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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에 관한 “글루텐,” “알코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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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3월호>

지난 2월 9일, “경우에 따라 알코올이나 밀이 들어가지 않은 성찬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검토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영국 성공회 지도부가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밝혔다고 영국의 <가디언>지가 보도했다. 자세한 내용인즉, 런던에서 5일 동안 열리는 총회에 앞서 엘리스 켐프 목사는 밀가루 안에 들어간 “글루텐” 성분이나 포도주 안에 들어 있는 “알코올” 성분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글루텐이나 알코올을 뺀 빵과 포도주의 합법화를 고려해 줄 수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켐프는 “성직자든 회중이든 글루텐이나 알코올을 섭취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빵이든 포도주든) 한 종류만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글루텐과 알코올 모두를 섭취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양쪽 다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비성경적인 “여자 목사”인 켐프의 답변은 다름 아닌 영국 성공회의 교회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성공회는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가장 좋고 순수한 밀가루”로 만든 빵과 “양질이며 건강에 좋은,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로 성찬식을 치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성공회 총회의 입장은 “알코올 중독이나 셀리악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법적 상황은 참작”되나, “알코올이 없는 포도주는 발효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들을 ‘무효화’하기 때문에 교회법에 저촉된다. 그리고 쌀, 감자 전분, 타피오카와 같은 재료들로 만든 대체 제병(wafer)에는 밀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빵’으로 간주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포도주를 못 먹는 경우라면 태생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서양인에 비해 7배가량 적다고 하는 동아시아권 사람들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신앙적 이유가 아님에도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알코올 불내증을 타고났을 확률이 높으며, 술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홍조, 열감, 두통, 현기증뿐만 아니라 구토, 빈맥, 호흡 곤란까지 겪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알코올 알레르기를 앓는 사람은 호흡 곤란, 위경련, 아나필락시스 쇼크 등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증상을 갖고 있는 영국 성공회의 일원이라면 (비록 포도주를 받지 않고 빵만 받아도 성찬식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된다고는 하더라도)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포도 주스”를 마시면 안 되겠느냐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밀가루를 못 먹는 경우는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셀리악병”이 흔한 서구권에서는 큰 이슈가 된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밀, 보리, 호밀 등에 들어 있는 “글루텐”이라는 성분에 대한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설사, 복부팽만감, 염증, 골다공증, 피부발진, 치아 결함, 유산, 불임 등을 겪을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 141명 중 1명은 셀리악병을 앓고 있다 하니, 어떤 음식에 밀가루가 들어갔느냐의 여부는 서구인들에게는, 그것도 빵을 주식으로 하는 그들에게는 꽤나 심각한 문제라고 하겠다. 그래서 실제로 시중에는 밀가루 대신 병아리콩, 감자, 쌀, 타피오카 등의 재료를 사용하거나, 밀에서 글루텐 성분을 빼내어 만든 “글루텐프리 제병” 혹은 “저글루텐 제병”이 유통되고 있고, 일부 교회들에서는 그런 제품들을 사용하는 실정이다. 영국 성공회에 던져졌던 질문 뒤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뿐만 아니라 그 뿌리가 되는 로마카톨릭도 역시 “무알코올 포도주”나 “글루텐프리 제병”에 대해 “교회법”에 의거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3년 7월 24일자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승인하에 쓰인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성체성사 거행을 위한 물질로 저글루텐 대체 빵과 무스텀(부분발효 포도주)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 모든 주교 회의 의장에게 보내는 회람서”에는 그 구체적인 입장이 잘 표명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 교회법으로 정리해 뒀고, 그에 따르면 순수한 밀 빵이 아닌 빵을 사용하거나 저온살균법을 써서 발효될 가능성이 없어져 버린 시중의 포도 주스는 사용할 수 없다. 특별히 저글루텐 성체나 부분 발효 포도주(무스텀)는 쓸 수 있도록 해 주겠으나, 교구장의 허락 없이 성직자가 개별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무스텀”이란 포도에서 짜낸 즙을 그대로 보존한 물질을 말한다. 이 무스텀을 상온에 두면 하루 이틀 만에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서 더 이상 “포도 주스”가 아니라 “와인”이 되고 만다. 포도 껍질에는 기본적으로 포도를 발효시키는 이스트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포도 주스는 저온살균법이라는 공정을 통해 포도 주스가 포도주로 발효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버리는데, 로마카톨릭은 그런 포도 주스를 사용하는 게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의 “발효”에 대한 집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 이렇게 썼다. “익지 않은 포도의 즙은 완전한 산출 단계에 있지 않으므로 아직 이것에는 포도주의 본질이 없다. 이를 고려했을 때 그 포도즙은 이 (성체)성사에 쓰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완전히 익은 포도에서 짜낸 새 포도즙으로 무스텀의 원료가 되는) 머스트에는 포도주의 본질이 있는데, 그 당도를 보면 그 자체의 열에 의해 발효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성사는 머스트로 만든 것으로 거행할 수 있다.”

위의 경우 외에도 <교회법에 관한 새 주석>(New Commentary on the Code of Canon Law)은 한술 더 뜨는데, “무스텀은... 성체성사에 유효한 물질이나, 필요가 없는 경우라면 엄중하게 금지된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알코올을 섭취할 수 있다면 반드시 알코올을 먹으라는 것이다. 신앙교리성의 이름으로 된 문서 중에는 심지어 “성체성사의 거행이 사제의 일생에서 중심이 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셀리악병이나 알코올 중독이나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제 후보생들은 성직에 임명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내용까지 있다. 밀이나 술을 먹을 수 없다면 아예 감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빵에 관해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누룩을 넣지 않은 “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뿐이며, 포도주에 관해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붉은” 포도의 열매에서 난 “포도 주스”여야 한다는 것뿐이다(로마카톨릭은 백포도주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밀가루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느니, 저글루텐 빵을 쓰려면 교구장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느니, 발효될 가능성이 없는 포도 주스는 사용할 수 없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교회법”이라 불리는 인간의 규칙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즉 “사람들의 전통”인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니, 단지와 잔을 물로 씻는 것과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자행하는도다.”라고 하시니라』(막 7:8).

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빵은 『한 알의 밀』(요 12:24)로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당대의 유대인들이 주로 먹었던 누룩 없는 빵과 동일해야 하므로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밀 빵”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의 만찬 때 어떤 밀을 사용할지는 철저히 각 지역 교회(또는 모임)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성직에 위계를 두고 “중앙”에서 다른 지역 모임의 일에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니콜라파의 교리”(계 2:6,15)라고 불리는 “이단 교리”를 실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기에, 『포도의 순수한 피』(신 32:14), 곧 붉은 포도에서 짜낸 발효되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이어야 한다.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도 술이 아니라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었다. 예수님께서 잔에 든 포도주를 『이 포도 열매에서 난 것』(마 26:29)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그 포도주는 어떤 다른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식탁에 올려져 있던 바로 『이 포도 열매』, 예수님께서 고대의 풍습대로(창 40:11) 손으로 직접 짜서 즙을 뽑아내신 뒤에 『이 포도 열매』라고 부르신 바로 그 포도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술이었겠는가? 성경은 술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는데(잠 23:31), “말씀” 자체(요 1:1, 계 19:13)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 관해 기록된 성경(요 5:39)에 모순된 행동을 하셨단 말인가?

누군가가 하나님의 일에 관해 질문한다면,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눅 10:26)라는 말씀과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야 정상이다. 질문을 받자마자 “우리 교회 목사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여태까지 관례가 어떠했는가?”, “교회법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빛 가운데 거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사 8:19,20).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할 수 없는 것에는 “의견” 정도만 개진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원칙을 어기고 시시비비를 논하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광야에서 주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탄과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또 기록되었으되”(마 4:1-11)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망신을 톡톡히 당하게 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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