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의 경륜적 진리 분류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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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7월호>
성경(특히 마태복음)을 공부할 때,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 왕국이 초림 때 세워질 수 있었지만 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유대인들의 거부로 인해 재림 때로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만 제대로 알아도 마태복음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많은 구절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다. 이 나라 교계 목사들 및 신학교들의 교수진 대부분은 이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 이유인즉슨 성경을 공부하는 데 게으르기 때문이다. 공부한다 해도 세대주의와 전천년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에 성령님으로부터 올바른 조명을 얻지 못한다. 그들 모두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들을 형성했던 어거스틴의 후천년주의 누룩에 취해 있다. 무천년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세대주의를 거부하다 보니 성경의 주제가 “왕국”이라는 사실에 대해 무지하고 유대인과 교회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도, 문자적인 해석 방법을 취하지 않고 성경 변개자 오리겐을 따라 비유적(은유적, 풍유적, 우화적)으로 해석한다. 결국 똑같은 구절을 두고도 해석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진리가 무의미하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고(벧후 3:16),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자들(딤후 3:7)이라고 경고한다.초림 당시의 상황을 보면 왕국이 임할 수 있는 준비가 하나씩 마련되고 있었다. 우선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의 계보를 따라 다윗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왕으로서의 정통성을 충분히 지니셨고(마 1장), 율법의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침례를 받으셨으며(마 3장), 왕국과 연관된 마귀의 모든 시험(마 4장)을 진리의 말씀으로 이기심으로써 왕이 되시기 위한 준비를 마치셨다. 다음으로 땅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대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의 속국으로서 존재하긴 했지만, 선지자들이 예언한 왕국은 점진적인 방법이 아니라 갑자기 세워지는 것이므로(단 2:44), 위대하신 왕께서 로마를 멸하시고 진정한 왕국을 세우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백성들”이었다. 왕도 오셨고, 땅도 있고, 통치 기틀인 법령까지도 제정되었는데, 정작 다스릴 백성이 없다면 그것을 어찌 왕국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에 백성을 준비시켜 왕국으로 들어가게 할 필요가 있었으니, 곧 이를 위해 침례인 요한이 보냄을 받았던 것이다(눅 1:17). 요한이 예비한 길을 따라서 백성들은 왕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특히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땅히 행해야 할 조건들이 있었는데, 이 조건들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설교(왕국 헌법)를 중심으로 마태복음 곳곳에 나타난다.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구약에서도 볼 수 있다. 출애굽 당시 약속의 땅을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모세를 통해 제시하셨다(출애굽기, 레위기).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카데스바네아에서의 불신과 반역으로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민 32:11). 이후 약 사십 년이 지났을 무렵, 이스라엘이 요단 강 근처 모압의 평지에 이르러서 다시 한 번 카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 땅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다시 “두 번째”로 선포하셨다(신명기). 그리고 그들은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그 땅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로 하나님과 율법을 버리고 우상 숭배로 돌아섬으로써 결국 그들의 왕국은 멸망하고 말았다(B.C. 606). 그로부터 약 600년이 지난 초림 때, 또다시 백성들은 왕국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약과 다른 점이 있었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 왕이나 지도자들이 아닌 진정한 왕, 곧 예언을 성취하실 메시아께서 그들의 눈 앞에 몸으로 나타나 계셨던 것이다. 또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한 왕국이 준비되고 있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왕국에서 지켜야 할 “법령”을 매우 권위 있는 말씀으로 선포하셨다. 더불어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조건들도 설명하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거부로 왕국은 연기되고 말았다. 이에 유대인들은 미래의 대환란 때, 곧 왕국이 임하기 직전에 또다시 초림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마태복음에는 교회 시대에 적용할 수 “없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히려 환란 시대의 교리들이 나온다. 상황 자체가 왕국이 임하기 직전임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에 교회 시대는 시작조차 하지도 않았다. 신약의 거듭남의 조건이나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은, “마태복음 27장”에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피가 흘려지기 전까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들이 다루어진다. 왕국은 결코 교회가 아니다! 성도가 죽어서 가는 셋째 하늘의 낙원도 아니다! 이것은 지상에 세워질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왕국이다. 그러므로 교회 시대의 구원 방법이나 교리를 마태복음에서 찾으려는 사람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또한 이것이 교회 시대의 교리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비교해 보자.
1. 우선 왕국 법령의 핵심은 “의”(righteousness)이다. 이것이 있어야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너희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여기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율법의 의”이다. 그러니까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율법의 의보다 훨씬 더 엄격한 “의”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교해서 교회 시대에 요구되는 의는 어떠한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나 왕국 법령을 “행함”으로 얻게 되는 의처럼 율법의 의(롬 8:4, 빌 3:6)나 사람의 의(삼상 26:23, 합 2:4)가 아닌, 믿음을 통해 얻는 하나님의 의(롬 1:17, 고후 5:21)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 “의”는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것인데(롬 3:21,22), 사실 그분께서는 왕국 헌법을 제정하신 분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 안에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 성도들은 바리새인들의 의나 왕국 헌법의 의보다 더 뛰어난 의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2. 영이 가난해야 구원받고 물리적인 왕국을 소유할 수 있다(마 5:3). 곧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시 51:17, 사 61:1), 통회하고 겸손한 영(사 57:15)이 있어야 한다. 교회 시대에는 이런 마음을 지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된다(골 1:13).
3. 마음이 온유해야만 왕국으로 들어가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마 5:5).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로 구원을 받고(엡 2:8), 주님을 위해 고난을 견딜 때 보상으로 땅을 받는다(딤후 2:12).
4. 자비로워야 한다(마 5:7). 그래야만 왕국이 임할 때에 심판하시는 왕으로부터 자비를 얻게 되어 바깥 흑암인 지옥에 던져지지 않기 때문이다(마 8:12). 교회 시대에 자비를 얻는 조건은 자비로운 행위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다.
5. 마음이 순결해야 왕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마 5:8).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지니지 못하면 영광의 왕이 다스리시는 왕국에서 주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도 없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게 된다(시 24:3,4). 그러나 교회 시대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비록 순결하게 못살았다 해도 예수님의 피로 양심까지 정결하게 된 사람들은 왕이신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6. 화평케 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수 있다(마 5:9). 반면 교회 시대에는 화평케 하는 사람들로서 살지 못했다 해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된다(요 1:12).
7. 의로 인해 박해를 받아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마 5:10-12).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믿음을 저버리면 구원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의로 인해 박해를 받을 때 끝까지 견디지 못했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다만 왕국에서의 유업을 잃어버릴 뿐이다.
8. 원수를 사랑하고 악인에게 잘 대해 주어야 아버지의 자녀들이 될 수 있다(마 5:44,45). 왕국이 임하기 직전의 상황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자녀가 되는 조건임과 동시에 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마 5:46). 교회 시대에 자녀들이 되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요 1:12).
9.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만 용서받아 왕국으로 들어간다(마 6:14,15). 그러나 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하게 된다(골 3:13).
10. 믿음과 행위가 있어야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마 7:24-27). 이 부분은 마태복음 여러 구절들에서 강조된다. 이처럼 행위가 요구되기에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을 받는다(마 24:13). 여기서 “끝”은 개인의 삶의 끝이 아니라 왕국이 임하기 직전의 일정 기간, 곧 교리적으로 “대환란”의 끝에 해당한다(마 24:21). 이 기간이 끝날 때까지 인내로 견뎌야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반면 교회 시대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또한 성도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서 끝까지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전 1:8, 롬 8:38,39).
11.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들같이 되어야 한다(마 18:3). 이것은 겸손해야 한다는 권장 차원이 아니라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로써 요구된다. 물론 교회 시대에도 어린아이들과 같이 낮아지고 겸손한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없다. 하지만 성도가 겸손하지 않게 행한다고 해서 구원을 잃어버리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마 18:5). 즉 누군가에게 어떤 “권위”를 위임하시고 그 권위를 위임한 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셔서 그 권위가 위임된 자(즉 선지자나 의인)를 영접하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다(마 10:40-42; 25:37-40). 이것은 교회 시대에 적용할 수 없다. 이는 이 시대에 어떤 구령자를 영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12.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마 19:21,23,24). 부자인 젊은 관원은 탐심을 버리지 못한 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지키지 못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마 19:16,17,21). 이는 대환란 때도 동일한데, 이 기간이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란 때 부자들은 구원받기가 더욱 쉽지 않다. 이것은 교회 시대의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조건들”을 지키지 못했고 왕을 거부했다. 왕국은 재림 때로 연기되었고, 이스라엘은 전무후무한 대환란을 통과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원한 왕국을 또다시 목전에 둘 텐데, 그날에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며 인내한 백성들은(계 14:12)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바깥 흑암으로 던져진다. 이 모든 것은 교회 시대와 무관하다. 왕국이 임하기 직전과 교회 시대 간의 교리가 이처럼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BB