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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사랑의 법들 1 (신명기 22-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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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4월호>
지금까지 신명기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신명기의 법들은 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인용하신 바 있는,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신 6:5)는 것이 신명기 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웃 사랑에 대한 법들도 종종 등장했으며, 특히 22-25장 부분의 법들은 주로 이웃 사랑에 맞춰져 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웃은 곧 형제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이다. 출생에 의해서도 형제들이요, “언약의 백성”으로서도 형제들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상호간에 행해야 할 법들을 제시하시는데, 이 모든 법들에는 그들의 형제애 정신이 확고하다.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 특히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것은 율법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이며, 많은 선지자들이 책망한 죄들이다. 오늘날 현대 신학자들은 선지자들의 이러한 사역을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백성들을 “율법,” 즉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으로 돌아가라고 책망한 것이다.
1. 형제에 대한 보호(22장)
(1) 형제의 재산을 보호해 줌 (22:1-4)
본문은 형제가 소, 양, 나귀, 옷 등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게 되면 형제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한다. 심지어 이 물건의 주인이 누군지 모를 때에도 그 물건을 취해서는 안 된다. 그 물건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2절). 이것은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 조항의 실제적인 예이다.
이웃의 재산을 보호해 주는 것은 그를 하나님의 한 언약 가운데 있는 형제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누구나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는 축복의 백성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풍요로운 복 안에 거해야 한다. 만약 형제의 복을 빼앗게 되면, 그를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는 큰 원인 중 하나는 탐심 때문이다. 탐심은 상대방의 복을 빼앗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복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2) 성별의 생활화 (22:5-12)
여기서는 성별(separation)의 내용을 다룬다. 성별은 이스라엘을 이방인과 구분짓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동질성을 주어 형제애를 갖게 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별은 하나님께 경배드리거나 선을 행하는 데에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성별을 이뤄야 했다. 여기서는 그 중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남자와 여자는 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된다(5절). 남자에게 속한 옷이 따로 있고, 여자에게 속한 옷이 따로 있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이 구절에서 “바지는 남자에게 속한 옷, 치마는 여자에게 속한 옷”이라는 절대규정을 만들어, 여자들은 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고 말하기까지 하나, 그렇게 극단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같은 바지라 할지라도 남성용 바지가 있고 여성용 바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 명령은 남녀에 대한 기본적인 구별을 말한다. 옷입는 것에서부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가 옷이나 머리 등 외모에서 패션을 혼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마음에 심어 두신 본성(고전 11:14)을 거스르는 것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다. 무질서와 혼합은 사탄의 전유물이다. 남녀의 지나친 혼합은 성적 변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둘째, 포도원에 여러 씨를 함께 뿌리면 안 된다(9절). 즉 씨를 섞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씨가 섞이는 것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혼합의 하나님이 아니라 분리의 하나님이시다.
셋째, 수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갈지 말라(10절). 이에 대한 신약의 영적 적용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것이다(고후 6:14).
넷째, 여러 가지 실을 섞어 짠 옷을 입지 말라(11절). 역시 하나님의 분리의 성품이 반영되어 있다.
다섯째,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라(12절). 이 역시 이방인과 구별되는 이스라엘의 특징 중 하나다. 민수기 15:38에는 옷단 술에 청색 끈을 붙이라는 말씀이 추가되어 있다. 매일 입는 옷을 보면서, 이방인과 다른 그들의 위치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목적이다. 특히 청색 끈이라고 할 때, 그 청색은 하늘의 색으로, 성도들이 세상과 분리하여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는 영적 상징을 갖고 있는 색이다. 특히 옷단 귀에 술을 만들라는 것은 할례와 안식일과 더불어, 이스라엘이 독특한 민족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주신 표적들이다. 할례는 씨로부터 구별되었음을 보여 주고, 안식일은 그들 행동에 있어서 구별됨을 보여 준다면, 옷단 술은 그들의 외형적 모습도 구별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3) 무죄한 아내에 대한 보호 (22:13-21)
고대로부터 여성의 음란함은 매우 큰 죄였으며, 무고한 여성들이 음행죄로 모함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경은 무고한 여자들에 대해 철저히 보호하신다.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가 결혼할 때 처녀가 아니었다는 누명을 씌워 쫓아내려 하면, 그 아내의 부모는 처녀성을 입증할 수 있는 그녀의 옷(이불)을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보여 그 무고함을 밝힐 수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일백 세켈의 벌금을 그 부모에게 주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그녀를 평생 동안 버리지 못한다(13-19절). 반면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면, 즉 결혼 전에 처녀가 아니었음에도 속이고 결혼한 것이라면 그녀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다(20-21절).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단순히 개인의 범죄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더럽히는 행위로 여기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고, 이러한 죄는 거룩한 백성의 성별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간음죄는 극형에 처해지게 된다.
(4) 간음하는 남녀에 대한 형벌 (22:22-30)
여기에서는 몇 가지 경우가 제시된다.
첫째,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간통했을 때(22절). 이 경우엔 간음한 남녀 둘 다 죽인다.
둘째, 어떤 남자가 정혼(약혼)한 여자를 성읍 안에서 범했을 때(23-24절). 이 경우에도 둘 다 죽인다. 그 여자는 소리질러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어떤 남자가 정혼한 여자를 들에서 범했을 때(25-27절). 이 경우엔 남자만 죽인다. 들판에서는 여자가 소리질러도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넷째, 어떤 남자가 정혼하지 않은 처녀를 범했을 때(28-29절). 이때는 남자가 여자의 아버지에게 은 50세켈의 벌금을 치러야 하며, 그녀를 아내로 맞아 평생 버리지 못하게 된다.
성경은 이러한 죄를 다룸에 있어서 “이스라엘 가운데 악을 제하라”고 설명하고 있다(21,22,24절). 거룩한 언약의 백성을 더럽히는 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간음 현장에서 잡은 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려왔었다(요 8:3-5). 그러나 그들은 이 신명기의 율법을 철저히 무시했다. 왜냐하면 여자만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 율법에 따르면 남자만 죽이는 경우는 있어도, 여자만 죽이는 경우는 없다. 결국 그들의 의도는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뿐이었다. 율법사(서기관)라는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예수님을 대적했다.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율법을 수호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였다.”라고들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전혀 율법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메시야를 죽인 것이다.
2. 언약의 백성의 소중함 (23장)
(1) 주의 회중에 들어갈 자격 (23:1-8)
이스라엘의 회중으로 들어가는 자격은 기본적으로 출생에 의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만이 이스라엘의 회중이 된다. 하지만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게 되면 언약의 백성으로 포함시켜 주었다(출 12:48). 할례는 씨부터 구별되었다는 언약의 표적이다. 그러나 회중 가운데 들어옴에 있어서 몇 가지 제한 사항들이 있다.
첫째, 생식기에 문제 있는 사람은 주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한다(1절).
둘째, 사생아는 주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의 씨가 십 대를 거친 후에야 들어갈 수 있다(2절).
셋째, 암몬인과 모압인도 십 대까지 주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한다(3-6절). 그들은 출생부터가 불결하다. 암몬과 모압은 롯이 자기 딸들을 통해 낳은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을 거절하신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죄 때문이다.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은 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카나안 땅으로 새롭게 진군하기 시작한다. 그때 암몬과 모압 지경을 통과하려 할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절했고, 심지어 모압 왕은 발라암을 고용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기까지 했다. 당시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주의 회중에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네 평생 동안 그들의 평안과 번영을 구하지 말지니라』(6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의 행위들을 기억하신다. 그분의 눈동자는 그분의 백성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에돔인과 이집트인은 삼 대째부터 주의 회중에 들어갈 수 있다(7-8절). 에돔도 이스라엘의 진로를 거절하긴 했지만 그들을 여전히 형제 민족으로 취급하고 계시며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 말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돔은 형제의 언약을 저버리고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괴롭혔으며,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옵 1장). 이집트에 대해서도 미워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타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압제했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이스라엘은 요셉 이래로 이집트에서 번성했었다.
(2) 군대의 정결 (23:9-14)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군대이다. 따라서 그들은 특별히 더 정결해야 했다(9절). 여기서는 이에 대해 두 예를 제시한다.
10절은 레위기 15:16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정에 의한 유출을 말하고 있다. 비록 밤에 우연히 일어난 일일지라도 그는 하루종일 불결하다. 그는 진영 밖에 나갔다가 물로 씻고 저녁 때 들어와야 한다. 12-13절은 용변의 문제를 말한다. 용변은 반드시 진영 밖에서 봐야 하고, 흙으로 덮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분명 도덕적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레위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은 도덕적 거룩함 외에도 의식적 정결을 강조한다. 음식에 관한 법이나, 질병에 관한 법 등은 분명 도덕적 범죄와는 관련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의식적인 면에서도 정결케 되기를 원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이 반영된 법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가 매우 잘 드러나는 사건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하고, 그래서 도덕적인 범죄가 아니라 의식법에 따른 불결일지라도 이스라엘 군대를 더럽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해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영적 전쟁을 수행할 때 크든 작든 모든 죄로부터 정결케 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우리는 구약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법을 따르지는 않지만, 자그마한 죄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것을 충분히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죄 가운데 있는 성도는 영적 전쟁을 싸워 승리할 수 없다. 반드시 자백한 후 새로운 힘으로 싸워야 한다.
(3) 창녀에 대해서 (23:17-18)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적 범죄는 단순한 개인적 죄라기보다는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을 더럽히는 죄이다. 이러한 죄들이 넘쳐나게 되면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극형으로 다스렸으며, 이들이 어떤 돈을 벌어 하나님께 바친다 해도 그런 더러운 돈은 받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창녀짓뿐 아니라 도둑질이나 사기 등 더럽게 얻은 돈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복권당첨 등 간증이 되지 않는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4) 고리대를 금함 (23:19-20)
이자를 받는 것도 이스라엘 내에서는 금지되었다. 그들은 모두 형제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땅에 거하는 타국인들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 형제와 타인에 대한 구별이 강조되었다. 출애굽기 22:25에서도 고리대금업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그 땅의 가난한 형제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모두가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5) 서원의 법 (23:21-23)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서원은 자발적인 것이기 때문에, 서원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22절). 그러나 서원을 하고 지키기를 게을리하면 그것은 죄가 된다(전 5:4-5).
재판관 입다는 이 구절을 잘못 적용한 사례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전쟁을 승리케 해 주시면 자기 집에서 나오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했다(판 11:30,31). 그리고 외동딸이 그를 맞이하러 나왔을 때 입다는 자신이 서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딸을 번제로 바쳤다. 하지만 이는 서원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은 율법에서 금지된 것이었으며(신 18:10,11), 사람을 헌신할 때는 양을 대속물로 바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출 13:13).
(6) 이웃의 농산물에 대해 (23:24-25)
이스라엘은 사유재산이 존중된 사회였지만, 이웃의 밭에 들어가 따먹는 것은 허용되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이웃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들어가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었다. 다만 과일을 그릇에 담거나, 곡식을 낫으로 베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것은 이웃의 재물에 탐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로서, 가난한 형제를 배려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담겨 있는 명령들이다. 만약 신명기의 이러한 법들을 오늘 우리 사회에 문자적으로 적용한다면 재산권 침해로 고발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법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깨달아 우리 형제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믿음의 행위가 될 것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