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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남 탓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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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2월호>
지난 1월 18일,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120분간의 신년 기자 회견을 마련한 자리에서, 작금의 국가적인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것에 대해 한 나라의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한 조직 내에서 권위를 부여받은 “리더”가 지녀야 할 자질 중 하나는 그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게 “책임”을 지는 태도이다. 가족에 대해서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가장이 책임을 져야 하고, 지역 교회에 대해서는 영적 권위가 주어진 담임목사가 책임을 져야 하며, 기업에 대해서는 CEO가, 국가에 대해서는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이 운영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특히 대통령은 국가적인 문제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에 취임한 이래로 크고 작은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보다는 회피나 변명 그리고 책임 전가로 일관해 왔다. 검찰 총장의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법무부 장관의 징계 제청에 대해 직접 재가를 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재량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책임을 회피했는가 하면, 국가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미 ․ 중 무역 분쟁과 보호 무역주의 확산 등의 세계 경제 문제를 탓했고,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이번에는 이전 정권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또한 정권 초기부터 “일자리 정부”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자 “생산 가능 인구의 빠른 감소세”를 들먹거리며 인구 구조를 탓했고,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했을 때는 특정 종교 집단이나 광복절 집회를 가장 큰 원인으로 내세웠다. 뚜렷하게 책임을 돌릴 대상이 마땅치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예 함구해 버림으로써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사전에 차단했다. 지난 4년 동안 국가적인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 대통령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것은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임기 내내 집무실 책상에 팻말로 올려놓고 그의 좌우명으로 삼은 문구였다. 그는 대통령 이임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아무도 대통령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려 줄 수는 없다. 결정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이 말은 “모든 책임은 내 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뜻으로서 “그 어떤 비난도 내 선에서 멈춰야 하지, 다른 누구에게도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책임 전가”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창 3:9).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최초의 질문이었다. 한편 그보다 먼저 사탄이 인간에게 질문을 던졌으니,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사탄의 질문은 인류를 죽음과 저주와 파멸로 이끈 질문으로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의심하게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여 버림받게 했고, 하나님의 음성이 두려워 피하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던지신 첫 번째 질문은 사탄의 질문과 달랐다. 그것은 죄인들을 찾으시는 질문으로서, 양의 피를 흘리게 하시어 그 죽음의 대가로 얻어진 “가죽옷”으로 죄인들을 입히시기 위해 찾으시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인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숨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죄를 짓기 전에는 이 음성이 참으로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하나님께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을 찾으시는 주님께 속히 응답하고 교제하고 싶은 음성으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타락한 상황에서는 그날따라 하나님의 음성이 너무나 무섭게 들렸다. 피하고 싶었고, 숨고 싶었다. 어두운 죄가 마음속에 드리워진 이상 빛이신 하나님 앞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찾으시는 음성이 계속 들려왔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또한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들을 찾아오셨음을 보여 준다. 심판을 위해서든지 구원을 위해서든지,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들을 찾아오시지 죄인들이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경우는 없다. 『기록된 바와 같으니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롬 3:10,11). 당시 아담은 그가 행한 불순종과 그로 인한 문제들에 관하여 “먼저” 하나님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비하신 주님께서 먼저 죄인들에게 손을 내미셨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죄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오셨다. 오래 참음과 자비하심 속에서 지금 이 순간도 죄인들을 찾으시는 것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죄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두려워 숨을 뿐이다!
그런 다음 꼭꼭 숨겨 둔 “책임 전가”의 카드를 꺼내 든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했던 그 나무의 과실을 네가 먹었느냐?』(창 3:11) 이 질문에 아담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그 여자는 자신을 미혹한 뱀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들은 다윗처럼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시 51:4)라고 정직하게 자백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심판을 모면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죄가 가려지거나 죄에 대한 심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장차 백보좌 심판에서도 수많은 죄인이 불려 나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명하는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겠지만 그들의 궁색한 변명이 의로우신 주님 앞에서 통할 리 없다.
아담의 책임 전가는 아내에게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을 향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도록 주신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기에,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문제를 초래한 바로 그 “여자”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케케묵은 책임 전가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을 완벽하게 창조하시지 않았는가?” “최초의 인류가 시험에서 실패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왜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를 만드셨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아셨다면 루시퍼가 타락해서 뱀이 되는 것을 왜 막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나는 무죄가 아니던가! 그러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남 탓하기를 좋아하는 그 뻔뻔한 죄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롬 3:4).
우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완벽한 환경에서 최초의 인류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를 굳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동산에 있는 다른 모든 나무를 제쳐 두고 그 한 나무에 집착해서 죄를 지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시험하시지도, 그들을 죄와 타락으로 이끄시지도 않았다. 아담을 시험한 것은 그의 아내였고(창 3:6, cf. 딤전 2:13,14), 그 여자를 시험한 존재는 다름 아닌 “뱀”이었다(창 3:1). 말하자면 “책임”은 최초의 인간을 미혹한 옛 뱀인 사탄과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선택한 최초의 인류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책임도 없으시며, 그저 그 모든 피조물을 심판하시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 책임을 지시고” 그 모든 어그러진 문제들을 바로잡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위한 구속주가 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어떤 비방이나 비난도 받으셔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셔야 할 어떤 책임도 없으셨지만, 온 우주의 최고 책임자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기꺼이 그 모든 책임을 지셨다. 그것이 바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자 풍성한 자비이다. 이제는 당신이 선택할 차례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바보같이 앉아 있지 말고 지금 당장 남자답게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