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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 규례와 코라의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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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3월호>
(민수기 15-16장)14장에서 이스라엘은 40년간의 광야 생활 저주를 선포받는다. 그들은 절망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 15장은 전혀 그러한 분위기가 아니다. 아주 평상적인 율법의 내용으로서, 카나안 땅에 들어가서 주님께 드릴 희생제의 규례를 설명한다. 희생제와 더불어 음식제사의 규례가 제시되는데, 이는 레위기의 제사법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다. 민수기에서는 이처럼 레위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종종 나온다.
1. 새 땅에서의 희생제 규례(15장)
15:2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거주할 땅에 들어가서』라고 말씀하신다. 여기 제시되는 규례는 그 땅에 들어가서 지킬 규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그들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앞 14장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들이 아무리 광야에서 방황을 할지라도, 아무리 죄 가운데서 징계를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차근차근히 진행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절망적 상황이지만, 하나님께는 아니다. 하나님께 절망이란 없으며, 그분은 그분의 약속에 신실하시다. 그들의 미래를 알고 계시며, 친히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들의 상태에 아랑곳 없이 하실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의 인도자께서는 얼마나 위대하신가? 그러므로 성도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더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 여러 가지 상황이 우리 마음을 동요시킨다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분은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고 계시는 중이다.
1) 번제와 음식제사(15:1-21)
3절부터는 번제 혹은 화목제와 음식제의 다양한 규례들을 명령하신다(3-10절). 3절에서 『서원을 이루는 희생제나 자원하는 제사』는 화목제를 말한다. 『 향기로운 냄새』로 드린다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데(3,7,10,13절), 이는 레위기 1-3장에 따르면 번제와 음식제사와 화목제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어린양을 드릴 경우에는 고운 가루 1/10에 기름 1/4과 포도주 1/4힌을 함께 드려야 한다(4-5절). 숫양을 드릴 때는 고운 가루 2/10에 기름 1/3과 포도주 1/3힌을(6-7절), 그리고 수송아지를 드리려면 고운 가루 3/10에 기름 1/2과 포도주 1/2힌을 함께 드려야 한다(8-10절). 짐승을 드리는 규례에 대해서는 레위기에 나와 있으며, 나머지 추가적인 제물이 여기 민수기에 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그 땅에 함께 사는 타국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13-16절). 이는 타국인일지라도 그 땅에서 행해지는 거룩함의 법을 파괴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19-20절에서는 새 땅에서 양식을 먹을 때 첫 밀반죽으로 과자를 만들어 바치되 주 앞에서 들어올려야 한다. 이를 “들어올리는 제사”라 말한다. 이는 새 땅의 안식 가운데서 감사와 서원을 드리는 것이다. 같은 문맥 가운데 있는 18절에서는 2절과 마찬가지로 『 .. 그 땅으로 너희가 들어가면』이라 말씀하시고 있다. 무슨 말인가? 그들은 지금 40년의 방황이라는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징계 중에도 약속의 성취를 믿으라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2) 죄에 대한 속죄(15:22-31)
22절부터는 『 너희가 잘못하여』 드리는 제물, 즉 속죄제에 대해 말씀하신다. 23절에서는 『 주가 명령한 날부터 그후로 너희 세대들...』이라 말씀하시는데, 이는 새 땅에 들어간 이후 세대들이 범죄하였을 경우 해결책을 마련해 주시는 것이다. 희생제가 지금 은혜 시대와 비교했을 때에는 자주 드리는 불완전한 제사였지만, 그래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죄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범죄한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방식의 은혜였던 것이다. 희생제의 규례가 없었다면 그들은 죄 가운데서 죽어야만 했다.
모르고 범죄했을 때(레 4:13,28 참조), 온 회중의 범죄인 경우엔 번제(어린 수송아지)와 음식제사와 술붓는 제사(8절처럼)와 속죄제(숫염소 새끼)를 드린다(24-25절). 개인의 범죄인 경우엔 속죄제로 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를 바친다(27절) [24절에서 『 온 회중은 주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는 방식대로....』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번제를 드리는 방식”이란 레위기에 나와 있는 규례대로라는 말이다.] 그러나 “주제넘게” 범죄한 경우, 즉 의도적으로 범죄한 경우에는 희생제가 없다. 특히 “주제넘게”라는 말은 권위에 대항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신 17:12). 그런 자들은 백성 가운데 끊어지게 된다. 즉 멸망한다. 본문에서도 “주를 비방”한 것, “주의 말씀을 멸시”한 것에 대해 말한다(30-31절). 잠언 13:13에서도『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누구라도 멸망할 것이나...』라고 말씀한다.
3) 안식일을 범한 예(15:32-36)
32절부터는 안식일을 어긴 한 예를 제시한다. 출애굽기 십계명에서는 단지 안식일을 지키고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만 하셨는데, 광야 생활을 하는 도중 안식일을 어기는 그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났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뭇가지를 거둬들인 것이다. 이는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는 말씀에 위배되었다(출 35:3). 이에 대한 처리 규정이 없어서 그를 감금해 놓았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셨다(35절). 민수기에서는 이처럼 율법이 구체적인 사례로 적용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죽인다는 것은 죄에 대한 처리이다. 죄의 징계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드러낸다. 특히 안식일은 창조 질서와 경륜의 질서가 반영된 의식법으로서, 유대인에게는 “표적”(겔 20:12)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방인이나 신약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유대인에게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언약을 맺은 귀한 표적이었다.
4) 옷단 술의 표적(15:37-41)
37절부터는 옷단에 술을 만들고 거기에 청색 끈을 붙이라는 특별한 명령이 나온다. 이 역시 의식법으로서, 유대인 외에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유대인은 옷부터 특별해야 함을, 즉 이방인과 구별되어야 함을 보여 주며, 매일 입는 옷을 봄으로써 자신들이 독특한 백성임을 인지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청색” 끈인가? 여기엔 영적인 의미가 있다. 청색은 하늘의 색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골 3:1-2). 유대인들이 매일 입는 옷을 보면서 “주의 계명을 기억하여”(39절) 조심하듯이, 우리 성도들도 매일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면서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39절에서는 이것을 보고 『 음란하게 숭배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눈을 따라 추구하지 않게』 해야 한다 하셨다. 우리 역시도 우리의 눈을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어야 할 것이다.
2. 코라의 반역(16장)
1) 코라 무리의 불평(16:1-19)
민수기 16장에서는 광야 생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반역이 나온다. 그것은 코라와 일단의 무리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든 것인데, 구체적인 요구 사항으로는 그들도 “제사장 직분”을 얻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10절). 이 반역에는 코라뿐 아니라 다단과 아비람, 또 고관들 250명도 가담했다. 이는 그들의 요구 사항이 단순한 제사장 직분만은 아니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코라는 레위인이었지만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족속으로서, 어차피 성막의 일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불만을 가진 것이며, 나아가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그들은 『 온 회중이 각기 거룩하고 주께서도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3절)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옳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두를 거룩한 민족으로 삼아 주셨고, 그들 회중 가운데 계신다. 사탄은 이처럼 반쯤은 옳은 말을 해 가면서 미혹하는 것이다. 사탄이 100% 틀린 말만 한다면 누가 그에게 속겠는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말로 미혹하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너희가 어찌하여 주의 회중보다 너희 자신들을 높이느냐?”(3절)라고 한 말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온 회중과 구별하여 더 특별히 세우시는 사람들이 있다. 구약에는 특히 더 그랬다. 그들은 더 거룩한 자들이다. 레위인이 그랬으며, 제사장이 그랬다. 코라는 레위인으로서, 그것도 “코핫 자손”으로서, 성막의 임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임무인 ‘지성소와 성소의 기명들’을 맡았던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섬김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높아지려 했다. 주어진 위치보다 더 높아지려는 것은 마귀의 속성이다(사 14:13-14). 반역은 이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가장 신임받는 자리, 다른 사람들보다 충분히 높은 위치에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코라는 모세와 아론에게 『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3절)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세는 거꾸로 말했다. 『 너희 레위의 아들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7절). 누가 분수에 지나친 것인지 판단해 보라. 코라는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교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소위 민주주의적 사고를 가진 세상의 모든 대중들 사이에 팽만해진 생각이다. 오늘날 세상에 흐르는 사탄의 큰 영향력 중 하나는 ‘인간의 권리’를 내세워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코라를 책망하신다. 그들이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이 『 작은 일로 보이느냐?』(9절)라고 말이다. 이 말은 오늘날 어떠한 형태로라도 하나님께 봉사하는 성도들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크게 봉사하고 어떤 이는 작게 봉사한다. 어떤 이는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정말로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께 봉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신다. 하나님께 그 일들은 결코 작지 않다. 그렇게 작은 일에 신실한 자들에게 큰 일을 맡기신다 하셨다(눅 19:17).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평은 다단과 아비람에게서 더 드러났다. 그들은 모세가 불렀을 때 직접 거절하며 『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에서 죽이려』 한다고 말했다(13절). 그들은 이집트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표현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정면으로 대적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반역자들에게 향로를 가지고 주 앞에 모이라 하셨다. 아론도 자기 향로를 가지고 왔다. 원래 향로는 아론(제사장)만 가져야 했다(40절).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누가 향로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알려 주시겠다는 것이다. “누가 거룩한지”를 보여 주시며 누가 “주께서 택하신 자”인지를 보여 주시겠다는 것이다(5절).
2) 반역자들에 대한 심판(16:20-40)
다음 날 아침 이들이 각자 향로를 갖고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셨다. 원래는 회중 전체를 소멸하시겠다는 것을 모세가 중보하여(21-22절) 반역한 자들만 소멸하시는 것으로 낮추셨다(24절).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장막들을 완전히 멸하셨다. 『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들과 코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을 삼키니라』(32절). 그들은 “산 채로 구렁으로” 내려갔다(30절). 즉 산 채로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반역에 가담했던 250명도 주께로부터 나온 불로 소멸되었다(35절). 그리고 죄인들의 그 향로들로 제단을 싸는 평판을 만들어 기념물이 되게 했다(38-40절). 그것을 보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말라고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37절에서는 그 악인들의 향로들을 “거룩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그 향로들의 주인들의 도덕성과는 관계없는 말이다.
이에 앞서 모세는 모든 회중들에게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라.”고 명했다(26절). 떠나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 땅 속으로 꺼지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준다. 즉 멸망할 세상과 함께 있으면 함께 멸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심판에 동참치 않으려면 떠나야 한다.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한다. 어찌하여 성도가 세상 사람과 같이 취급받아야 하겠는가?
3) 회중의 불평(16:41-50)
이러한 무서운 형벌을 보고도 회중들은 여전히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심판임을 분명히 목도하고서도 그들은 『 너희가 주의 백성을 죽였도다.』(41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죽음의 책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만 보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은 보지 않고 이러한 두려운 일 자체에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역시 사탄의 미혹이다. 자기가 잘못해서 벌을 받은 것은 기억지 않고, 괴롬당한다는 것 자체만 집중하여 불평하는 모습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대환란 때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온갖 재앙을 내리실 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한다. 자기들의 죄는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계 16:9).
이에 하나님께서는 회중 전체를 소멸시키려 하셨다(45절). 하지만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아론은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가서 향을 피워 백성을 위해 속죄했다(46-47절). 이미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됐고, 백성들은 이미 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론이 향을 피워 속죄하면서 재앙은 그쳤다. 코라의 일 외에 그날 죽은 자들이 14,700명이라 했다(49절). 이 끔찍한 장면을 성경은 『 그가[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가운데 섰더니...』(48절)라고 묘사한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일이다. 즉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는 것이다. 백성의 죄들을 하나님께 아뢰어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백성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주는 것이다. 이로써 아론은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진노를 막아 주시고 죄인들을 아버지께 이끄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론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분이 친히 그분의 몸으로 아버지의 진노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제사장일 뿐 아니라 제물이기도 하셨던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