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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교훈 8 - 돌판의 보존된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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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6월호>
『아스돗 사람들이 다음 날 일찍 일어나니, 보라, 다곤이 주의 궤 앞에 쓰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더라. 그들이 다곤을 집어서 다시 그 자리에 세워 두더라. 그들이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보라, 다곤이 주의 궤 앞에 쓰러져 그 얼굴이 바닥에 닿았으며,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은 문지방 위에 끊어져 있고 다곤의 몸통만 남아 있더라』(삼상 5:3,4).위의 사무엘상 말씀은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온 『하나님의 궤』가 바로 그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저주가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려고 나가서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삼상 4:1). 이스라엘은 전쟁 중에 약 4천 명의 군인이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전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은 백성들에게 『어찌하여 주께서 오늘 우리를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가? 주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오자. 그 궤가 우리 가운데 오면,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삼상 4:3)고 말한다. 그들은 주의 언약궤가 오면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당시 회중의 성막이 있던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만군의 주의 언약궤를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당시 대제사장으로 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피느하스가 언약궤를 가지고 전장에 도착하는데,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이 두 인물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다. 홉니와 피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멸시했고(삼상 2:13-17), 회중의 성막 문에 모인 여인들과 동침하는 것으로 백성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삼상 2:22,23). 그런 패역한 벨리알의 자식들이 주의 언약궤를 가지고 왔음에도 백성들은 주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오자 땅이 울릴 정도로 환호성을 질렀다(삼상 4:4,5). 그들은 언약궤만 있다면 그들이 어떤 죄 가운데 있어도 전쟁에 승리할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역시나 그들은 패하고 말았다. 죄 가운데 있으면서 말씀을 의지하여 싸운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진영으로 들어오셨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이전에는 저런 일이 없었음이라.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런 막강한 신들의 손에서 구해 내랴? 이들은 광야에서 모든 전염병으로 이집트인들을 치셨던 그 신들이라.』(삼상 4:7,8) 하면서 벌벌 떨었지만, 곧바로 전의를 가다듬고 『오 너희 필리스티아인들아, 강하고 사나이답게 행동하라. 그래야 너희는 히브리인들이 너희에게 종 되었던 것같이 그들에게 종이 되지 아니하리라. 사나이답게 행동하여 싸우라.』(9절)고 하며 전투에 적극 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의 대패로 끝났다. 그들은 2차 전투에서 보병 3만 명이 쓰러졌고, 제물을 멸시하고 성막 문의 여인들과 동침했던 홉니와 피느하스 역시 죽었으며, 백성 각자는 자기 장막으로 줄행랑을 쳤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말았다(10,11절). 그러나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가증한 죄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미신처럼 이용하려 한 자들을 돕지 않으셨을 뿐,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전사』(출 15:3)이시다. 싸움은 불결한 죄인들이 궤의 곁을 떠났을 때부터가 진짜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궤를 빼앗아 아스돗의 다곤 신당으로 가져와 다곤 곁에 두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의 위대한 신 다곤이 주의 궤 앞에 쓰러져 얼굴이 땅에 닿아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그들의 신을 “집어서” 다시 그 자리에 세워 두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가 보니 그들의 신은 주의 궤 앞에 쓰러져 얼굴이 땅에 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와 두 손목이 동강이 난 채 문지방 위에 끊어져 있고, 몸통이 흉물스럽게 뒹굴고 있었다(삼상 5:3,4).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그들을 악성 종기로 치셨고,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우리 곁에 두지 말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의 신 다곤을 심히 치시는도다.』(7절)라고 하며 하나님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갔다.
그러나 궤의 위력은 가드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주님께서는 가드를 큰 멸망으로 치셨으니, 성읍의 작은 자, 큰 자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은밀한 부분에 악성 종기가 나게 하셨다(9절). 그러자 그들은 그 궤를 에크론으로 보냈지만, 궤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에크론인들은 궤가 오자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 가져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10절)며 아우성을 쳤다. 역시나 하나님께서는 온 성읍에 극심한 멸망을 가져오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손은 매우 엄중하게 임하셨다. 사람들이 죽고, 죽지 아니한 자들은 악성 종기로 고통받았으며, 그리하여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까지 올라갔다(11,12절). 결국 그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의 모든 군주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보내고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여, 그것이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지 못하게 하라』(삼상 5:11).
하나님의 궤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지방에 일곱 달 동안 있으면서(삼상 6:1) 그곳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을 나타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싸우신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우치게 된다. 대환란이 끝날 즈음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계 19:13)이신 것을 보면 이 진리는 더욱 확고하다. 현 교회 시대의 성도가 치르는 전쟁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다(고후 10:4). 그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으로 『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고후 10:5).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언약궤의 “나홀로 전쟁”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궤 속에 들어 있던 십계명의 두 돌판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처음 받았던 “원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깎으라. 그러면 네가 깨뜨렸던 처음 돌판에 있던 말들을 내가 이 돌판 위에다 쓰리라』(출 34:1). 『하나님의 작품이요 그 쓰신 것도 하나님께서 돌판에 새겨서 쓰신 것』(출 32:16)이라고 일컬어진 “처음 두 돌판”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를 목격하던 날 산 아래서 “깨뜨려졌다”(출 32:19). “원본”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번째 돌판을 만들어 오라 하시어 거기에 처음 돌판에 기록하셨던 십계명을 다시 기록하셨다. 말하자면 처음 돌판의 십계명을 “보존”하신 것이다!
필리스티아인들의 지방에서 일곱 달 동안 홀로 싸우신 하나님의 언약궤에는 원본 십계명이 아닌 “보존된 십계명”이 들어 있었다. 원본 십계명은 모세가 깨뜨려 버렸기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후로 이스라엘은, 정확히 말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보존된 십계명” 돌판으로 주님을 섬긴 것이다. 주님께서는 “보존된 십계명”이 들어 있는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이방인들을 “친히” 강력하게 치신 것이며,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치를 떨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삼상 5:11)를 그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 드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배교한 기독교계에서는 자신도 본 적이 없는 “원본 성경” 타령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배교한 신학교들에서, 그곳 학자들에게서 잘못 배우고 나온 자칭 목사들의 교회들에서 “원본 성경”이 높임을 받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성도들에게서 말씀을 빼앗아가는 마귀의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이 보존된 돌판이 담긴 언약궤와 함께하시며 역사하셨듯이, 지금도 “보존된 성경”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아무도 “원본 성경”을 본 적이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보존된 성경”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성경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존된 성경”을 통해 역사하시는데 “보존된 성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그 안에 “없음”이라고 된 구절들이 없고, 하나님께서 성경의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보존하신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말한다. 이 성경이 주님께서 “영원한 보존”을 약속하신 바로 그 성경이며, 주님께서는 바로 그 “보존된 성경”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도 능력 있게 싸우시는 것이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