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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치유와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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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9월호>
은사주의자들은 평범한 그리도인들보다 많은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거짓 은사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거짓 은사를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누구나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잠25:14). 은사주의자들은 또한 “사도의” 표적들, 즉 표적과 이적(고후2:12)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정작 그것들을 갖고 있지 않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한다(계2:2-3) : 『내가 너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며, 또 네가 어떻게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찾아낸 것...을 아노라.』은사주의자들이 돈과 건강과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최근에 인본주의적인 정신요법(최면술)과 긍정적 사고방식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그들을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방언과 치유(신유)이다. 은사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초교파적이며, 성경 교리들을 논하고 연구하며 설교하는 것을 몹시 꺼리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면서도 “사랑”, “나눔”, 그리고 “연합” 등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선적으로 사랑과 나눔과 연합을 위해서 기록되지 않고 “교리”를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에(딤후3:16) 성경은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에게는 닫혀 진 책이다. 방언과 치유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올바로 공부하면, 그들이 성경을 거부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확인해 보기 바란다.
치유에 관하여
이미 본 특집의 두 번째 글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치유”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의 “표적”으로서(출4:7-9) 모세와 함께 시작되었다(출 4장). 이스라엘 민족은 표적으로 시작한 민족이었다(출 4장). 이것은 왜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는가(고전1:22)를, 또한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마가복음 16장의 표적들을 주셨는가를 설명하는 말씀이다. 성경은 사도들의 사역 하에서 믿었던 사람들에게만 한시적으로 이러한 은사들이 부여되었음을 밝히고 있다(행 2, 10, 19장). 이러한 은사들은 고린도후서 12:12과 로마서 15:19에서 “사도의 표적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도직을 계승받은 것으로 주장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의 표적들”을 자신의 것으로 위조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 2:2과 고린도후서 11:10-14에서 이 사람들을 “거짓말쟁이”와 “거짓 사도들”, “기만하는 일꾼들”,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정확하게 부르고 있다. 또한 그들은 데살로니가후서 2:9-10에 따라 한 은사주의자인 적그리스도가 오는 것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들(막6:5,6)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치유하실 수 있다(약 5장). 예수님과 사도들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치유하셨다.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변명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은사주의자들은 이러한 변명을 통해 자신들의 거짓된 이적을 정당화한다. 그들에게 온 사람들 가운데 치유되는 사람보다 왜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인가? 사도들은 그들과 같지 않았다. 이적과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살후2:9-10) :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하나의 표적(막16:18)으로서의 “치유의 은사”(고전 12장)는 바울과 함께 끝났다. 이것은 바울의 사역이 끝날 무렵에는 바울도 자신의 동료인 트로피모를 치유할 수 없었으며(딤후4:20), 디모데에게 약을 권하는 것에서(딤전5:23) 분명히 드러난다. 성령님께서 은사주의의 이단들을 논박하기 위해서 성경에 제시하신 최상의 증거는 바울이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질병을 가지고 있었고(고후12:1-9), 그의 여행에 의사인 누가가 늘 함께 다녔다는 것과, 그가 죽을 때에도 누가가 함께 있었다는(딤후4:11) 사실이다. 바울이 오늘날의 은자주의자들보다 능력이 없었겠는가?
은사주의자들은 이러한 말씀들의 주위를 배회하며 거짓말을 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울이 가진 육체의 “가시”(고후12:7)가 실제적인 몸의 질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2:9-10에서 바울의 “약함”이 단순히 어떤 문제들이지 실제적인 몸의 “약함”(질병)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몸의 질병을 자기고 있었다는 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사실이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것을 믿고 개별적으로 또는 합심해서 치유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치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 이후로 그러한 능력을 행하는 어떤 특정한 사람(healer)이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치유(healing)는 성경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행한다는 사람(healer)은 비성경적이다.
방언에 관하여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가장 심각한 거짓말은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4장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침례를 다루는 장들 가운데 하나이고, 고린도전서 14장은 “알지 못하는 방언”에 대해서 다루는 장이다. 사도행전 2장에는 성령침례가 나오지만 오늘날 행해지는 ‘방언’이 나타나지 않으며, 고린도전서 14장에도 전혀 성령침례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행해지는 ‘방언’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침례를 받는 것을 방언하는 것과 연관 짓거나, 방언하는 것을 성령침례를 받은 것으로 연관 짓는 것은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의 방언
첫째, 어느 누구도 어떤 성령침례를 받기 위해서, 또 ‘방언’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소위 ‘성령세례’나 ‘방언’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행위이다.
둘째, 성령침례의 증거는 방언이 아니라 “거친 강풍 같은 소리”였으며(2절),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3절). 3절에서의 불은 실제적인 불이 아니라 “불같은 모양”임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소위 ‘성령세례’를 받거나 ‘방언’을 받는다는 순간에 이러한 증거가 없다면 그 역시 비성경적인 것이다.
셋째, 단지 열두 명만이 다른 언어로(방언으로) 말했다(행1:26, 2:1, 2:4, 2: 14). 120명의 제자들이 그곳에 있었는데(행1:15), 그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최소한 108명은 오순절 때에 어떤 다른 언어로도, 즉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방언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
사도행전 1:26-2:14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에게 떨어진지라, 그가 열 한 사도와 함께 계수되더라. 그 후 오순절 날이 되자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한 장소에 모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거기에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사도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도다.” 하니... 그때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아,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으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만일 성령침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면 108명은 성령침례를 받지 못했고, 그렇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한 성령에 의하여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고전12: 13).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가 누구든지 구원받는 순간 이미 성령침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침례와 방언을 연관 짓는 것은 비성경적인 발상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은사주의자들이 거짓을 가르치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은사주의자들이 방언과 성령침례를 그들의 주장에 맞게 가르치려면 최소한 네 가지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다른 언어로(방언으로) 말한 제자들의 숫자에 대해서(행1:16-2:14), 즉 12명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방언을 했다고 거짓을 가르치게 된다.
둘째, 성령침례의 증거에 대해서(행2:2-3), 즉 “거친 광풍 같은 소리”와 “불같은 모양의 갈라진 혀들”이 아니라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거짓을 가르치게 된다.
셋째, 성령침례를 받는 방법에 대해서(행2:1-3),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미 성령침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방언을 위해서 따로 받아야 한다는 거짓을 가르치게 된다.
넷째, 방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행2 :4-11), 즉 방언은 “다른 언어(외국어)”가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말”(실상은 의미 없는 소리이다.)이라고 거짓을 가르치게 된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들”(tongues)은 모두가 오늘날 행해지는 혼미한 소리들이 아니라 실제적인 “외국어들”(tongues)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
사도행전 2:4-11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이 소리가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가 각자 태어난 나라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파대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사람들과 유대와 캅파도키아, 폰토와 아시아, 프루기아와 팜필리아, 이집트와 쿠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과 로마에서 온 여행자, 즉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크레테인과 아라비아인들인 우리가 사도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도다.” 하니』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이 하는 방언이 분명한 외국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혼미한 소리라면 그는 비성경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방언
첫째, “알지 못하는” 방언(고전14:2, 4,13,14,27)이라는 말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자기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항상 “듣는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등장하는 방언, 다른 방언, 여러 가지 방언 그리고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는 말이 모두 같은 뜻으로서 서로 교환해서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이다.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과만 교통하는 것이고 자신들은 무엇을 말했는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성경은 방언을 한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가르친다. 반면에 성경 변개자들은 은사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뒷받침될 수 있도록 성경을 변개시켰다. <개역한글판성경>의 고린도전서 14:14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spirit)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mind)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개역한글판성경>에 따라 고린도전서 14:14을 읽으면, 바울의 “마음”은 자신의 입으로 한 말들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변개된 다른 한글성경들과 영어 성경들(NASV, NIV...)도 “mind”라는 말을 “spirit”과 대비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말씀은 어떤 것인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만일 내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spirit)은 기도하는 것이지만, 나의 지각(understanding)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성경 변개자들이 “지각” (understanding)을 “마음”(mind)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지각을 마음으로 바꿈으로써 어떤 주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인가? 고린도전서 14:14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알지 못하는(말하는 사람은 알지만 듣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한 사람이 기도했다면 그 기도에 아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도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에 반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16-17절). 즉 고린도전서 14:14-17의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즉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바울이 기도했다면 그가 말한 것에 대해서 자신은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바울 자신은 무엇을 기도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실제적인 언어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각”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뜻이다 - 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를 알아들을 수 없고, 그의 기도에 대해서 아멘 하거나 어떤 반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지각”(자신이 다른 사람이 알아들었는지 못했는지에 대한 판단)으로는 알 수 없다는(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 알지 못하거나, 글로 쓰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거나, 각기 통역이 다르게 되는 방언(의미 없는 혼미한 소리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방언이 아니다.
<개역한글판성경>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지각”을 “마음”으로 바꾸는 오류를 범했으며, 또한 “마음”(mind)이라는 말을 “영”(spirit)과 대비되는 용어라고 잘못 표현했다(고전14:14,15,19). 그러나 성경은 로마서 7:25에서 “mind”(생각)와 대비되는 말은 “flesh”(육신)임을 밝히고 있으며, 바울은 고린도전서 5:3에서 “몸” (body)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spirit)으로는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로마서나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에서 “mind”와 대비되는 말이 “spirit”이라고 표현된 곳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방언, 즉 자신 스스로 알 수 없는 방언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방언이 아니며, 은사주의자들이 고린도전서 14:14-17을 근거구절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개역한글판성경>과 같은 변개된 성경으로만 가능할 뿐이고,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으로는 그 오류가 바로잡히는 것이다.
둘째,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표적”이었다(14:22) - 『그러므로 방언들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지만, 예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따라서 방언은 신약 전체에서 세 번 등장하는데(행 2,10,19장), 세 경우 모두 방언은 유대인들을 믿게 하기 위한 하나의 표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행해지는 방언은 유대인이 하거나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 가운데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방언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셋째, 남자들은 반드시 차례를 따라서 한 번에 셋이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14:27). 그러나 현재 행해지는 방언은 혼란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다.
넷째, 통역이 없이는 아무도 방언을 해서는 안 된다(14:27). 이는 분명한 언어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통역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방언(언어)을 아는 사람이면 같은 통역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방언은 통역하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통역하기 때문에 역시 비성경적이다.
다섯째, 여자는 회중들 가운데서 방언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14:34). 그러나 현재 행해지는 방언을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비성경적이다.
여섯째,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14:2-3, 4,5,6,7-11,17,19,23-25,37-40).
고린도전서 14:37에 영적인 사람에 대한 표시가 나타난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은 그들이 구원을 받았든 구원을 받지 않았든 육신적인 사람이며(14: 38-40,20), 또한 마귀에게 계속적으로 속아온, 성경을 거부하는 인본주의자들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