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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땅에서 지켜야 할 법들 1 (신명기 12-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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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12월호>

신명기 12장부터는 본격적인 율법의 규례들을 다룬다. 이 법들은 레위기에서 강조한 것과 본질적으로는 같으나, 새로운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새 땅에서 지켜야 하는 규정"이라는 관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제1부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이며, 12:1에서 그 관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것들이 너의 조상의 주 하나님께서 네게 차지하라고 주시는 그 땅에서 너희가 사는 평생 동안 지켜 행해야 할 규례들과 명령들이니라.』

1. "장소"와 연관된 예배의 규례 (12장)

(1) 언약의 장소를 선정하심 (1-5절)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뤄 주신 것이니, 그 땅에 들어가면 우상들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2,3절). 그런데 여기서는 우상 자체보다도 그 우상 숭배의 장소에 초점이 있다. 『너희는 너희가 차지할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겼던 장소들은 높은 산이거나 작은 산이거나 푸른 나무 아래거나 완전히 파괴할 것이며』(2절). 이교도들은 여러 장소에서 자기들의 신들을 섬긴다. 특히 산과 나무 아래에 제단들을 세우고, 기둥들을 세우고, 아세라들을 만들어 형상들을 세운다(3절). 이에 4절에서는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지 말며』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는 말씀인가? 단순히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이방인들처럼 여기저기 제단을 함부로 쌓아 놓고 무질서하게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것은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의 온 지파 가운데서 선정하실 곳, 즉 그분의 처소를 너희는 찾을 것이요, 너는 그곳에 갈 것이며』(5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철저한 규례에 따라서 드려야 한다. 섬김의 법도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규례를 어기고 여기저기 함부로 제단을 쌓는다면, 분명 그 제단들에서는 섬김이 규례가 어긋난 상태로 무질서하게 드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제단들은 점점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의 제단으로 변질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향후 직접 이러한 일들을 경험했다. 그들은 산당과 아세라들을 여기저기 세웠으며, 그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뿌리깊은 범죄가 되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들도 있었지만, 후에는 그러한 산당들에서 우상 숭배가 행해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방 우상을 섬기는 것과 여러모로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에 따라 경륜은 다를지라도, 어떻게 그분을 섬겨야 하는지는 반드시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을 자의로 섬기는 것은 비극적인 종말을 가져온다. 재판관기는 하나님을 자의로 섬기는 것의 결말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준다. 율법을 망각한 채로 흘러간 사회는 재판관들도 범죄하고, 레위인들도 타락했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예루살렘 성전이다. 후에 성전이 세워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경배의 중심으로 삼으셨다. 솔로몬은 그 성전을 봉헌하는 자리에서, 그 성전이 바로 이 말씀의 성취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므로,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기도와 그의 간구를 유념하시고 주의 종이 주 앞에서 기도하는 부르짖음과 기도를 경청하소서. 주의 눈을 이 집 위에, 즉 주께서 주의 이름을 거기에 두시리라고 말씀하신 그곳 위에 밤낮 여시어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기도에 경청하소서』(대하 6:19,20). 하나님께서도 『내가 네 기도를 들었으며, 이곳을 희생제사의 집으로 내게 택하였느니라.』(대하 7:12)고 말씀하심으로, 이 사실을 확증해 주셨다.
물론 이것은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실로든 기브온이든, 성막이 있는 곳이 그 언약의 처소였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이 처소는 어느 성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장소로 주님께서 선정하신 곳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성막이었고, 후에 성전이 된다. 그리고 성전이 세워지는 예루살렘 자체를 공고히하심으로 이 언약을 더 구체화시켜 주신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이며, 예루살렘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이다(대하 12:13).]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다는 것은 매우 축복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통해 복을 주셨고, 그 성전은 또한 그들의 신앙뿐 아니라, 모든 삶의 중심지였다. 성전은 하나님과 백성 간의 언약 관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약 시대에만 그랬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서 성전이 매우 중요했었다. 그래서 그들의 범죄에 대한 극심한 형벌로서 성전을 파괴하셨고, 또한 그들을 용서하심과 동시에 성전을 재건시키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산에서나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않을 그 때가 오리라...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요 4:21,23). 더 이상 장소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경배만이 필요할 뿐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몸이 곧 성전이기 때문이다(고전 6:19, 고후 6:16).

(2) 성전에서의 희생제물 (6-16절)
이 장소에서 이스라엘은 번제물과 희생제물과 십일조와 여러 가지 제물들을 드려야 한다(6절). 13,14절에서는 아무 데서나 함부로 제물을 바치지 말고, 오직 주께서 선정하실 그곳에서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여러 제물들에 대해서는 레위기 1-7장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바이나, 여기서는 특별히 화목제물과 여러 예물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서원물과 자원하는 제물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11,17,26절), 이는 화목제물을 말한다. 화목제물의 경우는 제물의 일부를 바친 후, 나머지는 드리는 자가 먹는다. 물론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도 드린다(레 7장). 화목제는 직접적인 죄로 인해 드리는 속죄제나 속건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제사는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그 가족과 레위인은 함께 즐거워하게 된다(12절).
그러나 이것은 모든 축제와 즐거움을 예루살렘(혹은 성막이 있는 곳)에서만 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분명 이스라엘은 자기가 거하는 어느 성읍에서도 즐거움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다(15절). 단지 희생제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다.

(3) 피를 금지하심 (17-28절)
이어지는 본문은 앞의 본문과 일맥상통한다. 이스라엘은 어디서나 즐거움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두 가지 규정이 있으니, 그것은 레위인들을 기억하라는 것과, 음식을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이다.
화목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고기는 드리는 자가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반드시 레위인들과 함께 먹어야 한다(18절).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유업이 없기 때문이다(12절).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저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명하신다(19절).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은 레위기 17장에서 언급하신 것이며, 율법이 주어지기 전인 창세기 9:4에서도 이미 규정되어 있다. 피에 대한 금지는 율법 이전과 율법하에서, 또 율법 이후에도 동일하다(행 15:20). 피를 금지하신 이유는, 그것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즉 피를 흘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갚으실 때 피를 흘려지게 하신다. 또 속죄를 위해서도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셨다(레 17:11). 피흘린다는 것은 생명을 대신한다는 말이다.
비록 이 규례가 율법 이전에 주어져서, 유대인 외의 모든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례지만, 실제로 이방인들은 이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다르게 행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기술되고 있다. 즉 이방인들이 하는 것처럼 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15장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최소한의 규례를 주는 장면인데, 거기에서 피를 금한다는 것은, 다른 이방인들이 하는 풍습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피를 마신다. 그것은 종교적인 제의와도 연관된다. 따라서 피를 마시는 것은 단지 흉한 것이 아니라 사악한 것이다.

(4) 우상 숭배의 형식을 본받지 말라 (29-32절)
여기서는 우상 숭배 자체를 금하는 명령과 더불어(30절), "인신제사"를 금지하는 명령이 강조된다(31절). 이러한 사악한 행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방인의 제례문화가 그만큼 악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인데, 이러한 사악한 행위는 예상 외로 쉽게 전염된다. 이스라엘이 주의해야 할 것은 30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민족들이 자기들의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가? 나도 그같이 행하리라." 하고 궁금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문화를 동경하거나 이해하려고 하면, 그들의 풍습을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상대방의 문화가 더 우월하다고 느낀다면, 혹은 상대방이 더 강하다고 느낀다면 당연히 그들의 풍습, 특히 그들의 제례문화를 본받게 된다. 이것은 한 지역 종교가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카나안 종족들(혹은 다른 이방인들)보다 스스로를 못하게 여겼을 때 그들을 닮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8:5,19,20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보다 못한 이유가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들을 닮아가려 할 때, 그것은 언약의 백성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들을 선택해 주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거절하는 것이다. 향후 이스라엘은 실제적로 자기 자식들을 제물로 바치게 된다(판 11:39, 왕하 16:3; 17:17; 21:6; 23:10).

2. 거짓 선지자들을 죽이라 (13장)

거짓 선지자들은 꿈으로 계시를 말하고, 표적이나 이적을 보인다(1절).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을 섬기자고 미혹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이적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지장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귀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실제로 이적들에 미혹을 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주 강력하게 경고를 주시는 것이다. 즉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을 죽이라는 것이다. 이 명령은 세 번 반복된다(5,9,15절).
(1) 1-5절에서는 거짓 선지자가 직접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들로 미혹했을 경우, 그 미혹에 흔들리지 말고, 오히려 그를 죽이라고 말씀한다.
(2) 6-11절에서는 가족 중에서 그런 일, 즉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고 죽이라고 말씀한다. 어떤 이적을 행하지 않더라도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신으로 이끌면 그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를 죽이는 것은 그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먼저 해야 한다(9절).
(3) 12-18절에서는 어떤 성읍에서 벨리알의 자식들이 일어나서 그런 짓을 행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소문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서 그 악한 자를 죽이라고 말씀한다. 『너는 알아보고 찾아보고 열심히 물을지니, 보라, 만일 그것이 사실이고 그 일이 확실하고 그 같은 가증함이 너희 가운데 있으면 너는 반드시 그 성읍의 거민들을 칼날로 쳐서 죽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과 그곳의 가축을 칼날로 완전히 진멸시킬지니라』(14,15절). 다른 범죄보다도 훨씬 강하게 주어지는 명령이다. 13절은 그 벨리알의 자식들이 일종의 반역을 행하여 그 성읍을 점령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성읍이 그 죄에 오염되었기 때문에, 즉 그 성읍이 그 죄를 짓는 성읍이 되었기 때문에 그 성읍 자체를 멸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경우로 멸망한 성읍에 대해서는 어떤 탈취물도 취하지 말고, 그 저주받은 물건들과 성읍을 "주 너의 하나님을 위하여" 불살라야 한다(16절). 이와 유사한 경우가 여호수아 6장에서 있었다(여리코).
위의 세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 땅에서 우상 숭배를 미워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세 번째 경우는 우상 숭배자, 혹은 거짓 선지자에 대해 "소문"만 들어도 그 진상을 파악하여 철저히 처리하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내에서 이러한 죄악을 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도를 잘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는 하나님과 매우 특별한 언약을 맺은 나라이다. 그 나라에서 이러한 범죄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즉 그 민족의 정체성과 존재감 자체를 상실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극형에 처하게 된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에 대한 것이기에 오늘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떠한 위협도 가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성도들 개개인의 삶과 지역 교회의 상황에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성도들 안에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며,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을 파괴할 만한 죄악이 발견된다면 살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단절시켜야 한다. 또한 교회 내에 세속적인 요소들이 들어온다면 그것들을 가려 내어 교회의 성결을 유지시켜야 한다. 특히 우리 개개인으로 말한다면 육신과 세상을 따라가는 모습이 얼마나 빈번한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신명기에서처럼 돌로 쳐 "죽일" 수는 없으나, 로마서 6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육신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주님께만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한 악한 행위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가? 왜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을 멀어지게 하려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환상과 표적들이 임하도록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함이다.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다하고 너희의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아시고자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3절). 믿음은 시험을 통과해야 인정을 받는다. 때때로 우리 인생에 마귀의 공격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시험하시는 것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어떠한 미혹이나 박해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따르며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며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고, 또 너희는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 밀착할지니라.』(4절)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평상시에 충분히 그분께 밀착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험에 이길 수 있지, 평상시에는 그분께 밀착해 있지 않다가 위기가 닥칠 때에만 그분께 나아간다면 결코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영적 분별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분별하기 힘든 일들로 미혹당하면 예외없이 넘어가 버린다.
주님께 밀착하라는 말씀은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고 전심으로 섬기라는 말씀이다. 즉 그분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며, 또 신뢰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신명기 6:5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분께 밀착할 수 있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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