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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군 -요단 동편에서의 승리 (신명기 2: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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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6월호>
1. 정복을 허락지 않으신 세 족속 (신 2:1-23)신명기 2장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진군을 시작한 모습을 보여 준다. 1절에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서』라고 하는 말은 에시온가벨로 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같은 절에서 『우리가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돌았더니』라고 하는 말은 새로운 진군을 위해 홍해 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카데스에서부터 시작된 긴 방황의 세월을 보여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아론은 이 진군의 과정에서 세일 근처의 호르 산에서 죽었다(민 20:23-29). 에시온가벨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왕의 대로"라 불리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행로이기도 하다.
1) 에돔에 대한 전쟁 금지 (4-7절)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 산을 오래도록 돌았으니 북쪽으로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이들은 진군하기 시작한다. 이 진군에서 처음 마주하는 백성은 에돔이다. 세일 산은 에돔 지역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과하기 위해 그들에게 청을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복하지 말고 조용히 그들의 경계만 통과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에돔에게 그 지역을 그들의 유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5절).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이 축복한 이래로 에돔(에서)은 카나안 땅이 아닌 곳에서 유업을 얻어야 했다. 창세기 36장은 에돔이 세일 산을 중심으로 거하는 것을 보여 준다(창 36:8). 즉 그 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에돔의 땅인 것이다. 또한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다.
하지만 민수기 20장에 따르면 에돔은 이 청을 거절한다. 이 거절로 인해 이스라엘은 세일을 돌아 홍해 길(에시온가벨)로 들어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데 그것은 7절이다.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너에게 복을 주셨으니, 그가 이 큰 광야를 통과할 너의 행보를 아시고 이 사십 년 동안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셨으므로 네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이스라엘은 비록 범죄함으로 40년을 방황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순간마다 그들과 함께하셨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 주셨고, 필요에 따라서는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고, 또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에 복을 주셨다. 따라서 가장 고난스러운 그때가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수 있었던 때였던 것이다.
2) 모압에 대한 전쟁 금지 (8-12절)
8절은 그들의 이동 경로를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지나쳐서 엘랏(에일랏)과 에시온가벨에 이르렀고, 거기에서 돌이켜 모압 지경으로 들어간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모압인들과 싸우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라고 하셨다. 이 역시 이 지역은 모압에게 유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이다.
모압은 롯의 아들이다. 비록 롯이 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지만,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의 아들이다. 즉 이스라엘의 형제가 되는 족속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압 땅을 주셨으며, 그들은 그 땅에 살고 있는 거인족(엠인, 10절)을 정복하여 정착했다.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땅을 차지해야 했듯이, 이들 모압과 에돔도 그 지역에 살던 거민들, 특히 거인족들을 정복했다(12절).
하지만 에돔과 마찬가지로 모압도 이스라엘의 청을 거절했으며, 오히려 모압 왕 발락은 거짓 선지자 발라암을 고용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었다(민 22-24장).
3) 암몬에 대한 전쟁 금지 (17-23절)
이스라엘이 모압 경내에 있는 아르를 지나 아르논 강에 이르게 되면 암몬 자손의 땅 근처에 이르게 된다. 암몬은 모압보다는 조금 북쪽에 있으며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될 요단 동편 지역보다 조금 더 동쪽에 있다. 하지만 이들과도 접촉하여 싸울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다. 그땅 역시 암몬에게 유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19절). 암몬은 모압과 마찬가지로 롯의 아들로서, 간접적으로 이스라엘의 형제가 된다. 이들도 거인족들을 내어쫓고 그 땅에 거하게 되었다(20절). 세일에 거했던 족속은 "호리인"이라 불렀고, 모압에 거했던 족속은 "엠인," 암몬에 거했던 족속은 "삼숨인"이라 불렀으며, 카나안 땅에 거했던 족속은 "아낙인"이라 불렀다. 이들은 모두 거인 족속들이며, 모두 각각의 정복자들에게 멸망당했다.
23절에는 캅톨인들이 하세림과 앗사에 거했던 "아위인"들을 멸하고 거했다고 말씀하는데, 앗사란 오늘날 "가자"를 말한다. 즉 이스라엘의 서남해안인 필리스티아 지역이다. 여기서 캅톨인이란 크레테인들을 말하는데, 그래서 필리스티아는 크레테에서 온 이주민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에돔과 모압과 암몬에 대해 말하는 다른 구절에서처럼 이 땅을 캅톨인들에게 주셨다는 기록이 없다. 즉 필리스티아인들은 이 땅의 유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족속들로서, 이스라엘에 의해 멸해져야 하는 족속들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에돔과 모압과 암몬에 대해 호의를 베푸셔서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의 희생자가 되지 않게 하셨다. 하지만 이들 "형제 족속들"은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결과적으로 에돔과 모압의 지역을 지나가기는 했지만(29절), 에돔을 정면으로 통과하지는 못하고 홍해 길로 돌아가야 했으며, 모압의 경우엔 저주를 받을 뻔했다. 신명기 23:3,4은 이러한 죄들로 인해 암몬과 모압은 주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에돔과 암몬과 모압은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서는 비껴났지만,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 가운데서 정복당하게 된다. 에돔의 경우는 후에 유다가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갈 때 유다를 돕지 않고 오히려 색출하여 바빌론으로 넘긴 죄까지 더해진다. 아모스 1-2장에는 이들 족속들이 받을 심판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받게 될 큰 심판에 대한 예언이다.
2. 아모리 족속의 왕들을 멸함 (2:24-3:20)
1) 헤스본 왕 시혼을 멸함 (2:24-37)
2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정복 전쟁을 허락하신다. 그들은 아모리 족속인데, 이들은 이스라엘이 멸해야 할 카나안 족속들 중 하나였다. 당시 아모리 족속들은 요단 동서편에 살았는데, 특히 요단 동편에 큰 세력을 갖고 있었다. 바산과 길르앗 지방이 바로 아모리인들의 땅이며, 경계가 약간 모호하지만 길르앗에서 좀더 동쪽으로 가면 암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암몬에 대한 전쟁을 허락지 않으셨지만 아모리에 대해서는 전쟁을 명하셨다.
25절은 전쟁이 장엄하게 선포되는 말씀이다. 『이날부터 내가 온 하늘 아래 있는 민족들로 너를 무서워하고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에 관한 소문을 듣고 떨며 너 때문에 고심하게 되리라.』 이 말씀 그대로 카나안 땅의 거민들은 두려워 떨며 사기를 잃게 된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정복민으로서 큰 위세를 떨치며 진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세는 처음부터 전쟁을 걸지 않고 에돔에게 말하듯이 조용한 통과를 청했다(27,28절).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일차적으로 차지해야 할 땅은 요단 서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은 이를 정면으로 거절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려 하셨기 때문이다(30절). 즉시 이스라엘은 시혼을 쳤고, 그의 영토를 취하게 된다. 시혼의 거점은 헤스본이지만, 그의 세력 범위는 전체 길르앗과 아르논까지였다(36절). 이로써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의 남부를 차지하게 된다.
2) 바산 왕 옥을 멸함 (3:1-11)
바산은 갈릴리 동편 지역이다.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했던 것과는 달리, 모세는 이번에는 조용한 통과를 청하지 않고 곧바로 바산을 향해 진격했다(3:1). 바산 왕 옥은 군사들을 데리고 나와 접전했으며,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3:4에는 바산에 있는 옥의 성읍 60개를 차지했다고 되어 있다.
이 두 전쟁은 앞으로 요단 서편 지역에서 행해질 전쟁과 똑같이 정복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남녀노소 모두를 쳤으며, 오직 가축들과 전리품들만 탈취물로 삼게 된다. 이 지역은 후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영역이 되었다. 특히 바산과 길르앗은 비옥한 지역으로, 이스라엘의 풍요를 상징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요단 동편 지역의 경계가 정해졌다. (헤르몬 산에서 아르논 강까지, 8절)
바산도 거인들이 살았던 지역인데(13절), 이때 거인들이 멸해졌다. 바산 왕 옥도 거인이었는데, 그의 침상은 9큐빗(≒4m)×4큐빗(≒1.8m)이라 한다(11절). 거인족을 멸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40년 전에도 거인들을 멸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카데스에서 거인을 두려워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임이 드러난다. 만약 거인이 그곳에 없었어도 이스라엘은 그때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불평했을 것이다. 그 사건은 그들의 완악하고 믿음 없는 모습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어서 12-20절은 요단 동편을 세 지파에게 주시는 장면이다. 이에 대해서는 민수기 32장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 지파들은 동편에 땅을 얻었으나, 그 지파의 군사들은 다른 지파들이 안식을 얻을 때까지 함께 싸워야 했던 것이다.
3. 사역의 위임 (3:21-29)
1) 여호수아에게 주는 권면 (21,22절)
여호수아는 민수기 27:18-23에서 이미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되었다. 여기서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해 들이라고 당부하는 말씀이다.
백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담대함이다. 이 담대함은 주님을 신뢰하는 데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들을 증거로 하여 굳건해진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네 눈으로 주 너희 하나님께서 이들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것을 보았나니, 네가 통과하는 모든 왕국들에도 주께서 그렇게 행하시리라.』(21절)고 말했다. 즉 주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그분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보고 믿는 것이 어찌 믿음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의 행하심을 수없이 보고서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한다(22절). 이는 여호수아 1:6-9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직접 하신 말씀과도 동일하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렇게 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들의 영적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2) 모세의 거절된 간구 (23-29절)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이 거절되었다. 이는 민수기 20장 사건인데, 므리바-카데스에서 백성들이 물이 없어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에 말하라고만 하셨음에도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분노를 드러냈었다. 반석에서 물은 나왔지만, 그 사건으로 모세는 카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거절되었다.
모세가 분을 낸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예표에 있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만 치심을 당하신다(초림 때). 재림 때는 더 이상 치심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이 원수들을 치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중,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사건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출애굽기 17장이고, 두 번째는 민수기 20장이다. 출애굽기 1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 하셨다. 왜냐하면 두 번의 반석 사건 중, 첫 번째 것은 초림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는 게 맞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에서는 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재림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모세는 예표를 어겼다. 그런데 카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역시 재림에 대한 예표이다. 이스라엘이 카나안이라는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듯이,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천년왕국이라는 안식의 땅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재림에 대한 예표를 어겼기 때문에, 천년왕국을 상징하는 카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즉 모세에게 준 징계는 예표에 따른 것이지, 단순한 분노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또한 그가 카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모세는 분명 구원받았고, 예수님의 변형산 사건의 "흰 옷 입은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참여했었으며(마 17장), 또 "두 증인" 중 하나로서 대환란 때 다시 이 땅으로 내려올 것이다(계 11장).
모세는 요단 서편에만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지, 이스라엘의 유업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단 동편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유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친히 정복 전쟁을 이끌어 승리했다. 아모리인들과 싸운 이 두 전쟁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로 길이길이 기억되는 사건이다(시 136:19-21 등).
하지만 모세의 간구는 간절했다. 24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크신 일들을 기억한다.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주의 위대하심과 주의 능하신 손을 주의 종에게 보이기 시작하셨나이다. 하늘이나 땅에 어떤 신이 주의 일들과 주의 능력대로 행할 수 있겠나이까?』 모세는 그 모든 위대한 일에 증인이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이적들의 중심에 모세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적을 행하시고, 모세를 통해 그분의 임재와 권능을 보이시고, 모세를 통해 율법을 세우셨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백성들에게 보이셨다. 따라서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나로 건너가게 하소서. 요단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지와 레바논을 보게 하소서.』(25절)라고 기도한 모세의 간구는 너무나도 간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일을 더 이상 말하지 말라.』(26절)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너무도 완고해 보이는 이 거절은, 그러나 바울에게 주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고후 12:9). 바울은 육신의 한 가시, 즉 사탄의 사자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울은 자기의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충분히 쓰셨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모든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다. 모세가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는 충분히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었다. 그에게 주시는 은혜는 충분했으며,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주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면, 그에 대해 감사하자. 어떠한 간구에 대해 거절당했다 해도, 거기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지금까지 이루어 주신 일들로 인해 감사하도록 하자. 지극히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온갖 은혜를 주신 것들로 인해 감사하자. 그리고 고백하자. "내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가 충분하니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피스가 산으로 보내신다(27절). 이곳은 모세가 죽을 장소였다. 모세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요단 서편의 온 땅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여호수아를 굳게 세워 주어야 한다(28절). 왜냐하면 카나안 땅 정복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