과적으로 그곳은 루터의 업적만이 “기념비”적으로 남은 배교지가 되어 버렸고, 이교도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러한 배교의 대표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신학교들에 세상 철학과 과학이 침투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탄은 세상 학문으로 복음의 생명력을 끊어 버렸다. 세상의 유명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의 학식을 가르칠 때 성경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세상적 유명세를 더 좋아하고, 그렇게 되어야 신학교들이 발전한다 생각하여 더욱더 세상 학문을 도입하고 있다. 독일이나 미국의 모든 유명 대학들이 그랬다. 할레, 튀빙겐,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은 모두 신학으로 시작했지만, 오늘날은 가장 앞장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본주의 학교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신학교들이 바로 이런 전철을 밟고 있다. 이미 많은 신학교들이 일반 학부를 개설하여 종합대학교로 승격했으며, 그렇지 못한 학교들도 몇몇 인문학부들을 개설하여 일반대학화 되고 있다. 그런 학교들에서 “신학”이란 많은 학과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일반대학교로 승격(?)되기 힘든 학교들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인문학 과정들을 마련해서, “교양”을 쌓는다는 명목하에 자기 학교를 세상 학교들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대표적인 학교가 바로 서울신학대학교이다. 그 학교는 정기적으로 <인문학강좌>를 마련해서 세상 학문을 도입하고 있다. 벌써 “제4기”라 하니, 그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닮을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강좌는 다른 학교의 유명 교수, 혹은 사회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여러 주제로 진행되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조국, 서울대), 『젊은이여 꿈이 있는가』(김동길, 연세대), 『인문학과 지식 및 인성』(조순, 전부총리),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위하여』(유홍준, 문화재청), 『한국 대통령의 리더쉽』(임혁백, 고려대), 『성공의 비밀』(이중명, 에머슨퍼시픽그룹) 등등...
서울신대는 하나님의 일꾼을 양성한다는 신학교다. 그런데 그들이 신학 교육에 이런 강의들을 섞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의 인정을 하나님의 인정보다 더 높게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을 많이 모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으로 간주하는 오늘날 교계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들은 인문학을 가리켜 “학문과 교양과 인성의 기초로서의 인문학”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 말이 세상에서는 맞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을 기르는 신학교라는 데 있다. 성경을 가르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고 실행해야 할 신학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학문을 신학에 뒤섞어 놓는다. 이는 마치 중세 암흑 시대에 로마카톨릭 신학자들이 철학을 신학에 뒤섞어 놓은 것과 같다. 그 결과는 신학이 철학에 짖눌려 필요없는 학문이 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현상을 나타내고 말았다. 그것이 서울신대를 비롯한 오늘날 한국의 신학교들의 모습이다.
이 학교에서 초청한 강사들을 보라. 그들은 거듭나지도 않은 유명인들을 불러다 무엇을 하려는가? 구원받지 않은 마귀의 자식들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깔아뭉개려고 하는가? 주의 종이 되려고 온 순수한 젊은이들의 가슴에 세상 쓰레기들을 채우려 하는가? 참으로 해괴한 짓이다. 이렇게 해서 거듭나지 않은 학자들 밑에서 거듭나지 않은 학생들이 배우게 되고, 그들이 또 거듭나지 않은 목사들이 되어 거듭나지 않은 회중들을 향해 죽은 설교를 하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삼류 코미디 같은 일인가? 참으로 광대는 서커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그들은 얼마나 무지하길래 거짓말을 종창처럼 퍼뜨리려는 마귀의 계략에 이렇게 넘어가 버린 것인가? 그들은 모두 소경이다. 소경이라서 빛을 좀 찾으려는데, 인문학이라는 엉뚱한 세상 철학의 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전혀 그들의 영적 안목을 뜨게 해주는 빛이 아닌데도, 그 빛 아닌 빛 안에서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들이 참 빛이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친히 증거하시거니와, 그 말씀은 “빛”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의 말씀들이 들어가면 빛을 주며 그것이 우매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 119:130). 또 주의 말씀은 진리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그런데 변개된 성서들은 빛과 진리일 수 없다. 개역성경이나 개정판,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NIV, NASV 등 수십, 수백 종의 변개된 성서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런 것들은 절대로 빛과 진리를 줄 수 없다. 그런데 이 나라 신학교들은 모조리 변개된 성서들에 기반을 두고 세워져 있다. 킹제임스성경, 즉 바른 성경을 거부한 결과는 배교뿐이다. 독일도 루터 성경을 던져 버리고 배교했다. 영국과 미국도 킹제임스성경을 던져 버리고 배교했다. 우리나라는 바른 성경을 던져 버리고 말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변개된 성경이 번역되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했듯이(마 12:33), 이러한 모든 배교의 원인은 바른 성경을 거부한 것이다. 이 신학교들은 킹제임스성경 없이 신학을 공부한 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이토록 잘못된 열매를 내는 학교에서 공부한 졸업생들이 주의 일꾼이 될 수 있겠는가?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마귀를 대적하여 싸울 수 있겠는가? 목회현장에서 그들이 의지할 것은 성경이 아니라 인문학 서적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라 철학자들의 말들을 의지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어두움으로 그 빛을 가리게 될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켜 복음 없는 세상,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만들게 된다는 말이다.

자, 그들은 왜 인문학 운운하며 이런 짓을 하는가? 결국 세상의 인정을 받자는 것 아니겠는가? 바른 신학교라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세상 정부의 인가도 사실 필요가 없다. 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인정이고, 하나님의 인가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엇을 했나? 말씀을 사랑함을 어떤 증거로 나타냈으며, 복음 전파에 어떤 증거를 보였는가? 그 학교 교수들, 직원들, 졸업생들, 학생들 중에 거리에서 설교하며 구령하는 사람이 있는가?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며 『십자가의 거침』(갈 5:11)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을 보라.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예수님께서 “세상”의 습성에 대해 정의 내려 주신 것에 따르면, 세상은 악하고,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따라서 성도들을 미워한다(요 15:18-19). 따라서 교회가 세상과 친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약 4:4). 결과적으로 인문학강좌를 개설한 서울신대는 학생들을 하나님의 원수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또 하나의 이단을 낳게 되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이 그랬다. 초기부터 이방 종교들과 연합한 카톨릭은 중세 암흑 시대에는 헬라 철학과 결합한 “스콜라 철학”을 내었다. 카톨릭은 세상과 혼인한 대표적인 이단 그룹이다. 세상 학문과 문화를 따라가면 카톨릭과 같이 “영적 간음자”가 되어 버린다. 서울신대가 바로 그렇게 되었다. 세상 학자들을 신학교에 데려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세상 이야기들을 나누는 “영적 음행 파티”를 벌였다. 결국 서울신대는 “신로마카톨릭”(Neo-Roman Catholic)이 되어 버린 것이다. BB

BB칼럼 309 / 1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