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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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알아야 할 참다운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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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2월호>

예장합동 총회의 정상화를 바라며 합동 교단 목회자와 장로, 신학생들이 교단의 회복을 위해 “주여 우리를 살리소서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전국목사장로 비상기도회”를 지난 11월 15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개최했다. 그들은 스스로 “왜 교계가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목회자의 치욕스러운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서 너무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라며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의 소리를 발하기보다 불의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 속의 고름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우리 모두 우리 속에 가득 찬 고름을 뽑아내 달라고 기도하자.”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들은 1부, 2부, 3부 설교와 기도가 끝날 때마다 스스로의 죄악을 통회하며 교단과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고 한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두 번째 종교개혁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박준철 교수(한성대), 한인철 교수(연세대), 류장현 교수(한신대)가 차례로 발표했고, 이후 참석자들의 토론과 질의 및 응답 시간이 있었다. 한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의 건강한 측면은 계승하되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은 극복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한국 교회의 과제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주장을 교리화해 그것을 신앙의 절대규범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한계를 극복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저항이다. 교회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 저항정신을 실현해야 한다. 그것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종교개혁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정리했다.
한국 교회가 로마카톨릭처럼 부패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으나 명확한 원인규명과 성경적인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습관적으로 말하는 “개혁”
양심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이 땅에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올해 초부터 수많은 문제들이 한국 교회에 들끊었다. 한기총 분열, WCC대회 논쟁, 전별금으로 부자 된 목사들, 성추행한 전병욱 목사의 교회 개척, 그를 처벌하지 않는 교단, 줄줄이 이어지는 한국 교회의 비성경적인 교회세습 행태, 이익을 중심으로 야기된 찬송가공회 법정공방, 사분오열된 감리교 사태, 예장합동의 패륜 목사와 관련된 인분 사건과 관 시위 사건, 예장 합동의 “가스총과 용역 총회.” 한국 교회의 목사들과 교단들의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러한 타락이 일어나고, 이에 대해 철저히 가식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한국 교회가 외면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고 얼굴도 붉히지 않았도다』(렘 8:12). 그뿐이랴?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들과 신사도운동과 같은 비성경적인 은사주의운동 등은 한국 개신교의 타락을 틈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어 한국 사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그 타락을 부추기는 어두움과 누룩처럼 취급받고 있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종교개혁 전의 로마카톨릭의 부패와 동일하지 않으며, 이것이야말로 멸망 전의 타락한 유다의 모습이 아닌가!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그 어느 곳도 성한 데가 없고 다만 상처와 상한 곳과 곪은 자국뿐이요, 그것들은 봉합되거나 싸매지거나 향유를 발라 유연하게 되지도 못하였도다』(사 1:6).
이런 부패와 타락의 물결이 한 번 거세게 휩쓸고 나면 으레 여기저기서 “제2의 종교개혁”을 바란다고 외치며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비상기도회”와 “포럼” 혹은 “세미나”가 이 땅에 참된 개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들이 개혁자들과 그들의 원리들을 아무리 들먹여도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과 개혁자들을 말함이 마치 죄인들이 죽은 조상들의 제삿날을 지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은 조상들을 드높여도 그들이 다시 일어나지도 무슨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도회, 포럼, 세미나, 집회를 열고 죽은 개혁자들의 원리와 믿음을 아무리 되뇌이고 소리쳐도 개혁은 일어날 수 없다. 그 원인은 한국 교회는 죽은 개혁자들을 기념만 하기 원하지 그들의 살아 있는 믿음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성경 역사와 교회사의 개혁원리
그렇다면 “개혁”의 조건은 무엇인가? 성경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와 신약 교회사에서 “개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1. 그들은 잊혀진 바른 성경을 되찾았다.
요시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 유다는 만연한 우상 숭배와 배교로 하나님의 심판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대제사장 힐키야가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게서 잊혀진 주의 율법책을 찾아 주었을 때, 요시야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을 찢고 통회하며 주 하나님을 찾았다. 『대제사장 힐키야가 서기관 사판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왕이 율법책의 말씀들을 듣자 그의 옷을 찢고』(왕하 22:8,1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수한 반응, 곧 그의 마음의 겸손과 눈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늦추시며 유다 왕국에 자비와 유예를 베푸셨다. 『내가 이 장소와 그 거민들에 대하여 그들이 멸망과 저주가 되리라고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네가 주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여져서 네 옷을 찢고 내 앞에서 울었으므로, 나도 네게 들었노라. 주가 말하노라』(왕하 22:19).
이는 교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비겐스와 왈덴스 등의 침례교도들의 조상들이 순수한 성경을 보존해 왔으나, 중세 암흑 시대 1,000년은 로마카톨릭이 변개된 라틴 벌게이트와 온갖 거짓 교리들로 진리의 빛을 완전히 꺼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리의 하나님께서는 에라스무스를 들어쓰셔서 전 세계의 도서관들을 다니며 가장 순수한 필사본들로 헬라어 신약성경 곧 <표준원문>을 편수하여 드디어 1516년 출간하게 하셨다. 마틴 루터뿐만 아니라 쯔빙글리, 칼빈, 베자, 틴데일, 웨슬리 이들 모든 개혁자들은 모두 에라스무스와 그의 뒤를 이은 <표준원문> 판본들과 또한 그들이 번역한 자국어 성경을 종교개혁의 토대로 삼았다.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의 강력한 숨결이 보존되어 있는 <표준원문>은 종교개혁자들을 낳았고, 종교개혁자들은 다시 그 동일한 숨결이 보존된 자국어성경들을 낳는 도구들로 사용되었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것이 <루터성경>과 <킹제임스성경>이며, 동일한 믿음으로 이 말씀을 따른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되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런데 종교개혁을 갈구한다는 한국 교회를 보라.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이 살아 있는 보존하신 성경은 도외시하면서, “개혁”과 “회복”을 외치고 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로마카톨릭의 변개된 사본들과 원문들에서 온 대한성서공회의 성서들이 들려 있는 것이다.

2. 그들은 진리의 사랑을 생명을 드리는 헌신으로 증명했다.
유다마저도 바빌론에게 포로로 끌려갔을 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수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통해 개혁을 태동시키셨다. 『에스라가 주의 율법을 찾고 그것을 행하고 규례들과 명령들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것을 마음으로 준비하였더라』(스 7:10). 에스라는 금식하며(스 8:21) 자신의 민족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알고 통회하고 자백했으며(스 9:6), 반대자들의 박해에도 목숨을 내어놓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일을 했으며 뼈아픈 분리의 고통을 극복하고 백성을 성별시켰다(스 10:11). 느헤미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 여인에 불과한 에스더도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과감히 드렸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바른 성경에 순수하게 반응한 성도들이 없었다면 신약 교회의 역사는 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모두 그 말씀의 진리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나는 그를 언급하지 아니하고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내 뼈들 속에 사무치는 타는 불 같아서 내가 참기에 지쳤고 견딜 수 없었나이다』(렘 20:9).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영국민에게 순수한 영어 성경을 갖게 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으로 일하며 진리를 선포했다. 그를 반대하는 로마카톨릭교도들에게 “성경이 없다면 교회를 통치하는 법규들과 교회의 회원들을 위한 권리들과 특권들을 명시한 그 헌장이 무엇이오? 하나님의 보장과 위대한 왕의 서신이며 교회의 권위요 교회가 믿을 신조인 성경을 숨김으로써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요.“라고 선포했다. 그의 제자 보헤미아의 존 후스(John Huss, 1369-1415)는 교황주의자들에 의해 화형당할 때,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보다 더 심한 사슬에 묶이셨는데 내가 왜 이 녹슨 사슬을 부끄러워하리요? 당신은 거위 한 마리를 불사르려 하고 있다. 그러나 1세기 후에는 구울 수도 삶을 수도 없는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복음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교리를 외쳤으며, "나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설교했고 번역했을 뿐이다. 그 외에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모든 역사는 그 말씀이 이루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c. 1492-1536)은 “나는 결코 내 양심에 비추어 하나님 말씀의 단 한 자도 변개시키지 않았으며, 지상에 있는 모든 것 즉 명예와 쾌락과 부를 다 내게 준다 해도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고 썼다. 매튜 성경의 번역에 참여했던 존 로저스(John Rogers, c. 1500-1555)는 자신의 교리를 철회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받고, “내가 설교했던 것을 나의 피로 인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쁘게 순교를 맞이했다. 개혁자들은 여러 부분에서 부족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거룩한 말씀에 순수하게 반응하여 뜨거운 심장을 품고서, 복음을 전하고 건전한 교리들을 가르치고, 교황주의자들을 반박하는 소책자들을 출간하고 성경주석을 편찬하였으며, 그로 인해 파직당하고 공회에 끌려가고 이단으로 정죄받았고 파문당하였으며, 고문당하고 유린당하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음으로써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진지함을 나타냈다. 그들은 주님께서 보여 주셨듯이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낳는 도구가 되었다.『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한국 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과 “주여, 우리를 살려주소서.”라고 매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말씀의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죄악과 위선을 내치고, 한국 교회를 향해 진리를 외치다가 자신의 밥줄을 잃고 소속 교단에 의해 버림받고 이단시되는 것을 각오한 이가 한국 교회 가운데 있는가?

이 땅의 참다운 종교개혁에 동참하라
1994년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어 출간되기까지 이 땅에는 참다운 종교개혁의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제2의 종교개혁”은 어불성설이다. 바른 성경이 출간된 지 근 20년이 되어가고 있으나 참된 개혁이 없었던 것은 한국 개신교가 “오직 성경”이라고 말하면서도 바른 성경을 외면하고 변개된 성서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 교리들과 사람들의 계명들을 설교하는 탐욕적인 목사들을 용납하는 등 “고름이 가득 찬 환부”를 도려내지 않은 채, “교회성장”과 “교단발전”을 이루며, 결국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한 그런 종류의 “개혁”을 바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모든 자』(스 9:4) 곧 『그 땅의 백성들로부터 스스로 분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으로 돌아온 모든 자들』을 통해 그 개혁의 역사를 이루셨다(느 10:28). 이러한 개혁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종교개혁자들의 오류들을 극복한 참된 개혁이, 이 땅에서 확고하게 바른 성경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소수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의 말씀을 품어 이 땅에서 성경적인 지역 교회들의 설립과 참된 개혁의 씨앗이 되라!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교회의 타락의 주동자와 그 위선적인 방조자가 되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역사에는 중립지대가 없다. 『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시어 자신을 향하여 마음이 온전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강함을 보이심이니이다』(대하 16: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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