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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성경에 겁먹은 자들의 학술대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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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1월호>
지난 2,000년간의 교회사를 아우르는 질문을 하나 던지라고 한다면, 어떤 이는 “누가 정통인가?”라고 할 것이고, 좀 나으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전파되었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사 전체를 관통하는 “진짜” 질문은 바로 “누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빼앗았고, 누가 전파했는가?”이다. 나머지 질문들은 그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다. 즉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했던 때에도, 그들이 기록한 성경의 필사본들과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로마 제국이 불태우고 죽였던 때에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영지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이 성경을 뜯어 고치던 때에도, 로마카톨릭이 성경을 틀어쥐고 대중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못하게 하여 성도들이 성경을 갖지도 읽지도 못하게 했던 중세 암흑시대에도 그러한 질문은 유효했지만, 그 후 성도들에게 성경을 되돌려줬던 종교 개혁 때로부터 지금까지도 그 점은 마찬가지며, 참된 교회사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거짓 교사들이 성경이 기록되던 시점부터 해 온 일은 “평범한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읽고 있는 그 책을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이라고 믿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거의 귀결되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더냐?』(창 3:1)라는,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전략”은 그 뱀의 영을 따르는 거짓 교사들을 통해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그 “지식인들”은 “이 문서(로마카톨릭의 외경들)도 성경의 다른 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원어(혹은 라틴어)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격 없는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이단에 빠지니 함부로 읽으면 안 된다,” “최초의 원본만이 영감받은 성경이다,” “여러 역본을 비교해서 보아야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다” 등과 같은 거짓말들로 평범한 성도들의 “평범한 믿음”(common faith)을 뒤엎었다. 즉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이 나에게 절대적이고 유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믿음을 박살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짓 교사들은 “평범한 믿음”을 무너뜨리려 드는 것일까? 이는 그들 스스로가 그 무너진 폐허 위에 서서 “어떤 것이 더 나은, 혹은 바른 해석인지”를 사람들에게 정해 주는 “하나님”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게 도나티스트, 크리소스톰, 왈덴시안, 재침례교도, 윌리엄 틴데일, 마틴 루터, 보헤미아 형제단, 모라비안, 찰스 피니, 조지 휫필드, 드윗 탈마지, D.L.무디, F.B. 마이어, 빌리 선데이, 모드르캐 햄, J. 프랭크 노리스, 잭 하일스, 밥 존스 시니어, 피터 럭크만 같은 사람들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이유인즉 이 인물들은 자신들의 손에 들린 바로 그 책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생이 아닌 평범한 회중들에게도 그 책을 직접 읽고 공부하라고 가르침으로써 “학자들”이 “하나님”이 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었던 그러한 거짓 교사들에게는, “이상적인 사역 조건” 그 자체였던 “양떼들의 무지”가 무너지고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책을 최종권위로 믿는 “평범한 믿음”이 회복되는 일이 재앙과도 같다. 양떼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더 이상 그 무자격자들의 말에 “아멘” 하지 않을 것이고, “성가신 질문”을 던지기 일쑤일 테니 말이다. “바른 성경이 모든 인간의 손에 들어가게 하자. 그래서 그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직접’ 말씀을 해석하며, ‘직접’ 성경의 빛을 따라가서 영적인 자유를 찾도록 하자.”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여 배포함으로써 암흑시대의 막을 내려 버린 마틴 루터의 이 유명한 말이 당시에 종교적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던 자들과, 지금도 그런 짓을 하는 “학자들”에게 얼마나 섬뜩하게 들릴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사람들은 “밥줄”에 위협을 느끼면 자신과 함께할 이들을 찾아서 뭉쳐 세를 형성함으로써 타개책을 찾곤 한다. 우리나라에 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평범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즉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때 “기독교계”에 일어났던 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애당초 자신들이 사용하는 <개역한글판>이나 <개역개정판>을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그랬으면서도 그 변개된 성경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바른 원문으로부터 번역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출간하고 보급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후일 등장한 아류들과 한데 묶어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를 믿는 “이단”으로 매도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영감 받은 성경’은 아니지만, 너희가 가진 것도 아니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니 그 성경을 믿어야 한다면서 우리의 밥줄을 위협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그들은 위협의 수위가 거세졌다고 느낀 것 같다. 안 그래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 나라의 탈종교화가 가속화되는데, 설상가상으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이 “시장점유율”을 갉아먹으니 여간 성가신 노릇이 아닐 것이다. 대한성서공회의 <2024 애뉴얼 리포트>에 따르면 그들의 “성서” 보급량은 지난 2023년 490,728권으로 반짝 반등한 것을 제외하면 점차적으로 하향 추세다. 2024년에는 176,154권이 덜 팔려 무려 35.9%나 하락한 314,574권이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그들의 위기감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 지난 2024년 11월, 한국기독교이단연구학회에서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KJV, 영감된 유일한 성경인가?”라는 주제로 제2회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장 유영권 박사는 주제발표에서 “현재 한국교회 안에 ‘KJV만이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받은 유일한 성경’이며 다른 사본과 역본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국교회가 혼란을 겪고 있다.”라고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이어진 네 차례 발제 순서에서는 피터 럭크만과 이송오 두 훌륭한 목사들과 더불어 정동수마저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로 자주 언급되었고, 심지어 박만수, 서달석, 이일배, 강희종, 음영진, 이준승, 윤경원, 윤여성 등 가짜들의 이름도 거명되었다. 자, 그들이 지적했던바 “오류”와 “이단성”이 우리에게 정말로 있었다면 회개라도 해야 할 테니, 이제 그들의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발제는 장성민 박사(장신대 성서학연구원 특별연구원)가 맡았으며, “사본학의 견지에서 본 King James Bible”이라는 제목으로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은 “원문”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진 본문을 담고 있으므로 표준원문으로부터 번역된 영어 킹제임스성경 역시 참된 성경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기꾼임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사도들이 기록한 최초의 원본은 세월 속에 사라지고 없는데, 어쩜 이토록 당당하게 ‘원문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언가로부터 멀어졌다는 말을 하려면 그 기점이 확실해야 할 것 아닌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서 시간을 되돌려 “원본”을 보고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원본”은 사라지고 없다. 현존하는 필사본 중 그나마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조차 신약성경이 기록된 때로부터 3세기가 지나서 필사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 내용을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게도 “사본”들을 모아서 비교해 보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업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현존하는 필사본 중 적게 잡아도 80% 이상이 그 내용상 일치하기에 거기에 “최초의 원본”에 실려 있던 “원문”이 담겨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를 “다수 원문”(Majority Text)이라고 부르며, 이 원문은 <킹제임스성경>의 신약 원문인 <표준원문>과 일치한다.
이쯤에서 어떤 헛똑똑이들은 “루시안 개정”(A.D. 350년)이라는 날조 작업을 통해 “다수 원문”을 담고 있는 필사본들이 대량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냐고 딴지를 걸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루시안 개정” 이론이 사료(史料)에 전혀 근거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다수 원문”은 그 전에 활동했던 모든 교부들의 인용문에서도, 2세기에 번역된 시리아어, 라틴어 역본들과 4세기에 번역된 고트어 역본에서도 지지를 받기에 부정될 수가 없다. 이상의 사실을 수치로 증명하는 연구 자료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장 박사의 주장은 한마디로 “팩트”를 거스르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소송의 사유를 먼저 개진한 자가 옳은 것같이 보이나 그의 이웃이 와서 그를 찾아내느니라』(잠 18:17).
다음 발제자는 김영호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였다. “KJV의 역사적 출현 배경과 그 의미”라는 제하의 발표에서 그가 말한 요지는 번역본은 원본을 대체할 수도 없고, 영감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신약학”을 가르친다는 그가 과연 신약성경을 얼마나 읽었을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마스커스로 가고 있던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므로, 이 부분 또한 “원본”에는 헬라어로 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 주님께서는 그때 “히브리어”로 말씀하셨다(행 26:14). 사도 바울과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영감받은 말씀” 그 자체였던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말하고 또 기록했던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직접 감동시키시어 말하게 하신 코레스왕의 말도 마찬가지로 “번역”되었다. 그가 페르시아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 히브리어였을 리가 없을 것임에도, 그의 말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이다(대하 36:22,23). 이 점은 요셉의 “이집트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요셉의 말은 모세에 의해 히브리어로 “번역”되었던 것이다(창 41:16,25-36). 사도 바울은 이러한 “번역의 영감성”을 확언한다(딤후 3:16). 그가 영감받았다고 말한 “모든 성경”에는 코레스와 요셉의 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번역본”이 “원어”에 불어넣어졌던 하나님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진리는 상식의 영역에 속하기에 성경으로 논증할 필요도 없다.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하나님께서(롬 10:12) 대체 왜 자신의 책을 특정 민족의 언어로만 주시겠는가? 우리가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어떤 성경도 사실 “성경”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접한 어떤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라! 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등을 사용하는 교인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대꾸하진 않을 것이다. 오직 “교육” 받았다는 자들만이 그런 비상식적인 말을, 그것도 강단에서 뻔뻔하게 내뱉는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우리말로는 영감받은 말씀을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회중에게 한국어로 사역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위선자들을 향해 럭크만 목사는 다음처럼 일갈했다. “만일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하라고 주신 것이 없다면, 그 입을 닥치고 있도록 하라.”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