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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 vs.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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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5월호>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이 그러하지만, 특히 골로새서 2:11은 "왜 성경을 비유적(은유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그 진가를 알게 해 주는 구절이다. 이는 "영적 할례"에 관한 것인데, 그 현상을 문자 그대로의 표현으로 아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순간 그분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성령 침례이다(고전 12:13). 몸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그의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일 한 가지를 경험하는데, 손으로 하지 않는 영적 할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그리스도의 할례』로서, 그 결과 혼이『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리게 된다.인간의 혼은 몸과 비슷하게 생겼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내용은(비유가 아님) 혼의 실체를 상세하게 보여 주는데, 혼은 몸처럼 눈(23절), 손가락(24절), 혀(24절) 등을 가지고 있고, 목소리를 내거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24-31절), 고통도 느낀다(23,25절). 심지어 옷을 입을 수 있는 몸과 같은 형체도 갖고 있다(계 6:9-11). 다만 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썩지도 불타 없어지지도 않는 비물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구원받지 않은 "혼"은 지옥의 불길 가운데서 문자 그대로 "영원히"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혼이 몸에 붙어 있는 채로 태어난다. 이로 인해 혼과 몸을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구절들이 구약에서 종종 발견된다(창 46:18, 레 7:18; 23:30 등). 예를 들어『보소서, 이제 이 성읍은 도주하기 가깝고 작은 성읍이니, 오, 나로 그곳에 도피하게 하소서... 그러면 내 혼이 살리이다.』(창 19:20)라는 구절에서 "혼"은 "몸," 곧 육신적 생명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오순절 날 성령 하나님께서 오신 이후로 변화가 생겼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안으로 성령께서 들어오시어 "영적인 수술"을 통해 몸에서 혼을 분리시켜 주시는 것이다. 오늘날 외과 의사들이 피부에 칼을 대지 않고도 "레이저"를 통해 몸속 내부를 수술하듯이, 성령께서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한 "메스"를 사용하셔서 육신의 죄들의 몸으로부터 혼을 분리하신다(히 4:12).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이렇게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리는 순간, 우리의 혼은 육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로마서 7장은 이러한 "자유"를 남편(몸)과 아내(혼)의 관계를 통해 설명해 준다(1-4절). 즉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그 남편의 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새로운 남편과 재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의 옛 남편인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는데, 물론 그 몸 자체가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이때 혼이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리는 영적 할례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결국 우리의 혼은 그것을 붙잡고 영원한 멸망과 저주로 이끌어 갔던 "죄의 몸"(롬 6:6), 곧 "옛 남편"과의 관계를 끊고 그로부터 벗어난다. 그런 후에 "새 남편"(예수님)과 재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옛 남편과 새 남편의 대비 관계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대비 관계로 연결이 되는데, 우리나라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에 관하여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목사나 신학교 교수 및 주석가들이 없다. 대부분 대충 얼버무리거나, 구원받기 이전의 사람과 이후의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거듭난 사람 또는 옛 성품과 새 성품의 대비 관계 정도로만 설명할 뿐이다. 한번은 조용기 목사가 누가복음 15:11-24을 본문으로 『옛 사람과 새 사람』이란 제목의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옛 사람은 타락한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이고, 새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를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면 적은 누룩이 퍼져서 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이라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옛 사람" 안에는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나 악을 향한 타고난 성향, 곧 "옛 성품"이 들어 있다. 만일 옛 사람이 조 목사의 말처럼 구원받기 이전의 사람이라면, 구원받아 새 사람이 된 이후에는 옛 성품이 없어진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못하다. 옛 성품은 성도가 죽을 때까지 또는 몸이 구속되어 새로운 몸을 입을 휴거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옛 성품은 거듭난 이후에도 육신의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 6:6에서는 그러한 "죄의 몸"을 가리켜 "옛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옛 성품은 첫 사람 아담에게서 비롯되었다(롬 5:12). 따라서 옛 사람은 옛 성품을 담고 있는 "죄의 몸"일 뿐 아니라, "사람"이란 단어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첫 사람 "아담"을 의미하게 된다(고전 15:22).『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가 그 행위와 함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었으니』(골 3:9,10). 여기서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고후 4:4, 골 1:15, 히 1:3), 그 형상대로 창조된 "그"는 당연히 아담이며(창 1:27), 바로 앞에서는 이 아담을 "옛 사람"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반면에 "새 사람"은 옛 사람 아담과 대조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새 사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이 없고『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골 3:11). 에베소서 2:15에서는『원수 된 것, 곧 법령 안에 속한 계명들의 율법까지도 그의 육신 안에서 폐기하셨으니 이는 그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는데,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 누구라도 구원을 받을 때 예수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 한 "새 사람"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성령 침례를 통해 이루어지며(고전 12:13), 그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고 모두가 "하나"이다(갈 3:28). 특히 에베소서 4:24의『새 사람을 입으라.』라는 말씀을, 로마서 13:14에서는『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로 표현하는데, 이는 새 사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그리스도의 할례로 돌아가 보면, 구원받은 혼은 영적인 할례를 통해서 이전에 붙어 있었던 "옛 사람"(옛 남편)인 아담 또는 죄의 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가 되고, 그 대신에 "새 사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새로운 남편과 재혼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혼"이라고 하지 않고 "영"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하라.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살려 주는 영』(고전 15:45)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신 후, 그렇게 살아난 영과 합하여 "한 영"을 이룸으로써 우리 안에서 "새 사람"을 형성하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새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할 뿐 아니라, 주님과 하나로 결합된 "거듭난 영"까지도 의미하게 된다. 정리해 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대비 관계는 세 가지 형태로 설명이 가능한데, 곧 ①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② 죄의 몸과 거듭난 영, 그리고 ③ 옛 성품과 새 성품의 대비 관계로 설명되는 것이다.
특히 "거듭난 영"으로 설명되는 "새 사람"은 혈로나 육신의 뜻 혹은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으로서(요 1:13) 어떤 형태로든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요한일서 3:9은 이렇게 말씀한다.『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 그렇다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할 때(요일 1:8-10), 그것은 우리의 "새 사람"의 영역이 아니고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옛 사람," 곧 육신에 속한 일이 된다(롬 7:18).『이제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20). 말하자면 죄의 몸, 곧 육신의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이 우리를 사로잡아 와서 무릎을 꿇리고 결국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롬 7:23). 이로 인해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치열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갈라디아서 5:17에서는 이 싸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이 "비참할"(롬 7:24) 만큼의 처절한 싸움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의 혼이 영적 할례를 통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육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더 이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버린" 옛 남편, 곧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이며(롬 8:9), 죄는 더 이상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다(롬 6:7). 그럼에도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우리 몸을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여기지(롬 6:11)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수술이 이루어지는 동안 우리의 몸은 죽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의 혼을 육신의 몸에서 분리해 내실 때 우리 몸을 죽이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육신에 지고 있던 빚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모두 청산했다(롬 8:12).
이처럼 죽은 육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 의해 질질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육신이 요구하는 것에 일일이 비위를 맞춰가며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구원받기 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육신의 요구를 거절할 "자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육신이 하라는 대로 행동해야 하고, 육신이 보라는 대로 봐야 하고, 육신이 말하라는 대로 말해야 했던 것이다. 깨끗한 것이든 더러운 것이든,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가리지 않고 육신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육신에 따른 행동들 중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래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8). 구원받기 전에는 영적 할례를 받지 못하여 혼과 육신이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죄가 우리의 육신 안에 군림하면서 몸의 정욕을 추구하게 할 때, 육신의 노예요, 죄의 노예요, 사탄의 노예로서 굴종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원받은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이제는 그 육신의 요구를 거절할 자유가 생겼다. 죄가 우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죄에게 순종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자유, 죄를 짓지 않을 자유, 죄를 우리의 발아래 굴복시킬 자유,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이다(갈 5:16). 더러운 정욕을 요구하면서 거래를 시도하려는 육신에 대해 "너는 이미 죽은 존재"라고 선언하라! 몸의 구속을 입는 완전한 자유를 쟁취할 그날이 올 때까지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주어진 이 자유 안에 굳게 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