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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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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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10월호>

2. 두번째 단계 - 재림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의 단계, 즉 재림 때에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 오셨을 때에 그 분은 육신 안에 자신을 감추셨다. “성육신”은 그 분의 능력을 숨기고, 그 분의 신성을 가리는 것이었다.
그 분의 영광의 광채들은 변화산에서처럼 때때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분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옷 입으신 그 분을 보게 될 것이다.
“재림”은 휴거처럼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날에 태양이 강렬하고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사고 팔며, 집을 짓고,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갈 것이다. 정치가들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곰곰히 구상하고 있을 것이고, 박애주의자들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며, 또한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새로운 쾌락의 원천을 찾고 있을 것이고, 사악한 자들은 어둠의 행동을 계획할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도, 천국도, 지옥도, 다가올 심판도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만족감을 충족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먼 하늘에 태양을 능가하는 “한 점의 빛”이 나타나 지상을 향해 내려오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 빛이 내려올 때 맑은 구름의 형체로 느껴지고 그 맑은 구름으로부터 눈부실 정도의 광선과 번개가 흘러 나올 것이다. 그 빛은 마치 돌풍의 날개를 가지고 내려오는 것 같을 것이고, 그 목적지인 올리브 산에 도착하게 될 때에 그것은 두려움에 떨며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는 목격자들에게 멈추어 서서 본래의 모습을 펼쳐 보일 것이며, “백마”에 앉아 계신 예수님(계19:11-16)께서는 그 분의 성도들과 하늘의 군대와 함께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감람산 설교에서 예언하셨던 것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그후에 하늘에 계신 인자의 표적이 나타날 것이며, 세상 모든 족속들이 통곡할 것이다.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A. 재림의 임박성
후천년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신약의 기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돌아올 것이라고 고대했으나 그 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므로 그것은 그 저자들이 오인한 것이었고, 바울도 그의 후기의 서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에 대한 진술을 수정하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떤 시간에 너희 주께서 오실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마24:42-44)고 말씀하셨지만 이 구절들 속에서 그 분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한 기자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가르치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달란트 비유와 같은 많은 비유들 속에서 그 분의 재림이 지체될 것임을 암시하셨다.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얼마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계산을 하였는데』(마25:19)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은 급작스러움과 예기치 못함으로 대변되는 재림의 특성이었다. 사도들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밤이 거의 지났고, 낮이 가까움이라”, “주님의 오심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하면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권면했지만, 그 말은 단순히 “급작스럽게 오실 것”을 의미할 뿐이지 반드시 “즉각적으로 오실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린도전서 15:51에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해서 주께서 바울 시대에 다시 오실 것이며, ‘몇몇 사람은 죽지 않고 변화될 것이다.’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도는 “우리”라는 말을 휴거에 관하여 말하는 것으로 바울 시대이든 혹은 나중에든 그 사건이 일어날 때 살아있게 될 성도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야 하지만 그 사실을 밝혔다면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무용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마태복음 13장의 7가지 비유들에서처럼 그 분의 재림을 “신비적 형태”로 감추어 두셨다.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불확실한 것은 우리로 방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초대 교회가 주님의 재림이 20세기 동안 지체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주의깊게 살고자 하는 동기가 결핍되었을 것이다.
“임박하다”는 말은 ‘어느 때에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차를 타기 위해서 철도역으로 서둘러 갔으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차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때 그 시간은 지났지만 기차가 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차가 언제라도 올 것이므로 그 때 역을 떠나 버린다면 현명치 못한 일일 것이다. 만일 타야할 기차가 30분 동안 지체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기다리거나 지켜볼 필요도 없이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오신다”는 것은 반드시 “즉각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상 어떤 때도 현재처럼 주님의 재림에 필요한 조건들이 완전히 성취되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임박한 주님의 재림이 아마 오래도록 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준비하고 깨어 있도록 하자!
주님의 재림의 시간을 정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재림의 임박함을 조명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론을 소개해 본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주간”으로 불리우는 것으로서, “창조 주간”의 “7일”과 베드로후서 3:8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천년왕국’이 쉬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기간으로 묘사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천년왕국이 재창조의 한 주간 중 7일째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히4:4-11). 이제 우리는 천년왕국이 1000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계20:1-9). 그것이 창조의 한 주간 중 일곱 번째 날과 일치한다면 나머지 6일도 똑같은 기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 날들이 과거의 인류 역사와 일치한다면 창조의 한 주간으로부터 천년왕국의 시작까지 인류역사는 6천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족보와 구약의 역사를 주의깊게 연구해 본다면 아담에서 그리스도까지 약 4천년 혹은 하루가 천년씩 4일 간으로 창조 주간의 첫 4일에 해당한다는 것과 그리스도로부터 현재까지는 1900년 이상이 지났으므로 하루를 1000년씩 약 2일로 생각하면 인류 역사는 각각 1000년씩 6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추론이 옳다면 주님의 재림은 지금 현재의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세기가 끝나기 얼마 전에.

B. 실제적인 교리
(1) 유대인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짓밟힌 민족이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주님의 재림이다. 그 분이 다시 오실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땅을 회복하고 다시 하나의 민족이 될 것이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그 날들이 오나니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한 주의 살아 계심으로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그대신 북쪽 땅과 그들을 쫓아내었던 모든 땅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자손을 인도한 주께서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었던 그들의 땅으로 그들을 다시 데려오리라.』 (렘16:14-15).
『이는 내가 내 눈을 그들에게 영원히 두며, 내가 그들을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또 내가 그들을 세우고 넘어뜨리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심고 뽑아 내지 아니하리라.』(렘24:6).

(2)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깨끗케 하는 날에 내가 또한 너희로 그 성읍들(팔레스타인)에서 살게 하리니, 폐허에 집을 짓게 되리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목전에 황폐하게 버려졌던 곳, 황폐한 땅이 경작되리라. 그러면 그들이 말하기를 “황폐했던 이 땅이 에덴의 동산같이 되었도다...』(겔36:33-35, 욜3:18; 2:24-26).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는 여전히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살 것이며, 사람마다 나이 많음으로 인하여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라. 성읍의 거리들은 거리에서 뛰어 노는 소년들과 소녀들로 가득 찰 것이라.』(슼8:4-5).
『그 날에는 말들의 방울들 위에 “주께 거룩함”이 있을 것이요, 주의 집에 있는 솥들도 제단 앞에 있는 대접들과 같게 되리라. 정녕, 예루살렘과 유다에 있는 모든 솥이 만군의 주께 거룩함이 될 것이요, 희생제를 드리는 자들이 모두 와서 솥들을 가져다가 거기에 삶으리라. 또 그 날에는 만군의 주의 집에 카나안인이 더이상 있지 아니하리라』(슼14:20-21).

(3) 모든 나라들에 대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분은 예루살렘에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양의 나라들”과 “염소의 나라들”을 구분할 것이다. 그때 단지 “양의 나라들”만 살아 남아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될 것이다(마24:31-40). 이 민족들은 의롭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남아 있는 자도 각기 그 왕, 만군의 주께 경배하러, 또 장막절을 지키려고 해마다 올라올 것이라.』(슼14:16).
모든 민족들의 결과는,
『그가 많은 백성 가운데서 심판하시며 먼 곳의 강한 민족들을 책망하시리라. 또 사람들은 그들의 칼들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들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 이 민족이 저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어올리지 아니할 것이며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 오히려 그들 각 사람은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요,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만군의 주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음이니라.』(미4:3-4). (이사야 2:4 참고).
전쟁과 노동 문제와 모든 사회적 운동과 무정부주의 운동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 분의 천년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4) 사탄에 대해서
사탄과 그의 모든 악한 세력들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이는 그 분께서 다시 오실 때 사탄이 결박되어 1000년 동안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지기 때문이다(계20:1-3).

(5) 땅에 대해서
타락 이후 땅은 가시나무과 엉겅퀴와 모든 종류의 병균과 해충으로 저주를 받아 얼굴에 땀을 흘려야만 인간은 매일의 양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야생동물도 육식을 하게 되어 서로 잡아먹게 되었다.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롬8:22). 그러나 이 모든 것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바뀔 것이다. 『광야와 메마른 곳이 그들을 기뻐하고, 사막이 기뻐하며 장미처럼 피리라.』(사35:1), 『그리하면 땅이 그 소산을 낼 것이요,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이다』(시67:6). 그 때에는 밭가는 자가 추수꾼을 앞서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를 앞설 것이다(암9:13).

C. 축복된 소망
그리스도의 재림은 “축복된 소망”이다. 디도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3)라고 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은 “구원의 소망”을 의미하지만,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바랄 수는 없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지금 신뢰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구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이다. 인간은 3중적인 존재로서 “몸과 혼과 영”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의 몸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부활시에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실때에 부활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재림은 “축복된 소망”인 것이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부활될 것이고, 사람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면 그는 죽지 않고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살전4:13-18).
“축복된 소망”은 또한 “깨끗하게(정결케) 하는 소망”이다. 『그 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느니
라』(요일3:3). 즉 주님의 재림하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정결케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소망은 우리에게 인내를 심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들이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움이라.』(약5:7-8).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일는지, 밤중일는지, 닭이 울 때일는지, 아니면 아침일는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라. 그가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든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니 깨어 있으라.”고 하시더라.』(막13:35-37).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다면 행동에 주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는 의심스러운 장소에서 의심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길 원치 않으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길 원할 것이다. “복된 소망”은 우리가 이 세상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붙어 있도록 해 준다.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그 분이 오실 때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 분 안에 거하라. 이는 그가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며, 그가 오실 때 그의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2:28).
주님의 오심에 주의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잘 관리함으로써 우리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물음에 대해 성실한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라는 것은 환란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세상에서 데려 가셨다가 환란이 끝나고 예수님이 통치하기 위해 다시 오실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몸으로 되돌아와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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