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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언약 3 언약의 결단 의식 (신명기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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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9월호>
신명기 28장에서는 복과 저주를 강조했다. 그들이 율법 가운데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면 그 땅에서 복이요, 범죄하면 그 땅에서 쫓겨나고, 회개하면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팔레스타인의 언약”이다. 이것은 예언적 언급이며, 그래서 그들이 저주받아 쫓겨났으니 다시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회복에 대한 예언은 30장에서 이어지고, 여기 29장에서는 이 언약 자체에 대해서 재차 강조하고 있다.신명기는 전체적으로 보아 율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상술하기보다는 율법을 지키라는 그 명령 자체를 수차례 재강조하는 책이다. 이것은 그 땅을 차지하면 본격적으로 신정국가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그 땅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목이 곧은 백성이며, 여전히 광야에서와 같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마치 부모가 자식을 위험한 곳에 보낼 때 조심하라고 계속 강조해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계속 경고해 주시는 것이다.
29장은 27장에서 보여진 언약의 결단 의식을 행하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마치 출애굽기 19장에서 첫 율법을 받을 때 시내 산에서 민족적으로 그 언약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는 것과 같다. 사실상 출애굽기-레위기 율법과 신명기 율법은 본질상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두 장면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단지 그 상황만 다를 뿐이다.
1. 언약 관계를 재확정하심 (29:1-15)
신명기 29:1은 이렇게 말씀한다. 『주께서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맺으신 언약 외에 그분께서 모압 땅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그들과 맺은 언약의 말씀들이 이러하니라.』 그래서 이 언약을 “모압 땅 언약”이라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레위기 율법은 “시내(호렙) 산 언약”이다. 일부 학자들은 출애굽기 19장과 비교하여, 신명기의 언약을 “언약의 갱신”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틀렸다. 출애굽기 혹은 레위기 율법과 신명기 율법은 전혀 갱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갱신이 되었다면 십자가에서 갱신된 것이고, 아니면 예레미야 31장에서 새 언약으로라야 갱신될 것이다. 신명기는 율법에 대해서 레위기와 동일하게 말씀한다.
(1) 하나님의 베푸심 (2-9절)
2절에서 모세는 온 이스라엘을 불렀다. 즉 하나님의 언약 앞으로 불러 세운 것이다. 이 언약 앞에서 엄숙하게 결단해야 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결단의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 한 번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위대함을 보이시지만, 또한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도 위대하시다. 우리는 언약 앞에서 결단을 요구하는 무서운 하나님만 보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강요하시는 것이지만, 그분은 충분히 그러실 만한 분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향해 베푸신 것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실 때면 반드시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베푸심을 먼저 말씀하신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베푸심은 크게 셋으로 나타난다.
첫째, 이집트에서(2-4절) :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그의 온 땅에 표적들과 기적들로 큰 일들을 이루셨다. 이스라엘은 그 모든 것을 목도했으며, 그것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신 일이었다.
둘째, 광야에서(5-6절) :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 그들은 옷도 신도 낡아지지 않았으며, 땅의 소산인 빵도 먹지 않았으며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으나 더 위대한 음식으로 풍요로웠다. 광야는 비록 고난의 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들을 더해 주셨다.
셋째, 요단 동편에서(7-8절) :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의 아모리 왕들을 치심으로써 그 지역들을 이스라엘의 유업으로 확정지어 주셨다. 카나안 땅에 안착시키시겠다는 언약을 이미 일부 이뤄 주셨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증명하셨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9절에서는 “그러므로” 이 언약의 말씀들을 지켜 행하라 하시며, 언약을 지켜야 번성한다 하신다. 왜 “그러므로”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대하고 풍요롭게 역사해 주셨으므로 하나님께만 순종하면 지속적으로 복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신이 이스라엘의 모든 복과 번영의 근원임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2) 언약의 대상과 근거와 핵심적 내용 (10-15절)
언약의 대상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첫째, 현재 그곳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즉 지파들의 대장들, 장로들, 관원들, 모든 남자들, 어린아이들, 여자들(10-11절). 둘째, 그들 사이에 거하는 타국인들(11절). 셋째, “오늘날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지 아니한 자들”(15절), 즉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다.
타국인들에 대한 강조는 앞에서도 종종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나 이스라엘과 함께 그 경내에 거하는 자들로서, 언약의 땅에서 사는 동안 그 언약의 범위에 ‘제한적’으로 들어오게 된다. 예를 들어 안식일이나 명절 등 이스라엘이 지키는 법은 함께 지켜야 한다. 그러나 할례를 받기 전까지는 유월절 양을 먹을 수 없다(출 12:48).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타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의 의무를 모두 다 행할 필요는 없지만, 그 땅을 더럽히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 똑같이 취급당한다. 예를 들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여 우상들을 섬기는 것은 철저히 금지된다. 그것은 그 땅을 더럽히는 행위이며, 이스라엘을 오염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 있는 타국인들은 이스라엘과 똑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이 언약을 앞으로 태어날 세대와도 맺는다는 것은, 이 언약이 영속하는 언약임을 보여 준다. 비록 모세의 율법은 “율법 시대”에 한정되며 십자가로 종료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크게 말해서 지금 교회 시대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이것은 “교회”라는 하나님의 또 다른 백성, 즉 하늘에 속한 백성이다. 이스라엘은 땅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영속적으로 지키실 것이다.
그래서 이 언약의 핵심적 내용은 13절에서 말씀하는 바, 『너를 세워 자신에게 백성으로 삼으시고 자신은 네게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성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인 율법의 핵심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관계를 설정하시고자 그토록 많은 은총들을 베푸셨고, 또 이스라엘에게도 그토록 독특한 법령들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은 참으로 “독특한 보물”이 되는 것이다(출 19:5). 이 관계성은 시내 산 율법에서도 강조되고(레 26:12), 천년왕국 때 맺어질 새 언약에서도 강조된다(렘 31:33). 율법의 모든 조항들은 이 관계성 안에서 설정된다.
이 언약의 근거는 다름아닌 “아브라함의 언약”이다. 13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던 대로 이스라엘을 백성 삼아 주시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는 것이다. 출애굽 자체도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라 시작되었다(출 2:23,24).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랐다는 것 또한 이 언약(시내 산 혹은 모압 땅 언약)이 영원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언약 자체가 영원한 언약이기 때문이다(창 13:15). 여기서 시내 산 언약이 영원하다는 것은 율법이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다. 율법 자체는 분명 끝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그 언약의 내용은 영원한 것이다. 율법의 조항들은 이 관계를 위해 있는 것뿐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율법 없이 그 관계성이 설정되었고, 모세에게는 율법을 통하여 그 관계성이 설정되었을 뿐, 그 관계성은 동일하다. 다만 율법을 통하여라 함은, 그들이 율법을 어기면 이 관계성도 깨진다는 조건적임을 보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건적인 관계성이 영원하다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회복”을 전제로 둔다. 모세의 언약은 분명 그들의 행위에 근거를 둔 조건적 언약이지만, 그래서 그들이 범죄하면 떨어져 나간다는 저주가 선포되었지만(신 28:15-68), 이것으로 끝난다면 어찌 그 관계성이 영원하다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라 영원한 언약을 성취시키시기 위해 모세의 언약에서 특별한 예언을 해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개를 근거한 회복이다. 회개라는 것 자체가 행위에 따른 것이니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고, 또 궁극적으로 회복되어 영원한 관계를 이루게 되니 아브라함의 언약에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이 회복에 대한 예언은 30장에 기록되어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들의 회개라는 행위가 전제되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예언이다.
2. 언약 관계를 방해하는 것 (29:16-29)
언약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두 당사자 외의 제3자다. 이 제3자는 바로 이방 신들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이방 신들로부터 성별되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민족이다. 아브라함도 온갖 우상들로 가득 찬 칼데아 우르에서 불려져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 이스라엘도 온갖 우상들로 가득 찬 이집트에서 불려져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유일신 종교는 없다. 왜냐하면 이 신앙들만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탄생된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새 언약의 피로 탄생되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가장 강조하여 금하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이며, 역사서 전체를 보더라도 이스라엘은 결국 우상 숭배 때문에 망했다. 모든 선지자들도 우상 숭배를 가장 강력하게 징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통의 육신적인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깨뜨리는 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면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다. 유대인이 참된 유대인이 되려면 혈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여호와 유일신앙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이 언약을 깰 만한 너무나 많은 위험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첫째 그들의 경험과, 둘째 그들 주변에 현존하는 세력들이다. 그들은 과거 이집트에서 우상 숭배를 경험했다(16절). 그리고 그들이 통과해 온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보았다(17절). 민수기 25장에서 그들은 심지어 그 우상 숭배 축제, 즉 바알프올의 음행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상 숭배를 행하려는 자들을 가리켜 18절은 “독초와 쑥을 내는 뿌리”라고 말씀한다. 이 쓴뿌리는 처음엔 사소하지만 이스라엘 가운데 은밀히 행해지며,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퍼지게 된 것이다. 우상 숭배가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한다. “내가 비록 내 마음의 상상대로 행하여 죄악을 물같이 마실지라도 내게 평안이 있으리라.”(19절)고 말하는 자들은 28장에서 경고하신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경고를 무시하기에, 즉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감히 파기하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에게 내릴 것이며』(20절)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징계의 근거는 “이 율법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에 따라”이다(21절).
그런데 이 경고의 말씀은 일종의 예언적 요소가 있다. 즉 그 민족 모두가 범죄하여 멸망한다는 것이다. 21절까지는 그 쓴뿌리를 가진 백성들에 대해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서 ‘그를’ 악으로 구별”하시겠다고 하셨는데, 22절에서는 “너희를 뒤따라 일어날 너희 자손들의 오는 세대”와 타국인들이 주께서 “그 땅에” 내리시는 질병들을 비웃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미래의 어느 날 그 쓴뿌리의 범죄들, 즉 우상 숭배 및 그로 인한 온갖 죄악들이 이스라엘에 가득 차서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다(23절).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큰 멸망에 대해서 이방인들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만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온 이방 가운데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잘 맺고 있을 때는 번성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멸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이방인들을 통해 증거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모든 민족들까지도 말하기를... 그들이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들을 경배했기에 주의 진노가 이 땅에 일어나서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 위에 가져오셨으며』(24-27절).
이스라엘은 이방의 우상들로 인해 멸망한다. 그런데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운운하며 이스라엘을 비웃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과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이방과 친구가 되려 했으나,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들도 세상과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신앙을 온전히 지키려 할 때는 온갖 죄악들로 유혹하더니, 우리가 그 죄들로 징계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비웃는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죄들로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멸망시킬 뿐이다. 이 세상의 신이 우리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경고는 교리적인 특별한 부분 외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그 땅에서 뽑히지는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퍼부으셨던 진노를, 오늘날 우리에게 걸맞는 방법과 분량으로 우리를 징계하실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세상을 향하게 되면 그렇게 된다.
29절은 그러한 경고를 항시 기억하기 위해 주어지는 말씀이다. 『감춰진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나 나타난 일들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29절). 감춰진 일들, 즉 미래의 일들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계획되어 있다. 그것이 말씀 가운데 계시되어 있으나, 당시의 이스라엘은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타난 일들, 즉 그들이 행함으로 받는 결과들은 그들에게 속해 있다. 그들은 이미 과거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징계들을 받았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나타난 일들이다. 또 앞으로 들어갈 카나안 땅의 상황을 보건대 분명 수많은 전쟁과 더불어 유혹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그 경고의 말씀들이다. 그것이 그들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는 동기가 된다. 이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 역시 나타난 일들로 인해 하나님 말씀의 경고를 받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고 온전히 주님을 섬기는 동기가 된다. 세상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그 말씀이 우리를 잡아 줄 것이다. 시편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될 것이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였으니 이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함이니이다』(시 119:11).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