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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잠들어 버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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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2월호>
"언론"은 "제4의 권력"이란 말이 있다. 현대 사회에 미치는 언론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인데, 그 힘과 중요성은 너무도 커서 때때로 국가의 "최고 3대 권력 기구"(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능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국의 정치가요 문장가인 리턴 경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을 남겼고, 193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골즈워디는 "여론이 항상 법률을 앞선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신문을 읽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아침 기도와도 같다."라고 했는데, 사실상 언론이 "신"이 되어 버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언론은 사람들의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 되었고, 국가 최고의 법인 양 군림하기도 한다. 언론이 어떤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사람들은 거기에 순응해야만 한다. 일례로 언론이 인간의 죄악들에 대해 윤색하여 규정한 정의들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면, 편협한 분리주의자요 독선적인 극단주의자이며 사랑이 결여된 중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언론은 결코 죄를 죄라고 하는 법이 없다. 간음을 "성인 간에 합의"로, 음행을 "혼전 성교"로, 성도착을 "동성연애" 또는 "사랑"으로, 창녀를 "직업여성"으로, 진화론을 "과학"으로, 좌파공산주의를 "민주주의 인권 운동"으로, 인종 혼합을 "다문화 가정" 등으로 미화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적법한 행위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왜곡시키기도 하는데, 곧 정상적인 체벌을 "어린이 학대"라고 규정함으로써 공교육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쏟아 내는 "새로운 뉴스거리"나 "더 자극적이고 정욕적인 요소들"로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말하자면 인간은 언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렇듯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언론이 대중의 여론을 형성하면, 그 여론은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때로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거품으로 가득한 국정 지지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사전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로봇"처럼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와 기준을 최종 잣대로 삼아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 통수권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혹은 아예 언론을 매수 또는 통제하려고 한다. 특히 과거의 독재자들이 그러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나치 정권이었다. 대중 조작의 상징으로 잘 알려진 나치의 선전 장관 파울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하나의 문장'만 주어진다면 그 누구라도 감옥에 보낼 수 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다가, 그다음에는 혹시 그렇지 않을까 하며 의심하게 되고, 그것이 되풀이되면 결국은 믿게 된다." 이에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값이 싼 "라디오"를 국민들에게 보급해서 나치 체제를 공고히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했는데, 특히 "유대인들은 모든 죄악의 원흉이자 인류의 적, 종양, 세균 덩어리다."라는 식의 거짓 여론을 형성시켜서 유대인들을 손쉽게 학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정치권력이 언론을 장악하여 국정을 농단한, "언론의 역기능"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한데, 정치권력의 시녀와 도구로 전락한 언론은 편향된 보도를 통해 얼마든지 사실과 정보를 왜곡해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학자들은 언론을 "개"(dog)로 비유하면서 "감시견"(Watchdog)으로서의 언론 역할에 대해 자주 강조한다. 즉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여 자유주의 체제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언론의 순기능"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도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언론이 감시견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임무를 소홀히 하면,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해 길들여져 그들의 무릎 위에서 애교를 부리다가 던져 주는 먹이나 받아먹는 "애완견"(Lap dog)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는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어 특정 정치의 선전 도구로서 그들의 충견 노릇을 하는 "경비견"(Guard dog)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짖지 말아야 할 대상을 향해 짖는다든지, 물지 말아야 할 대상을 물어 버린다든지 하는 실로 기가 막힌 비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짖지 못하는 개처럼 그저 눈이나 감고 잠만 자는 "슬리핑독"(Sleeping dog)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는 "개"에 대한 언급이 40회 정도 나오는데, 그중에는 이런 "슬리핑독"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다. 『그의 파수꾼들은 눈멀었고, 그들은 모두 무지하며, 그들은 모두 말 못하는 개들이니 그들이 짖지를 못하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느니라. 정녕,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많은 개들이며,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라...』(사 56:10,11). 즉 선지자 이사야는 마땅히 해야 할 임무를 소홀히 한 당시의 파수꾼, 곧 "거짓 선지자"에 대해, 짖지 못하고 잠자며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슬리핑독"으로 비유하면서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파수꾼"(watchman)이다. 파수꾼의 기본 임무는 "감시"(watch)이다. 일종의 "감시견"인 것이다. 그래서 파수꾼들이 주로 임무를 수행했던 장소가 높은 곳에 위치한 망대라든지(왕하 9:17), 성벽 위(사 62:6) 또는 성문 위 지붕이었다(삼하 18:24). 시야를 방해받지 않는 가장 높은 장소에 서서 성읍으로 접근해 오는 모든 사람들을 감시했던 것이다.
"감시"의 목적은 주로 어떤 중대사나 위험에 대해 "경고"를 주는 것에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의 궁극적인 임무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 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집에게 파수꾼으로 삼았으니 너는 내 입에서 말을 듣고 나로부터의 경고를 그들에게 전하라』(겔 33:7). 경고하는 임무로 보자면,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파수꾼들이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는 죄와 사망과 지옥을 경고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마귀의 미혹과 공격을 경고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곧 오실 것이라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 『파수꾼아,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아,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시니 파수꾼이 말하기를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이다." 하였도다』(사 21:11,12). 17세기경 독일 헤른후트의 한 파수꾼은 매시 정각만 되면 매우 엄중한 메시지를 큰 소리로 전달했는데, 특히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아침 여섯 시가 되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제 여섯 시가 되었구나. 나는 근무지를 떠난다. 형제들이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로서 항상 깨어 있어라!"
그러나 오늘날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에는 이런 "경고의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너무도 "강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마땅히 경고해야 할 파수꾼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인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고 건전한 교리로 견책하며 권고해야 할(딤후 4:2) "하나님의 감시견"은 모두 잠들어 버린 것인가? 죄를 죄라고 부르짖지도 못하고, 다가올 멸망과 지옥의 심판을 경고하지도 못한다면, 아니 그럴 만한 경건의 능력조차 없다면, 어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파수꾼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감시하고 경고해야 할 파수꾼들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세상을 기쁘게 하기 위해(갈 1:10) 꼬리나 흔들고 있는 "애완견"은 배교한 교회들 도처에 널려 있다. 하나님과 성경을 대적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종으로 가장하여(고후 11:13-15) 사탄의 왕국을 충직하게 지키고 있는 "경비견"도 세상 교회들 안에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무서우리만치 침묵으로 일관한 채 짖지도 않고, 나 몰라라 하면서 잠만 자기를 좋아하는 "슬리핑독"도 어느 교회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파수꾼의 부재"는 곧 그 "민족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으려 했으니 그 사람은 장벽을 쌓아 그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갈라진 틈에 서서 나로 그 성읍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이라. 그러나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겔 22:30).
하나님께서는 파수꾼들을 향해 잠잠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내가 네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웠고 그들로 밤이나 낮이나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주를 말하는 너희는 잠잠하지』 말라!(사 62:6) 존 R. 라이스는 파수꾼이 침묵함으로써 짓게 되는 죄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는데, 하나님의 중대한 계명에 불순종한 죄(요 12:49,50),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죄(요 14:23,24), 주님을 따르지 않은 죄(마 4:19),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은 죄(요 15:4,5),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명령을 거역한 죄(잠 11:30), "영적으로 살인을 범한" 죄(겔 3:18), 이상 여섯 가지이다. 복음과 진리에 관한 한, "침묵은 결코 금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저주인 것이다!"
특히 이 마지막 "영적인 살인"과 관련하여, 그 침묵한 파수꾼에게서, 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악인들의 피 값을 요구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겔 3:18,20). 사도 바울은 이 부분에 관한 한 훌륭한 간증을 남겼다. 『이제 보라, 내가 너희 가운데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으나 너희 모두가 더 이상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너희에게 전해 주었음이라』(행 20:25-27).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전달하는 임무를 어떻게 해서든지 완수해야 한다. 여러 가지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벌어지고, 위협이나 협박, 박해, 고난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행 20:24).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이 맡겨 놓은 귀중한 보따리를 누가 훔쳐가는 것을 보면서도 짖지도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는 개가 과연 충실한 개이겠는가? 주인이 맡겨놓은 귀중한 보따리가 약탈당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다면 과연 주인은 그 개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파수꾼들에게 어떻게 하시겠는가? 거짓 선지자 발라암처럼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해 부끄러운 책망을 받게 하실지 모른다(벧후 2:16). 아니면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제사장들처럼 얼굴에 똥을 발라서 그 똥과 함께 치워 버리실지도 모를 일이다(말 2:3). 그 정도면 자비로운 심판에 속한다. 예로부터 지체하지 않는 엄중한 심판과 결코 졸지 않는 끔찍한 멸망(벧후 2:3)을 피하지 못할 자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