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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17장) 속죄제와 피의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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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9월호>
레위기 16장은 속죄제에 대한 규례를 설명한다. 이미 4장에서 속죄제를 설명했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해서 자세히 설명하는데, 특히 여기 16장에서는 일반 속죄제와는 달리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에 드리는 규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서 17장에서는 피흘리는 규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1. 대속죄일의 규례
이 규례가 “대속죄일”에 대한 규례임은 16:29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날은 일곱째 달 10일이다. 온 백성의 죄들을 용서하는 날이므로, 명절이라고 해도 즐기는 날이 아니라 안식하며 혼을 괴롭게 하는 날이다.
3절부터는 이 규례가 자세히 다뤄지는데, 이 규례에 따르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어린 수송아지와 숫양(3절), 또 숫염소 새끼 두 마리(5절)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날 대제사장은 두 번의 속죄를 드려야 한다. 한 번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또 한 번은 회중들 전체를 위해서이다. 또 각각의 속죄제물에 더해 번제물도 드려야 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어린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숫양을 번제물로 드리고, 회중 전체를 위해서는 숫염소 새끼 두 마리를 속죄제물로, 또 숫양을 번제물로 드려야 한다. 드리는 규례는 기본적으로 레위기 4장에서 명령한 규례에 따른다. 그런데 레위기 4장에 따르면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사는 어린 수송아지여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숫염소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16장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연례 속죄일에 대한 희생제사고, 4장에서는 그 외에 드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드리는 희생제사다.
1) 속죄제물 : 희생제로 드려짐
아론은 두 염소 중 한 염소를 희생제물로 잡는다. 물론 4장에서 명령하신 규례에 따라 드린다. 이때는 반드시 대제사장이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들어가야 한다. 또한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하는데(12,13절),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된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서 그 피를 일곱 번 뿌리고, 다시 제단으로 나와, 제단 뿔에 피를 바른다(14,15,18절).
이 일은 대제사장이 혼자 행해야 한다. 지성소는 물론이요, 성소에도 혼자 들어간다(17절).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상징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홀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와도 함께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홀로 이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속죄일 제사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아론은 반드시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는 그 피가 없으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피에 의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피에 의하여 저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스스로가 제물이셨으므로 자기 자신의 피에 의하여 들어가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물이자 동시에 제사장이셨던 유일한 분이시다. 또한 지성소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는 휘장을 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휘장을 여시고(찢으시고) 하나님의 임재로 가는 길을 마련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기도 한다.
또 속죄일이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것은, 백성들이 일 년 동안 지은 죄들을 한꺼번에 용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한 번 용서하면 일 년 동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일 년 동안은 “단번에” 속죄하는 효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속죄” 사역을 보여 준다(히 9:12). 히브리서 9장은 바로 이 대속죄일 사역을 예로 들면서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 년에 한 번만 드리는 것이라지만, 매년 드려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자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희생제사의 한계를 보여 준다. 즉 구약의 모든 희생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물제사는 십자가의 그림자일 뿐이다. 단번속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하다. 언약 신학자들은 구약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속죄제들을 통해 십자가의 예표가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일 뿐, 십자가의 피가 아니다. 동물의 피밖에 흘려진 바 없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는다면, 동물들의 피가 예수님의 피와 같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다. 예표로는 완전한 속죄를 이룰 수 없다. 구약 성도들은 여전히 불완전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죄인의 구속이 완성되는 것이다.
2) “속죄염소” : 광야로 보내짐
또한 이 속죄제사에서는 염소가 두 마리 필요하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데, 그 두 마리의 사용이 매우 특이하다. 한 마리의 염소는 죽여 그 피를 뿌리게 되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그 위에 안수하고 광야로 내어 보내는 것이다(7-10,20-22절). 이 염소를 보통 “아사셀,” 즉 “속죄염소”(scapegoat)라 하는데, 즉 “도망보내는”(escape) 염소라는 말이다.
이 일을 이룬 후에야 대제사장은 속죄제물의 기름을 번제단에서 태우며, 나머지 것들은 진영 밖에서 불태운다(25-27절). 이에 대한 예표는 분명하다. 희생제물로 드려지는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반면, 살려 보내는 염소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는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다. 속죄염소에 안수한다는 것은, 백성의 죄들을 그 위에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22절) 보내 버린다. 예표상 우리의 죄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속죄”라는 말에 대한 구약적 의미는 “덮는다”는 말이다. 즉 죄들을 덮는다는 말인데, 물론 구약에서는 일시적 용서에 불과했다. 하지만 덮는다는 말의 본질적 의미는 단순히 가리다는 말이 아니라, 페인트를 칠하듯이 완전히 도말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속죄는 신약에서 구속이라는 완전한 의미로 제시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화목제물로 선포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처럼 구약 대제사장의 속죄 사역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해서, 예수님께서 아론의 직분을 이어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론보다 더 크고 온전한 희생제사를 드리셨는데, 이는 멜키세덱의 계열을 따라 행하신 위대하고 영원한 사역인 것이다.
3) 안식일로 지켜지는 속죄일
이 속죄일은 안식일로 지켜져야 했다(31절). 이 안식일은 물론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에는 매주 안식일 외에도 “연례 안식일”들이 있었다. 속죄일이나 무교절의 첫날, 나팔절, 장막절의 첫날 등이 그것이다. 특이한 것은 다른 안식일들은 단지 쉬는 것인데, 속죄일 안식일은 “혼을 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31절). 이것은 죄로 인한 애통의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이기에 기쁠 수도 있지만, 그 기쁨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기쁨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쁨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따라서 죄인들은 그 죽음이 자기들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 앞에 “혼을 괴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속죄일은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규례”가 된다고 했다(34절). 문자적으로 말하면, 이 속죄제는 천년왕국 때에도 지켜진다는 의미이다(겔 43:19 등). 물론 천년왕국 때는 “기념”으로 드려질 뿐이다. 완전한 용서는 이미 십자가 때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속죄일의 예표를 성취하는 십자가의 희생이 “영원한 규례”가 된다는 것이다.
2. 피의 규례와 희생제를 드리는 장소
17:3,4에서는 짐승들을 잡을 땐 반드시 성막에서 잡으라고 했는데, 이는 희생제물로 바칠 동물을 잡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8절에서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는 어느 누구라도”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9절)고 말씀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는 엄격한 규례 가운데 실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희생제를 드리는 “장소”에 대해서도 중요한 규례가 된다. 왜냐하면 불사르고 피를 뿌리는 일을 수행하려면 그에 합당한 제단 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생제는 반드시 성막에서 드려져야 했다. 성막 외의 장소에는 이런 기구들이 없으며, 성막의 기구를 대체할 만한 다른 기구들을 다른 곳에 만들 수도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신명기 12:5에서도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의 온 지파 가운데서 선정하실 곳, 즉 그분의 처소를 너희는 찾을 것이요, 너는 그곳에 갈 것이며』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카나안 땅에 들어가면 경배를 위한 한 장소를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특별한 장소에 대해서는 솔로몬이 세울 성전으로 확정되었다. 성전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이다(대하 6:10-11,20, 신 12:11). 또 예루살렘도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데(대하 12:13), 바로 그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한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이 카나안에 정착한 지 약 400년 후에야 세워졌다. 그 전까지는 성막이 그 일을 수행했는데, 그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한 장소”는 성막인 셈이었다. 그러므로 성막은 이스라엘의 모든 삶의 중심지가 되었다. 종교적 중심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 있어서도 중심이 된다. 물론 특별한 경우는 있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는 성막이 아닌 칼멜 산에서 제물을 드렸었다.
문맥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카나안 종교와 구별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규례였다. 7절은 이방인들이 드리는 “마귀들의 제사”에 동참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8,9절에서 바로 성막 희생제사를 말씀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는 철저하게 규례에 맞춰 드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면 이방인들의 희생제사는 물론 나름대로는 규례가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규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나 산당을 쌓아 우상 숭배를 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귀들의 희생제사와 구별시키는 것이다. 우상들에게 바치는 희생제사는 그 자체로 난잡하고 무질서하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는 그 규례가 철저하다. 아무리 사소한 행위 하나라도 그것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제를 드리는 방법뿐 아니라 그 장소까지도 성별시켜 주신 것이다.
또한 이 규례를 철저하게 명령하신 것은 “피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다. 피는 생명이기에 특별한 목적으로 흘리지 않는 한, 함부로 피를 흘려서는 안 되었다. 이 특별한 목적은 바로 속죄를 위한 것, 즉 희생으로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17:11에서는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음이라.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서 너희 혼들을 속죄케 하였나니, 이는 혼을 속죄케 하는 것이 피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속죄를 위한 피는 아무 곳에서 함부로 흘려져서는 안 된다는 이 규례는, “피를 먹지 말라.”는 규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10,12절). 피는 속죄를 위해서 흘려져야 하는데, 그 고귀한 피를 먹는다는 것은 크나큰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해 피를 받으신다. 혹 누군가가 크나큰 죄를 짓게 되면 그를 죽이심으로써 그 죄값을 치르게도 하신다.
죄인의 피는 반드시 흘려져야만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킬 수 있다. 어쨌거나 피는 그 죄인의 혼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피를 먹는다는 것은 생명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이 규례는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지켜져야 했다. 『이스라엘 집에 있거나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타국인들 중에 있는 어느 누구든지...』(10절).
이 규례에 대한 직접적인 대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안에 거하는 타국인(이방인)이다. [16:29에서도 비슷한 관점으로 이스라엘과 타국인을 모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은 이스라엘만이 누리는 축복에서는 제외되나,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모든 규례는 함께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성별해야 하는 것은 그 땅 자체가 성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죄에서 성별한다 해도 그 땅에 거하는 이방인들이 악하면 그 땅은 여전히 악하다. 그리고 그 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땅 자체를 벌하신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때로는 이스라엘의 규례를 함께 지켜야 하는데, 예를들면 유월절의 경우가 그렇다. 유월절(무교절) 기간 중 이스라엘 처소에 누룩을 제거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그곳에 있는 이방인에게나 동일하다(출 12:19). 이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 안에 있는 타국인들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유월절 양을 먹는 것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허락되었다(출 12:43-45). 아무리 “무교병”에 동참했다 할지라도 할례를 받지 않는 한 유월절 양은 먹지 못한다.
따라서 피에 대한 규례도 이스라엘 가운데 거한다면 어떠한 이방인이라도 이 규례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신다.” 끊으신다는 말은 죽이신다는 말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말해서 이방인들도 피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이스라엘 경내에 있는 이방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이다. 왜냐하면 이 규례는 율법 하에서 처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노아의 언약에서 이 규례를 설정해 놓으셨다(창 9:4,5). 이 규례는 모든 이방인들과 맺으신 규례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