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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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일들에 속한 “영의 거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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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6월호>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를 두 번 강조하여 말씀하곤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 『진실로 진실로』는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며, 그 1장부터 21장까지 총 25회가 언급된다. 그만큼 요한복음에는 주님께서 특별히 비중을 두어 말씀하신 내용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중에는 “거듭남”에 관한 진리도 들어 있다. 주님께서는 “진실로”를 두 번 강조하시면서 진실로 중요하기 짝이 없는 “거듭남”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거듭남”은 예수님께 매우 중요한 교리였다.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요 3:3) 들어갈 수도 없기에(요 3:5), 그 나라의 왕이신 주님의 입장에서는 거듭남을 강조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 교회 시대에는 죄인이 거듭나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의와 화평과 기쁨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롬 14:17). 교회 시대에 이 영적인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재림 때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눈으로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어 수립하실 천년왕국에서는 온 세상에 넘치는 의와 화평과 기쁨이 성도들의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그때에는 짐승들끼리 화평하게 지내고(사 11:6-8), 인간들도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않으며(사 2:4), 『광야와 메마른 곳이 그들을 기뻐하고, 사막이 기뻐하며 장미처럼 피리라. 그것이 무성하게 피어 기쁨과 노래로 즐거워할 것이요, 레바논의 영광, 곧 칼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이 그것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이 주의 영광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 35:1,2)라는 말씀이 이뤄질 것이다. 이 모든 의와 화평과 기쁨은 재림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복들인데, 이렇듯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게 임하는 천년왕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거듭남의 진리를 처음 꺼내신 대상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불리는 니코데모였다. 유대인들의 눈을 의식하여 “밤에” 찾아온(요 3:2) 그 유대인 관원에게 그가 손님이라 해서 격식을 차려 대접하지 않으시고,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딤전 3:16) 권위를 가지고 본론부터 꺼내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이것이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신 줄을 아나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이런 기적들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니이다.』(2절)라고 말한 그 바리새인에게 건네신 첫마디였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인지한다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처음 만난 그 죄인에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가장 절실한 진리를 예리한 단도처럼 던지셨는데, 이는 초림 때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마 18:11).

니코데모는 일반 백성보다 구약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이었음에도 거듭남에 관해 오해를 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요 3:4) 그는 거듭남, 곧 다시 태어나는 것을 육신적으로 이해했고, 주님은 그의 무지를 다음과 같이 바로잡으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5,6). 말씀의 요지는, 인간이 육신으로 태어난 뒤에 성령으로도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바로 “영”이라는 것이다.

타락한 아담은 그의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창 5:3), 그 후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난다(엡 2:1). 좋은 가문, 멋지고 아름다운 육체, 명민한 두뇌 등 육신적으로 아무리 좋게 태어난다 해도 본시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영이 죽은 채로 나오는 것이다. 출생이 잘못된(시 51:5)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고 육신의 죄만 짓고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는데, 이 심각한 문제를 인간이 무슨 수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 문제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고, 성령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죄인들의 영을 살려 주시는 것이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영을 부활시키셔서 그분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속에 담긴 그 은혜의 지극히 풍요함을 오는 시대들에 보여 주시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엡 2:1,4-7).

거듭남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수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그것은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인데, 이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니코데모의 믿음 없음을 이렇게 책망하셨다. 『내가 땅의 일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여기서 “땅의 일들”은 땅의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과 선지서들”을 의미한다(눅 24:19,27, 요 5:46).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에 계시된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상고하면 그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되는데(요 5:39), 유대인들은 주님에 관한 모세의 기록을 믿지 않음으로써 주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요 5:46,47). 땅의 일들과 관련된 율법과 선지서들도 안 믿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일들”을 어떻게 믿겠느냐는 것이 앞선 구절의 본뜻이다. 말하자면 거듭남은 “하늘의 일들”이며, 예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셋째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신 것이다.

간혹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거듭남이란 말을 어디선가 얻어듣고 와서는 그것을 육신의 노력과 선행으로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일례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요 3:5) 엉뚱하게 물 세례와 성령 세례(은사주의)로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삼가라는 자들도 있고(딤전 4:3),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다가 스스로 저주 아래로 들어간 자들도 있다(갈 3:10). 심지어 칼빈주의자들은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을 성령님께서 강제로 거듭나게 해 주신다고 주장한다. 육신적인 행위들과(갈 2:16) 마귀들의 교리들로(딤전 4:1) 거듭남을 설명하려 하는 자들은 모두 실격이다. 죽으면 그대로 지옥에 가게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구원은 인간이 원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시작하심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시지 않는 한 어떤 인간도 구원받을 수 없다. 인간의 삶을 좌우하고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필요한 여덟 가지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체결하시는 것들이다. 에덴의 언약, 아담의 언약, 노아의 언약, 아브라함의 언약, 모세의 언약, 팔레스타인의 언약, 다윗의 언약, 새 언약, 이 언약들 가운데 단 한 가지도 인간이 선수를 친 것은 없다. 그분의 이름 “엘로힘”은 “서약으로 스스로를 동여매는 강한 자”라는 뜻인데, 이렇듯 구원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맹세하시어 시작하신 일인 것이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속죄 사역 또한 인간을 향하여 그분께서 먼저 시작하신 일이었고, 이에 믿음으로 반응한 죄인들은 구원을 받게 된다.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요일 4:10).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 3:27). 죄인의 죽은 영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은 하늘 보좌에서 보내신 『아들의 영』(갈 4:6)이시다. 『아들의 영』께서는 전파된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 죄인이 반응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될 때,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어 그의 죽은 영을 살리심과 동시에 그의 혼을 육신의 죄들의 몸에서 분리시키는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를 행하신다. 이 초자연적인 영적 수술이 일어날 때 살아난 것이 바로 “영”이며, 또한 이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6)라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죄인의 영을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벧전 1:3). 영이 거듭난 죄인은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보내신 『아들의 영』(갈 4:6), 곧 『양자 되는 영』을 통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롬 8:15). 거듭남은 이 『아들의 영』의 내주하심으로 이뤄진 하늘의 일인데, 이 일을 인간의 육신적인 방법들로 대체하게 되면 “마귀의 자식”이라는 본래의 칭호를 벗어 버리지 못한 채 교회에만 출석하다가 지옥에 가게 된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오순절 날 거친 강풍 같은 소리를 내시며 강림하셨고, 그날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후 오순절 날이 되자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한 장소에 모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행 2:1-4).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는 바람 같은 분이시며,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거듭남과 관련하여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요 3:8)라고 말씀하셨다. 즉 인간이 바람의 흐름을 어찌할 수 없듯이,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 또한 땅의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하늘에서 오신 성령님의 고유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인가, 아니면 자기 육신의 소산인가? 자신의 거듭남이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일들임을 스스로 입증할 수 없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다(고후 13:5). 거듭남을 성령님과 무관한 행위의 열매로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그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구원받아야 한다.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하고 즐거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마 16:26, 벧전 1:8,9). 『그후 인간을 향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이 나타나서,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딛 3:4-6). 예수님의 피로 씻기고 성령님에 의해 거듭난 사람만이 새롭게 되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이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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