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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 - 주의 집 문에서 전하는 메시지 (예레미야 7-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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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5월호>
예레미야 7장부터는 "주의 집 문,"즉 성전 문 앞에 서서 설교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전 안이 아니라 문 앞에서 "이 문들로 들어가는"유대인들에게 선포한다. 즉 "거리설교"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설교자들(선지자들)은 거리에서 설교했다.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군중들을 향해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그 백성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고, 구원의 길을 선포하셨다. 때로는 그 설교 앞에 군중들이 무릎을 꿇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주님의 의로운 말씀을 배척하고 그 선지자들을 박해했다. 예레미야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패역한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보내신 것이다.1. 도둑의 소굴이 되어 버린 성전
성전 문 앞에서 설교한다고 할 때, 그것은 성전으로 나아오는 백성들을 축복하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경배하러 나아오는 백성들에게 저주를 선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경배를 하되, 속에는 온갖 죄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품은 상태에서 드리는 경배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이것이 주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거짓말"이라고 하셨다(7:4). 성전은 분명 주님의 집이 맞다. 그것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집이다(7:14). 하지만 당시 성전은 "도둑들의 소굴"이 된 것이다(7:11).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21:13에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강도들의 소굴"이라 말씀하셨었다. 예레미야에서는 장사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죄악된 행위들로 성전이 더럽혀지고 있었다.
(1) 유다의 죄
유다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과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전을 간직한 나라다. 그만큼 유다는 하나님과 가까워야 했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더 신실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렇지 못했으니 곧 율법을 저버린 것이다.
첫째, 7:5,6에서는 이웃과의 관계가 공의롭지 못하다고 책망하신다. "타국인과 아비없는 자들과 과부를 억압하고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린"것이 유다의 죄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여기에서 사회 정의의 측면만을 보겠지만, 이러한 죄들은 단순히 사회적 범죄가 아니라 율법을 범한 것이다. 율법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라고 말씀한다(신 24장).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거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7:9에서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등의 죄들을 책망하신다.
셋째, 무엇보다도 큰 죄는 그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에게로 나아간 것이다. 7:6에서는 "다른 신들을 좇아 행한"것을 책망하신다. 9절에서는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아 행함"을 책망하신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이란 먼 이방의 신들이라는 말이다. 바알의 경우는 카나안 땅에서 흔히 행해지던 우상숭배였지만, 아하스의 경우 먼 나라 시리아의 신들까지 섬겼다(대하 28:22-25). 18절에서는 "하늘의 여왕"에게 음식 제물을 바치는 일까지 행했다.
특히 하늘의 여왕, 즉 여신 숭배는 완전히 이교도적인 산물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여성성도 언급되거나 암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교도들에게는 어느 종교에서나 항상 여신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카톨릭에서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추앙한다는 사실이다. 카톨릭이 마리아를 숭배할 때 그것은 분명 이교도적 우상 숭배이고, 이 구절에 따라 철저히 정죄받는 일이다.
넷째, 성전을 멸시했다(7:11).
다섯째, 인신제사를 행했다(7:31). 『또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토펫의 높은 곳들을 지어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불태웠으니...』 이 죄는 아하스와 므낫세에 의해 행해졌다(왕하 16:3; 21:6).
여섯째, 그들은 이 죄들에 더해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거절했다. 『너희 조상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내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냈으니 날마다 일찍 일어나서 보냈도다』(7:25). 하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다(26,27절). 수많은 죄들 중 가장 큰 죄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책망을 거절하는 죄이다. 다른 모든 죄들은 돌이킬 수 있다. 하나님의 책망에 대해서 무릎을 꿇는 겸손한 마음만 있다면 돌이킬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거절한다면 그 무엇으로도 그 죄인을 돌이키게 할 수 없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다도 말씀을 거절하는 시대였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그가 믿고 행하는 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누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그 죄를 합리화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 사회적 관습, 사람들의 관념, 시대의 흐름, 상황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서 죄들은 얼마든지 합리화된다.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죄들을 판단할 수 있는데, 말씀을 거절해 버리면 어떤 죄도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마지막 때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교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다. 변개된 성경들이 판을 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마저도 거절해 버리는 것이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의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멸시하는 유다, 하나님께서는 그 유다를 멸망시키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멸시하는 오늘날의 교회들과 세대들, 하나님께서는 이들 역시 멸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징계
약속의 백성이 죄악을 범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신명기 28장에서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예언해 놓으셨다. 그들은 그 땅에서 징계받을 것인데, 그것은 기근과 질병과 외적의 침입과 그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7:15에서도 같은 말씀을 반복한다. 『내가 너희 모든 형제, 즉 에프라임의 온 자손을 쫓아낸 것같이 너희를 내 목전에서 쫓아내리라.』 예레미야 당시는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이기 때문에, 그것을 본으로 삼아 유다에 대해서도 같은 징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서 강조하시는 것은 단순히 땅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예레미야의 이 설교가 "주의 집 문"에서 행한 것임을 기억하라. 선지자는 그들이 이 땅에서 쫓겨날 뿐만 아니라, 이 성전이 철저히 파괴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곳이지만, 지금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라 불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하스나 므낫세 같은 왕들에 의해서 성전은 이미 충분히 멸시당했으며, 성전 안에 이교도적 제단이 세워지기도 했다(왕하 16:10-16; 21:1-8, 렘 7:30). 성전은 형식적인 종교행위들로 가득했으며, 그것은 이미 한 세기 전 이사야 시대부터 하나님께서 "지시기에 피곤한 짐"(사 1:13,14)이었다.
일찍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안식의 땅에 들어가면 한 장소를 선정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었다(신 12:5). 즉 성막이 세워져서 경배드릴 장소이다. 처음에 그 장소는 "실로"에 있었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실로에 있었던 나의 처소로 가라.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곳이니...』(렘 7:12). 실로는 거룩한 곳이었다. 하지만 후에 그곳은 우상 숭배의 장소로 변했고, 북왕국에 속한 그 성읍은 앗시리아의 침입 때 철저히 파괴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두시려고 세우신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이름으로 일컬어지며 너희가 신뢰하는 이 집에,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주었던 그곳에 내가 실로에게 행했던 것과 같이 행하리라』(7:14). 거룩한 곳이 악하게 되면 더 큰 멸망에 처하는 법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그 성읍과 더불어 멸하실 것이다. 예레미야 7:34은 그 성읍들에서 "환희의 음성과 기쁨의 음성과 신랑의 음성과 신부의 음성을 끊어지게"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하시겠다 말씀한다.
2. 예루살렘의 황폐화 - 물리적 파괴와 영적 황폐함
예레미야 7장에서는 성전 파괴를 중심으로 말씀하시며, 8-9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의 파괴를 중심으로 말씀하신다. 얼마나 극심하게 파괴하는지, 산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통치자들과 백성들의 뼈들을 무덤에서 끌어내기까지 할 것이다(8:2). 8:2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좇아 행하며, 구하며, 경배해 온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군상 앞에 그 뼈들을 펼쳐 놓으리니...』 그들이 하나님 대신 사랑했던 이방 신들과 하늘의 군상들 앞에서 모독을 당하는 것이다. 그들이 숭배하며 신뢰했던 신들은 고난의 날에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오늘날도 마귀는 세상 사람들을 속여 자기를 숭배하게 하지만, 심판의 날에 그들은 마귀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며 미귀와 더불어 끔찍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살아남아 있는 자들은 생명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할 것이라고 말씀한다(3절). 이러한 일은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의 침공 때 이루어졌으며, 역사상 유대인들이 박해당하는 모든 상황에서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것은 대환란 때 다시 한 번 반복될 것이며, 그때 그들은 더욱 비참한 상태가 될 것이다. 9:11은 『또 내가 예루살렘을 황폐케 하여 용들의 소굴로 만들겠으며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케 하여 거민이 한 명도 없게 하리라.』고 말씀하는데, 이 역시 바빌론 침공 때 예루살렘 파괴를 예언하는 말씀이나, 대환란 때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특히 용들은 마귀들을 말하는데, 대환란 때 예루살렘은 적그리스도가 통치할 것이며 소돔과 이집트처럼 영적 상태가 황폐해진다고 언급된다(계 11:8). 예레미야 9:11은 이사야 6:9-12과 정확히 연결되는 말씀이다. 이사야 역시 『성읍들은 거민이 없이 황폐하게 되고... 그 땅 가운데에 완전히 버려짐이 있을 때까지니라.』(사 6:11,12)고 말씀하는데, 이는 그들의 영적 상태가 완전히 파괴된 모습, 즉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사 6:9,10) 영적 흑암 상태의 결과이다. 이처럼 대환란은 영적 흑암 상태다.
그래서 예레미야 8,9장은 7장에서 언급한 죄들에 더해 그 성읍의 영적 상태를 자세히 보여 준다. 특히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해야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을 책망한다.
8:8에서는 『서기관들의 펜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한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악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또한 지혜로써 백성들을 이끌어야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느냐?』고 책망하신다(9절). 그들에게 지혜가 없는 이유는 "주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이다(9절). 호세아 4:6에서도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라고 말씀한다. 결국 누군가가 어리석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잠 1:7). 세상 공부를 못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예레미야 8:10에서는 『선지자로부터 제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거짓되이 행함이며』라고 말씀한다. 7장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다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그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있었다.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으니, 백성들이 거절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선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고쳐 주면서 "화평"만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다 잘될 것입니다..."라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만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이르렀는데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들은 듣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다(7:27). 왜냐하면 너무도 오랫동안 화평의 메시지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상황과 오늘날 기독교계의 상황이 얼마나 유사한가?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한다. 『우리가 화평을 바라나 좋은 것은 오지 않고 건강한 때를 바라나, 보라, 고난이라!』(8:15) 오늘날 세상은 날로 악한 일만 일어나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교회들은 여전히 희망의 메시지만 선포한다. 따라서 이 시대의 누군가가 선지자를 자처한다면, 그는 예레미야처럼 심판을 선포해야 한다. 긍정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야 하며, 멸망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하는 것이다.
9:3은 『그들은 활같이 그들의 혀를 구부려 거짓말하나 땅 위에서 진리를 위해서는 용감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한다. 거짓말을 일삼으며 목소리를 키우고, 육신을 위해서는 혈기를 내며 용감한 것같으나, 정작 진리를 위해서는 용감히 싸우지 않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의분"(義憤)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분을 낼 수 있는가? 죄악들을 보고 괴로워서 가슴이 불타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도 자기가 속한 집단과 국가 혹은 어떤 이념을 위해 용감히 행한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용감히 행하는가?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이방인들과 같이 멸하겠다고 하신다. 『보라, 주가 말하노라. 그 날들이 오면 내가 할례받은 모든 자들을 할례받지 아니한 자들과 더불어 벌하리니』(9:25). 이스라엘은 구별된 민족이지만, 더 이상 구별되지 않고 이방인들과 똑같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들은 할례를 자랑했다. 할례란 그들이 씨로부터 이방인들에게서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선택된 민족으로 구원받았다는 말인데, 그들은 그 구원을 죄를 위한 기회로 삼고 말았다. 그들은 "우리가 이 모든 가증한 것들을 행하도록 구원을 받았도다."(7:10)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만 믿고 죄짓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자들의 할례를 무의미하게 여기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할례를 원하셨던 것이다(26절).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은 유대인들은 육신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형식적인 경배는 필요없다. 당시 유다는 영적 황폐함 가운데 그러한 경배로 가득 찼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과 성읍을 멸하시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되어야 하겠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