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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연구2- 여호수아, 신정국가 역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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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8월호>

여호수아, 신정국가 역사의 시작



여호수아서는 구약 역사서의 첫 번째 책이다. 여호수아가 기록한 이 책은, 연대기적으로는 신명기의 사건들을 뒤따른다. 1)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 바로 앞에서 죽는 것으로 끝나고,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앞에서 들어가려 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신명기에서 미완성되었던 하나님의 약속은 여호수아서에서 성취된다. 여호수아는 율법에 따른 모세의 임무를 완성한다. 때문에 이 책은 마치 모세오경의 결론과도 같아 보인다. 2)
그러나 모세의 죽음으로 오경과는 분명한 단절을 이루며,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서 정식으로, 처음으로 시작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의를 가진다. 모세는 그 땅을 향하여 백성들을 이끌고 갔지만, 정작 그 땅으로 들어간 것은 여호수아였다. 신명기와의 내용적인 연속성이 있기는 하지만, 새 땅에서의 백성들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여호수아서는 광야 생활의 신명기와 분리된다.

1. 신정국가의 역사를 시작하는 책

여호수아서는 새 땅에서의 거룩한 백성의 역사의 시작이고, 그 역사적 기록은 열왕기하에서 일단락된다.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성취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미리 계획하신 하나님의 신정통치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그 신정국가의 땅을 갖춰 주셨고, 재판관 시대를 통해 광야가 아닌 그 땅에서 백성들을 시험하셨으며, 다윗을 통해 왕을 주시고 그 국가를 온전히 세우셨다. 그러나 솔로몬을 통해 발전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신정국가는 곧이어 반역과 타락에 이르게 되고 그 부패한 역사를 지속하다가 결국 멸망하고 만다. 이것이 열왕기하의 끝이다. 여기까지가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지는 신정국가의 역사로서 한 단위로 묶여지는 역사서이다. (역대기는 이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반복하며, 에스라-느헤미야는 또 다른 역사를 다룬다.)
때문에 여호수아서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다루게 되는 점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정국가가 찬란하게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 대부분이 정복전쟁과 그 땅을 분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정복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위대한 역사를 드러내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그 땅에서 율법을 낭독하였다. 이는 이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켜 나가겠다는 다짐일 뿐 아니라, 율법과 더불어 시작되는 신정국가에 대한 선포였던 것이다.
이 일을 이룸에 있어서 여호수아라는 인물을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 속에서 이루어진 매우 적절한 일이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 자체가 “예수”를 의미하거니와, 실로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예표 중 재림 때 군대 대장의 모습으로 온 땅을 멸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여호수아서는 다음과 같이 대략적으로 구분된다.
(1) 정복전쟁 (1-12장)
(2) 땅의 분배 (13-22장)
(3) 마지막 당부 (23-24장)

2. 여호수아서의 중요 사건들과 교훈들

(1) 요단 도하(3-5장)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 강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강물은 멈춰섰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이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서 강이 멈춰 선 것이다.
요단을 건너 길갈에서는 그들이 앞으로 행할 많은 일들에 대한 준비가 일어난다. 일단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다(5:2-9). 그들은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켰다(5:10). 약속의 땅에서의 첫 유월절이다.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건히 했다.
이곳에서 또한 만나가 중지되었다(5:11,12). 영적인 견지에서, 만나는 광야 생활에 필요한 음식이다. 우리는 이곳 지상 생활에서 영적인 만나를 먹는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면 친히 생명의 빵이신, 참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뵐 것이다. 여기서 여호수아가 주의 군대 대장을 만난 것(5:13-15)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는 주의 천사, 곧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의 현현이었다. 군대 대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예표인 여호수아가 참 군대 대장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2) 여리코 정복과 라합의 구원(2,6장)
여리코는 인간들이 전쟁을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는 재림 때에 있을 전쟁(아마겟돈)의 예표이다. 여리코는 대대로 저주를 받게 되는데, 이처럼 영원히 저주받은 성읍은 세 곳이다. 여리코, 소돔, 바빌론. 따라서 여리코는 재림 때 멸망받는 바빌론 성읍의 예표가 된다.
라합의 구원은 신약 구원의 아름다운 예표가 된다. 일단 그녀는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행위로 말하면 가장 사악한 여인이었다. 이는 “세리와 창녀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일치한다. 비록 죄인이지만 믿음이 있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또한 그녀가 제시한 것이 주홍색 줄이다. 이는 두말할 나위없이 피의 색이며, 이 경우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그러나 라합의 구원은 환란 성도의 구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라합이 믿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라도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다. 또한 그 믿음에 행위를 더하여 이스라엘을 도왔다. 유대인을 돕는 것은 환란 때 이방인의 구원 방법이다. 라합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

(3) 아이 성 패배의 교훈(7,8장)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저주받은 물건에 손을 댄 아칸의 범죄 때문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 온전히 묻지 않고 인간적인 계산으로 전쟁을 치른 것 때문이다. 아칸의 범죄는 단순한 탐심 이상이다. 그는 저주받은 물건에 손을 댔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멸하라 하신 것을 취하는 것은, 그 취한 것과 더불어 멸한다는 교훈을 준다. 즉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과 함께 멸망한다는 교훈이다.

(4) 언약을 세움(8:30-35)
전투가 끝난 후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을 따라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다. 이것은 5장, 길갈에서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이행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였고, 여호수아는 율법의 준수자요 수호자였다. 그리고 그 율법 준수의 의무는 역사서의 끝까지 간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이처럼 언약을 세우는 모습은 “율법”과 “역사서”를 연결하는 귀중한 지점이 된다. 이로써 성경은 분리된 책이 아니라, 연속적인 책임이 드러난다.
(5) 기브온 거민과의 조약과 기브온 전투(9,10장)
아이 성에서의 패배와 기브온에서의 기만당함은 전체 정복전쟁 과정에서 수치로 남는 사건이다. 이 둘 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해졌다. 여호수아는 그 땅에 거하는 백성들을 멸하라는 명령을 지켰어야 했다. 어쨌든 여호수아는 약속을 이행하는 신실함은 보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다. 비록 잘못했어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면, 그 상황을 더 좋게 바꿔 놓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기브온 전투는, 이스라엘과 협약한 기브온 거민을 치러 오는 아모리인들의 다섯 왕들에 대한 전쟁이었다. 여호수아는 결과적으로 다섯 성읍의 왕들을 한꺼번에 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전투에서 해와 달이 멈추고 하늘에서 우박과 돌이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또한 여리코 전투와 더불어 이 책에서 발견되는 재림의 예표가 되는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친 성읍의 목록은 12장 끝에서 제시되며, 총 31개의 성읍이다.

(6) 땅의 경계를 정함(13-22장)
이 부분에서 여호수아서는 출애굽기나 민수기처럼 긴 나열을 이룬다. 그러나 각 지파별로, 또 각 가문별로도 구체적으로 땅이 분배되는 모습을 통해서, 여호수아가 얼마나 모세의 법을 충실하게 지켰는가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파들의 분배, 도피성읍, 레위인들의 성읍과 그 주변 지역들에 이르기까지 여호수아는 독자적으로 이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모세를 통해 명령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성경 시대 내내 이스라엘 땅의 경계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도 이스라엘로부터 분리해 나가지 않겠노라고, 언약의 백성 안에 들어 있겠노라고 서약을 한다(22:10-34).
여기에서 땅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라는 교리, 특히 구약에 있어서 땅에 대한 언약의 성취라는 교리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도피성읍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예표의 모습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7) 배교를 예측한 유언(23,24장)
여기서 여호수아는 신명기에서의 모세와 유사한 형태로 고별사를 남긴다. 모세는 카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그 땅에 “들어갈” 백성들을 향하여 복과 저주의 교훈을 주었다면, 여호수아는 카나안 땅에서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같은 교훈을 준다.
여호수아는 이미 8장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운 바 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섰는데, 이 두 산 사이의 지역은 세켐이다. 그런데 여기 24장에서 그들은 다시 세켐에 모여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언약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세켐은 아브라함이 카나안 땅으로 들어왔을 때 처음 도착한 장소이다(창 12: 6,7).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땅으로 가라고 제시하지 않으셨으며,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른 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갔다. 그리고 세켐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세켐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언약을 세운 첫 장소였다.
여호수아와 백성들도 아브라함처럼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세켐 땅에서 언약을 세울 것을 명하셨다(신 11:26-32; 27:12,13). 바로 그 세켐에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언약을 세우기 위해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켐은 언약의 장소이며, 여호수아가 이곳에서 고별사를 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절대로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시 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3. 예표적 중요성

출애굽이 죄인의 구원이고, 광야 생활이 성도들의 영적 생활이라면, 카나안 입성은 구속받은 죄인이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 준다. 홍해를 건넌 것과 마찬가지로 요단 강을 건넌 것은 물을 통과해 들어가는 안식, 즉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사건을 보여 준다. 그것이 죽은 성도의 안식이든 휴거 사건이든, 카나안은 하늘을 상징한다. 물론 전쟁했다는 것은 이 예표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늘 나라와 전쟁 사건을 연결시키면, 구원을 열정적인 행위로 받는다는 이단 교리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기사는, 또 하나의 안식을 예표해 준다. 바로 천년왕국이라는 안식이다(히 4:8-11). 그 천 년은 안식의 천 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땅으로 그분의 백성을 이끌고 들어가시는 군대 대장이다.

이 책에서 안식은 두 가지 면으로 제시된다. 하나는 안식의 땅을 차지한다는 정복의 개념이요, 또 하나는 모든 전쟁에서 쉰다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항상 같이한다. 이 백성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안식이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이들은 이 땅에서 전쟁을 했지만, 성경은 그것을 안식이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또한 얻는다. 우리는 앞으로 안식하게 될 것이지만(하늘에서), 지금 여기에서 이미 안식을 얻었다(십자가에서 쉬는 것, 영적 안식). 그러나 영적 안식을 누리는 성도들은 또한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영적 안식과 영적 전쟁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들이 “안식”의 땅에 들어가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4. 카나안 정복 시기와 고고학적 발견

근현대 고고학자들은 성경의 사건들을 파헤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 물론 모든 고고학이 성경을 증명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성경을 비평하기 위해, 성경의 사실을 불신하기 위해 고고학이 발달하였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이 카나안을 정복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일단의 유목민 집단이 카나안 땅으로 평화롭게 이주했다는 “이주 모델,” 원래 카나안 지역에 살던 ‘야훼신’을 섬기던 하층민들이 봉기한 것이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전쟁이라는 “혁명 모델” 등이 제시되었다. 이런 것들은 이집트의 고고학과 사회학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많은 학자들은 여호수아의 정복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연대를 훨씬 뒤로, 즉 B.C. 1200년대로 후퇴시키기곤 한다. B.C. 13세기 후반에 카나안 땅에서 불타 버린 대규모 파괴 흔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흔적을 여호수아 전쟁의 흔적이라 쉽게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성경 학자들은 성경에 등장한 연대기를 무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실제로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이 이 견해를 취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숫자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 누군가가 역사적 입장으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B.C. 13세기 후반에 있었던 대규모 파괴 현장은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주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파괴로서, 여호수아의 전쟁과는 관련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오히려 영국의 가스탕(John Garstang) 박사는 B.C. 1200년대의 파괴 유적과는 별도로 여리코의 폐허를 발견했는데, 그는 이것이 B.C. 1400년경의 유적임을 확인했다. 이 연대는 성경에 기록된 여호수아 정복 전쟁의 연대와 일치한다. (이것은 열왕기상 6:1을 근거로 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480년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데, 이로써 우리는 여호수아의 카나안 정복이 B.C. 15세기 후반임을 알게 된다.) 이럼으로써 고고학은 성경을 증명하고 만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인 연도, 숫자 하나까지 오류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BB

1) 이 책의 저자가 여호수아라는 것은 8:32; 24:26 등에서 알 수 있으며, 다만 여호수아 자신의 죽음을 다루는 24:29-33 부분이 당대에 추가되었다. 전통적으로는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그 아들 피느하스가 추가했다고 여겨진다.
2) 이 때문에 현대 학자들은 모세“오경”(Pentateuch)에 여호수아를 붙여 “육경”(Hexateuch)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성경의 첫 여섯 권의 책을 문학적으로 한 단위로 묶는다. 드라이버(S. R. Driver)에 의해 주장되었고, 폰 라드(Gerhard von. Rad)에 의해 지지받은 이 이론은, 그러나 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하며, 포로기 이후에 신명기와 같은 저자에 의해 여호수아서가 기록․편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하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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