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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과연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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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1월호>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극단적 칼빈주의가 가장 성경적인 교리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교회의 칼빈주의는 극단적 칼빈주의가 주를 이루며, 교단들이 분열될 때에도 역사적 정통주의, 보수주의 신앙의 증거가 칼빈주의인 양 주장되어 왔습니다.수많은 교단들이 거의 모두 동일하게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기이한 현상들을 볼 수 있으며, 그 뿌리를 칼빈에게 두고 있는 장로교파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교파의 제도, 형식, 신앙의 토양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 칼빈주의가 비성경적인 가르침인 것을 알지 못한 채 이러한 일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제 철저히 성경을 통해서 왜 극단적 칼빈주의가 비성경적인가를 올바로 평가하는 “칼빈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라는 칼럼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극단적 칼빈주의(Hyper-Calvinism)란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존 칼빈(John Calvin)이 가르친 교리들을 성경보다 더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 칼빈에게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여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칼빈주의는 17세기에 꽃을 피웠고, 그 후 2세기 동안 자유주의 사상으로 위축되었다가 19세기 말에 네델란드와 미국에서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신학체계입니다.
칼빈주의의 철학적 체계는 몇 백 년 동안이나 건전한 교리인 것처럼 위장되어 왔으며, 칼빈주의의 예정론, 자유의지론, 속죄론 등의 주제는 종교개혁 이후 그 어떤 주제들보다 더 격렬히 논쟁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알미니우스와 고마루스, 에라스무스와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 등의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칼빈주의는 침례문제가 그랬던 것처럼 침례교도와 다른 그룹들 간의 쟁점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이 방심할 수 없는 논쟁들이 모든 종류의 교파들을 감염시켰습니다.
20세기 말 현재 칼빈주의가 커다란 신학적 논쟁의 현안은 아니지만 여전히 개인적인 믿음에 있어 수많은 혼동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The Hiderberg Catechism, 1563), 네델란드의 벨직 신앙고백(The Bel- gic Confession of Faith, 1561), 스위스의 제 2 핼베틱 고백서(The Se- 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네델란드의 돌트신경(The Canon of Dort, 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8) 등은 칼빈주의 사상을 기초로 한 것이며, 칼빈, 루터, 쯔빙글리, 멜랑크톤, 벌링거, 부쳐 등의 종교개혁가들과 쟝키우스, 알스테드, 오웬, 휫필드, 톱레이디 등을 거쳐 제임스 스론웰, 헨리 스미스, 존 길, 윌리암 쉐드, 컨닝함, 로레인 뵈트너, 에드윈 팔머, 아더 쿠스탕스, 바빙크 등 “저명한” 신학자들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에 와서는 마우로(Mauro), 로스(Ross), 아더 핑크(Arthur W. Pink), 벌콥(Berkhof), 댑니(Dabney), 카이퍼(Kuiper), 핫지(Hodge), 그리고 개혁신학의 조직신학자들인 메이첸(Machen)과 와필드(Warfield) 등이 이 칼빈주의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칼빈주의가 어거스틴으로부터 왔고 또 바울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암흑 시대를 지나 종교개혁을 일으킨 종교개혁가들에게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그 어두운 시기와 성경에 대한 오랜 무지로부터 빠져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들의 모든 이론과 행동을 무조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칼빈주의의 교리들은 프랑스의 위그노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그들의 개인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끼쳤고, 청교도(Puritans) 역시 칼빈주의를 받아들여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 모두를 낳았으며,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인들에게도 역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동시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극단적 칼빈주의를 비평하기 전에 몇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극단적 칼빈주의와 복음적 칼빈주의가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칼빈주의가 가장 성경적인 교리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교회의 칼빈주의는 극단적 칼빈주의가 주를 이루며, 교단 분열시에도 역사적 정통주의, 보수주의 신앙의 증거가 칼빈주의인 양 주장되어 왔습니다. 수많은 교단들이 모두 동일하게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기이한 현상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교계의 칼빈주의는 그 뿌리를 칼빈에게 두고 있는 장로교파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교파의 제도, 형식, 신앙의 토양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계에서 칼빈주의가 처음 소개된 것은 미국 선교사 해닐톤(Hanilton)이 신학지남에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또한 1937년 박형룡 목사가 로레인 뵈트너(Lorane Boettner)의 “개혁주의 예정론”을 칼빈주의 예정론으로 번역한 후 칼빈주의는 곧 예정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칼빈주의가 5대 교리 대신 개혁주의, 청교도사상, 복음주의, 보수주의, 그 어떤 말로 불리더라도 성경적 기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요점을 중심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요점은 또한 신학의 기초와 연결되는데 신론(하나님론), 인간론, 죄론, 기독론(그리스도론), 성령론, 자유의지론, 속죄론, 창조론, 구원론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극단적 칼빈주의를 비평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두 번째 것은 알미니안주의와 웨슬레주의가 구원의 보장에 관해 오류를 범했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칼빈은 이 점(성도의 견인)에 있어서는 옳았습니다.
사람들을 알미니안주의자(Armi- nians)와 칼빈주의자(Calvinists)로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곱 알미니우스(Jocob Arminius)와 존 칼빈 사이의 논쟁이 구원받는 데 있어서 자유의지의 작용과 관계가 있다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극단적 칼빈주의에 반대되는 두 가지 종류의 관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엄격한 알미니안적(웨슬레안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성경적 관점입니다. 알미니안 신학의 저작들은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나 그 자체의 심각한 오류로 인해 칼빈주의와 마찬가지로 성경적으로 반박되어야만 합니다.
이미 구원 얻은 성도들에 대한 영원한 구원의 보장은 칼빈주의만이 외치는 말이 아니고 이미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자나, 침례교도나, 장로교인이나, 감리교인이라는 명칭에 앞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 곧 그 영이 거듭난 모든 사람은 그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종권위는 장로교 교리나 요한 웨슬레의 글이나 사도신경이나 웨스터민스터 신조가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권위이고 절대규범인 것입니다.
혼자서든, 여럿이 모였든, 사람이 내리는 결론은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신뢰를 유명한 신학자나 경건한 사람이나 인정받는 종교회의의 결정이나 여러 가지 신조나 신앙고백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히 계시되어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199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보존하신 그 말씀만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에게 이 절대적인 권위인 성경이 있으므로 우리는 극단적 칼빈주의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존 칼빈의 가르침과 그의 기독교 강요,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 돌트 신경 등에 더 권위를 두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무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단교리, 목사의 가르침, 신학자들의 해석에 더 신뢰를 두는 사람에게도 헛될 뿐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은 참으로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어느 누구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영광을 더욱 높이기 위해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본래의 위치와 의무를 변경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바 그대로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 앞에 무릎을 끓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신 자신의 이름보다 그 분의 말씀을 더 높이 두셨기 때문에(시138:2) 그 말씀을 존중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을 낮추고 그 분의 말씀을 존중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소위 다섯 가지 요점으로 불리는 : “전적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의 첫 자를 딴 이른 바 튤립(TULIP)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섯 가지 교리들 가운데 네 가지는 비성경적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다섯 가지 요점을 모두 성경적이라고 가르치는 ‘극단적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인 이론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본 칼럼에서는 칼빈주의의 다섯 가지 요점들이 성경의 빛 안에서 실제적인 해답을 가지고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살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어떤 견해나 해석체계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습니다(딤후2:9).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