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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축복과 죽음 (신명기 33-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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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2월호>
명기 32장과 33장은 모세의 마지막 말들을 기록한다. 그 내용은 모두 예언적인 것이다. 32장은 “모세의 노래”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시적 형태로 다루고 있으며, 33장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 대한 미래의 축복을 구체적인 예언으로 다루고 있다.1. 지파들에 대한 축복 (33장)
지파들을 구체적으로 들면서 예언한 것은 창세기 49장과 이곳 신명기 33장이다. 창세기에서는 야곱이 예언했고, 여기서는 모세가 예언한다.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시키는 단계에서 각 지파에 대해 예언했다면,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는 단계에서 각 지파에 예언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야곱의 예언에서는 지파에 따라서 부정적인 내용이 있는 반면, 모세의 예언에서 각 지파는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그들이 안식의 땅 앞에 있어 축복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상황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워지는 천년왕국의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2-5절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고 행진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주께서 시내에서 오시어 세일에서 일어나시고 파란 산에서 비치시며, 그가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셨으니 그분의 오른손으로부터 그들을 위한 불 같은 율법이 나갔도다』(2절). 율법을 받는 장면은 출애굽기 19장에서 나오는 바, 시내 산에 내려오신 그 장면은 무섭고 떨리는 상황이었기에, 불 같은 율법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율법은 범죄한 자들에 대한 징벌을 엄하게 말씀하심으로 불 같은 율법이다.
시내에서 세일로, 또 파란 산으로 진행하신 모습은 시내 산 이후의 광야 행로를 보여 준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갔으며, 주님께서 친히 그들 앞서 가셨다. 그런데 이 장면은 단순히 광야 생활의 여정만을 보여 주는 게 아니다. 예표적으로 말해, 이 장면은 재림의 장면이다. 재림 때에 예수님께서는 출애굽 여정과 같은 여정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신다는 것은 재림 때 흰 말을 타고 그분의 뒤를 따를 수많은 하늘 군대의 모습을 연상케 해준다(계 19:14). 물론 문맥적으로는 출애굽 때 광야를 통과하는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군대를 말한다.
3-4절도 율법을 받는 장면이다. 모세는 이처럼 이스라엘 각 지파를 축복하는 예언을 하기 전에 먼저 율법을 받는 그 장엄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율법은 신명기에서 내내 강조했듯이 하나님과 그들 간의 언약이다. 신명기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율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신약적으로 적용해 보면,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5절은 모세의 왕권을 보여 주는 직접적인 구절이다. 『백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다 함께 모였을 때 그는 여수룬에서 왕이었도다.』 물론 당시는 아직 왕정 시대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최초의 왕은 사울이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최초의 왕은 다윗이다. 하지만 광야 생활 중 그는 실질적인 위치에서 왕과 같았다. 이것은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취함에 있어서 왕의 예표를 취하는 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제사장-선지자의 예표를 취하는 단 두 명의 인물은 모세와 다윗이다.
(1) 르우벤의 축복(6절) : 르우벤은 그 수가 “적지 않게” 된다. 즉 번성할 것이다. 창세기 49장에 나오는 야곱의 예언에서는 르우벤이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다고 책망하시지만, 본문에서는 풍성해지는 르우벤의 축복을 말한다.
(2) 유다의 축복(7절) : 창세기 49장에서는 유다에게 왕권을 수여했다. 여기서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유다는 주의 백성에게 인도된다. 즉 백성 앞에 서게 된다. 주의 손이 그와 함께하며 원수들로부터 돕는다. 원수와 싸울 때 힘이 된다는 것은 백성 앞에서 싸우는 왕의 모습이기도 하다.
(3) 레위에 대한 축복(8-11절) : 레위는 제사장 권한을 받은 지파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을 받는다. 8절에서 툼밈과 우림은 대제사장의 흉배에 붙어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도구다. 그것은 대제사장의 위엄있는 모습과 영광을 상징한다. 직접적으로는 아론과 연관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를 통해 백성에게 계시를 주신다. 이것은 율법 체계에서 보여지는 아주 자연스런 모습이다. 9절에서 레위는 부모와 형제, 자식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그들의 무정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완전히 성별된 자들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10절에서는 레위가 백성들에게 주의 명령들과 율법을 가르친다고 했는데, 정말 그들은 그러한 임무를 맡게 된다. 그들은 희생을 드리는 지파며, 백성들 앞에서 주님을 섬기는 지파이다.
(4) 베냐민의 축복(12절) : 베냐민은 주의 사랑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온종일 보호받으며 주의 “어깨 사이”에 거한다고까지 되어 있다. 어깨 사이라면 품에 안고 있다는 말인데, 이는 전체 지파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 중 가장 감동적인 표현이다. 창세기 49:27에서는 베냐민을 늑대같이 묘사하는 반면, 신명기에서 베냐민은 매우 사랑을 받는 지파로 나온다. 베냐민은 요셉의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며, 남북왕국이 갈라졌을 때에도 왕국의 정통성이 있는 유다에 속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되는 미래의 날, 베냐민은 가장 사랑받는 지파로 서게 될 것이다.
(5-6) 요셉, 즉 에프라임과 므낫세의 축복(13-17절) :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지만, 장자권을 상속받은 아들이다. 요셉에게는 므낫세와 에프라임이라는 두 아들이 있어, 이들이 각각 그 이름으로 지파를 이루었으니, 결과적으로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유업을 얻은 것이다. 본문에서는 요셉에게 주시는 땅의 복을 강조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들의 진귀한 것들의 복이 요셉에게 임한다(16절). 같은 절에서 요셉은 “자기 형제들로부터 성별되었던 자”라고 언급되는데, 이는 요셉이 형들에게서 분리된 창세기 상황을 잘 보여 준다. 17절에서는 그의 영광을 “수송아지의 첫배 새끼 같다”고 했는데 이는 장자권을 받은 모습을 보여 주며, “그의 뿔은 유니콘의 뿔 같다”고 했는데 이는 그의 영광이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7-8) 스불룬과 잇사칼의 축복(18,19절) : 스불룬에 대해서는 “나감”을 기뻐하라 하였고, 잇사칼에 대해서는 “장막들에 있음”을 기뻐하라 하였다. 이는 서로 다른 설명이 아니라, 이 둘을 합쳐서 그들의 모든 출입을 기뻐하라는 말이다. 즉 그들은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는 지파들이다(신 28:6). 그들은 산과 바다의 풍요함을 간직하게 될 것이라 했는데, 특별히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한다고 했다(19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독특한 보물이다(출 19:5). 이스라엘은 천년왕국 때 독특한 보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차지하게 될 것이다. 스불룬과 잇사칼은 그런 위치로서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9) 갓의 축복(20-21절) : 갓은 강한 사자의 모습(20절), 혹은 통치자의 모습(20,21절)으로 나타난다. 창세기 49장에서도 갓은 강한 군대로 나온다(창 49:19). 왕은 유다 지파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구절로 인해 갓이 왕권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천년왕국 때 왕의 통치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0) 단의 축복(22절) : 창세기 49장에서는 독사로 말해지지만, 여기서는 “사자의 새끼”로 말해진다. 사자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혹은 이스라엘의 강한 자로 적용할 수도 있고, 사탄 혹은 그 무리로 적용할 수도 있지만, 본문은 분명 단에 대한 축복이다(1절). 따라서 이 경우엔 단이 강한 사자와 같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단 지파는 재판관기 18장에서 우상 숭배와 연관된 지파로 나오며,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아예 그 이름이 삭제되어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이 강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즉 천년왕국에서 단은 그 위치가 회복되어질 것이다. 천년왕국의 땅을 묘사하는 에스겔 48장에서도 단은 당당히 그 유업을 갖춘 지파로 등장한다(겔 48:1).
(11) 납탈리의 축복(23절) : 납탈리는 은총과 주의 복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예언된다. 특히 납탈리는 갈릴리 북편의 지파이지만 여기서는 서쪽과 남쪽도 차지하라는 복을 받는다.
(12) 아셀의 축복(24-25절) : 아셀은 자손의 번영이라는 축복을 받는다.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긴다고 되어 있는데(24절), 기름은 이스라엘의 풍요를 상징하는 말 중 하나다. 실제로 아셀은 지중해변에 자리잡은 지파로서, 올리브 기름이 풍요로웠다. 또한 “철과 놋”을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그들의 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25절).
이렇게 해서 열두 지파 각각에 대한 축복은 끝난다. 하지만 이것은 각 지파에 해당되는 것을 넘어 그 각각의 축복의 말씀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다. 즉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축복을 이처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6절부터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전체적으로 한 번 더 강조한다.
1. 여수룬(이스라엘)의 하나님 같은 분은 없는데,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이며, 그분의 위대하심은 온 하늘에 선포될 것이다(26절).
2.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이스라엘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며 그 영원하신 팔로 보호하실 것이다(27절). 즉 그들은 영원토록 보호받을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서 원수들을 쫓아내실 것이다(27절).
4. 이스라엘은 안전하고 또 풍요로울 것이다(28절). 샘이 풍성하고,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하며 하늘의 이슬로 풍성할 것이다.
5. 이스라엘은 아주 “행복”하게 될 것인데, 이는 그들이 주님으로 인해 승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29절). 주님은 그들의 방패와 칼이 되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원수의 높은 곳들을 밟을 것이다. 시편 146:5도 『야곱의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으며 그 소망을 주 그의 하나님께 두는 자는 행복하도다.』라고 말씀한다.
2. 모세의 죽음 (34장)
이제 모세는 죽는다. 그는 느보 산으로 올라가 피스가 산꼭대기로 간다. (느보는 아바림 산지에 있는 한 산이고, 피스가는 그 한 봉우리다. 피스가는 “여리코 맞은편”이라고 되어 있어, 그 모든 산 봉우리 중 가장 요단에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다.) 모세는 여기서 길르앗(요단 동편 지역), 단(이스라엘 최북단), 납탈리(갈릴리), 에프라임과 므낫세(이스라엘의 중앙부), 유다와 바다(지중해까지), 남쪽 지역, 여리코와 소알(사해 남부), 즉 그들이 차지할 이스라엘 모든 지역을 보게 된다. 이것은 높은 산에서 육안으로 보는 것을 넘어 환상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이 들어갈 모든 곳을 보여 주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백성들이 받을 축복으로 인해 위안을 주시는 것이다.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함은 분명 아쉬운 일이고, 그의 죄에 대한 대가임이 분명하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분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이행해 주셨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땅을 허락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그 땅 앞에서 그 땅을 목도하는 축복을 주신 것이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굳게 믿고 평안히 눈을 감으면 된다.
이제 모세는 죽었다(5절). 모세는 120살에 죽었다(7절). 하지만 단순히 늙어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을 때 눈도 흐려지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7절). 단지 그의 소임을 다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신 것이다. 이제부터의 임무는 여호수아에게 주어진다(9절). 카나안 땅은 전쟁으로 차지해야 하는 땅이다. 전쟁의 임무는 처음부터 여호수아의 것이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전쟁이었던 “아말렉 전쟁”에서부터 여호수아는 군대대장이었다(출 17:9-13). 그러므로 본격적인 전쟁인 카나안 전쟁의 임무는 여호수아가 맡는 것이 합당하다. 이에 따라 여호수아는 일찍이 그 후계자로 임명받은 그대로 주의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여 백성들을 이끌게 된다(9절).
10-13절은 모세에 대한 간략한 평가다. 그후 이스라엘에는 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10절). 즉 그는 모든 선지자들 중 독보적 존재였으니, 하나님께서 파라오 앞에서 능력을 주시어 싸우게 했던 자이다. 신명기 18:15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겠다 하셨다. 그런데 여기 34:10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한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된다. 어떠한 선지자도 모세를 능가하지 못했으며, 오직 예수님께서만이 그 예표를 성취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그분은 초림 때에도 모든 능하신 이적과 권위있는 말씀으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고, 또 재림 때에도 더 큰 능력으로 그 모습을 취하실 것이다. 특히 모세는 율법을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큰 율법을 주실 것인데, 초림 때에는 “사랑의 법”을 주셨고(요 13:34), 재림 때에는 위대한 왕국의 법을 주실 것이다(사 2:3).
이렇게 해서 신명기가 끝났다. 신명기는 레위기를 이어 율법을 반복하는 책이었다. 새 땅을 목전에 두고 출애굽 2세대에게 주시는 경고와 규례였다. 이 책에는 율법이 기록되어 있지만, 단순한 율법의 조항들보다는 하나님의 뜻 자체가 계시되어 있다. 또한 축복과 저주라는 양자택일의 말씀도 있고,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 또한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복이요, 거절하면 저주, 또 회개하면 회복해 주신다는 내용은 향후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의 기본틀이 되었으며, 성경은 그 역사관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는 또한 신약 성도인 우리에게도 주시는 귀한 교훈이다. 그래서 신명기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다(신명기의 히브리어 제목).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물리치실 때에 신명기 말씀들을 인용하셨다(마 4장). 우리는 신명기를 단순히 율법이라고 멀리 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풍성한 보고요,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귀한 능력의 말씀이며 또 소망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로 신명기 연재를 마칩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