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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기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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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10월호>
성경에는 열세 번의 기근이 언급되고 있다. 첫 번째 기근은 아브라함이 카나안 땅에서 겪은 기근이었고(창 12:10), 이후 이삭(창 26:1)과 야곱의 때(창 41:54-42:5)에도 기근이 들었는데, 말하자면 이들 세 명의 『약속의 상속자들』(히 11:9)은 모두 기근을 경험한 것이다. 그 후로는 재판관들의 시대에 한 번 있었고(룻 1:1), 다윗의 때에는 여호수아가 기브온인들과 맺은 조약(수 9:15)을 사울이 무시하고 그들을 죽인 것 때문에 기근이 삼 년간 지속되기도 했다(삼하 21:1). 또한 엘리야의 때에 여섯 번째 기근이 들었고(왕상 18:2), 엘리사는 "두 번"의 기근을 겪었다(왕하 6:25; 8:1). 그리고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키야 때 바빌론의 제3차 침공이 있었는데(B.C. 587년), 성읍 안에는 기근이 너무도 심해서 먹을 빵이 없을 정도였다(왕하 25:3). 이보다 약 200년 전쯤에 선지자 아모스는 열 번째 기근을 예언했는데, 이것은 "영적 기근"에 관한 것이었다. 열한 번째 기근, 곧 신약으로서는 첫 번째 기근이 클라우디오 카이사 때 있었고(행 11:27-30), 마지막 두 번의 "극심한 기근"이 대환란 때 들게 될 것인데, 한 번은 검은 말을 탄 자와 관련하여(계 6:6), 다른 한 번은 신비의 바빌론(로마카톨릭)의 멸망과 연관해서(계 18:8) 있을 것이다.첫 번째 기근이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등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이는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조상이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기근"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심판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에 절정에 달할 것인데,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 기근이 "대환란 기간"에 등장한다. 대환란은 "적그리스도의 날"이며, 그는 반역자로서 "13"이란 숫자와 연관되는 인물이다. 역대기하 9:13, 에스라 2:13, 요한계시록 13:18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숫자인 "666"이 등장하고,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13"회의 기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극심한 기근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레위기 26장을 통해 경고하셨다. 『또 내가 너희의 식량봉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빵을 구워서 다시 저울에 달아 너희 빵을 너희에게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만족하지 아니하리라』(26절). 먹어도 만족할 수 없다 보니, 최악의 상황에서는 자녀들의 살까지 먹게 된다(29절). 이렇게 식량봉을 끊으시는 사건은 열왕기하 6장의 엘리사 때에도 있었다. 당시에 시리아의 벤하닷 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읍 안에는 큰 기근까지 들었다. 물가를 보니까 비둘기 똥 1/4캅, 곧 "비료" 0.5리터에 "은 다섯 개"(1930년대 기준으로 약 3천 원)를 지불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기근이 너무도 극심하고 먹을 게 없어서 자기 아들을 삶아 먹기까지 했다(28,29절). 실로 비참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무후무한 대환란 때는 사람들이 이보다 더 극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밀 한 되 또는 보리 석 되가 한 데나리온(막노동 일꾼의 하루 품삯)에 팔린다(계 6:5,6). 겨우 하루 벌어서 하루 먹을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대환란 때도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자녀들을 먹을 것이다. 『오 주여, 보시고 주께서 이 일을 누구에게 행하셨는지 생각하소서. 여인들이 자신의 열매와 한 뼘 되는 자녀를 먹으리이까?』(애 2:20)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장"으로 불리는 신명기 28장도 저주에 관한 문맥에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52-55절), 특히 평소에 그토록 "유순했던" 사람도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면 그런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54절). 정상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영화 <빠삐용>에서는 굶주린 죄수가 사형을 앞두고도 너무 배가 고프니까 쥐와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이 나온다. "굶주린 개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눈에 뵈는 게 없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극심하게 배가 고파지면 체면이고 뭐고 없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런 극심한 기근을 겪어야만 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한 어떤 말씀들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빗나가지 말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지 말지니라』(신 28:14). 바로 이 명령을 지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난 1,9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거부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한 전 세계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명기 28장의 저주에 관한 예언들 중에 비유적인 것은 단 한 개도 없으며, 모두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고, 또 실현될 내용들이다. 그래서 "무서운 장"이다. 그 예언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내용으로 볼 때 B.C. 606년부터 초림에 이르기까지, 특히 예레미야 애가와 열왕기하 6,17장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성경 밖의 역사적인 기록들로 보면 A.D. 70년의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라든지, 중세 암흑시대의 스페인 종교재판, 19세기 러시아의 유대인 대학살과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등을 통해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야말로 유대인들은 쥐새끼나 바퀴벌레 취급을 받으면서 죽어 갔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도 그들에게 일어난 그 지옥 같고 저주스런 재앙을 결코 숨길 수 없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들은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일어났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환란 때 또다시 재현될 것이다.
극심한 기근과 관련해서 에스겔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식량봉"을 꺾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더라. 인자야,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서 식량봉을 꺾을 것이요, 그들은 근심하며 빵을 달아서 먹고 놀라며 물을 되어 마실 것이니, 이는 그들이 빵과 물이 부족하여 서로 놀라며 자기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소멸되어 감이라』(16,17절). "식량봉"은 영어로 "the staff of bread"인데, 여기서 "봉"(staff)은 몸을 기대어 지탱할 수 있는 지지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식량봉은 지지대처럼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식량"으로서, 이 식량봉이 꺾이면 모두 굶어 죽게 된다. 식량봉이 꺾이는 원인은 그들의 "죄악" 때문인데, 결국 빵과 물이 부족한 물리적인 기근으로 인해 죽는 것이다.
그런데 빵과 물이 부족한 기근보다 더 심각한 기근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영적 기근"이다. 사실 이 기근 때문에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가득 찼고, 그 죄에 대한 심판으로 빵과 물이 부족한 기근까지 뒤따르게 되었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니,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내가 그 땅에 기근을 보내리니 빵의 기근도 아니요, 물로 인한 갈증도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니라. 사람들이 바다에서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방황할 것이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달릴 것이나 그것을 찾지 못하리라』(암 8:11,12).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환상을 통한 말씀들이 주어지지 않았다. 주의 말씀들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주의 말씀이 매우 귀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실은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삼상 3:1). 왜냐하면 당시는 재판관들의 시대로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판 21:25). 빛이 꺼져 버린 것이다.
이 마지막 배교의 교회 시대도 마찬가지인데, 오늘날 이러한 영적 기근을 초래한 장본인들은 성경을 변개시킨 자들이다. 영국은 1884년 RV가 출간되면서 기근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1901년 ASV가 출간되면서 시작되었고 1978년에는 NIV가 나오면서 그 기근이 더욱 극심해졌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변개된 성경"(로스역, 1882년)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 전파된 저주받을 다른 복음(갈 1:8)인 "사회복음"으로 인해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기근이 시작되었다.
기근이 극심한 마지막 시대에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달려도 주의 말씀을 찾을 수가 없다(암 8:12).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리고 지식이 증가할 것이지만(단 12:4),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은 더욱 극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이다(딤후 3:7). 물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적인 기근을 해갈해 주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다(암 2:11; 3:7). 그러나 아모스 시대에는 그런 선지자들을 통한 말씀들도 없어서 사람들이 방황했다(암 8:12). 이런 현상은 대환란 때가 되면 훨씬 더 극심해진다. 대환란 때에도 두 증인과 같은 선지자들과 이마에 인장이 표시된 144,000명의 유대인들이 말씀을 증거하겠지만, 수적으로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날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말씀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할지라도 만나게 되는 것은 오직 거짓 선지자들뿐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의 일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선지자들을 통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과 연관해서 선지자 호세아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즉 율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율법을 무시하고 던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율법을 저버린 백성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성경과 진리의 지식을 버리면,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타락과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잠언 29:18에서는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망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하니라.』라고 말씀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계시와 경고와 권면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받았던 환상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때만 지속적으로 주어질 수 있었고, 또 간직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율법을 듣는 데서 귀를 돌이켰다. 결국 그들은 환상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환상을 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인 기근이 찾아왔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만 것이다.
환상이 없는 교회, 환상이 없는 국가, 환상이 없는 학교, 환상이 없는 개인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뜻과 역사를 알지 못하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된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세 가지 환상이 있다. 첫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행 9:3-10)인데,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연관되어 있으며, 항상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첫사랑을 간직하라는 뜻이다. 둘째,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계 21,22장)인데, 이것은 우리의 "소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서 계신 저 본향에 늘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지금 수확하지 않으면 썩게 될 곡식으로 가득 찬 "추수밭에 대한 환상"(마 9:37,38)인데, 우리의 "섬김," 곧 "구령의 열정"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으로 향해 가는 죄인들에 대한 뜨거운 연민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시지만, 그것을 간직하여 지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책임이다. 이 세 가지 환상을 잃어버린 성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