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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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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9월호>
1. 첫 번째 단계 - 휴거휴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 묘사되어 있다. 이 구절들을 통해 볼 때 휴거는 2개의 요소로 되어 있다.
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나. 살아있는 성도들의 변형
휴거에 관한 이 두 요소의 성격에 대하여 예수께서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때 그녀에게 나타내 주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
휴거에 관한 두 요소의 성격은 바울이 그의 부활에 관한 불멸의 장 속에서 강조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전15:51-57)
위에 언급된 구절들은 단지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되어질 성도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1-4에서도 바울은 그의 소망과 성도들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사망에 의하여 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보지 않고 불멸에 의하여 옷입혀지고자 하는 자들 가운데 있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또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바울은 소망하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표적을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3:11-14)고 했다. 즉 바울은 첫번째 부활 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변화된 성도들과 함께 휴거되는 것을 위대한 일로 여겼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수 있다면 그것을 상으로서 받고 싶어하였다.
A. 휴거는 갑자기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이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1-3).
마태복음 24:42-44, 계시록 16:15과 위 구절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두번째 단계, 즉 재림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 때에 그 분은 그 분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다(살후1:7-10). 그러나 바울은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살전5:4)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그 분을 전혀 예기치 않고 있을 때 그 분은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분은 도둑같이 오실 것이다. 도둑은 그가 오는 것을 알리지 않는다. 도둑은 어떤 목적 때문에 온다. 그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고, 그가 필요한 귀중한 것들만 가지고 간다(금, 은, 보석, 좋은 옷 등). 그는 머무르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한 바만 이루면 떠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휴거 때에 오셔서 그 분의 성도들만 데리고 가신다. 주께서도 휴거 때에 사악한 자들과 수많은 무리의 이교도(이단)들을 남겨두고 떠나실 것이다.
B. 휴거는 ‘선별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휴거는 성도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분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남편과 아내, 육신의 형제들과 자매들, 친구와 친구를 분리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눅17:34-36).
이 구절들 가운데 “두 사람”은 “두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 있던 두 사람”, 즉 남편과 아내 혹은 형제들이나 자매들, 혹은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고 읽어야 한다. 잠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아침이나 저녁”, 그리고 밭에 있는 두 사람은 “한낮”임을 가르킨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순식간에” 혹은 “눈깜짝하는 순간에”(고전15:52- 개역성경 삭제함) 이 땅 위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고 묘사한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까지 비치는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24:27)고 그 방법을 말씀하셨다. 휴거는 이 시대와 세대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소리”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던 날 그리스도께서는 알아들으셨으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천둥”소리로 잘못 알았다(요12:28-29). 주께서 다마스커스로 가던 다소 사람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와 동행하던 사람들은 말도 못하고 음성은 들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말한 것을 전혀 알아 듣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행9:3-7).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깊은 무덤도 바위로 덮힌 지하묘지도, 피라밋이나 아주 두터운 묘지도 강렬하게 뚫고 들어가 “잠자는 너희 성도들아, 깨어나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아침이 되었으니 첫번째 부활의 아침이로다.”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부활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성도들”에게는 비밀이 될 수 없다. 휴거가 있을 때 우리가 사는 곳이 지구의 밤이라면 아침이 되고나서야 그 지역 사람들은 밤 사이에 참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침이 되고 난 후 침실에서 같이 잠자던 사랑하는 사람의 옷가지는 그대로 있지만 그리스도인인 사랑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형제 자매들이 행방불명되고 귀여운 어린이들도 있지 않을 것이며, 유아는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 피고용인이나 고용주들이 출근하지 않게 될 것이며, 세상은 성경이 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주님께서 그의 성도들을 데리러 천년왕국 이전에 오신다는 교리(전천년설)를 멸시했던 많은 자들은 전천년설 성경해석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992. 8. pp.8-9 참고). 만일 낮이라면, 그 “사건”은 놀라운 것이 될 것이다. 노아의 때와 같이(마24:36-39)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사고 팔며, 씨를 뿌리고 집을 짓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 모든 것이 “신비”가 될 것이다. 그 후에 “성도의 휴거”에 관하여 책을 읽었거나 들었던 몇몇 사람들은 일어난 것을 깨닫고 그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 날에 일어날 놀라운 일들 중 하나는 많은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 일꾼들 가운데서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자들은 남아있게 되고 반면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았던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행방불명 될 것이다. 세상의 소금인 성도들이 휴거되어 가버렸으므로 급속한 타락과 도덕적 부패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죄와 불법과 온갖 종류의 범죄와 비속함이 증가되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한 길이 예비될 것이고, 그의 통치 아래서 세상은 심판을 향해 급속도록 부패해질 것이다.
C. 누가 휴거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대환란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깨어 기다리는 성도들만이 대환란 전에 휴거되고 나머지는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히브리서 9:28에 근거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히9:28).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주님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오실 것에 대해 결코 들어보지 못했거나, 혹은 적어도 그 의미조차도 알지 못하고 주 안에서 잠든 자들도 수천만 명이 넘는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린 적이 전혀 없었던 자들이 대부분이다. ‘주 안에서’ 잠들어 있는 그들은 확실이 ‘주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로서 휴거 때에 부활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6-17에서 휴거될 사람들은 ‘깨어 기다리고 고대하던’ 죽은 자들이라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남아 있는 우리’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사실은 교회의 연합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12:12-13).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요3:3-7)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나누어 진다고 생각할 수 없다. 즉, 몸의 일부는 무덤 속에서 여전히 잠자고 있고 일부는 영광 가운데서 부활하며, 일부는 대환란을 통과하기 위하여 남아 있고, 또 일부는 공중에서 그 분을 만나기 위하여 “변화되어” 휴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일 모든 교회가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기다리며 고대하는 결과가 되므로 주님 자신의 가르침에 상반된다(마24:42-44).
대환란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대환란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때로서 교회를 환란으로부터 지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렘30:7).
계시록 4장 후에는 교회가 더 이상 지상에 보이지 않으며 19장에서야 비로서 “하늘로부터” 신랑과 함께 재림함으로써 나타난다. 4장과 19장 사이의 모든 기간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무서운 심판들로 가득차 있으나 교회는 지상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의 처소에 함께 있을 것이므로 교회는 대환란 동안에 지상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있지 않다. 이러한 혼돈은 예언의 진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의 성도들을 “위하여” 오심과 성도들과 “함께” 오심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대부분 기인한다. 전자는 “휴거”이며 후자는 “재림”이다.
성경에서 수 많은 구절들이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성도들과 “함께” 오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슼14:4, 골3:4, 살전3:13; 4:14, 유14).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그리스도에게로 휴거되지 못한다면 분명히 그 분과 함께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구절들은 모두 “재림”에 대한 것이지 “휴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모형적인 가르침은 교회가 환란 전에 휴거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는 형들에게 버림을 받은 후 이방인 신부 아스낫과 결혼하였다. 그 때는 기근이 있기 전으로서 기근은 형제들이 심판 받을 때를 가르키므로 대환란 기간을 의미한다. 즉 그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들인 유대인에 의해 배척을 받으신 때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모세도 그의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은 후 이방인 신부를 맞아들였다. 이 때는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환란을 겪기 전이었다(출2:23-25).
“휴거될 성도”들의 모형인 에녹은 대홍수 이전에 휴거되었다. 대홍수는 환란을 뜻하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환란을 통하여 살아남게 될 유대인을 상징한다. 다음 호에서는 두번째 단계인 “재림”에 대하여 고찰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