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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땅에 들어갈 준비 (민수기 33-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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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0월호>

(민수기 33-36장)

이제 우리는 민수기의 결론에 이르렀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그 동안 지나온 광야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주며, 새 땅에 들어갈 준비를 시켜 준다. 이미 그들은 카나안 땅 접경에 와 있으며, 들어가서 차지해야 할 땅의 구체적 부분까지 계획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신명기에서 모세의 설교로 행해진다.


1. 이집트에서 카나안까지의 여정(33장)


1) 여정 요약(1-49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수하에서, 그들의 군대와 더불어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여정이 이러하니라』(1절). 이스라엘은 “군대”로 여겨졌다. 그들은 처음부터 군대였다. 그래서 민수기에서 백성들의 수를 셀 때도 싸울 수 있는 남자들만 계수했다. 그들은 모세와 함께 민족적인 선택을 받았고, 그것은 곧 군대가 됨을 의미했다. 이는 영적인 견지에서 우리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았을 때 그리스도의 군사로 임명된 것이다. 아직 성장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고, 여러 영적 전쟁들에서 실전 경험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군사가 된 것은 확실하다. 구원받자마자 죄와 싸우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겪게 되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말씀으로 승리해야 함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2절에서는 그들의 이동을 “행진”이라 말씀하며, 3절에서는 그들의 출애굽한 모습을 “의기양양하다”고 말씀한다. 군대가 의기양양하게 행진한다는 것은 개선의 모습이다. 패배한 군대는 절대 의기양양하지 않다. 특히 출애굽 상황에서 그들은 유월절 사건을 겪은 후였기에 그 모습은 더욱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그들의 승리에 찬 기쁨의 모습은 출애굽기 15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영적인 견지에서, 그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다. 우리의 유월절 양께서 희생되어서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그 구원은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이겨오신 승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히 4절에서는 그들의 “신들”에게도 심판을 내리셨다고 말씀한다. 단지 파라오뿐 아니라 신들에게도이다. 이스라엘은 이방 신들 아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뿐 아니라 모든 신들 위에 높으신 분이며, 만군의 주이시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탄을 심판하셨다.
5절부터는 그들이 지나온 여정을 정리해 준다.
라메세스 → 숙콧 → 에담 → 피하히롯(5-8절) : 이집트를 출발하여 홍해 앞까지 왔다. 피하히롯에서 “바다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결코 늪지대를 건넌 게 아니다.
홍해 → 마라 → 엘림(8-10절) : 마라에선 쓴 물을 달게 하셨고, 엘림에선 샘물과 종려나무 아래서 안식하게 하셨다.
신광야 → 돕카 → 알루스 → 르피딤(11-14절) : 신 광야에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고, 르피딤에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다. 출애굽한 후 최초로 아말렉과 전쟁도 치렀다.
르피딤 → 시내(15절) : 시내 산에선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지었다. 율법은 향후 이스라엘의 영적, 정치적 기반이 된다. 성막을 통해 경배의 귀한 본을 주셨다.
시내 → 키브롯핫타아와 → 하세롯 → 릿마 → 림몬파레스 → 립나 → 릿사 → 크헬라다 → 사펠 → 하라다 → 막헬롯 → 타핫 → 타라 → 밋카 → 하스모나 → 모세롯 → 브네야아칸 → 흘하깃갓 → 욧바다 → 에브로나 → 에시온가벨(16-35절) : 시내 산으로부터 시내 반도의 동쪽 해변을 따라 올라가는 길목의 지역들이다. 각 지역들에서의 구체적인 사건들이 민수기에 나오는 것은 아니며, 백성들이 진행 중에 진을 치고 머물렀던 지역들이다.
에시온가벨 → 카데스 → 호르 산(36-40절) : 카데스바네아에선 열 명의 정탐꾼들과 백성들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 40년간의 광야 방황이 야기됐다. 그 지역과 주변에서 오래 머물렀으며, 40년이 끝날 쯤 되어 이동이 시작된다. 호르 산에선 아론이 죽는다.
호르 산 → 살모나 → 푸논 → 오봇 → 이예아바림 → 디본갓 → 알몬디블라다임 → 아바림 산지 → 모압 평지(41-49절) : 사해 남쪽(에돔 지역)에서 왕의 대로를 따라 요단 동편 지역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아바림 산지에선 아모리인들의 두 왕 시혼과 옥을 멸했으며, 모압 평지에선 발라암의 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 지역을 차지했으며, 이제 모압 평지에서 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2) 카나안을 차지하는 법(50-56절)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둔 이스라엘은 그 땅을 차지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은 평화 조약이나 거래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모든 부어 만든 형상들을 다 파괴하며 산당들을 다 뽑아 낼 것이며 너희는 그 땅의 거민을 다 쫓아내고 그곳에 거하라』(52-53절). 이스라엘은 그 땅을 정복 전쟁으로 차지해야 한다. 거민들을 다 몰아내고, 그들의 종교를 파괴해야 한다. 모든 우상들과 심지어 그림들마저도 파괴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와 풍습 가운데 스며들어 있는 우상의 잔재들까지 처리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왜 이스라엘은 그들을 완전히 파괴해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우상 숭배 풍습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잔혹하고, 음란하며, 극악무도한 죄인들이다. 만약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만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이처럼 완전한 성별을 이뤄내야 한다. 세상적 잔재들이 우리 안에 있으면, 그것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킬 것이다. 그것은 그분 안에 있는 온갖 복으로부터 우리를 밀쳐낼 것이며,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게 할 것이다. 세상처럼 몰락하게 할 것이다. 이방의 우상들을 직접 숭배하진 않는다 해도,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는다 해도, 세상의 문화사조들이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되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카나안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찔림과 가시”가 될 것이다(5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거민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했던 것을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56절)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했던 것은 완전한 멸망이다. 즉 불순종이 멸망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멸하라 하신 것을 멸하라. 이에 주저하는 것은 죄이다.


2. 유업들(34-36장)


1) 땅의 분배(34장)
구체적인 분배는 여호수아가 정복한 후 확정되며, 여기서는 대략적인 분배 지역이 정해진다. 그들이 차지할 카나안 땅의 경계는 다음과 같다: 남부의 동쪽 경계는 에돔 지경을 따라 “염해의 맨 끝 지경” 즉 에시온게벨이며, 남쪽 경계는 카데스바네아를 지나 “이집트의 강” 즉 나일 강 하류에 이른다(3-5절). 그 땅의 서부는 “대해” 즉 지중해가 경계가 되며(6절), 북부는 “하맛 입구” 즉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이른다(7-9절). 북부 지방의 동쪽 경계는 “킨네렛 동편 해변” 즉 갈릴리 바다를 포함하며, 카나안 땅의 동부는 요단 강을 그 경계로 한다(10-12절). 여기서 요단 강을 경계로 하는 것은, 원래의 카나안 땅이 요단 서편이었기 때문이다. 요단 동편도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유업이 되었지만(민 21장), 그 땅은 이미 유업으로 받았으니 본문에서는 서편에 대해서만 언급하시는 것이다. 이 땅을 하나님께서는 아홉 지파 반에게 주셨다(13절). 두 지파 반의 유업은 요단 동편에 있다(14-15절).
이 분배의 일을 맡은 것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다. 엘르아살은 아론의 후계자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다. 그리고 각 지파에서 고관들 한 명씩을 뽑아 유업 나누는 일을 하게 한다(17-29절). 19절부터 그 명단이 제시되어 있는데, 역시 르우벤과 갓 지파의 대표는 빠졌다. 동편에서 유업을 받았기 때문이다.

2) 도피성읍(35장)
여기서는 레위인들과 도피성읍에 대해 확정해 주신다. 레위인들이 받을 성읍은 48개인데, 도피성읍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6-7절). 레위인들에게는 지파에 해당하는 유업의 땅이 없다. 대신 그들이 머물 성읍이 주어지는데, 성읍과 주변 외곽 지역들이다(2-5절). 이 성읍들은 각 지파별로 골고루 흩어져 있다(8절). 레위인은 땅의 유업은 없으나, 각 지파에 살면서 그 지파에 의해 부양받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백성들을 영적으로 도울 책임이 있다.
도피성읍은 요단 강 동편과 서편에 각 3개씩, 총 6개다(14절). 살인자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하는 성읍인데, 이는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11절). 말하자면 적의 없이 밀치거나 무엇을 던졌는데 상대방이 맞고 죽었다든지 하는 경우이다(22-23절, 신 19:5). 그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읍에 거해야 한다(25절). 그 후에는 도피성읍에서 나와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만약 그 사이에 도피성읍을 나온다면, 피의 보복자가 죽여도 보호받지 못한다. 여기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그 대제사장이 있으므로 죄인이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히 6:18). 일반적인 견지에서 말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신다(신 33:27, 시 46:1,7,11, 잠 14:26).
그러나 의도적으로 죽인 살인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보호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철로 된 기구나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이나 나무로 쳐서 죽이면, 그는 도피성읍에 들어간다 해도 보호받지 못한다(16-21절). 이 경우 “피의 보복자”가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 수 있는데(19절), 여기서 “보복자”라는 말을 유의하라. 하나님의 법은 “복수”의 법이다. 성경적 형법의 원리는 “복수”이다. 현대 형법이 “교화”를 외치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수의 하나님이시다. 다만 아무나 함부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고, 신약적으로는 복수보다는 사랑을 해야 하며, 또한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신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공의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위해 복수해 주시는 분이다. 그분의 공의는 복수와 연관된다.
살인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것이 성경적 원리다(30-31절). 사형제도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다(창 9:5-6). 피흘림은 땅을 더럽히는 것이다(33절, 호 6:8). 오늘날 이 땅은 많이 더러워져 있는데, 이는 자연 개발 때문이 아니라 “죄” 때문이다(호 4:2-3). 그리고 피로 더럽혀진 땅은 피에 의해서만 깨끗해질 수 있다(33절). 역시 철저한 복수의 법을 말씀하신다.

3) 아들이 없는 자의 유업의 예(36장)
민수기는 유업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듦으로써 결론을 맺는다. 이미 27장에서 다뤘던 문제인데, 바로 므낫세 지파에 속한 슬로프핫의 딸들의 경우다(민 27장 참조). 슬로프핫은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었으며, 이 경우 하나님께서는 딸들에게 유업을 주라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 36장에서 추가적인 법이 제시되는데, 그것은 그 딸들이 자기 지파 남자와만 혼인해야 한다는 것이다(8절). 이스라엘 여자는 이스라엘 남자 누구와도 혼인할 수 있지만, 아들이 없어 유업을 이어받은 딸이라면 자기 지파 안에서 혼인해야 한다. 이는 조상의 유업이 옮겨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3,9절). 다른 지파 남자와 혼인하게 되면, 조상의 유업이 다른 지파로 옮겨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파별로 유업을 주셨기 때문에, 조상들의 그 유업은 옮겨지면 안 된다(신 19:18, 잠 22:28)

이로써 우리는 민수기를 끝내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첫째, 민수기는 “수”(數)의 책이었다. 지파별 백성의 수, 제사장과 레위인의 수, 드리는 제물들의 수, 반역자와 멸망하는 자들의 수, 탈취물들의 수, 지나온 지역 수, 성읍 수 등 수많은 수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이스라엘 고대 역사에 대한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이든 사물이든 하나님께 속한 그 무엇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하심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 하나하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머리카락 하나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수 없는 법이다. 하물며 그분의 피값으로 사신 귀중한 성도들이랴!
둘째, 민수기는 “광야 생활”을 다루는 책이었다. 이스라엘이 지나온 지역들, 각 지역에서 있었던 사건들, 그들의 반역들, 또 승리들, 그리고 유업들, 인도하심 등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성도들의 영적 삶이 광야 생활과 같다는 것을 볼 때 큰 교훈을 받는다. 우리의 광야 생활에서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우리는 민수기에서 분명한 교훈들을 보았다. 우리의 힘 되시고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자. 그분의 말씀을 굳게 잡고 나아가자. 그것만이 저 하늘에 이르기까지 쟁취해 나가야 할 승리의 길인 것이다. BB <이것으로 민수기 강좌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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